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BER  |    |    |  
회원 로그인
회원 가입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회원가입으로 서비스 약관개인정보 보호 정책 에 동의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대한예수교장로회 선유중앙교회

SUNYOU CENTERAL CHURCH
수요예배 설교원고

bo_title_img1.png

약2:20~26절 “사랑의 실천”④  
카카오톡 카카오 스토리 네이버 블로그 밴드 주소복사
   김진수   작성일 23-07-04 22:25    조회 201    댓글 0  
 
약2:20~26절          “사랑의 실천”④        2023.7.5.
20절을 볼까요.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아아> 헬라오 <오>는 좋은 의미에서는 감탄이 되겠지만 여기서는 <탄식의 소리>잖아요. 탄식하면서 누굴 부르고 있습니까? <허탄한 사람아> <허탄한> 헬라어 <케네>는 <헛것> 또는 <공허> 또는 <빈>이란 의미로 지금 허탄한 이 사람은 믿음이 있고 행함이 없는 사람으로 헛것이란 거잖아요 그러면서 왜 헛것인 줄 알려줄까라고 야고보사도가 안타까움을 전하고 있다는 거지요 약4:5절에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헛된, 케네입니다. 엡6:5절에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골2:8절에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고전15:14절에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모두 케네, 공허 또는 빈이라는 의미로 쓰였다는 겁니다. 그리고 보세요 실제로 <헛것>으로 번역된 헬라어 <아르게>는 <일하지 않는> 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또는 <쓸모없는>이란 의미인 거지요 그러니까 행함이 없는  이 허탄한 사람아 공허하고 헛것이며 속이 빈 사람아라고 부른 거고 행함이 없는 그 믿음이란 일하지 않으며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쓸모없다는 걸 왜 알지 못하느냐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 누굴 예로 들어 행함이 없는 믿음에 대해 교훈하는지 볼까요?
21절을 보시자구요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아브라함의 믿음이 어떤 믿음이랍니까?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는 거 아닙니까? 지금 아브라함을 예로 드는 이유가 단지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서가 아니라는 거지요 유대인들로 구성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아브라함을 뭐라고 부르고 있습니까? 요8:39절에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우리 아버지라는 겁니다. 그가 누구니까? 믿음의 위대한 영웅이니까 그래서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 같기를 원하였거든요 그렇다면 믿기만 하지 말고 아브라함처럼 행해야 마땅한데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하지 않는다고 예수님이 책망하셨다는 거잖아요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합니다. 여기 <바칠 때에> 헬라어 <아네넹카스>는 <제단에 놓다> 또는 <제단에 가져가다>란 의미니까 이미 제단에 바쳐졌다는 겁니다. 이렇듯 바칠 때에 그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인해 의롭다하심을 받은 것에 대해 야고보 사도가 말하고 있는 겁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믿음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라고 하신대로 바칠 때 그 행위로 자기의 믿음을 나타냈다는 거고 하나님은 그 믿음을 의롭다고 여겨주셨다는 거지요 의롭다하는 의미가 뭡니까? 죄가 사함을 받아 죽음에서 생명으로 그리고 죄가 없어졌으니 그래서 네가 나와 옳은 관계를 가졌으니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겨주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 이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는 줄 알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진정으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믿음은 행함으로 그 진실성이 나타나는 믿음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이 진실성 있는 믿음을 바칠 때 드러났습니다. 죽으면 끝인데 그러나 죽이라는 말씀하시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창15:4~5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에 그 다음 6절에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이때까지는 그의 믿음이 행위가 뒤따르는 믿음인지가 드러나지 않았다가 오늘 본문에 <바칠 때에> 헬라어 <아네넹카스> 제단에 놓았다는 거잖아요 이 순종의 열매를 보신 거지요 그 믿음에 대해서 15장처럼 의롭다고 말씀하셨다는 겁니다. 우리가 지금 믿는 믿음이 행동하는 믿음인지 언제 나타낼수 있나요? 큰 시험과 문제 답답하기만한 어려움 앞에서라는 거지요 그래서 22절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믿음이 그의 행함과 일합니다 뭡니까? 둘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라는 거 아닙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위는 우리가 가진 믿음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믿습니다. 믿음과 행위는 기차가 지날 때 필요한 두 레일과 같으니 어느 것 하나가 없어도 되는 관계가 아니라는 거지요 둘이 함께 할 때 오늘 뭐랍니까? <온전케 되었느니라> 헬라어 <에텔레이오데> <완전케 되었다>는 의미인 겁니다. 만약에 그렇지 않으면 죽어버린 믿음, 영혼이 떠나고 몸둥이만 남은 것과 같은 믿음이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행위가 같이 할 때 완전한 것이니 우리가 가진 지금의 믿음이 가장 어려울 때 증명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3~24절을 보시지요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15장에 이른 말씀처럼 후사가 없었을 때 하나님이 너의 후사를 네 몸에서 낳게 할 거고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실 거야 하신 말씀을 믿었을 때 하나님은 그런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고 여겨 주셨다는 겁니다. 그런 그에게 이삭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이삭을 제단에 바치라는 겁니다. 이때 가진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 히브리기자가 히11:19절에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이것이 뭡니까? 15장 말씀이 이루어졌다는 겁니다. <이루어졌고> 헬라어 원형이 <플로레오>인데 <충만하게 하다> 또는 <완성하다>니까 15장의 의롭다하신 하나님의 믿음의 인정이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때 완성되고 충만하게 증명되었다는 거지요 그러므로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벗이라고 칭하셨다는 겁니다. 여기 <벗> 헬라어 <필로스>는 <사랑받는 친구>란 의미거든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사랑받는 자로 여기셨다는 겁니다. 행동하는 믿음 살아 있는 믿음 바로 이 믿음이 보물이로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니 믿음과 행함이 같이 하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예로 25~26절에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여기 <기생> 헬라어 <포르네> 곧 <창녀>라는 말인데 믿음은 이 여인마저도 의롭다함을 받았다는 겁니다. 상천하지 여호와 만이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의 고백은 정탐꾼들을 숨겨줬고 탈출시키는 믿음의 행위로 더 나아가서는 이스라엘백성들이 자신의 집을 구별하여 볼 수 있도록 붉은 천을 내려 달아 여리고성이 멸망당할 때 구원을 받은 것을 기억하라는 거지요 영혼이 떠난 몸을 시체라고 하지 않느냐 이것을 바로 행함 없는 믿음이라는 거지요 그러므로 입술의 고백이 삶으로 나타나기를 원하며 단지 지식으로만 하나님을 알지 말자 이는 책망의 대상이 될 뿐이라는 거 그러나 행위가 뒤따르는 믿음은 온전한 축복이 오게 하는 전제조건이 됨을 믿으시기 바라며 우리가 가진 믿음을 가장 어려울 때 힘들 때 답이 보이지 않을 때 아플 때 마음이 무겁고 힘들 때 보일 수 있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주일오전 설교동영상
24년 4월 28일 주일 예배 영상
고린도후서 4:7~15 김용우 목사
2024년 4월 28일
교회앨범
봄맞이 교회 대청소 및 새단장 
동영상앨범
22년 낙도선교회
- -
-
선유중앙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 선유중앙교회
031-954-1080
031-954-1040
yegrim@hanmail.net

회원가입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전체 최근게시글
  • 선유중앙교회 SNS를 방문해 보세요
    교회명 : 선유중앙교회 | 담임목사 : 김진수 | 주소 : 10811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독서울 5길 18-30
    교회전화 : 031-954-1080, 953-5977 | Fax : 031-954 1040 | 목사관 : 031-952-2097 | 이메일 주소 : yegrim@hanmail.net
    Copyright ©1955~2024   sunyou.or.kr. All Rights Reserved.
    031-954-1080
    031-954-1040
    yegrim@hanmail.net
    031-954-1080
    선유중앙교회 전화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