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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40:31절 “새해, 여호와를 앙망하여 새 힘을 얻는 자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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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3-01-06 15:34    조회 1,036    댓글 0  
 
이사야40:31절 “새해, 여호와를 앙망하여 새 힘을 얻는 자로 살자” 2023.1.8
어느 날 알렉산더 대왕은 너무나 기분이 좋은 나머지 자신의 신하들에게 선물을 베풀고 있었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재산을 줍니다.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영토를 과감하게 떼어주기도 합니다. 그런가하면 또 다른 신하들에게는 더 높은 지위의 자리를 내어 주었습니다.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본 대왕을 가깝게 모시는 신하가 염려가 되어 대왕에게 이렇게 하시다가는 대왕께 남는 것이 없을 듯싶다고 말하였다는 거지요 듣고 있던 알렉산더대왕이 절대로 그렇지 않네 난 정말 내게 소중한 것을 남겨두었지 하면서 그 소중한 것을 이야기해주더랍니다. 알렉산더대왕의 그 소중한 것은 바로 희망이었다는 거거든요
오늘은 새해 두 번째 주일로 알렉산더대왕만큼이나 소망을 생각하게 주일이 아닐 수가 없는데 소망이 뭡니까? 히브리어로 ‘티크바’가 소망이라는 단어인데
이 ‘티크바’란 소망의 어원이 ‘줄’에서 왔다는 거지요 양쪽으로 팀이 나뉘어 줄다리기를 할 때 심판관의 기압소리와 함께 양쪽으로 팽팽하게 당겨진 줄처럼 아직 승부가 나지 않은 채로 줄을 끌어당기고 있을 때 바로 이때가 양쪽 모두에겐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는 거지요
그렇다면 우리 믿는 자들에게 소망이 뭘까요?
오늘 본문 상반 절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라고 말씀하지요.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 팽팽하게 당겨진 줄, 이를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다고 말하는 거지요 반대로 이 줄이 느슨해진다면 뭡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더 이상 소망이 없는 상태가 된다는 겁니다. 여기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히브리어 ‘웨코예 예흐와’는 ‘여호와를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자’ 또는 ‘위를 쳐다보면서 여호와를 대망하는 자’를 의미하는데 이렇게 ‘웨코예 예흐와’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가 어떤 소망의 결실을 얻습니까? 여호와께로부터 새 힘을 얻는다는 거잖아요 히브리어 ‘야할리푸’ ‘새 것을 얻는다’거든요 그 새것이 뭐랍니까? 히브리어 ‘코아흐’ ‘힘’이라는 거지요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들은 힘이 새롭게 움틀 것이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새’것을 얻는다’ 히브리어 ‘야할리푸’가 ‘나무에서 새싹이 나고 땅에서 새 풀이 돋아나는 것’을 의미하거든요 그러니까 당장 환경이 바꾸어지게 하시기보다는 당신을 앙망하는 자들에게 겨울의 추위를 이기고 새싹처럼 솟구치는 능력을 주시고 새 풀처럼 돋아나 앞으로 자라서 왕성하고 지속적인 생명력을 부여해 주신다는 거지요 그러므로 우리 모두 여호와를 앙망하는 ‘웨코예 예흐와’로 한 해를 살아갈 때 ‘야할리푸 코아흐’ ‘새 힘을 얻는’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 예로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겠다고’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백성들을 데리고 요단강을 건너 마침내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고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가나안 땅을 차례로 정복해 나가잖아요. 이때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을 앙망하는 소망의 줄이 아주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는 거고 그때 이스라엘백성들은 ‘야할리푸 코아흐’ 새 힘을 얻었다는 거 아닙니까?
그랬던 이스라엘백성들이 가나안에 정착하면서 하나님을 향한 앙망하던 소망의 줄이 느슨해지고 결국은 가나안의 우상들을 섬기게 되더라는 거잖아요 그러면서 이스라엘백성들이 경험하게 된 것은 무기력해도 이렇게 무기력할 수가 있을까요? 주변 국가들에게 침략을 당하고 억압과 지배를 당하고 조공을 바쳐야하는 너무도 허약한 민족이 되고 말았다는 거 아닙니까?
나중엔 북쪽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서 BC722년에 멸망을 당하고 소망이 없는 백성 되고 말았다는 거지요 그렇다면 남쪽 유다백성이라도 정신을 차려야 하잖아요. 자기 형제들인 북쪽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 향한 소망, 티크바가 식어지면서 불행이 왔음을 깨달으면서 우리 다시 여호와를 앙망하자 하고 하나님을 향한 티크바. 소망의 줄을 당겼더라면 좋았을 건데 남쪽 유다백성도 다르지 않았다는 건데 하나님 대신 애굽이라는 강대한 나라에 기대었다는 거고 그 결과 바벨론에 의해서 BC586년에 예루살렘은 멸망당하고 예루살렘성전은 모두 무너지고 성전의 값진 기물들은 모두 빼앗기고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가는 비참한 종말을 맞게 되었다는 거 아닙니까?
그 당시 활동하던 선지자 이사야가 오늘 본문의 말씀을 외치고 있는 거지요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는다’고 말입니다. 온갖 아픔과 서러움을 겪고서야 이스라엘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티크바’ 소망을 두고 ‘웨코예 예흐와’ ‘여호와를 앙망하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야할리푸 코아흐’ ‘새 힘을 얻는’ 일이 일어났을까요? 봄을 맞은 겨울나무에 싹이 나고 겨울철 언 땅을 뚫고 새 풀이 돋아나는 새 힘이 과연 나타났을까요? 시126:1절이지요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이어진 2절에선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그리고 이제 시편기자는 알았다는 거지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앙망하면서 씨를 뿌리는 것은 반드시 기쁨으로 거두게 된다는 걸 말이지요. 우리도 하나님을 향한 소망의 줄을 느슨하게 말고 ‘웨코예 예흐와’ 여호와를 앙망하자구요 그래서 ‘야할리푸 코아흐’ ‘새 힘을 얻어 살아가시는’ 능력 많은 한 해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거라는 거지요” 여기 ‘날개’ 히브리어 ‘에베르’인데 원문에 ‘치다’라는 단어가 없다는 거거든요. 왜냐하면 독수리는 날개를 파다닥 거리지 않고 뭡니까? 하늘의 기류를 이용해서 활짝 날개를 펴고 활공을 한다는 거거든요 보다 더 높은 곳이 주로 독수리의 활동무대라는 거 아닙니까? 우리 예수 믿는 자들 역시 활동무대는 보다 높게 그리고 더 높이 있음을 믿습니다. 그래야 차원 높은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활공을 하게 되고 그러므로 이 세상의 것들보다 하늘의 신령한 것 하나님만이 주시는 것들을 얻으며 사는 것을 믿습니다. 시42:11절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우리가 누굽니까?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이고 그래서 여호와께로부터 오는 새 힘 가지고 사는 이들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마치 독수리가 높이 날아올라 활공을 하는 것 같은 힘이 있는 삶을 올 한 해도 내내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않겠답니다. 그리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않겠다는 거지요 여기 ‘달음박질’ 히브리어 ‘야루추’는 ‘지치지 않는 삶’을 의미하거든요 그리고 ‘걸어가도’ 히브리어 ‘엘레쿠’ 그렇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자들은 달려갈 ‘야루추’의 길이 있고 걸어가야 ‘엘레쿠’의 길이 있다는 거잖아요 우리의 달려갈 길은 뭔가요? 바울이 행20:24절에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뭡니까? 여기 ‘달려갈 길’ 헬라어 ‘드로몬’은 사도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지금까지 달려온 길이요 죽을 때까지 달려갈 길 ‘드로몬’은 사명의 길이라는 거거든요 ‘웨코예 예흐와’ ‘여호와를 앙망하는’ 동안 ‘코아흐’ 힘을 그것도 ‘야할리푸’ 새 것으로 계속해서 공급해 주시는 것이니 내 힘 가지고 살면 힘들고 지쳐도 우리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으로 살면 지치지 않고 사명 감당하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는 ‘엘레쿠’ 걷는 길이 무엇입니까? 히10:19~20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이 길은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육체로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인데 하나님이 계신 성소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우리가 걷는 엘레쿠의 길은 은혜의 보좌로 들어가는 길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어진 22절에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그리고 히4:16절에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가 매일처럼 은혜의 보좌를 향해 걷는 길이 여호와를 앙망하는데서 성공하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71:5절에서 시편기자는 “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이시오 내가 어릴 때부터 신뢰한 이시라.”고 고백하면서 14절에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더욱 찬송하리이다.”라고 자신의 결심을 표현하잖아요. 시62:1절에 다윗의 고백이지요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5절에서도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이 시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라면서 ‘웨코예 예흐와’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그러므로 ‘야할리푸 코아흐’ 새 힘을 얻어 사명의 달려갈 길을 달려가며 여호와 하나님이 계신 임재로 나가는 매일 매일의 길에도 성공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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