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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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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2:1~5절 “하나님의 말씀으로 삶의 기준과 판단을 삼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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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4-04-05 18:40    조회 86    댓글 0  
 
창12:1~5절 “하나님의 말씀으로 삶의 기준과 판단을 삼자구요” 2024. 4. 7
주님의 것이 된다는 것처럼 복이 어디 있을까요? 그리고 주님의 것으로 사는 것처럼 복된 삶은 아마도 없을 겁니다. 구세군의 창설자 윌리암 부스가 죽기 수개월 전 한 사람이 그를 방문하여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그토록 긴 세월 동안 주님의 종으로서 변함없이 일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부스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비결 같은 것은 없습니다. 나는 날마다 하나님께 ‘나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마음대로 써주십시오.’ 하고 기도했습니다.>라고 했답니다. 오늘 주님의 것으로 부름 받는 한 사람을 소개하면서 여기서 주시는 말씀에 큰 은혜를 받기 원합니다.

1절을 볼까요.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답니다. 여기서 뭘 발견합니까? 보이는 부분은 아브람뿐이지만 이 아브람에게 보이지 않으시나 실존하시는 그리고 말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다는 거지요. 그리고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그 말씀을 듣는 아브람에게서 우리 기독교신앙의 출발을 알려준다는 겁니다. 세상 사람이 만들어놓은 우상은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만든 우상을 향해 사람이 찾아간다는 거잖아요. 그러나 우리 기독교신앙이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오히려 자기 백성을 택하시고 찾아오신다는 거지요 요15:16절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그리고 사람이 만든 우상은 일방적으로 사람이 모두 말하지만 자기 백성 아브람을 찾아오신 여호와 하나님은 생명이 있어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시더라는 거 아닙니까? 뭘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까? <너는> 히브리어 <레카>는 <너에 관한한 또는 너만은>그런 의미로 너만은 뭡니까? <레크> <걸어가라>고 말씀하신 거지요. 다른 누구를 이야기하지 않고 오직 <아브람 너만은 걸어가야 해>라고  아브람을 지목하셨다는 겁니다. 우리도 그렇잖아요. 많은 사람들을 무더기로 찾으신 가운데 내가 아니라 뭡니까? 사43:1절에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우리가 누굽니까? <너는>이라고 말하는 <레카>로 너만은 내 것으로 구속했고 지명했고 불러서 하나님이 내 것 삼으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자! 어디서 떠나가라고 하십니까? 너의 고향, 너의 친척, 너의 아버지 집을 떠나서 <레크> <걸어가라>고 하십니다. 우리 개역개정성경에서는 그냥 고향이고 친척이고 아버지 집이잖아요. 그런데 원문에는 철저한 분리를 나타내는 히브리어 <민>이 세 단어 모두 앞에 붙어 있다는 겁니다. 그 당시 부족국가 시대에 고향이라는 자기 울타리에 거하는 것은 철저한 보호를 받는다는 거거든요 그리고 친척은 같은 혈족끼리 모여 사는 것에서 안전과 힘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아버지 집은 기업을 이을 곳이잖아요. 그런데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너를 보호하는 것으로부터 그리고 네가 안전과 힘이라 여기는 것으로부터 그리고 너의 기업이라 여기는 것에서 철저하게 분리하여 떠나서 <레크> 걸어가라는 겁니다. 
그런 다음 이제 어디로 가라고 말씀하십니까? <내가 네게 보여줄 땅>이랍니다. 하나님이 앞으로 보여줄 땅이니까 명확하게 제시되지는 않았지만 분명한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그 땅에서 널 보호할 거고 내가 널 거기서 안전하게 할 거고 내가 널 거기서 힘있게 할 거야 그리고 내가 너의 기업이 될 거야라는 희망을 아브람에게 선물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내가 의지하던 것들로부터 철저하게 분리되어 하나님이 보여주는 것을 향해 레크, 걸어갈 때 육체만 잘 되려는 삶에서 영육이 모두 잘 되는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하나님이 안전을 책임지시고 하나님으로 힘을 얻으며 하나님과 하나님나라를 기업으로 얻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3절을 보자구요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여기 <큰, 까돌/ 민족, 꼬이> 지금 아브람은 자식도 없이 함께 하는 조카 롯이 전부인데 그 당시 주변의 나라들처럼 큰 민족 <꼬이 까돌>을 이루는 조상이 되게 하시겠다는 거지요 다른 누가 아닌 <내가 너로> 하나님이 아브람을 그렇게 만드시겠답니다. 뭡니까?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사람은 말씀하시는 하나님보다 시간과 세월이 흐르면서 현실의 상황을 신뢰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아브람은 자기 장막에서 어려서부터 성장한 종 엘리에셀을 자기 기업을 이어받을 거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고 여종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을 이젠 됐다고 생각했었다는 건데 하나님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고 장막 문에 앉아 있는 아브라함을 찾아오시지요. 창18:10절에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이때가 아브라함이 99세이고 사라가 89세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사라가 믿을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12과 13절에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이런 사라에게 14절에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그래서 이삭이 태어나고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사백 년이 지난 후 <꼬이 까돌>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심을 믿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혈통적 후손은 지금의 이스라엘이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것처럼 갈3:28~29절에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혈통을 떠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믿는 자가 모두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늘날 아브라함이 큰 민족 꼬이 까돌을 이룬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이름을 어떻게요? <창대하게>는 <큰> <까돌>과 같은 어원에서 나온 단어거든요 그래서 창대라는 말은 <크다> 또는 <존귀하게 되다>란 의미로 하나님은 이름부터 <아브람> <존귀한 아버지>에서 <아브라함> <열국의 아버지>로 바꾸시잖아요. 그리고 정말 존귀로운 명칭이지요 약2:23절에 <이에 성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예수 믿고 주의 말씀대로 살 때 요15:14절에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예수님과 친구가 되는 존귀로움으로 불러주신다는 거고 또 요1: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 믿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창대한 이름을 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복을 받는다가 아니라 복이 되리라는 겁니다 우리가 예수 믿음으로 복의 근원이신 예수그리스도가 내 속에 임하셨으니 복의 근원을 모신 아예, 복이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이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가 복을 받더라는 거 저주하는 자가 저주를 받더라는 거 그리고 땅의 모든 족속이 너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거라는 거잖아요. 이름이 창대하게 되고 복이 되고 그래서 우리를 축복하는 자가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가 저주를 받는 이 현상이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과 한편 되어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주님과 한편되는 것이 가장 큰 복인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예수 믿는 우리가 누굽니까? 롬6:4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예수님과 죽음도 부활도 하나가 되는 한편이 되어진 것이고 우리의 이름을 창대하게 우리로 복이 되게 하시며 우리를 축복하는 자가 복을 받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5절을 보시지요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여기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다> 무엇을 아브람에게서 발견합니까? 그가 나아가는 길에 오직 기준은 여호와의 말씀이었고 그 말씀으로 판단의 기준을 삼아 <레크> 걸어 나아갔다는 거지요 그동안 칠십오 년 살면서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 집에서 지켜왔던 법과 전통과 율례가 분명 있을 건데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고는 히브리어 <민>이 주는 의미처럼 철저하게 그것들로부터 끊어내고 분리되었으며 이제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말씀이 법이 되고 전통이 되고 율례가 되어 따라갔다는 거 아닙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의롭다함을 받은 후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철저하게 분리되어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삶의 기준과 판단의 기준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자들이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롯도 그와 함께 갔답니다. 잠13:20절에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 우린 오직 예수님과 함께 함을 믿습니다. <엘리자베스 엘리엇은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거나 질문에 답해 주겠다고 약속하시기보다는 우리와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과 함께 걷는 자가 된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고 하잖아요. 뭡니까? 이 말은 그들은 떠났다 그리고 그들은 왔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한 모든 것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보여주셨던 것들이 그리고 믿음으로 기도한 모든 것들이 우리의 입에서 떠났다 그러나 마침내 실제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진 것처럼 현실로 주어지는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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