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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16:24~28절 “예수그리스도의 3대 명령” 2022.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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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2-10-15 15:53    조회 1,141    댓글 0  
 
마16:24~28절    “예수그리스도의 3대 명령”    2022.10.16.
바다엔 잔잔하고 아름다운 풍경만 있는 것이 아니지요 갑작스럽게 불어 닥치는 광풍이 있고  큰 풍랑도 있는데 이런 것이 없다면 아마 바다가 아닐 겁니다. 인생을 논할 때 광풍과 풍랑이 잦은 바다에 비유하기를 인생은 바다인데 무슨 바다랍니까? 苦海(고해) 괴로움이 끝이 없는 바다라고 부르잖아요. 그래서 우리 인생에 광풍과 풍랑이 끊임없이 찾아오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것은 괴로움이 끝이 없는 바다에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어렸을 때 배웠던 월인천강지곡 중에 한 대목이지요. 온갖 풍파를 견디며 살아온 인생의 끝을 노래하기를 ‘사람이 늙어 병이 들면 밥통과 창자가 낡아서 음식을 먹어도 잘 소화시키지 못하고 담이 성 하여 숨을 제대로 못 쉬니 자연 기운이 없어지고 사대육신이 말을 안 들으며 걸음도 잘 못 걸으며 목숨이 오래 붙어 있지 못하고 살고자 하나 아무런 도리가 없으니 이를 일러 병이 들었다’고 노래하고 있는 거지요 고해 같은 세상에서 이런 늙고 병드는 인간의 삶에는 빈부귀천이 다르지 않다는 겁니다. 우리 예수 믿는 자들도 고해와 같은 세상을 살아가지만 너희는 이렇게 살아야 돼 우리에게 주시는 에수 그리스도의 3대 명령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받기 원합니다.

24절을 볼까요.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여기, 자기를 부인한다는 말은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적극적인 행동을 의미하니까 ‘자신의 의지와 뜻을 부정하고 자신의 욕구와 육체의 유혹까지 단호히 물리치는 행위’라는 겁니다. 예전의 예수 믿기 전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습니까? 엡2:3절에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뭡니까? 전혀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자기를 위한 삶이었지만 예수 믿고 세상은 고해와 같은 똑같은 세상이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자기를 철저하게 부인하는 삶이라는 겁니다. 그럼 어떻게 산답니까? 갈2: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전엔 이 땅에 것만 보다가 썩지 않을 신령한 하늘의 것을 봅니다. 비록 육체는 늙고 병들어 남들처럼 죽겠지만 우리는 영원한 곳 천국을 보는 눈 그 눈이 예수 믿고 열려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해와 같은 세상에서 어느 날 갑작스럽게 광풍을 만나고 비바람에 정신을 못 차릴 때 우리 예수 믿는 자들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이끌어 가심을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배후에 계심을 믿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왔을 때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 전부였잖아요 그런데 그 생명 하나뿐인가요? 아니요, 참 너무 많은 것을 주셨고 그것들로 누리면서 살았고 그것으로 인해 기쁨과 만족을 누릴 수 있었지만 감사하는데 인색했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것인데 빌려서 쓰다가 원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달라고 하시면 드려야 된다는 거지요 만약 우리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처럼 맡기신 것들에 대해 책임과 의무감의 무게에 눌려서 불평한다면 불평하는 동안 착각하기를 내 자신이 모든 것을 감당하고 있는 것처럼 시험의 자리에 빠져들게 한다는 거 아닙니까? 욥1:21절에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주인이신 하나님이 그것을 도로 찾으셨다는 거지요 하나님이 도로 찾으실 때 우리의 반응을 보면서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데 그 능력주시는 자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거지요 쏘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하였지만 예수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너 자신을 부인해 그래야 영원한 것을 얻을 수 있어 라고 말씀하신 거지요 예수님은 말씀하신대로 하나님 아버지 자신이신데 영광의 보좌도 버리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종의 형체를 가지고 모든 인간의 죄를 담당하실 때 십자가에 죽으실 때는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기를 원한다고 하면서 대속의 완성을 십자가에서 자신을 죽는데 내어주심으로 이루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어떤 존재입니까? 교만덩어리요 욕심덩어리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하셨고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 했습니다. 이런 우리야 말로 우리 자신을 부인할 때 하나님의 구원과 영광과 능력을 경험하게 됨을 믿습니다. 빈손으로 왔습니다. 주가 많이 주셨습니다. 주의 일하라고 주신 것을 알고 세월을 놓치지 말고 주의 일 많이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제자는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시잖아요. 성프란시스가 하루는 자기 집 하인이 우물에서 물통에 물을 가득 담가서 길어올 때 나뭇가지 하나를 물통에 던져 넣는 걸 보면서 이를 이상히 여긴 성프란시스가 물었습니다. 하인의 대답이 그래야 물통에 물이 흔들려 넘치는 것을 최대한 방지한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흘리는 것이 반이된다는 거지요 이 말을 들은 깨달은 바가 있어 친구에게 편지하기를 <우리는 얼마나 자주 흔들리는 마음의 물통을 가지고 있는가? 두려움으로 흔들리는 마음, 고통으로 심하게 요동치는 마음, 절망으로 부서지는 마음> 이때 나무십자가를 던져보게나 하고 썼다는 겁니다. 우리도 우리의 마음이 요동칠 때 내 십자가를 자꾸만 밀어내면 마음의 요동은 더할 거지만 우리 모두 아멘 하고 바로 지면 그 흔들림은 급격하게 줄어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자는 예수님을 좇는 삶이어야 한다는 거지요 여기 ‘좇는다’ 헬라어 ‘아콜루데이토’ 현재진행형으로 지금 계속해서 좇는다는 겁니다. ①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처럼 언제나 어디서나 변하지 않는 모습이라는 거지요 우리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두 가지 가면을 쓰고 산다네요 교회에서는 천사의 가면 그런데 집에 가서는 천사의 가면은 단스 위 성경찬송 옆에 그리고 그곳에 있는 마귀의 가면을 쓴다는 거지요 아닙니다. 주님 예수를 따르는 삶은 언제나 어디서나 가면이 아니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변화된 얼굴이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②예배에 중심을 두는 삶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오백여 성도들에게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예배자로 모여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하심을 약속하셨는데 예배자로 모인 사람이 백이십여 명으로 삼백팔십 명은 어디로 갔습니까? 초대교회는 예배자들이 모여 기도하다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초대교회가 시작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4:23절에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그리고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③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겁니다. 우리에겐 모두가 자기 십자가가 있습니다. 십자가는 내가 죽는 것입니다. 내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는 것이라고 예수님 표현하셨잖아요. 그래야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하셨는데 오늘날 보세요 예수님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자신의 희생으로 수많은 인류가 살아났습니다. 우리 또한 내가 죽고 내가 없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우리의 희생이 우리의 자녀와 가정 그리고 삶에 풍성한 생명으로 채우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5절을 보자구요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자기를 부인하라, 자기 십자가를 져라, 나를 좇으라는 예수님의 삼대 명령에서 깨닫는 것은 적극적 순종을 요구하는 강한 명령이라는 거지요 여기 ‘목숨’ 헬라어 ‘프쉬케’는 ‘목숨’ 또는 ‘영혼’을 의미하거든요 그러니까 육체의 목숨만이 아닌 영원한 생명인 영혼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이 본문에서 말하는 목숨이라는 겁니다. 자신의 육체의 목숨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영혼까지 잃어버린다는 거 아닙니까? 26절을 보시지요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목숨보다 귀중한 것이 없다는 거잖아요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찾으리라 뭡니까? 목숨보다 더 귀중한 것은 세상엔 없지만 죽어서 얻는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거지요 그러나 자기 목숨에만 애착을 두고 사는 이는 목숨과 더불어 영혼도 잃어버린다는 거거든요 우리가 누굽니까? 주님께로부터 적극적 순종을 명령 받은 사람들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라 자기 십자가를 지라 나를 좇으라 잠간의 고통과 고난 때문에 목숨을 위해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자가 아니지요 우리는 육체의 죽음 너머 영원한 세계를 상속 받을 영혼이 영원히 사는 자들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7~28절을 보시지요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승천에 이어 재림을 말씀하시잖아요. 여기 ‘인자가’ 헬라어 ‘휘오스 투 안드로푸’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셨음을 나타내는 단어라는 거거든요 인자가 사람의 아들이 아니었다는 것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분이라는 신적권위를 ‘아버지의 영광으로 오신다’는 것으로 나타내신 거지요 인자로 세상에 오셨을 때는 베들레헴의 말구유에서 다시 오실 때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심판주가 되어 천사들과 함께 공중에 임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이루어지면 먼저 무덤이 열리고 죽은 자의 부활이 이루어집니다. 여기 서 있는 사람들 중에 죽기 전에 뭡니까? 영원한 죽음에 이르기 전에 재림의 모습을 볼 것이고 심판의 부활로 나가게 될 거고 그러나 믿는 자는 예수님의 부활체의 모습으로 천년 혼인 잔치자리에 이르게 됨을 믿으시기 바라며 고해와 같은 세상에서 세상 사람들처럼 살지 않고 예수님의 삼대명령 우리 자신을 부인하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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