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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5:25~34절 “희망이 움트는 삶은 예수그리스도를 믿을 때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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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2-07-29 08:53    조회 1,431    댓글 0  
 
막5:25~34절    “희망이 움트는 삶은 예수그리스도를 믿을 때 시작됩니다”    2022.7.31.
세계적기업 코카콜라의 창업자 존 펜버턴박사는 당시 자신의 고향 조지아주에 정치인과 종교인들 사이에 한창 금주 운동을 벌이고 있을 때 술과는 전혀 다른 음료라는 걸 부각시키려고 ‘마시자 코카콜라’란 광고를 선보였고 1904년도엔 ‘맛좋고 상쾌한’이란 광고를 1906년도엔 역시 금주령으로 술에 대해 자제 운동이 일어났을 때 ‘위대한 비 알코올음료’란 광고로 그리고 세계 대 경제공항일 때는 ‘힘들 땐 코카콜라와 함께’라는 광고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는 ‘코카콜라도 함께 갑니다’란 광고를 했고 2009년 세계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때 ‘코카콜라로 행복을 여세요’라는 광고로 그러니까 코카콜라 회사는 광고로서 어려운 시절에 긍정과 희망의 메시지를 선보였다는 겁니다. 저는 오늘 절망에 처한 한 여인이 예수님을 통해 긍정과 희망을 보는 이 사건을 소개하면서 질병으로 또는 고난과 문제로 인해 고통당하는 분들에게 오늘의 희망의 사건이 바로 우리의 사건이 되기를 원합니다.

25절을 볼까요.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혈루병은 선천적으로 혈액응고 인자의 결핍으로 출혈이 멈추지 않는 질환이라는 건데 이 질환이 발병이 된지도 세상의학에 기대하기보다는 체념이 더 앞서는 시기였음을 12년이란 세월이 말해주고 있다는 거지요 거기다가 더 힘든 것은 하나님하신 말씀인데 레15:2절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그의 몸에 유출병이 있으면 그 유출병으로 말미암아 부정한 자라”고 정죄하였고 또 레15:20절에선 “그가 불결할 동안에는 그가 누웠던 자리도 다 부정하며 그가 앉았던 자리도 다 부정한즉” 거듭되는 정죄는 여인이 누웠던 자리, 앉았던 자리가 부정하다고하니까 가정생활이 안 되는 거고 그래서 남편과의 이혼사유까지 된다는 거 아닙니까?
26절을 보시지요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이 여인이 질병을 고치기 위해 세상적으로 노력 안해 본 것이 없지만 이런 인간의 노력과는 달리 이 여인이 거둔 것은 뭡니까? 몸과 마음이 동시에 겪는 괴로움이 컸다는 것과 경제적 여력마저 바닥이 나버렸다는 거지요 그렇더라도 진전이 있다면 괜찮을 건데 아무런 효과도 없고 오히려 더 중해져만 갔다는 겁니다. 
사람의 죽음이 뭡니까?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것이 죽음이지요. 육체가 밥을 먹어야 살 듯이 영혼도 양식을 먹어야 살 수 있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신8:3절에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영혼이 사는데 말씀을 먹지 못할 때 그 영혼이 죽었다라고 말하는 거지요 사실은 영혼은 죽지 않잖아요. 그렇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못할 때 죽었다고 말한다는 거거든요 이와 같이 죽은 영혼을 위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생명의 양식으로 오신 예수님, 그리고 자신을 십자가에 죽는데 내어줌으로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신 예수님이 우리의 죽은 영혼을 살리실 수 있다는 거지요 엡2:1절에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또 고전15:45절에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니까 죄로 인해 죽은 영을 가진 인간은 살기 위해선 반드시 누굴 만나야 합니까? 살려주는 영이신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나야만 되는 거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애4:17절에 “우리가 헛되이 도움을 바라므로 우리의 눈이 상함이여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나라를 바라보고 바라보았도다” 뭡니까? 헛된 걸 의지하고 살더라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의 여인도 그렇고 모든 인간 역시도 누가 희망입니까?
27절을 볼까요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그렇습니다. 예수님만이 희망입니다. 여인이 어떻게 예수님께로 가까이 올 수가 있었습니까?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왔답니다. 중풍병자를 메고 온 네 친구는 어떻게 예수님께로 올 수 있었습니까? 지붕을 뜯어내면서 요란할 정도로 모든 사람들이 다 주목할 모습으로 왔었고 그런가하면 소경 거지 바디매오는 어떻게 예수님께 올 수 있었습니까? 다윗의 자손 예수여 고래고래 소리소리 지르면서 제자들과 사람들이 만류하고 꾸짖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 나왔었잖아요. 그러나 이 여인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는 거지요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무리를 이룬 곳에서 남자와의 접촉이 금지되었던 시대였다는 거고 다른 하나는 유출병으로 인해 접촉하는 모든 것이 부정하였기 때문이라는 거지요 뭡니까? 스스로 자격지심에 의해 위축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었다는 거 아닙니까?
그렇지만 이 여인이 예수님께로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온 것은 사회적으로, 육체적으로, 물질적으로도 모두 절망적인 상태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희망 예수님을 포기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거거든요 이 여인은 누구에게든 손을 대서는 안 되었지만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댔다는 거지요 여기 ‘옷’ 헬라어 ‘히마티우’는 ‘옷의 가장자리’를 의미하거든요 그리고 ‘대니’ 헬라어 ‘헵사토’는 ‘계속해서 손을 대고 있는 것이 아닌’ ‘단 한 번 손으로 댄 정도’라는 겁니다. 손을 대었다고 났을까요? 손을 댄 사람이 이 여인 하나뿐이었을까요? 수많은 인파에 예수님의 옷을 스친 사람 만진 사람은 너무도 많았을 거잖아요. 오늘날도 그렇지요 예수가 어떤 분이신가 궁금해 하면서 스치듯 만지듯 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는 거 아닙니까? 그렇다고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는 거지요 그렇다면 여인의 스치듯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짐은 어떤 만짐이었기에 구원 받았을까요?

28절을 보자구요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예수만이 희망이라고 생각한 이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댄 것은 구원을 받으리라는 생각이 있었다는 거지요 ‘생각함일러라’ 헬라어 ‘엘레겐’은 미완료 동사로 한번 생각한 것이 아니라 계속 반복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거라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한 순간 충동적인 것이 아닌 지속적인 믿음에서 출발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여인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인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인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 몸을 스치는 것도 안 되고 유출병으로 인해 여인이 만지는 물건과 사람이 모두 부정해지고 마는 그래서 도무지 사람을 가까이는 해서는 안 되는 만약 들통이 난다면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사람 생각하면 주저주저 하다가 기회를 놓치게 될 거고 회복은 절대로 있을 수 없었을 거라는 거거든요 그러나 믿음은 용기를 갖게 한다는 거 아닙니까? 독일속담에 ‘금이 아름다운 것을 알게 되면 별이 아름다운 것을 잃게 된다.’는 교훈이 있는 것처럼 세상 것을 크게 보면 믿음으로 보는 세상은 작게 보일 수밖에 없다는 거지요 지금 이 여인은 예수만이 희망인 것을 깨닫고 목숨을 건 믿음으로 주님의 옷자락에 손을 댔다는 거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요? 29절에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그냥 스치고 만진 것이 아닌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질 때 ‘곧’ 헬라어 ‘유뒤스’는 ‘즉각적으로’ 혈루의 근원이 말랐답니다. 12년 동안 많은 의원들, 허비된 돈, 그리고 받았던 수많은 고통들, 민간요법과 의술 안 해본 것이 없었는데도 더 중해져 갔던 것과는 다르게 예수님의 옷자락을 믿음으로 스치듯 만진 것이 다인데 즉각적으로 깨끗해졌다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여기 ‘근원’ 헬라어 ‘페게’는 ‘샘’ 또는 ‘우물’이란 뜻이거든요 그렇게도 애간장을 태우며 12년 동안이나 원인을 찾을 수 없어서 괴롭게 했던 그 ‘근원’ ‘페게’가 한 순간에 즉각적으로 더 이상 샘과 우물의 기능을 못하게 되었다는 거고 아예 말라버린 것을 당장에 느낄 수 있었다는 거 아닙니까?
주 안에선 이런 일이 가능하잖아요 시30:2절에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시107:19~20절에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그렇습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를 죄악과 질병 문제 가운데서 고치시려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보내심을 받으셨고 목숨을 걸고 믿음으로 구하고 찾는 이 여인처럼 구하는 자에게 역시 고치시고 구원하시며 건지심의 역사를 이루시니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분이시기 때문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0절을 보자구요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뭡니까? 고치시고 구원하시고 건지심의 역사가 예수님에게서 나갔다는 거 아닙니까? 출15:26절에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예수님은 하나님이셨기에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 아신 거거든요 예수님은 능력은 질병치료만이 아니지요 빌3:21절을 보세요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만물을 복종케 하시는 능력도 있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뿐만이 아니지요 히7:25절에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신다”는 겁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믿음으로 자기에게 나오는 모든 이를 고치시고 구원하시고 건지실 수 있는 예수님이시오 그리고 우리를 위해 항상 간구하시는 예수님이시고 만물을 복종케 하시는 예수님이시며 재림하실 때 우리를 홀연히 당신의 부활의 몸처럼 변하게 하여 공중으로 끌어올리실 예수님이심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것이 다가 아니잖아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당하는 여러 가지 시험들에서도 히2:18절에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우리를 능히 도우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도 히4:16절에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베푸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도 믿음 있는 자를 찾으신다는 거잖아요. 시53:2절에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그러나 사람은 모르잖아요. 31절에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그래요 사람은 알 리가 없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에워싸 미는 무리가 아무리 많아도 그 중에 믿음이 있는 자를 찾아내시더라는 거잖아요. 32절에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보시니” 뭡니까? 여인이 자신의 입술로 스스로 고백할 때까지 여자를 보려 둘러보셨다는 거 아닙니까? 이 여인은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음을 깨닫고 33절에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여기서 여인의 상태를 말씀하잖아요. ‘두려워하며’ 헬라어 ‘포베데이사’ ‘떨며’ ‘트레무사’ 자신의 믿음의 행위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보인 반응이라는 겁니다. 변화산에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가 변화되신 예수님 앞에서 마17:6절에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뭡니까? 주님이 누군가를 깨닫게 되면서 인간이 보이는 반응이라는 거 아닙니까?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여인은 자신이 손을 댈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손을 대었을 때 즉각적으로 일어났던 혈루의 근원이 곧 마르고 나음을 깨달았던 일까지 모두 이야기함으로 주 예수그리스도의 능력을 간증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34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여인의 이 믿음의 행위로 인해 얻은 것은 단순히 병에서 놓여 건강한 것만이 아니라는 거지요 율법으로 부정하다고 규정되어서 구원 받을 수 없는 영혼에서 그 부정함이 제거되고 구원 받은 하나님의 딸이 되었다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희망이 움트는 삶은 예수님을 만날 때 시작되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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