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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11:4~6 “더 나은 예배, 지상에서 천국으로 믿음이 가능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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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1-12-14 18:40    조회 2,277    댓글 0  
 
히11:4~6  “더 나은 예배, 지상에서 천국으로 믿음이 가능케 해” 2021.12.19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막연하게 믿는 것이 아니고 믿음엔 삼 요소가 있대요. 그 첫째가 라틴어로 ‘노티티아’ ‘지식’인데 어떤 지식이냐 예수가 하나님이 독생자로 보내신 그리스도라는 것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는 거지요 둘째가 ‘아센수스’ ‘동의’랍니다. 무엇에 대한 동의냐 바로 이 지식을 받아들임이라는 거지요 그리고 마지막 셋째가 ‘피두키아’ ‘신뢰’라는 거지요 이 신뢰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만 바라보는 삶을 말한다는 겁니다. 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본문을 통해 깨닫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4절을 볼까요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여기서 가인의 제사와 아벨의 제사의 차이가 뭐냐? 아벨이 드린 제사가 더 나은 제사라는 건데 여기 ‘더 나은 제사’ 헬라어 ‘플레이오나 뒤시안’은 어떻게 이루어진답니까? ‘믿음으로’라는 거지요
아벨이 믿음으로 더 나은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께 ‘의로운 자’라는 증거를 얻었다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가인이 드린 제사는 어떻습니까? 믿음으로 드리지 않았다는 거고  그래서 가인은 여전히 의롭지 못한 악한 상태로 있었다는 거거든요 이 사실을 요일서3:12절에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그러니까 사람이 생각하는 의의 기준하고 하나님의 의의 기준은 완전히 다른 거지요 사람이 말하는 의는 내가 법대로 살므로 의를 이루려는 거잖아요 그런데 롬3:20절에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법대로 살므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하지요 오히려 법에 들이대면 들이댈수록 먼지만 난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므로 율법을 지켜서는 의로울 육체가 없기 때문에 롬3:21절에 뭐랍니까?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여기 ‘율법과 선지자들’ 즉 구약성경에서 말씀하시던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는 거지요 롬3:22절에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이게 뭡니까? 사람이 생각하는 의와 완전히 다른 것이 하나님의 의의라는 건데 이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차별 없이 이루어진다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뭐라고 선언하십니까? 롬3:24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그래서 롬3:28절에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그러니까 율법을 잘 지킨다는 바리새인들과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이 꽤나 의롭다고 생각했었는데 예수님의 생각은 그게 아니었다는 거지요 마5:20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나은 의를 소유하지 못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가지고는 천국 못 들어간다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그들의 의보다 나은 의가 뭐라는 겁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지요 롬10:9~10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나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믿음으로 드려지는 예배만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더 나은 예배가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기 ‘그가 죽었으나 믿음으로써 말하느니라’ 뭡니까? 아벨은 죽었지만 그의 믿음의 행위는 ‘더 나은 제사’였음을 증거 한다는 겁니다. 죽었고 믿음이 없어 지옥 갔다가 아니라 죽었지만 믿음이 있어 의로운 자되어 하나님이 계신 나라에 갔음을 증거 할 수 있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절을 볼까요.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여기 ‘옮겨졌으니’ 헬라어 ‘메테테데’는 ‘다른 곳으로 데려가다’ 그러니까 내가 가고 싶어 간 것이 아니라는 거지요 ‘하나님이 그를 옮기시므로’ 그렇습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옮겨진 거라는 겁니다. 어디로? 하나님이 계신 천국으로라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다는 거잖아요. 히9:27절에선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라고 말씀하시는데 하나님께서 자신이 정하신 것까지도 깨시면서 세상에서 죽음 없이 하나님의 나라로 옮기셨다는 겁니다. 분명 하나님은 약1:17절에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고 불변의 하나님이지만 믿음으로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고 지상에서 천국으로 옮기심으로 장차 믿음의 법으로는 가능함을 보여주신 거지요
요11:25~2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믿음을 가진 자는 죽어서 육체는 소멸되나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요 또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여기 ‘죽지’ 헬라어 ‘아포다네’ 육적죽음을 의미하지 않고 영적인 죽음을 의미하는 거거든요 그러므로 살아서 믿는 자는 영적인 죽음이 없이 영원히 영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죽음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거지요 
그리고 또 하나 육을 그대로 가지고 천국에 어찌 들어가겠느냐는 거지요 고전15:40절에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분명 하늘에 속한 형체와 땅에 속한 형체가 다르므로 이 땅의 형체를 가지고 하나님 나라에 간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고전15:51절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에녹은 이처럼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되었을 거고 변화된 몸으로 천국으로 들어갔을 거라는 거지요
살전4:16~17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죽은 자들이 일어나는데 해골이 된 그 상태로 일어나지 않잖아요. 홀연히 변화된 하늘에 속한 형체,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바로 그 부활체로 일어날 거고 살아있어 주님을 맞는 성도들 역시 홀연히 하늘에 속한 형체, 예수님의 부활체로 변화되어 옮겨질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기 참예하는 모든 성도들은 변한다는 걸 느끼지도 못하게끔 홀연히 변화될 거고 에녹도 그렇게 변화되어 옮겨졌다는 거지요 그렇다면 믿음으로 에녹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진 것은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에게 예표가 된다는 거 아닙니까? 더군다나 믿음이 있는 자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았다는 거지요 믿음으로 사는 우리도 하나님의 기쁨과 더불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하나님이 옮기시는 것을 기억하고 같은 소망을 품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6절을 보시지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이 있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에녹처럼 만약 우리가 믿음으로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일이 없다는 겁니다. 여기 ‘기쁘시게’ 헬라어 ‘유아레스테사이’는 ‘만족하게 하다’ 또는 ‘기쁘게 하다’라는 의미로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한다면 ‘믿음으로 사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거 아닙니까?
믿는다면서 믿음이 없이 사는 자는 마치 나면서 앉은뱅이가 된 자가 절대로 일어나 걸을 수가 없는 거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은 결코 헛될 수밖에 없다는 거지요 앉은뱅이는 다리가 있지만 일어나 걸어가는 그 기능을 못하는 거잖아요.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겁니다. 뭡니까?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필연적으로 가지는 믿음은 하나님의 존재성에 대한 확신이라는 거거든요 여기 ‘그가 계시다’ 헬라어 ‘에스틴’은 현재시제니까 항상 지속적으로 계시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존재하시되 언제나 살아 계신다는 의미라는 거지요 창조 때부터 에녹을 찾아오시고 노아를 찾아오시고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하나님 모세를 찾아오신 하나님 오늘날 나를 찾아와 만나주시는 지금도 살아계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거지요 이를 믿지 않는 자를 무신론자요 불신자라고 말하잖아요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했고 프랑스의 사상가 사르트르는 하나님이 없다고 했으니 그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은 없는 거지요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자는 ‘짐승의 삶’이라고 했거든요 그러니 지혜와 지식을 먹고 사는 인간에게 지혜와 지식의 근본이 뭐라고 말합니까? 잠1:7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시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했다는 거지요 여기 ‘찾는’ 헬라어 ‘엑제테오’는 계속 찾는 걸 의미한다는 겁니다. 이것은 믿음의 표현이고 하나님은 기쁘게 여기실 뿐만 아니라 상주신다는 거거든요 그래서 믿음으로 사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창15:1절에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돌아온 탕자에게 가장 큰 상급은 아버지자신이었듯이 믿음으로 더 나은 예배자가 되고 믿음으로 세상에서 천국으로 옮겨지는 복을 받고 믿음으로 살아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하나님이 상급이 되시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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