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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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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28:1~6절“여호와를 경외하는 너, 가정, 교회공동체에 주시는 평강누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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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1-05-15 19:37    조회 3,246    댓글 0  
 
시128:1~6절“여호와를 경외하는 너, 가정, 교회공동체에 주시는 평강누리기” 2021.5.9.
디지털세상을 꿈꾸며 기술적 전환이나 정보의 전환 같은 주제가 4차 혁명을 이끌어 낼 것이라고 강조하던 중이었는데 코로나19라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에 온 세계가 무너지면서 문명우선에서 서로 같이 사는 공생, 사람뿐만이 아니라 생태계와도 같이 사는 공생의 삶이 우선이어야 한다는데 생각을 모으게 되었다는 거지요 이것이 인간의 한계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세익스피어는 인간에 대해 말하기를 ‘인간은 역사의 무대에 잠깐 등장하여 충분히 이해하지도 못하는 역할을 하다가 사라지는 존재’라고 말했다는 거지요 이번 가정의 달을 맞이해서 우리 모두 가정을 이루며 살지만 내 자녀에 대해 내 부모에 대해 내 남편과 아내에 대해 이해 못할 때가 많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살 더 라는 거 아닙니까? 그러나 오늘 본문을 통해서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은혜가 뭔지 함께 깨닫기 원합니다.
 
1절을 볼까요.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여기 ‘복이 있도다’ 히브리어 ‘아쉬레’인데 우리 개역개정성경에선 맨 마지막 부분에 있습니다만 원문에선 ‘아쉬레’ ‘복이 있도다’로 시작하고 있다는 거지요 누구에게 이 ‘아쉬레’가 열려 있다고 말씀하나요? 먼저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는 겁니다. 여기 경외는 공포스러운 감정 보다는 뭡니까? 신앙적으로 인격적으로 두려움이 동반된 존경이란 의미거든요 일반적인 삶이나 예배에 있어서 의로운 행위와 경건한 행위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면 누구나 ‘아쉬레’ ‘복이 있다’는 거지요
그리고 아쉬레 복이 있는 자가 되는 그 다음 비결이 뭐랍니까? 여호와의 길을 걷는 자라는 겁니다. 여호와의 길이라면 뭡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 가는 걸 말하지요 여기 ‘길’ 히브리어 ‘떼레크’는 ‘삶의 방식’ 또는 ‘행동의 방식’을 말하니까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삶의 방식이나 행동 방식이 아닌 거룩하고 선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그 뜻을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쉬레’ ‘복이 있다’는 걸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아쉬레’ ‘복이 있다’는 건 알겠는데 ‘어떤 복’이냐 이 구체적인 복을 2절에서 뭐라고 말씀하나요?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여기 ‘네’ 바로 ‘너’ 개인을 말하는데 여호와를 경외하는 그 사람이요 여호와의 길을 걷는 바로 그 사람이라는 거지요 그의 ‘손이 수고한 대로 먹는다’ 노동의 대가를 말하잖아요. 뭡니까?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길을 걷는 자에게 아쉬레 복이 있는데 수고했을 때 그 노동의 대가가 따른다. 열매가 있다는 거지요 수고하지 않고 노동하지 않으면 당연히 그 열매는 없다는 거거든요 심지 않았는데 거두게 하시지는 않는다는 것이 하나님의 생각이시라는 거잖아요 이 시가 쓰여 질 당시나 지금의 시대나 동일하게 인간이 겪는 것은 아무리 수고해도 안 되는 경우가 있다는 거잖아요 오늘날 대부분 농사를 짓지 않아 자연재해와 상관이 없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코로나19같은 전염병이나 아이엠에프와 같은 경제적 몰락으로 아무리 수고해도 어쩔 수 없이 그냥 추락해 버린 경우들이있다는 거지요. 그러니 수고한 대로 거두려면 하나님의 돌보아 주셔야 하고 지켜주셔야 한다는 거 아닙니까?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길을 걷는 바로 그 사람이 땀 흘려 수고할 때 절대적으로 같이 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이 지키시며 도우시면 열매를 거두게 하시는 것이라는 거고 그럴 때 그 사람은 복되고 형통할 거라는 겁니다. 1절에선 ‘아쉬레’ ‘복이 있다’고 했다면 2절에서는 ‘아쉬레’에 더해 ‘형통’할 거란 거지요 ‘형통하리로다’ 히브리어 ‘웨토브’인데 이 ‘웨토브’의 원형 ‘토브’는 ‘좋은’ ‘선한’이라는 의미로 ‘순탄한 복’이 있을 거라는 겁니다. 뭡니까? 아주 잘 될 거라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너 여호와의 길을 걷는 너가 되어 수고한 대로 그분이 거두게 하시는 복이 있다 아쉬레와 순탄하다 웨토브가 이루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절을 볼까요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3절에선 가정을 그렇게 하시겠다고 하신 거지요 그렇다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그 사람 여호와의 길을 걷는 그 사람의 가정에 주시는 복은 어떤 아쉬레와 어떤 웨토브 형통일까요?
먼저 가정의 안주인을 말하기를 포도나무 같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떤 포도나무랍니까? 결실한 포도나무라는 거지요 ‘결실한’ 히브리어 ‘포리야’는 ‘생육이 중다하다’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파라’의 상태를 나타내는 능동 분사라는 거지요 그러므로 결실한 포도나무 같다는 말은 안주인으로 말미암아 가정에 번영과 화목의 좋은 열매를 풍성하게 맺은 복된 상태라는 겁니다.
여기 네 아내가 있는 곳이 어디랍니까? ‘안방’이라는 거지요 여기 ‘안방’을 나타내는 ‘삐야르케테’의 기본형 ‘에레카’는 ‘옆구리’를 가리키는 말로 중심에서 벗어나 있는 가장 깊은 자리라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안방이라는 단어를 통해서 이스라엘백성들의 안방의 구조를 충분히 엿볼 수 있다는 것과 이 안방에서 아내가 가정의 온갖 일들을 담당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당시 아내는 그야 말로 가정을 책임지고 있는 ‘안주인’이었었다는 거지요 그리고 안주인인 안방의 아내를 통해서 하나님의 풍성한 복이 가정 구석구석에 채워지도록 하시겠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겁니다.
왜 아내를 포도나무에 비유했을까요? 포도나무는 혼자 서 있지를 못하잖아요. 지지대가 필요하다는 거지요 포도나무의 넝쿨은 지지대에 의지한 채 마음 놓고 뻗어나가잖아요. 옆으로 위아래로 난 지지대를 따라서 여기 저기 넝쿨이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충분히 지탱해주지 않습니까? 바로 듬직한 지지대가 되어 아내가 많은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버텨주는 남편이 되어야 한다는 걸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자식들을 어린 감람나무에 비유한 이유는 부모라는 커다란 감람나무 아래에서 생명력을 가지고 친밀한 유대관계와 그 그늘에서 보호를 받으면서 앞으로 감람나무가 성장했을 때 많은 유익을 주는 다음 세대의 모습을 기대하게 하고 있다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 사람 하나님의 길을 걷는 그 사람이 머문 가정에서도 하나님이 복이 있게 그리고 형통하게 하시는데 어떻게 하시느냐 안방에 있는 아내를 결실한 포도나무와 같게 자식은 어린감람나무와 같게 하시니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의 길을 걷는 너와 내가 모여 사는 가정이 된다는 것이 정말 큰 복임을 믿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절을 보시지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우리 개역개정성경에서는 번역하고 있지 않은 ‘힌네’라는 감탄사 ‘오’ 또는 ‘보라’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앞에 원문에는 있다는 거지요 그리고 원문에서는 힌네 바로 뒤에 히브리어 ‘키’ ‘왜냐하면’이란 말이지만 여기서는 ‘결국’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어서 ‘오 보라 결국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복을 받고 말 것’이라는 겁니다. 1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를 히브리어로 ‘콜 예레 예흐와’라 했거든요 그런데 4절에 우리말 성경에서는 똑 같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이지만 원문에서는 ‘콜’ 대신에 ‘까베르’라는 거거든요 여기 까베르의 원형 ‘께베르’는 일반 사람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원래는 ‘대장부’를 나타내는 단어라는 거지요 그러니까 4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대장부’는 결국 복을 받게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누가 대장부라는 겁니까? 그저 힘이 있고 담대하고 용맹한 사람을 말하지 않는다는 거지요 여호와를 경외하여 일반적인 삶에서나 예배에서나 의와 경건을 갖추고 그분의 법도를 따라 가는 사람을 ‘께베르’ ‘대장부’로 보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힘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아닌 꿋꿋이 신앙으로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겸손하게 섬기는 신앙의 장부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절을 보실까요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뭡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대장부들에게 축도하는 제사장의 축원을 말하고 있음을 봅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여호와의 축복이 어디로부터 옵니까? ‘시온’이라는 거지요 ‘시온’은 하나님 임재의 상징적 표현이라는 거거든요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라면 예루살렘성전이잖아요 이곳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과 만나주시잖습니까? 그렇다면 시온에서 복을 주심이라기보다는 복의 출처가 여기에 임재 해 계신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거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받는 은혜와 축복은 그 발원지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아버지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의 장부에게 제사장의 축원 내용이 뭐라고 이어지고 있습니까?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예루살렘은 성전이 있는 곳으로 뭡니까? 건물입니까? 아니지요 하나님을 예배하는 신앙공동체가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에 성도들의 모임이 교회라는 거잖아요 제사장은 뭘 축원하고 있습니까? 평생 성도들의 모임이 번영되는 모습이라는 거 아닙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장부들이 모여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길을 걸음을 걸을 때 우리 모두 우리 교회 공동체를 크게 번영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평생 볼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다음 제사장의 마지막 축도를 살펴볼까요? 6절이지요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뭡니까? 하나님으로부터의 복과 우리가 속한 교회공동체에 주시는 번영이 우리 대에서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다음 세대 또 다음 세대를 이어져가라는 거 아닙니까? 하나님으로부터 교회 공동체 속에 임하는 축복이라면 수평적 축복이잖아요 6절에서는 이 수평적 축복이 어떻게요 대를 이어 계속해서 수직적 축복으로 나아가기를 축원하고 있다는 거지요 그렇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대장부들이 받는 복은 어떤 복이라는 겁니까? 수평수직의 복이니까 어느 면에서도 부족함이 없는 복이라는 거지요 한마디로 온전한 축복이라는 겁니다. 제사장은 끝으로 평강을 말하잖아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장부가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복이 평강이라는 거지요 죄 된 삶에서는 도무지 얻을 수 없는 것이 평강이잖아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바로 너가 되고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이 되고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모인 교회공동체가 되어서 수고한 대로 거두게 하심은 물론 하나님의 평강이 강같이 흐르는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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