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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14:22~33절 “바다를 걸어 우리 배에 타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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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2-12-30 15:04    조회 962    댓글 0  
 
마14:22~33절  “바다를 걸어 우리 배에 타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2023.1.1.
프랑스의 지성이며 철학자인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라는 책에서 하루의 가치를 표현하는 ‘하루의 위대한 탄생’이란 제목의 글입니다 <그 어떤 사건들보다 가장 나를 흥분케 하는 것은 ‘하루의 탄생’이다 하루의 탄생을 지켜볼 때마다 나는 충만감을 느낀다. 왜냐하면 하루는 24시간 동안 매 순간 깨어나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나의 눈에는 어린아이의 탄생보다 더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내일은 또 다른 하루가 다가올 것이다 내일 나는 다시 한 번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이 될 것이다> 오늘 2023년 새해 첫 하루를 첫 주로 시작하면서 그 하루 동안에 제자들에게 일어났던 하나님을 경험한 소중한 시간들을 우리의 것으로 삼을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22~23절을 볼까요.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 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여기 ‘즉시’ 헬라어 ‘유데오스’는 ‘주저 없이 즉각적으로’란 의미인데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바로 지금 가라’고 재촉하셨다는 거지요 이렇듯이 강하게 재촉하신 이유가 뭘까요? 오병이어로 여자와 어린아이를 제외한 오천 명이 먹고 거둔 것이 열두 광주리나 되는 기적을 맛본 모인 유대인들은 신18:15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이렇게 예언된 메시야가 예수라고 결론을 짓고 억지로 왕을 세우려는 움직임 때문에 제자들이 이에 동조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오신 목적을 흩어 놀까 봐 곧바로 제자들을 바다 건너편으로 보내게 된 거지요 예수님은 이렇게 기적을 통해서 정치적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분이 아니잖습니까?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속량 값으로 지불하시고 죄악에 젖어 멸망할 인류를 구원하려고 오신 만왕의 왕이셨던 거거든요. 그러므로 아들로 오신 성자 하나님의 자격으로 성부하나님께 기도하시기 위해 산에 올라가셨다는 거고 거기서 저물도록 혼자 계셨다는 거지요 여기 ‘따로’ 헬라어 ‘카트 이디안’은 ‘사람들과 분리 되어 조용히 지냄’이란 의미이고 ‘혼자’ 헬라어 ‘모노스’는 ‘사람들을 떠나’라는 의미로 같은 의미를 두 번 사용함으로 뭘 강조하고 있다는 겁니까? 성부와 성자의 기도로 교통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나타내 주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말할 것도 없잖아요. 하나님과의 교통을 생명처럼 여겨야 될 거라는 거잖아요. 올해는 예수님에게서 전능자와의 교통의 시간을 가장 첫째로 하라 하시는 주님의 명령을 들으면서 한 해를 시작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4~27절을 보자구요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여기 ‘수리’는 요6:19절에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라 했으니까 4.5내지 5.6킬로 떨어진 상태를 말한다는 거지요 갈릴리바다는 동서 각각 10킬로미터니까 바다 중간지점에 제자들이 탄 배가 지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래서 막6:47절에 “저물 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께서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바다 한 가운데서 제자들이 탄 배가 뭘 겪고 있습니까? 거스르는 바람으로 물결이 뱃머리를 때리니까 앞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고난이었다는 겁니다. 여기 ‘고난을 당하더라’ 헬라어 ‘바사니조메논’은 ‘산모가 아이를 출산할 때 소리를 지를 정도의 극심한 고통’이라는 거니까 우리는 우리말 성경에서 읽을 때 고난을 당하더라 정도가 아니라 뭡니까? 극심한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서 소리소리 지르면서 버텨내고 있었다는 거거든요 그야말로 세상 물결과의 힘겨운 싸움을 싸우는 우리네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거지요 밤 사경이랍니다. 여기 更(경)은 파수하다를 의미하거든요 유대인들은 밤을 모두 넷으로 나눴는데 일경은 여섯시부터 아홉시까지 이경은 아홉시부터 12시까지 삼경은 12시부터 3시까지 사경은 3시부터 아침 여섯시까지니까 이 시각에 지금 한참 산고와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바다를 걸어서 오시더라는 거 아닙니까? 여기 ‘걸어오시니’ 헬라어 ‘페리파톤’은 현재분사형단어거든요 그러니까 바다 위를 육지에서처럼 걸어오고 계심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단어라는 거지요 여기서 발견되는 것은 뭡니까? 예수님의 신성이잖아요.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지금 물결로 인해 고난당하되 아이를 낳는 산모의 고통처럼 고통 받고 있는 당신의 제자들이 타고 있는 배로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우리가 보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물결을 보다가 뭘 봤습니까? 자신들이 타고 있는 배를 향해 걸어오는 한 유령체를 봤답니다. 여기 ‘유령’ 헬라어 ‘판타스마’는 ‘눈에는 보이나 실체가 없는 것’ 즉 ‘허깨비’를 봤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이는 자연현상이 아닌 거지요 분명 있을 수 없는 광경을 봤다는 거거든요 그러니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겠습니까? 그래서 소리를 질렀다는 거지요 그러나 그는 유령도 헛깨비도 아닌 제2위이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였던 겁니다.
이에 예수님 뭐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까? 제일 먼저 ‘안심하라’ 헬라어 ‘다르세이테’는 ‘너희는 계속해서 용기를 갖고 즐거워하라’는 의미거든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겪는 힘든 상황에서도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그리스도가 ‘다르세이테’ 계속적으로 용기를 가지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 안심할 수 있나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기 때문이지요. ‘내니’ 헬라어 ‘에고 에이미’는 ‘나는 나야’거든요 이는 모세에게 자신을 밝히신 ‘나는 스스로 있는 자’ ‘여호와’와 같은 의미라는 겁니다. 자신을 ‘여호와’로 스스로 계신 자로 소개하심을 들을 때 모세는 커다란 용기로 그 무거운 출애굽의 대업을 이루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이 ‘에고 에이미’로 자신을 소개함으로 지금 소리를 지르며 산고의 고통을 겪는 산모와 같은 고난 속에 있지만 ‘안심하라’ ‘다르세이테’ 이제 내가 왔으니 용기를 가지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해 주시고 계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다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두려워말라’ 헬라어 ‘메’ ‘말라’ ‘포베이스데’ ‘두려워’ 뭡니까? 지금 두려워하고 있는 것을 즉시 멈추라는 거잖아요. 왜? 에고 에이미 ‘나는 나야’ ‘스스로 있는 자야’ 그가 함께 하실 때 애굽의 왕 바로가 두 손을 들었잖아요. 애굽백성들은 금은보화 주면서까지 이스라엘백성에게 나가달라고 그래서 억지로 도망가듯이 하지 않고 당당하게 출애굽하게 하셨잖아요. 그렇다면 우리가 믿음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뭡니까? 바다 위를 걸어서 오시는 초월하시는 성자 하나님이 바로 출애굽의 하나님이시며 우리 하나님이 되시니까 우리도 이런 풍파 많은 세상에서 믿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우리를 감싸고 있는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고난과 고통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소중한 기회인 것을 알아 놀라지 도 무서워도 말고 우리를 우리보다 더 잘 아시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문제의 바다를 밟고 다가오심을 기억하고 예수님의지하고 고난과 고통을 정면으로 맞서는 한 해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8~30절을 보시지요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여기 ‘만일’ 헬라어 ‘에이’는 의심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너무도 놀라운 나머지 감격에 젖어 나도 물 위를 걷게 해달라고 하면 걸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의해 나온 한 단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오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물 위를 걷습니다. 예수님은 어디를 걸으셨습니까? 바다 위를 걸으셨잖아요. 여기서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예수님은 ‘에고 에이미’ ‘나는 나야’ ‘스스로 있는 자’로서 스스로의 능력으로 지금 바다 한 가운데까지 걸어오실 수 있는 반면에 물 위를 걷는 베드로는 예수그리스도에 의해서 일시적으로 걸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한 차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바람을 보고 무서워’ 여기 ‘보고’ 헬라어 ‘블레폰’은 현재분사형 단어로 ‘무서워’ 헬라어 ‘에포베네’와 동일시점에 일어난 일이라는 거지요 그래서 보자마자 무서워서 경험하는 것이 뭡니까? 빠져가는지라 세상 바람을 볼 때는 무서움 그래서 더욱더 위험과 혼란 속으로 빠져들게 되더라는 거 아닙니까? 이런 빠져가는 상황에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반면에 주님을 보며 부르짖는 기도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31~32절이지요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여기 ‘즉시’ 헬라어 ‘유데오스’ 아까 제자들을 보내실 때도 ‘즉시’ ‘유데오스’ 두 개의 동작을 취하셨답니다. 손을 내밀었고 붙잡으셨다는 거지요 ‘에고 에이미’ 나는 나야 스스로 계신 우리 예수님 베드로로 하여금 걷게 하셨던 데서 이번엔 빠진 데서 건져내시는 분이시라는 거 아닙니까? 손 내밀어 붙잡으심에서 오는 또 다른 은혜는 무엇입니까? 우리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가득하시다는 거잖아요.
그리고 베드로에게 예수님 ‘믿음이 적은 자야’ 큰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할 베드로에게 대해 미치지 못하는 믿음에 대한 책망이지요. 우리들도 마찬가지잖아요 우리가 믿음이 없어서 빠져 들어가는 것이 아니잖아요. 믿음이 적어서 빠져드는 거지 적은 믿음은 세상바다에서 질 수밖에 없는 실패를 경험하지만 반대로 주의 말씀을 의심치 않았던 혈루병여인은 큰 믿음으로 열두 해 고질적 질병도 떠나고 가나안 여인의 큰 믿음 역시 딸에 붙었던 귀신도 떠나고 백부장의 큰 믿음은 그의 하인이 죽을병에서 낫게 되는 역사가 일어난 것처럼 믿음이 있느나 믿음이 적은 자가 아니라 큰 믿음으로 올해는 많은 하나님의 역사들이 일어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보세요. 베드로를 물속으로 갈아 앉게 했던 무섭고 두려운 바람이 예수님과 함께 배에 오를 때 바람이 그쳤답니다. 여기 ‘그치다’ 헬라어 ‘에코파센’은 ‘끊어내다’ 또는 ‘자르다’란 의미거든요 우리 가정에 우리의 심령에 주님이 오셔서 나와 함께 하시면 두려움을 자르고 무서움도 자르고 끊어내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예수님은 자연의 바람도 우리가 겪는 세상의 풍파도 다스리시는 성자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배에 있는 제자들이 이를 증거하잖아요. 33절에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헬라어 ‘프로스’ ‘~에 대하여’와 ‘굽히다’ 헬라어 ‘퀩토’의 합성어로 신적대상을 향한 예배자의 모습이라는 거거든요 ‘하나님의 아들’ ‘데우 휘오스’ 성부 하나님의 권세와 권위와 능력을 함께 하는 아들로 오신 하나님을 말하는 거잖아요 다니엘을 사자굴속에서 건지신 하나님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불속에서 건지신 하나님이 우리 심령과 가정에 들어오셨습니다. 올 한해도 축복의 한 해가 되겠구나 우리가 이기지 못할 것이 없겠구나하는 믿음으로 세상의 거센 바람도 자르고 무서움도 자르고 두려움도 자르고 질병도 끊어내는 건강한 한해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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