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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설교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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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40:31절 “우리의 소망은 여호와를 대망하는 자가 되는 겁니다” 송구영신예배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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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3-12-31 23:22    조회 227    댓글 0  
 
사40:31절 “우리의 소망은 여호와를 대망하는 자가 되는 겁니다” 24.1.1.
유명한 피터 마샬목사님의 임종시간이 다가올 때 그의 아내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이 모습을 본 마샬목사님은 미소를 지으며 <내일 아침에 다시 만납시다> 이 말을 들은 마샬목사님의 아내는 남편의 소망 있는 한 마디에 믿음의 용기가 생겨서 책을 썼는데 그 제목이 <나의 남편은 목사였다>는 거지요 베스트셀러가 되었답니다. 그리고 그녀는 계속해서 글을 쓰게 되었고 쓴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되어 그녀가 베스트셀러 작가로 유명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책을 쓰게 된 동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남편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 하늘나라를 알게 되었고 거기서 받은 영감과 감격이 나로 글을 쓰게 하였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다는 거지요 사람은 음식 없이는 약 40일을, 물 없이는 약 3일을, 공기 없이는 약 8분을, 그러나 희망이 없다면 단 일 초도 살 수가 없다고 하는데 오늘 예수 믿는 우리가 가져야 할 진정한 소망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새해 첫 시간 본문을 통해 은혜 나누기 원합니다.

본문을 보시지요.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히브리어<웨코예 예흐와>는 <여호와를 바라보며 대망하다>는 의미거든요 웨코예 예흐와, 오직 여호와를 바라며 대망했더니 <새 힘을 얻는다>는 거잖아요. <새 힘을 얻는다> 히브리어 <야할리푸 코아흐>는 <얼었던 땅이지만 때가 되니 새싹이 솟아 나오듯이 그리고 새싹은 멈춤이 없이 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대망하는 우리에게 언 땅을 뚫고 나오는 새싹이 계속 자라는 것처럼 <야할리푸 코아흐> 새 힘을 얻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어로 ‘티크바’가 소망이거든요. 이 <소망> <티크바>의 어원을 살펴보는 중에 의외의 단어 <줄>에서 소망이 생겼다는 겁니다. 팽팽하게 당겨진 줄은 소망이 있음을 뜻하지만 풀어져 버린 줄에서는 소망이 끊긴 것을 의미한다는 거지요 운동회 때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이 청백으로 나뉘어 줄다리기를 하게 될 때 심판의 호르라기 소리에 맞춰서 영차영차 양쪽 모두 힘을 다해 서로 손에 쥔 줄을 끌어당깁니다. 처음 어느 정도 양쪽 모두 팽팽한 줄을 유지하고 있을 때 서로 간 어떻습니까? <티크바> <소망>이 있잖아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한쪽의 힘에 다른 한쪽은 줄을 잡은 채로 끌려가게 되고 팽팽했던 줄을 놓게 되는데 이것을 소망이 사라졌다고 보는 거지요
그렇다면 뭡니까? 하나님을 향한 줄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을 때를 <웨코예 예흐와> 오직 여호와를 앙망한다 대망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때 찾아오는 것이 <야할리푸 코아흐> <새 힘을 얻는다> 살아갈 용기와 담력을 얻도록 하나님의 생명력으로 가득하게 하심을 늘 맛보는 새로운 한 해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을 볼까요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우리 개역개정성경에서는 <날개 치며>로 되어 있지만 히브리 원문에서는 치다가 없다는 거지요 단지 히브리어 <에베르> <날개>란 명사만 있을 뿐이라는 겁니다. 왜일까요?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날개를 파닥거리는 것이 아니라는 거지요 하늘의 거대한 기류를 이용하여 날개를 펼쳐 활공하는 것처럼 웨코예 예흐와,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거대한 능력에 우리 자신을 의지하고 맡기는 데서 뭘 경험한다는 겁니까? 차원이 높은 삶이요 복되고 영광스러운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는 거 아닙니까?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웨코예 예흐와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야할리푸 코아흐, 새 힘을 얻게 되고 차원이 높은 복되고 영광스러운 삶을 살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능력 중의 능력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인간되어 이 세상에 오심이요 능력 중의 능력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모두 없이해 버리심이요 능력 중의 능력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능력이니 이로써 예수 믿는 모든 자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요 죄를 없이하셨으니 하나님이 의롭다고 여겨주심이요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사심으로 우리 예수 믿는 자들은 죽어도 사는 자들이 되었음이요 살아서 믿는 우리에게 영원히 죽지 않는 능력을 주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이 주신 능력 은 우리가 주를 위해 죽고자 하는 사람이 되었음이요 그리고 지금도 예수님이 나의 주가 되셔서 날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돕고 계시는 것이 큰 능력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국민일보 겨자씨에 나온 예화를 소개합니다. <대학 2학년 때 후배 하나가 동맥과 정맥에 문제가 있어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었다는 거지요 열두 시간에 걸친 목숨을 건 대수술이었는데 피가 모자라 친구들이 헌혈하고 시간 시간 하나님께 기도했답니다. 수술이 끝난 후 죽을 줄 알았던 그가 다시 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거지요 수술 중 있었던 그의 간증입니다. 수술받는 동안 눈을 감아도 보이고 떠도 보이는 심장이 있었답니다. 바로 그 심장에서 자기에게 피를 떨어뜨리는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식지 않는 피가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는 거지요 그리고 거기서 순간적으로 그 피가 예수님의 보혈이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답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2000년 전 십자가에서 식어버린 피가 아닌 지금도 우리의 생명을 위해 흘리는 따끈따끈한 영원히 살아 있는 피인 것을 믿습니다. 이 피가 흐르는 곳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고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고 우리가 겪는 고통까지 치유하시는 능력 주심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본문을 보시자구요 <웨코예 예흐와>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뭡니까?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걷는 인생길을 말씀하잖아요. 달려가야만 할 때가 있고 쉼 없이 걷고 또 걸어야만 할 때가 있다는 거지요 달려가야만 살 수 있는 환경에서 <웰로, 하지 않게 하신다 이가우, 곤비> <웰로 이가우><곤비하지 않게 하신다>는 겁니다. 여기 <困憊(곤비)> 한문으로 괴롭고 고달프다는 의미거든요 왜요? 그만큼 바쁘게 뛰고 달리지 않으면 살 수가 없으니까 그 다음이 <웰로, 하지 않게 하신다 이아푸, 피곤> <웰로 이아푸> 피곤하지 않게 하신다 여기 疲困(피곤) 한문으로 지치고 괴롭다는 거지요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길이 지치고 괴로운 길이라는 거잖아요. 모세의 고백이 뭡니까? 시90:10절에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이게 인생이라는 거지요 그리고 창47:9절에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야곱은 자신의 나그네 인생길을 표현하기를 한마디 짧게 <험악한 세월>이었다는 겁니다. 이런 세월에서 곤비를 이기고 피곤을 이기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이유가 웨코예 예흐와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가 되는 거고 그러면 <야할리푸 코아흐> 새힘을 얻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매일 예수님 함께 걸어갑니다. 햇빛 아래서나 그늘아래서 예수함께 걸어갑니다. 유명한 복음 전도자 존 길모어목사님이 길을 가는 중에 주방용품을 파는 어느 노인과 대화를 하게 되었답니다. 길모어목사님이 묻습니다. 장사가 잘 되는지 그러면서 예수 믿느냐고 그러니까 노인이 예수 믿지요 길모어 목사님은 예수 믿는다는 말에 좋아서 예수 믿고 구원받는 일은 정말 위대한 일이지요 그러니까 노인이 하는 말이 그 보다 더 위대한 일이 있지요 그러니까 길모어 목사님이 아니 그게 뭔데요? 노인의 대답입니다. 날 구원해 주신 예수님이 언제나 매일처럼 나와 동행하고 계신다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동행을 알면 버틸 수 있고 다시금 용기를 갖게 되고 동행을 알면 슬픔 중에서 기뻐하게 되고 고난 중에서 감사하게 되고 그분이 나와 함께 동행하심을 깨닫는 순간 어떤 어려움도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찬양하게 됨을 그리고 끝까지 완주하게 됨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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