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139편1~4절에 보면 다윗은 하나님이 나를 아신다고 고백한다. 다윗에 대해 어느 정도로 아시느냐 하면 앉고 일어섬도 멀리서 다윗의 생각도 다윗의 가는 길과 다윗의 눕는 것까지도 뿐만 아니라 다윗이 혀로 말하는 모든 것까지 라니 다윗에 대해서 모르시는 것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다. 이런 사실 까닭에 다윗은 시144:3절에 내가 도대체 무엇이라고 날 알아 주시며 날 생각해 주십니까? 라고 황송해 한다. 황송해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4절에 자신의 인생이 헛것 같은 인생인데도 자신이 사는 날들이 마치 그림자 같은데도 불구하고 알아주시고 생각해 주시는 까닭이라는 것이다. 내 이름 아시지요 라는 복음송이 있는데 2004년 여름휴가 때 목적지를 군산으로 정하고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참 많이 울면서 부른 찬양이었다. 공부하느라고 진 빚으로 인해 겪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말이 휴가이지 마음 편안 휴가를 즐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밤 8시30분 군산에 도착해서 무작정 기도원을 찾아 들어갔다. 호렙산 기도원이란 간판이 보였고 조그만 본당을 들어가니 부흥집회가 진행 중이었다. 살그머니 뒷자리에 앉았는데 부흥강사가 지금 오신 분 두 분 이 앞으로 나오시면 기도해 드리겠다고 하신다. 순종하는 마음으로 앞자리에 앉으니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해 주는데 어찌 목사와 사모임을 알았을까 어찌 우리의 지나온 삶을 알았을까 어찌 우리의 성품을 알았을까 어찌 지금의 형편을 알았을까 너무도 정확한 기도에 눈물이 터져버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될 것이라는 기도로 안수기도는 끝을 맺었다. 다른 이의 입술을 통해서 하나님이 날 알고 내 아내를 아신다는 말씀에 얼마나 위로가 되고 힘이 되던지 우리의 가는 길을 하나님이 인도하셨음이 틀림없었다. 하나님이 이렇게 알고 생각하는 까닭이 시144:15절에 하나님으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모압여인 룻이 자신의 신을 버리고 하나님으로 자기 하나님을 삼았다. 그때부터 하나님을 룻을 아셨고 생각하셨다. 분명 헛것 같은 인생을 살아가야 할 룻이었고 그림자 같은 길을 걸어야 했다. 그러나 어찌 변했는가? 그 인생이 어찌 달라졌는가?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우리 모두는 분명히 알자 하나님이 나를 알고 생각하여 헛되지 않은 인생으로 그림자 같은 길이 아닌 길로 인도하심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