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BER  |    |    |  
회원 로그인
회원 가입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회원가입으로 서비스 약관개인정보 보호 정책 에 동의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대한예수교장로회 선유중앙교회

SUNYOU CENTERAL CHURCH
주일오전 설교원고

bo_title_img1.png

마25:1~13절 “임박한 재림에 현재, 오늘, 지금이 중요합니다.”  
카카오톡 카카오 스토리 네이버 블로그 밴드 주소복사
   김진수   작성일 21-07-30 17:01    조회 2,763    댓글 0  
 
마25:1~13절 “임박한 재림에 현재, 오늘, 지금이 중요합니다.” 2012.8.1 
단군의 후손을 나타내는 배달의 민족이라는 말은 요즘 음식배달 중개 플랫폼으로 대체해서 사용이 되고 있음을 봅니다. 급기야는 코로나19로 인해 예배마저 가정으로 배달이 되는 어처구니없는 신앙의 위기를 겪으면서 지금이 우리 주님이 오실 마지막 때라고 여겨지면서 지금이 신앙준비할 때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수난을 사흘 앞두고 감람산에서 종말의 때에 일어날 일을 말씀하신 후 성도들이 준비해야할 세 가지 비유를 말씀하셨다는 거지요 그렇다면 오늘 그 첫 번째 비유를 통해서 우리가 지금 말세의 현상들이 보이는 이 시점에서 어떤 준비가 있어야하는지 깨닫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1절을 볼까요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여기 ‘그 때에’ 헬라어 ‘토테’는 ‘미래의 특정한 시간을 가리키는 주님의 재림하시는 때’라는 건데 이 종말의 때 성도들에게 뭘 말씀하셨습니까? 마24:42절에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①깨어있으라는 거고 그 이유가 뭐랍니까? 어느 날 주가 임하실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 종말의 때 우리 성도들에게 또 뭘 말씀하셨습니까? 마24:44절에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②성도들은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거지요 그 이유가 뭐랍니까? 생각지 않은 때 주님이 오시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계22:20절에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뭡니까? ③말씀하시면 반드시 이루시는 예수님이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셨으니 그러므로 확신에 거하라는 겁니다.
그리고 신부의 들러리들이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가는 걸 말씀하셨다는 거지요 예수님은 자신의 재림을 유대의 결혼풍습을 예로 드시면서 그 당시 유대의 결혼식은 해가 진후에 이루어졌는데 이때 열 명의 신부의 들러리들이 언제 올지 모르는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서 등을 들고 나갔다는 거고 신랑이 그의 친구들과 함께 때론 매우 늦어지는 경우가 있어서 여분의 기름을 따로 준비해야 했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막상 신랑과 친구들이 등장했을 때 저들을 맞이해서 식장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는 거거든요 마찬가지로 신랑 예수께서 오시는 시간도 아무도 예측 할 수 없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신앙의 등에 불이 꺼지지 않기 위해서 언제든 보충할 수 있는 예비함의 중요성을 말씀하신 거지요
그리고 단순히 ‘등을 들고’라고 우리 개역개정성경에서는 말하고 있지만 원문에서는 ‘등을 들고’ 앞에 헬라어 ‘헤아우톤’ ‘그녀들 자신들의’라는 말이 있어서 여기 열 처녀는 그녀들 자신들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갔다는 겁니다. 2절을 보시지요.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열 처녀의 차이가 뭡니까? 슬기가 있느냐 없느냐는 거지요 ‘슬기 있다’는 말은 ‘신중하고 사려 깊고 분별력을 가졌다’는 건데 ‘슬기있다’는 원문에 의미는 슬기 있음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거니까 이 처녀들은 슬기로움의 성향이 이미 굳어져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번 신부의 들러리만이 아니라 평상시 삶이 슬기가 있었다는 거지요 그러므로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마지막 종말의 때 대충 신앙생활을 하다가 갑작스럽게 잘 준비하면 되지 그래서 될 일이 아니라는 거지요 평상시 슬기로운 신앙생활이 반복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현실에서 미련한 것이 뭡니까? 다음에 잘 하지 오늘을 제대로 안 살면서 다음을 노래하는 것처럼 미련한 것은 없다는 거지요 이 또한 반복되면서 굳어진 성향이 된다는 거거든요 그러므로 예수님 다시 오시는 종말의 순간까지 슬기로운 성향이나 미련한 성향이 이어진다는 것을 기억하고 깨닫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이 사실에 대해 말씀하시잖아요. 마7:24절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뭡니까? 집을 한 순간에 지을 수 없는 것과 같이 그 기초를 반석 위에 놓고 집을 지어나가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평상시 삶을 말씀하잖아요. 그 성향을 반석이신 그리스도에 두었다는 거고 그래서 신앙의 집 영적인 집을 지어나가다가 뭘 만난데요? 바람을 동반한 비와 창수를 만난다는 거지요 뭡니까? 주님이 다시 오심이잖아요.
이와는 반대로 평상시 그 성향이 세상적이라는 건데 이것을 본문에 모래 위에랍니다. 바람을 동반한 비와 창수를 역시 동일하게 만나게 되면서 세상에 기반을 둔 신앙과 그 집은 모두 무너지고 말더라는 예수님의 이 교훈을 기억하면서 평상시 슬기롭게 반석이신 그리스도에게 두고 살아가는 삶을 살다가 반드시 올 주님의 재림 때 구원의 역사를 경험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4절을 보시지요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평상시 슬기로운 자들은 자신들의 성향대로 등만이 아니라 만일 신랑이 늦게 오는 경우를 생각해서 기름을 담은 그릇을 따로 준비해서 나갔다는 거지요 지난 주 드렸던 말씀이 뭡니까? 예수님이 마지막 때 우리 성도들에게 부탁하기를 겨울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셨잖아요. 주님이 곧 오실 무렵에 오히려 예전의 신앙과 기도생활 섬김과 봉사 주를 사랑함과 선교에 대한 열정이 모두 식어져 이름만 믿는 자가 되는 것에 대한 경계를 말씀하신 거 아닙니까? 여기 본문에서도 언제나 꺼지지 않는 평상시 늘 준비된 신앙이 중요하다는 걸 말씀한다는 거지요
그렇다면 등은 가졌지만 따로 여분의 기름을 담은 그릇을 준비하지 못한 이유가 뭘까요? 자기 생각이 앞서서라는 거거든요 그렇습니다. 주의 말씀보다 자기 생각이 앞서는 신앙은 경계해야지요. 잠28:26절에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 지혜롭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자니라” 그리고 또 준비하지 못하는 이유가 뭡니까? 죄를 매우 가볍게 여기기 때문이라는 거거든요 잠14:9절에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겨도 정직한 자 중에는 은혜가 있느니라” 그렇습니다. 내 생각대로 움직이는 것과 죄를 우습게 여겨 반복하는 것이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는 신앙이 된다는 거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5절이지요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 새” 예수님이 이 말씀에서 뭘 말씀하고 싶어 하신다는 겁니까? 자신의 재림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늦을 거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늦어지는 이유가 뭘까요? 벧후3:4절에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뭡니까? 알곡과 쭉정이, 신앙과 불신앙이 가려진다는 거잖아요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이 또 늦어지는 이유는 벧후3:9절에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렇습니다. 아직도 구원 받을 영혼이 남아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더디 하시는 것이 재림 외에 또 하나가 있대요. 나1:3절에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벌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두지 아니하시느니라” 노하심이지요. 우리처럼 성질 급하게 노하시는 하나님이라면 여기 제대로 존재할 자가 어디 있을까요? 자 본문에 ‘다 졸며 잘새’ 여기 ‘졸며’는 ‘단회적인 행위’를 말하고 ‘잘새’는 ‘계속적 행위’를 말한다는 거거든요 그래서 야! 또 자냐? 그러잖아요. 잠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뭘까요?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배 밑창에서 자고 있었던 요나에게서 사명의 회피를 본다는 거지요 그리고 기도의 자리에서 기도도 못하고 엎드려 자고 있는 모습에서 육신의 연약함을 본다는 겁니다. 뭡니까? 예수님의 재림이 늦어지면서 자신이 받은 사명에 대한 게으름이나 회피함 그리고 세상일에 지쳐 육신이 피곤하여 영적으로 어두워지지 않도록 계속 신앙의 불을 밝히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6절을 볼까요.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예수님의 재림 역시 마24:44절에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또 벧후3:10절에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리고 마24:30절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또 살전4:16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이처럼 신부 들러리들이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나가는 것처럼 생각지 않은 때 마치 도둑과 같이 큰 영광으로 하늘로부터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맞으러 나가 들림 받는 모습을 나타내주고 있는 겁니다.
맞으러 나오라 하는 소리에 대한 반응을 7절에서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 할 새” 자다가 일어나 등을 찾습니다. 8절을 보시지요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똑같이 등불이 꺼져 가지만 슬기로운 처녀들은 준비된 기름그릇이 있어서 등에 담기만 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데 미련한 처녀들은 준비된 기름그릇이 없어서 등에 담을 것이 없어 당황하게 되는 안타까운 현실을 맞게 되었다는 거지요 왜냐하면 신앙은 나눠가지는 문제가 아니고 역시 구원도 나눠가질 수 없는 거잖아요. 절대로 서로 보충해서 맞춰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9절에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믿음이라는 신앙의 세계는 만족이 없잖아요. 이만하면 됐어 라고 할 수 없지요 늘 부족하고 늘 아쉽고 그렇지요 그렇다면 여기 사러 간다는 것은 뭡니까? 다시 준비되어야 하는 거지요 그러나 재차 준비하기엔 이젠 시간이 없었던 거지요 10절에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러므로 신랑이 오기 전 미리 준비되어야 하는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한 번 닫힌 문은 다시 열수가 없기 때문이거든요 노아의 방주역시 하나님이 닫으시니  뒤늦게 깨닫고 방주의 문을 두드렸지만 누구도 들어갈 수 없었잖아요 마지막 주님의 재림 때에도 천국혼인잔치가 열리는 식장 역시 예수의 신부들인 모든 성도들이 들어가게 되면 문은 닫힌다고 말씀하신다는 거지요. 계3:7절에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그러므로 11절의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그리고 12절의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이런 사람들이 되지 말고 현재 오늘 지금 13절에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사명을 잃지 말고 육신에 지지 말고 깨어 있어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주일오전 설교동영상
24년 4월 28일 주일 예배 영상
고린도후서 4:7~15 김용우 목사
2024년 4월 28일
교회앨범
봄맞이 교회 대청소 및 새단장 
동영상앨범
22년 낙도선교회
- -
-
선유중앙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 선유중앙교회
031-954-1080
031-954-1040
yegrim@hanmail.net

회원가입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전체 최근게시글
  • 선유중앙교회 SNS를 방문해 보세요
    교회명 : 선유중앙교회 | 담임목사 : 김진수 | 주소 : 10811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독서울 5길 18-30
    교회전화 : 031-954-1080, 953-5977 | Fax : 031-954 1040 | 목사관 : 031-952-2097 | 이메일 주소 : yegrim@hanmail.net
    Copyright ©1955~2024   sunyou.or.kr. All Rights Reserved.
    031-954-1080
    031-954-1040
    yegrim@hanmail.net
    031-954-1080
    선유중앙교회 전화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