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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9:28~40절 “예수 우리 왕이심을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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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3-03-30 23:29    조회 666    댓글 0  
 
눅19:28~40절 “예수 우리 왕이심을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치리라” 2023.4.2.
오늘은 부활주일을 한 주 앞둔 종려주일이면서 고난 주간이 시작되는 주간이지요 예수님이 오신 목적을 막10:45절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는데 (代贖物)(대속물)의 의미가 인간의 죄를 없이하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대신 내어준 제물이라는 거잖아요 이 사실을 마16:21절에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그리고 여기서 고난을 받는 장소를 밝히시지요? 예루살렘이랍니다. 자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볼까요.

28절을 보세요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지금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 것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는 대속물이 되기 위해서 라는 거잖아요. 그런데 앞서서 가시더라는 거 아닙니까? 죽으러 가는데 몸을 감추든지 피하든지 도망가든지 주저주저하며 버팅 기든지 할 건데 앞서서 가시더라는 겁니다. 더군다나 이 날이 주일이었고 영광의 길이 아닌 십자가 고난의 길을 향해 가시는 예수님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을 이끌고 앞서서 가시더라는 거지요 여기 <가시더라> 헬라어 <아라바이논>은 올라가고 있는 현재분사형 미완료형 단어를 사용한 것은 자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주기위해 예루살렘을 향하여 지금 올라가고 있는 생생한 모습을 <아라바이논> 가시더라가 설명해 주고 있는 거지요
그리고 대속을 이루시기 위해 앞서서 <가시는> <아라바이논>이 대속의 주체가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거잖아요 대속의 주체이신 예수님이 대속물이 되기 위해 앞서서 가셨고 요19:30절에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뭡니까? 대속은 대속의 주체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이루신 사건이라 거지요 그래서 대속을 믿는 우리에게 이루어진 것이 뭡니까? 벧전1:18~19절에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이 대속은 요10:18절에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그래서 앞서서 가신 거였구나 하는 것을 깨닫습니다.
29절을 보시지요 <감람원이라 불리는 산 쪽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벳바게와 베다니 위치 사진) 감람산 일명 올리브산 너머 남쪽에 베다니 그리고 베다니 동쪽에 벳바게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여리고 옆에 화살표가 밑으로 되어 있잖아요) 이쪽으로 쭉 내려가면 여리고이고 여기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오시다가 감람산을 넘기 전에 그 밑에 마을 벳바게에 가까이 오셨다는 겁니다. 이때 예수님이 제자 중 둘을 맞은 편 마을인 베다니로 보내셨는데 왜 보내셨는지 볼까요> 30절입니다.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베다니에 가면 한 번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볼 거고 풀어서 끌고 오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는 겁니다. (줄에 매인 나귀 새끼 사진)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새끼> 때 묻지 않은 예수님을 태우는, 신성한 목적을 위해 준비되고 보존된 짐승을 말한다는 거지요 빌2:7절에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하나님의 겸손이시잖아요. 그 다음 8절에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는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의 겸손이잖아요 예수님 오시기 전 약 오백 년 전 활동하던 스가랴선지자가 슥9:9절에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예수그리스도의 특성이 겸손이라는 거고 그래서 타야할 짐승도 겸손한 이미지의 나귀새끼라는 거고 아무도 타보지 않은 깨끗한 이미지로서의 나귀새끼는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의 이미지와 같다는 거거든요

31~32절을 볼까요.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말하기를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가서 그 말씀하신 대로 만난지라> 여기 <주가 쓰시겠다>로 되어 있잖아요. 그러나 원문에는 <호, 퀴리오스> <주가> 다음에 <아우투> 나귀새끼를 가리키는 <그것의>가 있다는 거지요 그리고 <크레이안> <필요를>, <에케이> <가진다>니까 <그것의 주께서 필요로 하신다>라는 겁니다. 나귀새끼의 진짜 주인이 누구시라는 겁니까? 외형상의 주인은 나귀새끼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지만 실제는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이 주인이시라는 거잖아요 요1:3절에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우리의 목숨은 외형적으로 내가 주인 같아 그러나 실제적으로 하나님이 주인이시라는 거지요 주인이 수고 그만하고 오라 하시면 그냥 하던 사업, 소유했던 모든 것들을 다 놔둔 채로 하나님께로 가야 하잖아요. 실제로 주인이 내가 아니었다는 거 아닙니까? 그렇다면 지금 예수님이 <주가 쓰시겠다>는 말씀은 그것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이 창조주로서 만물의 주인이심을 나타내셨다는 거지요
그리고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말에서 단순히 보냄을 받았을 때는 <펨포>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여기선 <아포스텔로>를 사용했기 때문에 <권위를 부여 받은 보냄>이라는 의미거든요 그러니까 평화의 왕으로 오셔서 하나님과 인간과 화평을 이뤄내시는 메시아의 권위로 두 제자는 보냄을 받았다는 겁니다. 보냄을 받은 두 제자가 베다니에 가서 경험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 말씀하신 대로 만난지라> 제자들에게 지시하신 에수님의 말씀대로 정확하게 이루어졌다는 거지요
요1:47절에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절에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절에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예수님이 누구시라는 겁니까?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이시라는 거지요 그러니까 말씀하신대로 줄에 매인 나귀새끼를 만난 것은 하나니만이 하실 수 있는 능한 일이었다는 거거든요
33절을 보시지요 <나귀 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이 말씀을 하셨는데 실제로 나귀새끼의 임자들이 왜 나귀새끼를 푸느냐고 하더라는 거지요 나귀새끼 임자들로부터 항의를 받은 겁니다. 여기 나오네요 <그>, <그것의> 헬라어 <아우투>의 임자들, 그러니까 나귀새끼의 임자들, 임자들이란 나귀새끼의 주인인 한 가족 식구들, 그래서 임자들이라 한 건데 예수님은 나귀새끼 임자들에게 31절에 <주가 쓰시겠다>라고 34절에 <주께서 쓰시겠다>고 제자들은 말씀하신 그대로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음을 보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옮겨놓는 순종과 믿음의 삶에서 경험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귀새끼의 임자들이 제자들에게 나귀새끼를 내어주는 신비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35~36절을 볼까요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가실 때에 그들이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 나귀새끼를 예수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새끼 위에 걸쳐놓아 예수님을 태웠답니다. 어떤 의미일까요? 왕하9:13절에 <무리가 각각 자기의 옷을 급히 가져다가 섬돌 위 곧 예후의 밑에 깔고 나팔을 불며 이르되 예후는 왕이라 하니라> 그렇다면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한다는 거고 그래서 왕으로 선포하는 거지요 뭡니까? 일종의 왕위즉위식이었다는 겁니다.
37~38절을 보실까요. <이미 감람 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벳바게와 베다니 위치 사진) 그러니까 벳바게에서 감람산 정상에 도착해서 예루살렘성전이 있는 곳으로 오기 위해 내리막길을 내려오게 되는 거지요 이때가 유월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성전 주변으로 많은 순례자들이 있었을 거고 제자들이 예수님을 옆에서 본 <능한 일> 헬라어 <뒤나미스>는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 힘>을 의미하거든요 그래서 왕위를 알리는 즉위식까지 마치고 내려올 때 사람들이 많음으로 인해 예수가 왕이심을 알리기 위해 제자들은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고 노래했다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뭐래요?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랍니다. 이때까지도 제자들이나 유월절을 지키려 모인 유대인들과 먼 곳으로부터 온 순례자들까지 다윗의 때처럼 다시 강한 나라로 세울 정치적 왕으로서의 예수님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거지요 그러나 아니지요 롬5:1절을 보세요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10절을 보시지요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정치적 이유로 왕으로 오신 것이 아니요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된 것을 당신의 대속으로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게 하시려  왕으로 오신 걸 믿으시기 바랍니다. 39절에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가당치도 않는 말을 하고 있는 제자들을 하지 못하게 하라 40절에 예수님이 뭐라십니까?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우리 역시 주님 예수께서 만왕의 왕이 되심을 침묵하는 이들이 아니라 소리 높여 외치는 이들이 되기를 바라고 그렇지 않으면 돌들이 소리치게 됨을 기억하시는 우리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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