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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23:1~6절 “부족함, 두려움, 죽음이 없는 영원한 삶은 여호와 나의 목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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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2-09-23 22:10    조회 1,195    댓글 0  
 
시23:1~6절  “부족함, 두려움, 죽음이 없는 영원한 삶은 여호와 나의 목자에서”  2022.9.25.
그저께가 추분이었는데 낮과 밤의 길이가 같지요 그리고 추분이 지나면서 밤의 길이가 조금씩 길어진답니다. 우리는 무엇이 길어지면 좋을까요? 한번 뿐인 인생에서 없어도 될 만한 것은 줄어들면 좋겠고 꼭 있어야만 하는 소중한 신앙의 요소들은 점점 늘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베드로사도가 자신에게 늘어날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지요 벧후3:18절에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우리가 길어져야 할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요 그분을 아는 지식이랍니다.

1절을 보세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기서 우리는 다윗이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떤 관계인지를 말씀하고 있다는 거지요 다윗이 히브리어 ‘예흐와 로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는 겁니다. 다윗이 <이스라엘백성들을 보면서 당신들의 목자가 누구인지 모르겠고 누가 당신들을 돌보는지 모르겠어 그러나 나는 분명해 여호와가 나의 목자야 그래서 날 돌보시지>라고 선언하더라는 거지요 황량한 들판에 한 무리의 양들이 몰아치는 비바람을 고스란히 맞고 서 있을지라도 그 양무리들 가까이 그 어딘가에는 그 양들의 주인인 목자가 있다는 거지요 양들은 목자에게 속해 있기 때문이라는 거거든요 그러므로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로 밝히고 있는 겁니다. 사람들은 내가 누구에게 속한 종속적인 관계를 환영하지 않잖아요.
품안에 자식이라는 말이 있는데 자식이 머리가 커지면 부모의 간섭을 받지 않으려 한다는 거거든요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과의 종속적 관계도 그분의 간섭도 사랑하는 표현 ‘예흐와 로이’를 말하고 있다는 거지요 우리에게도 내가 그분께 속했다는 신앙이 있습니까? 내가 그분께 속했다는 사상으로 살 때 반응되는 믿음의 역사가 뭐랍니까?

‘내게 부족함이 없다’는 미래를 확신하는 믿음이라는 거거든요 양이 목자에 대한 강한 믿음은 두 가지인데 먼저는 먹을 것을 공급해서 나로 하여금 건강하게 그리고 강하게 한다는 거고 다른 하나는 인도하되 안전하게 인도한다는 거거든요 그렇지요 먹이고 인도하는 일은 양이 하는 일이 아니라 목자가 할 일이라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 목자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눕게 하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는 거지요
예수님이 누구신가요? 요10:14절에 “나는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뭡니까? 우리가 우리의 미래에 대해 분명하게 고백할 수 있는 것은 ‘부족함이 없을 거’라는 거고 우리가 갖게 되는 두 가지 믿음은 목자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의 필요를 채우셔서 우리로 건강하게 그리고 강하게 하실 거라는 건데 무엇으로 우리를 채우실까요? 우리 손에 있는 육십육권으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십니다. 그리고 구하라 찾아라 두드리라 그러면 얻을 것이요 만날 것이요 열릴 것이니라 하신 기도의 권세로 우리의 필요를 채우십니다. 성령의 내주 내재 교통 그리고 역사하심으로 우리 영을 날마다 새롭게 하심으로 채우십니다. 끊임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사와 은혜가 우리의 필요를 채워 영육이 건강하게 그리고 강하게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목자이신 예수님이 하시는 또 하나의 일이 뭡니까? 양인 우리를 먹이실 뿐만 아니라 안전하게 인도하신다는 거지요 우리가 잘못된 길로 나아갈 때 3절에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신다’는 거지요 여기 ‘소생시키시고’ 히브리어 ‘에쇼베브’는 ‘돌이키다’ ‘제자리로 돌려보내다’거든요 사30:21절에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 그렇습니다. 죄악으로 영원한 사망을 당할 처지의 우리를 위해 요10:10절에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죄로 타락하기 전 생명으로 다시 돌려보내시는 소생케 하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겁니다. 요10:4절에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 따라 가며 복음 순종하는 삶이요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는 삶이 우리 삶이요 그래서 경험하는 것은 만사형통이요 샘물 나게 하심이요 그래서 우리가 미래를 향하여 고백할 수 있는 것은 ‘부족함이 없습니다.’가 되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가 그분께 속했다는 사상으로 가득 차 있을 때 반응하는 믿음의 역사는 뭘까요? 현재에 ‘두려움이 없다’는 고백인 거지요 두려움이 없는데 언제랍니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때’라는 거거든요 어째서 두려움이 없습니까? 목자이신 여호와가 나와 함께 계신 때문이라는 겁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장소잖아요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죽음처럼 캄캄한 골짜기’라고 번역이 가능한데 우리의 영혼에 마치 빛이 죽어버린 것 같은 캄캄한 골짜기를 지나게 될 때가 있지요 그것이 질병일 수 있고 죽음자체일 수도 있는데 이때 인간이라면 느끼는 감정이 두려움이라는 거거든요 그런데 두려움을 주는 것이 장소만 있는 것이 아니지요 두려움을 주는 세력이 있잖아요. 목자는 양들이 뜯어 먹는 풀들에 독초가 있는지 살펴줘야 하고 독사가 있는 곳에 머물지 않는지 긴장의 끈을 놓치지 말아야 하고 몰래 숨어 기다리는 맹수가 있는지 목자들은 돌아가면서 불침번을 서야만 한다는 걸 말씀합니다. 그러나 두려움을 주는 장소나 세력에 상관없이 분명한 것은 5절에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라는 겁니다
우리도 우리를 속이고 파괴하는 세력이 있다는 거지요 요8:44절에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예수님은 마귀를 ‘살인한 자’로 베드로는 ‘굶주림에 우는 사자’라고 그래서 우리와 우리에게 속한 것들을 찢고 물어 죽이려 한다는 거거든요 우리가 가진 화평, 기쁨, 평안, 사랑, 소망, 증거와 믿음을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하게 찢어내고 죽이기까지 한다는 거지요 그러나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는 충분한 이유가 뭡니까? 히브리어 ‘앗타 임마디’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겁니다. 우리도 두려움을 잠잠하게 하는 위대한 사실이 뭡니까?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거잖아요. 혼자 있다면 달라지는 것이 없을 것이지만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상황이 달라지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벳세다 들녘에 예수님이 계시므로 오천 명이 먹고 배부를 수 있었고 중풍병자에게 나병환자에게 눈먼 자에게 혈루병으로 고통 받는 여인에게 나음을 얻을 수 있었고 귀신들린 자에게는 귀신에 놓여 자유할 수 있었고 풍랑의 위협에 있었던 제자들에게 풍랑이 잔잔해 짐도 예수님이 함께 하시므로 상황이 달라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그분께 속했다는 사상으로 가득 차 있을 때 반응하는 믿음의 역사는 뭘까요? 죽음이 없는 삶이 주어지는 겁니다. 6절에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여기서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죽으리라가 아니라 영원히 살리라는 겁니다. 이 말씀에서 다윗은 하루를 마치면서 자신의 양무리를 우리에 모두 넣음으로 일과를 마치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거지요 양의 하루의 일과를 마치는 것처럼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삶을 마치는 날이 오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에서 영원히 거하는 삶이 오게 됨을 말씀한다는 겁니다. 이 사실에 대해 예수님도 말씀하시기를 요11:26절에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우리가 인생의 하루 일과를 마치고 우리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우리로 들어가 영원히 사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딤후1:10절에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영원히 사는 것에 대해 예수님이 드러내셨다는 거 아닙니까? 또 하나 요14:2~3절에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우리 믿는 자로 하나님의 집에 있게 하시겠다는 죽음이 없는 삶을 약속해 주셨다는 거 아닙니까? 우리는 여호와가 나의 목자이심을 믿는 그분께 속한 자들이잖아요 채우시고 인도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시니 부족함도 없음을 말할 수 있기를 원하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두려움 또한 없다고 말할 수 있기를 원하고 인생 마감의 날 목자이신 하나님 여호와는 우리를 당신의 나라로 인도하여 들이시는 것을 믿음으로 어떠한 죽음도 없는 영원한 삶인 것을 믿는 이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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