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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24:40~47절 “지금의 아름다운 신앙은 재림을 기다리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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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3-03-03 10:32    조회 780    댓글 0  
 
마24:40~47절  “지금의 아름다운 신앙은 재림을 기다리게 합니다” 2023.3.5.
지난 수요일은 삼일절 104주년을 기념하는 날이었고 삼일절 하면 생각나는 인물은 유관순누나일 겁니다. (유관순생가사진) 유관순은 감리교선교사 앨리스 햄몬드 샤프선교사의 추천으로 충남지역 소녀들 여럿이 이화학당에 들어가게 되고(그 당시 이화학당시절 사진) 3월1일 만세사건에 참여하지 못하게 프라이교장이 교문을 막아서므로 유관순은 네 명의 친구들과 함께 뒷담을 넘어 만세운동에 참여했다는 거지요 그리고 3월5일 학교당국이 교섭하여 경무총감부에 갇혀있던 여학생들이 풀려나는 중에 유관순도 풀려나고 더불어 일본에 의해 내려진 강제 휴교령으로 인해 유관순은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1919년 4월1일 오후 1시 병천 아우내장터에서 약 3천 명의 국민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독립운동을 주도했고 이때 유관순의 아버지 유중권씨와 어머니 이소제씨가 일본군이 쏜 총탄에 쓰러져 순국하게 되었는데 이 때 유관순의 나이가 열일곱 살이었다는 거지요 그리고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죄수복을 입은 사진) 십칠 세의 소녀를 일급죄수로 분리해 삼 년형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중 극심한 고문과 영양실조로 1920년 9월 28일 오전 8시 20분 서대문 감옥 안에서 숨졌다는 겁니다. 그녀가 옥중에서 남긴 유명한 말이지요 <내 손톱이 빠져 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우리 또한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고통보다 신앙을 잃어버리는 것을 가장 큰 고통으로 생각하면서 오늘 본문에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40절을 보시자구요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여기 <한 사람> 헬라어 <헤이스>는 남성을 가리키는 단수 주격이라는 건데 그렇다면 여기 밭에 있는 두 사람 모두 남성이라는 걸 말하고 있다는 거지요 밭에 있다는 것은 꼭 밭일만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남성들의 사회생활을 이야기하는 거거든요 이 세상 모든 남성들에게 구원과 버려둠이라는 둘로 나뉜다는 겁니다. 여기 특이점이 뭡니까? 가고, 남고는 능동태인데 반해 데려감과 버려둠이란 모두 수동태로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타에 의해서 되는 현상이란 거지요
이번엔 41절을 볼까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여기 <한 사람> 헬라어 <미아>는 여성을 가리키는 단수 주격이라는 거지요 그렇다면 여기 맷돌질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이 세상에 살아 움직이는 모든 여성들을 말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이 세상 여성들 중에도 데려감을 받는 이가 있고 버려둠을 당할 이들이 있다는 겁니다. 이 세상 사람은 남자와 여자로 구성되어 있잖아요. 그렇다면 살아있는 모든 사람이 뭡니까? 데려감을 받든지 버려둠을 당하든지 할 거라는 거지요 그리고 여기 버려둠 헬라어 <아피에타이>는 <내버려두다> 또는 <상관치 않다> 또는 <버리다>란 현재적 의미거든요 이 일은 미래에 분명하게 그렇게 될 거라는 거기 때문에 이를 현재적 미래의 단어라고 부른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누구든지 데려감을 받기 원하지 버려둠을 당하기 원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런데 데려감을 받기 위해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남자와 여자 모든 사람이 할 일이 있다는 거지요 42절입니다. <그러므로 깨어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깨어있으라> 헬라어 <그레고레이테>는 <주의하다, 경계하다, 지켜보다>는 의미거든요 그러니까 눈을 뜨고 지켜보라는 것이기 보다는 뭡니까? 신앙이 나태해지고 영적인 일들에 대해 무관심해지고 세상일에 빠져서 신앙 아닌 것에 마음 빼앗기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거지요.
그렇다면 항상 좋은 신앙으로 준비되어야 하는 이유가 뭡니까? 예수님의 재림이 어느 날에 임할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아모스 선지자도 암4:12절에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 하나님이 우리에 대해 모르시는 것이 없으십니다. 우리가 하는 말을 들으시고 우리의 모든 행위를 아시고 생각과 마음까지도 꿰뚫어 살피시는 하나님이시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재림의 날 어떤 이들은 데려가실 수 있고 어떤 이들은 버려두시는데 억울해 할 수가 없는 것은 준비하지 못한 우리 자신의 탓이지요.
예를 들어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신경 쓰고 준비하잖아요. 고2, 고3되면 좋아하던 게임도 노는 것도 내려놓고 철저하게 대학입시를 위해 준비합니다. 수능성적만이 아니지요 학교에서의 내신도 신경을 써서 준비하고 입시가 가까이 오면 아이들은 긴장해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면서 정해진 입시 날짜를 앞두고 많은 걸 준비하잖습니까?
결혼하게 되는 남녀도 결혼할 날짜를 앞두고 준비하잖아요. 형편에 맞춰서 월세로, 전세로 아니면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내 집으로, 이렇듯 거할 집을 직장 가까이 할 것인지 친정 가까이 할 것인지 시댁에 들어가 살 건지 미리미리 준비합니다. 가구는 어떤 것으로 가전제품은 또 어떤 제품으로 예식장은 어디서 할 것인가 하나에서 열까지 준비합니다. 직장을 들어가기 위해서도 미리미리 준비하고 나이가 들면 노후를 준비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사는 방식은 준비에 중점을 두고 살아갑니다. 여기서 생각할 것이 뭡니까? 이 세상 잠시 잠간 사는 것을 위해서도 이렇게 준비한다면 영원한 것 영혼이 구원 받고 천국에서의 축복된 삶을 위해서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만나 들림 받는 일에 대해 준비해야 한다는 겁니다. 실제로 예수님 못 박힐 때 한편 강도는 믿음으로 낙원을 허락 받게 되고 다른 한편의 강도는 믿음이 없음으로 버려둠을, 그리고 똑같이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을 받고 반면에 사울은 믿음이 없음으로 버림을 받은 것을 기억하면서 오직 믿음과 신앙으로 살아 주님 다시 오실 때 모두 들림 받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3~44절을 보시지요.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여기 <너희도 아는 바니> 헬라어 <기노스케테>는 <너희도 잘 알고 있을거야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다면 그 시간에 깨어있지 않겠느냐 집 주인이 깨어 있는 모습을 보면 어찌 도둑이 들어올 수 있겠느냐 예수님도 마치 이런 도둑처럼 알리지 않고 오신다고 했어 그러니 생각지 않은 때 오신다니까 깨어 있어야하지 않겠어>라고 예수님이 말씀했다는 거지요
그러므로 우리에게 예수님이 요청하시잖아요. <준비하고 있으라> 여기 <준비하고> 헬라어 <헤토이모이>는 <예비하다>란 의미거든요 그런데 <준비하고, 예비하고>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있다면 뭘까요? 이 세상의 삶속에서 살면서 어떻게 사느냐가 곧 준비함이 된다는 거거든요 빌4:5절에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지금 주께서 가까우시니 임박했으니 관용을 알게 하는 삶을 살라는 거고 이것이 주님 만날 준비하는 거라는 겁니다. 약5:9절에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심판주가 문밖에 서 계실 정도로 재림이 임박한데 원망하는 삶을 그치라는 거잖아요 원망하는 삶은 믿음이 없는 삶이고 믿음이 없는 삶이 지속되지 않도록 지금 우리가 살면서 은혜 아닌 것이 없음을 기억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으로 변화하라는 거 아닙니까? 이렇게 사는 것이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는 거라고 했잖아요. 계19:7절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자신을 준비한 자가 그 날 즐거워할 것이고 크게 기뻐할 것이고 재림하시는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준비가 뭐예요? 신앙인으로서 믿음으로 사는 삶이라는 거지요 믿음을 가진 사람이 관용을 보이고 원망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은 버릴 것이 없음을 알고 감사함으로 받고 감당할 능력을 주심을 믿고 지금을 살아가는 이 자체가 준비하는 것임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5절을 보자구요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자! 44절 마지막 부분이 <인자가 오리라> 그리고 45절에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라고 시작됩니다. 그러나 원어 성경에선 44절과 45절 사이에 헬라어 <티스 아라>가 있어서 <그렇다면 누구냐>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그 집 사람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줘야 하는데 말이지란 해석이란 겁니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라는 것이 얼마나 능력이냐 하면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언제 만나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거 아닙니까?
여기 <지혜 있는> 헬라어 <프로니모스>는 <생각이 깊고 분별력 이 있는> 행동을 말하거든요 그리고 여기에 충성되다, 충성된 이의 특징이 뭘까요? 눅16:10절에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우리에게 꼭 있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고전4:2절에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하나님의 비밀이란 하나님의 말씀이고 이는 영의 양식이잖아요. 이 양식을 때를 따라 나눠줘야 한다는 겁니다. 고전3:2절에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고린도 교회를 개척한 바울사도는 고린도교회성도들의 신앙수준을 볼 때 하나님의 말씀을 밥으로 해서 먹일 수가 없었다는 거지요 왜 신앙적으로 어려서 아기와 같았기 때문에 젖으로 준비해서 먹였다는 겁니다. 이렇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어서 성도들로 하여금 건강한 성장이 이루어져 재림하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관용하는 신앙인으로 원망 대신 감사하는 신앙인으로 은혜를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신앙인으로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신앙인으로 믿음의 사람으로 찬양의 사람으로 겸손의 사람으로 충성하는 사람으로 세워가게 그렇다면 주님이 언제 오시더라도 뭐가 문제가 될까요. 46절에 뭐랍니까?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여기 <주인> 놀랍게도 헬라어 <퀴리오스>라는 거지요 퀴리오스는 <주님>이거든요 하나님 앞에도 이 퀴리오스가 사용되고 특히 예수그리스도를 지칭할 때도 퀴리오스 주님이 사용된다는 거 아닙니까? 그렇다면 주인이 온다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을 말한다는 거잖아요 주님이 오시면 47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준비하고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복이 있습니다. 반유대정서가 고조되고 있을 때 일어난 제2차 세계대전으로 히틀러는 자그마치 600만 유대인을 죽음의 가스실로 몰고 갔을 때 유대인들은 죽음의 공포로  두려움에 휩싸여 있는 가운데 한 유대인 의사는 유리조각 하나를 줍게 됩니다. 매일 그는 그 유리조각으로 면도를 하면서 살겠다는 의지를 다졌다는 거지요 나치는 매시간마다 가스실로 보낼 유대인들을 뽑았고 그러나 매번 새파랗고 깔끔하게 면도한 얼굴을 하고 있는 활기찬 젊은 의사를 끌고 갈 수는 없었다는 겁니다. 그의 가스실행이 하루 이틀 이렇게 미뤄지다가 드디어 독일이 패망했고 젊은 의사는 기적적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는 겁니다. 훗날 이 젊은 의사는 "하나님은 결코 도움을 늦추지 않으신다. 다만 우리가 너무 성급해서 하나님이 도와주실 때까지 참지 못할 뿐이다."는 말을 남겼다는 거지요 잠시 잠간의 쾌락이 아닌 영원한 기쁨과 복을 바라며 오늘을 살되 오직 믿음과 신앙으로 살며 언제 주님이 오시더라도 주여 어서 오세요 기다렸습니다 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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