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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3:1~8절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는 길은 거듭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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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3-08-18 11:03    조회 427    댓글 0  
 
요3:1~8절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는 길은 거듭날 때입니다.”  2023.8.20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은 결코 영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지요. 보이는 것은 이 세상에 잠시 있을 뿐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영원한 것들이 있는데 이는 우리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거거든요 그러므로 고후4:18절에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보이는 것만으로 예수님을 이해하려고 했던  한 사람을 소개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려 합니다.
1절을 볼까요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바리새인> 헬라어 <파리사이온>인데 이스라엘에 모두 육천 명뿐인 이들의 주장은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룬다고 하는 것이 중심교리였다는 거지요 이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겁니다. 니고데모의 헬라어 발음은 <니코데모스>인데 <니케> <승리>와 <데모스> <백성>이 합하여 승리한 백성이라는 의미의 이름입니다. 그리고 이 니고데모의 신분이 바리새인이면서 유대인의 지도자라고 소개합니다. 유대인의 지도자들이 모인 단체를 산헤드린 공회라고 하는데 대제사장을 의장으로 그 밑에 모두 칠십 명의 지도자들이 입법, 행정, 사법 등의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유대인들을 다스리고 있었다는 거지요 그렇다면 니고데모는 세상적으로는 막강한 권력의 사람이라는 거지요
2절을 보자구요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방문한 시간대가 밤이라고 밝히잖아요. <밤에> 뭘 알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싫어하고 반대하는 바리새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고 절대 권력을 가진 공회의원이 예수님을 만난다? 남의 이목을 염려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겁니다. 네고데모가 예수님을 <랍비여> 저명한 율법교사에게 부르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음을 봅니다. 랍비가 되기 위해서는 정해진 기간의 교육과정을 모두 이수해야 하고 사십이 넘어야 랍비가 될 수 있는데 이런 조건이라면 예수님은 랍비가 아닙니다만 실제로 랍비인 니고데모가 젊은 삼십대 예수에게 <랍비여> 극존칭을 사용한 것은 어떤 이유일까요? <우리가 아나이다> 헬라어 <오이다멘>은 <대충 아나는 것이 아닌 자세하게 알다>거든요 <하나님께로부터> 헬라어 <아포 데우> <아포> <기원>과 <데우> <하나님>이니까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임을 안다는 거지요 뭘 봐서, 당신이 행하시는 표적을 봐서 그렇다는 거지요 당신이 행하시는 표적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존재와 사역을 하나님과 연관시켜 이해하고 있음을 보지만 니고데모의 아쉬운 부분이 무엇입니까? 예수님 안에 있는 신성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거고 또 하나는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거 아닙니까? 이렇듯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신성을 보지 못하고 그리스도이심을 발견치 못하고 있는 이유가 뭔지를 예수님이 말씀하시지요.
3절을 보시지요.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여기 <아멘 아멘 레고 소이> <진실로 진실로, 아멘, 아멘> <이르노니, 레고> <소이, 네게> 뭘 이르십니까? 네가 거듭났다면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신 예수를 보았을 거라는 거지요 여기 <거듭> 헬라어 <아노덴>은 기본적으로 장소를 나타내는 부사로 <위로부터>라는 의미와 다시, 새로운 시간을 나타내는 두 가지 의미이고 헬라어 <겐네데> <태어나다>니까 거듭나다 <겐네데 아노텐>은 <위로부터(장소), 다시 새로(시간), 태어나다>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위로부터 다시 태어난 자만이 하나님의 나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볼 수 있다는 걸 말씀하잖아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 새로 다시 난 시간이 언제입니까? 요1: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그 이름 예수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났음을 말하지요. 하나님의 자녀가 됨은 요1:13절에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즉 위로부터 난 사람들이 라는 거잖아요. 롬8:14~15절에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우리가 누구입니까? 하나님께로 난 즉 위로부터 난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자 거듭나지 않은 니고데모가 뭐라고 하는지 궁금하네요.

4절을 보시지요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여기 <늙으면> 헬라어 <게른 온>은 <늙어가는 것을>이란 의미로 사람이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 늙어가는 것인데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 말이 되는 이야깁니까? 거듭나는 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거잖아요. 고전2:13절에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그렇습니다. 아무리 율법에 능통한 랍비요 바리새인이요 공회의원이라도 영의 눈으로 볼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깨달을 수가 없었던 겁니다.
이런 니고데모에게 5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거듭나는 것의 방법을 이야기하시기를 물과 성령으로 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물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물> 헬라어 <휘다토스>는 그냥 물을 의미하는데 예수님 이 세상에 오셔서 사마리아여인에게 요4:14절에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영생하게 하는 물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요1서5:6절에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물이 누굴 나타냅니까? 예수그리스도이심을 나타낸다는 거잖아요 히9:14절에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예수님 없이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날 수 없음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마26:28절에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십자가 지시기 전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은 잔을 주시며 이는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흘리는 나의 피라고 하셨는데 실제로 요19:34절에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예수님이 흘리신 물과 피가 없이 누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며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에수님 요14: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러므로 그 누구도 예수 없이는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날 수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거듭나게 하는 또 하나의 방식은 성령으로입니다. 요14:26절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성령의 사역이 뭡니까? 믿는 자에게 구원의 주 예수를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는 거지요 고전12:3절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믿고 구원에 이르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거잖아요 그래서 예수님 행1: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렇습니다. 피와 물로 임하신 예수 없이 죄 사함 없고 성령 없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을 수 없으니 피와 물로 임하신 예수님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그 누구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음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6~7절을 보자구요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여기 <육> 헬라어 <사르코스>의 원형이 <사륵스> <살>이란 의미로 인간의 부패한 본성을 말하는데 이 사르코스, 육은 하나님과 거리와 간격을 낼 뿐이라는 거지요 <육> <사르크스>로는 <사륵스> <육>을 낳을 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갈 수가 없다는 거잖아요. 여기 <영으로 난 것> 헬라어 <프뉴마토스> 는 <성령으로 난 것>이란 의미로 성령으로 난 것은 <영> <프뉴마>라는 겁니다. 거듭나는 실체가 무엇입니까? 사람의 살, 육체가 아니라 거듭남의 실체는 <사람의 영, 프뉴마>라는 거지요 왜 그렇습니까? 죄로 인해 사람의 영 프뉴마가 하나님과 단절이 되었는데 이것을 죽었다고 말하지요. 엡2:1절에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과 단절되었던 죄인이 13절에선<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8절에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거듭남에 대해 육체를 생각하면 이게 어떻게 가능해 하면서 놀랄 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아니야 뭘 살리는 겁니까? 고전15:45절에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예수님은 우리의 죽은 영을 살려주는 영으로 오셨고 요6:63절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그러므로 내 영이 살려주는 영이신 예수님을 만나면 날 하나님 앞에 살게 합니다. 그러나 육으로는 하나님 앞에 서게 하는데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의 죽었던 영을 살리고 풍성한 생명을 허락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8절을 보시지요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여기 <바람이 임의로 불매> 인간의 말에 의해 바람이 그 세기와 방향을 정하지 않는다는 거지요 뭡니까? 그 누구도 바람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거거든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바람의 소리를 들을 뿐인 것처럼 인간을 거듭나게 하는 성령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거듭난 사람들은 성령을 조정하지 못하지만 거듭난 성도는 성령이 우리 안에 임재하심을 느낀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은 성령의 임재와 성령의 일하심을 느끼고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보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귀를 갖게 되었으니 최고의 복을 받은 자들임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느 주일날 남편이 아내에게 오늘 당신 따라 교회에 가고 싶은데 말하자 아내는 뛸 뜻이 기뻤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 사업에만 바쁘게 움직이던 남편이고 영적인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갑자기 걱정이 되기를 시작합니다. 오늘 설교가 뭘까 교회에 도착해서 주보를 보고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창세기5장이 본문인데 누가 자식을 낳고 몇 세를 살다가 죽었더라 그 자식은 몇 세를 살면서 자식을 낳았고 몇 세에 죽었더라는 것이 반복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염려도 성령의 역사를 막지는 못했습니다. 나중에 아내에게 자신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피할 수 없는 것이 살다가 죽는 것임을 오히려 크게 깨닫고 나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함을 알았고 그래서 구주가 필요함을 깨닫게 되었다오 라고 말하더라는 겁니다. 우리도 거듭난 것은 물과 피로 임하신 그리스도 예수의 역사와 이를 믿게 하시는 성령님의 합작으로 이뤄진 것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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