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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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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23:1~6절 “부족함이 없는 삶은 여호와가 목자가 되어주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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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3-07-28 18:45    조회 392    댓글 0  
 
시23:1~6절 “부족함이 없는 삶은 여호와가 목자가 되어주실 때” 2023.7.30.
오늘 오후 비행기로 우리 청년11명과 지도목사이신 조영훈목사님 그리고 청년부장 신경호장로님과 곽옥경권사님 그래서 모두 열네 분이 우리교회 출신이신 박종암선교사님이 시무하시는 호치민으로 출발해서 힙탄교회 주일학교를 섬기는 사역을 하게 될 것입니다. 위해서 많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와 베트남을 길게 걸쳐 흐르는 세계에서 12번째 긴 강 약 사천 킬로미터를 흐르는 강 메콩강이 있습니다. 라오스어로 메는 엄마, 콩은 강이라는 의미랍니다. 엄마의 강이라는 거지요 그만큼 생명을 선물하는 강인데 예수 믿는 우리에겐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그리고 그분을 노래하는 다윗을 통해서 오늘 은혜 받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1절을 보시지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히브리어 <로이>가 <목자>거든요. 오늘 시편기자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로이> <목자>라고 말하고 있음을 봅니다. 여호와란 이름이 주는 의미가 뭘까요? 많은 백성 중에 택하셔서 언약을 통해 자기백성으로 삼으시고 그 언약을 신실히 지키시는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라는 거지요 <목자> 히브리어 <로이>의 원형이 <라아>인데 <라아>는 <먹이다> 또는 <돌보다> <양육하다> 또는 <다스리다>라는 의미니까 다윗이 여호와를 나의 목자라고 한 것은 나를 택하시고 언약을 맺어 당신의 백성 삼으시고 그 언약을 끝까지 지키시는 여호와께서 목자가 되셔서 날 보시고 먹이시고 기르시고 다스리심을 믿는 다는 거 아닙니까?
다윗은 자신이 양들을 치면서 목자를 잃어버린 양이 얼마나 처참하게 죽게 되는지를 봤었거든요 사나운 맹수에게 갈기갈기 찢겨져 가죽과 뼈만 남은 채로 죽은 양의 주검을 봤었고 뜨거운 태양 아래 몸 숨길 데를 찾지 못한 채로 방황하다가 갈증에 목말라죽은 양의 주검도 봤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뭘 깨달았습니까? 목자에게서 떨어지거나 잃어버린 양이 되면 죽는다는 거 그러므로 목자와 양의 관계는 사랑과 신뢰의 관계가 되어야 하고 다스림과 순종의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거지요 다윗이 예흐와 로이, 여호와 나의 목자라고 본 시를 시작하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날 사랑하시는 나의 목자 여호와를 신뢰하며 날 다스리시는 나의 목자를 내가 순종하겠다는 거거든요
그래서 여호와 나의 목자이시기 때문에 내가 부족함이 없다는 고백입니다. <부족함> 히브리어 <에흐싸르>는 <모자라다> 또는 <결핍되다>니까 여기에 부정사 <로>가 더하여 절대로 부족함이 없다는 거거든요 여기 부족함이 없다는 로 에흐싸르는 미완료형 단어니까 풍족함이 지속이 될 거라는 의미를 주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부족함이 없다는 고백은 어떤 환경에서 나오는 걸까요? 걱정 없고 평화로운 상황에서 부족함이 없다는 걸까요? 이런 환경에선 누구든지 부족함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부족함이 없다는 것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부족함이 없음이요. 그리고 害(해), 해로울 이롭지 못한 일들에서도 부족함이 없음이요 원수의 목전에서도 부족함이 없음이라는 거 아닙니까? 우리도 이런 고백이 우리의 입술로 나올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요10:14~15절에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우리 위해 목숨을 버리시는 목자이신 예수님은 요10:10절에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그리고 요10:28절에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러면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30절에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성자예수와 성부 하나님이 하나이고 그분이 목자가 되어 생명을 풍성하게 허락하시니 우리 또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은 안 좋은 상황에서 우리의 육신을 아프게 하고 병들게 하고 해롭게 하는 환경에서도 또 원수의 목전에서까지도 <로 에흐싸르> 부족함이 없음을 고백하시는 분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절을 보시자구요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2절에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 3절에 <소생시키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과는 다르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닌다는 거지요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빠져 나올 수 없었다는 것이 아니지요 오히려 이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하나님이 구원하신 은총을 기억하면서 앞으로 죽음을 생각할 만큼 어두운 일이 닥친다 해도 두려움 없이 이것들을 맞이하겠다는 거 아닙니까?
여기 <사망의 음침한> 히브리어 <찰르마웨트>는 <죽음의 그림자> 또는 <죽음의 그늘>이란 의미거든요 그러니까 최악의 고통의 길을 걸어갈 때에도 예흐와 로이, 여호와가 나의 목자가 되심으로 두려워하지 않을 거라는 겁니다. 우리도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를 향하여 나갈 때 우리의 목자로 자신의 생명을 주시고 더 풍성히 주시는 예수님이 두려움대신 평안을 약속해 주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16:33절에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두려움 대신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근거 예수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신다는 것이 인생 살면서 겪는 온갖 위기 앞에서 참으로 값진 자본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기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께서> 히브리어 <앗타>는 <주께서 라기> 보다는 <당신께서>라는 거지요 뭡니까? 당신이란 단어가 주는 친밀감과 인격적 관계의 깊이를 나타내고 있다는 거거든요 마치 아버지가 아들의 손을 잡고 걷고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는 거거든요 그렇게 친밀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히브리어 <임마디>는 <곁에> 또는 <가까이>니까 친밀감으로 하나가 되어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 <앗타 임마디>라는 거지요 다윗은 어느 때는 당신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 것 같을 때가 있었음을 시22:1절에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이 말씀은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외치신 예수님의 말씀이기도 하잖아요. 이 일로 인해 이루심이 뭐랍니까? 27절에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뭡니까? 하나님의 침묵은 모든 민족이 예배하는 복된 모습이 되게 하셨다는 거 아닙니까?
이번엔 다윗을 보자구요 24절에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가 울부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다윗은 결국은 여전히 <앗타 임마디> 당신께서 친근감 있게 함께 하심을 또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는 거지요 우리 예수님 우리를 위한 또 다른 이름이 뭡니까? <임마누엘> <하나님이 함께 하시다>잖아요. 그리고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신다고 말합니다. 지팡이와 막대기의 용도가 양 무리를 인도하는데 보다는 맹수들로부터 양들을 지켜내는 일에 사용되고 있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이 지팡이와 막대기를 가지고 맹수들을 물리침으로 양들로 안심하게 하고 위로를 주었던 것처럼 나의 목자이신 여호와께서도 사단이 해하려는 데서 안심하게 하실 거고 위로가 되게 하심이 매 순간마다 반복될 거라는 것이 다윗의 확신이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평안을 주실 거고 위로로 채우실 것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6절을 보시지요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여기 <반드시> 히브리어 <아크>는 <확실히> 또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이란 의미거든요 <내 평생에> 의심의 여지가 없이 확실히 아는 것은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멈추는 날은 단 한순간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거지요 그렇다면 선하심은 뭘까요? 히브리어 <토브>는 <좋은> 또는 <아름다움>을 뜻하거든요 그리고 인자하심은 뭘 말할까요? 히브리어 <헤쎄드>는 <친절하심> 또는 <사랑하심>이란 의미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조건 없이 사랑해 주시는 것을 나타내는 단어니까 다윗은 자신을 조건 없이 평생을 사랑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에 차 <헤쎄드>를 사용하고 있다는 거지요 그리고 <나를 따르리니> 히브리어 <이르떼푸니>는 <뒤따라가다> 또는 <추구하다>는 의미로 지금도 그리고 미래도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평생토록 내 뒤를 따를 거라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서 5절에 뭐랍니까?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가 평안하게 식사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 원수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셨다는 겁니다. 더군다나 내 머리에 기름을 부르셔서 나를 존귀하게 하셨으니 내 잔이 넘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사망이 없는 영원한 삶을 말하고 있잖아요.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니니 내가 죽으리로다가 아니지요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라고 말하고 있음을 본다는 겁니다. 다윗은 목자일 때 날이 어두워지면 그 양 무리들을 우리로 들이고 우리로 들어간 양 무리들은 하루를 끝내고 하루의 피곤을 쉼을 통해서 안식할 수 있었던걸 기억하면서 자신도 목자이신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집으로 영원히 들이실 것을 고백하고 있는 거지요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우리의 일평생인 하루가 끝나는 날이 반드시 옵니다. 더불어 우리의 생명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때가 오는 것을 믿습니다. 요11:26절에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딤후1:10절에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그렇다면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여전히 우리가 체험하게 될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평생에 이젠 더 나아가 여호와의 집에서까지도 영원히 뒤 따르는 삶이 바로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우리의 삶인 줄 믿습니다. 우리 고백하십시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니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 고백과 함께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평생에서 영원까지 따라오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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