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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설교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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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15:22~25절 “마라는 나를 위한 하나님의 연단” 교회설립기념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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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0-11-06 18:01    조회 4,956    댓글 0  
 
출15:22~26절  “마라는 나를 위한 하나님의 연단이었습니다”  2020. 11. 8
오늘은 우리 교회 설립일입니다. 1955년11월8일 백원천씨 댁에서 이근식집사의 인도로 열 명의 여 집사님들과 함께 첫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이듬해 미군들로부터 천막을 기증받아 천막교회로 그리고 4년이 흐른 해에 35평 목조건물의 교회당을 짓고 이사를 했고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969년에 지금의 자리로 800평의 대지를 구입해서 54평의 교회당을 건축하게 되었고 그로부터 27년이 지나 본당 164평의 오늘의 교회당을 건축하여 지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이 65년 전 11월8일 드린 첫 주 첫 예배가 65년 만에 맞는 11월8일 뜻 깊은 주일을 맞이한 겁니다.
오늘의 우리교회로 성장하기까지 수고하신 많은 분들 중에 돌아가신 분들이 상당수 많고 살아계신 분들 중엔 연로하신 까닭에 요양병원이나 요양원 또는 자택에서 힘겹게 지내고 계시고 어렸던 시절부터 섬겼던 분들 중에는 중직자로 지금도 섬기고 있음을 보면서 이런 거룩한 밑거름을 우리 모두는 잊어서는 안 될 겁니다. 바르고 좋은 신앙의 선조들을 둔 우리 또한 받은 대로 아름다운 신앙전통을 우리 후손들에게 남겨주기를 원합니다. 65년 긴 역사를 거치면서 수없이 만났을 마라에서 거듭된 승리와 더불어  우뚝 세워진 우리교회를 생각하면서 본문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22~23절을 보시지요.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 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여기 이스라엘백성들이 출애굽을 해서 홍해라는 아주 큰 난제를 만나게 되었다는 거잖아요. 난제를 만난 이스라엘백성 중에 홍해가 갈라진다 또는 이 홍해를 건넌다고 그 누가 생각했을까요? 아마 우리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도 우리도 똑같았을 겁니다. 앞으로는 나갈 수 없지요 뒤에선 애굽 군대가 쫓아오고 있지요 이런 상황에서 원망과 불평이 이스라엘 백성들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럴 줄 알았으면 원망하지 말걸 하나님이 인도한 백성 누구도 생각한 이가 없었을 바다에 길을 내심이 일어났다는 거 아닙니까?
뭡니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바다에 길을 내실 수 있는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하나님 스스로가 알게 하셨다는 거지요 우리의 인생의 난제가 그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해결을 못하실 것이 없잖아요 그렇다면 우리가 겪는 난제란 뭘까요? 우리의 불평과 원망을 듣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 되심을 나타내시는 기회가 된다는 거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홍해에서 전능한 하나님을 경험한 후 사흘이 지났을 때 술 광야라고 부르는 수르광야에 들어서게 되었다는 거고 또 다른 난제를 만났다는 거거든요 먼저 난제는 물이 너무 많아서였다면 이번 난제는 물을 찾지 못하다가 물을 찾기 찾았지만 너무 써서 마시지 못할, 있으나 마나한 물 때문에 생긴 난제였다는 겁니다. 한 번 경험했잖아요. 그렇다면 여기서 이스라엘백성들은 마시지 못할 물을 가지고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하나님 스스로 어떻게 보여주실까 또 믿음으로 기대하면서 기다렸으면 어땠을까 참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홍해에서처럼 또 괜히 불평 했네 참을 걸 하는 일이 또 하나님께로부터 일어났다는 거잖아요 쓴물을 나뭇가지 하나 넣게 해서 먹을 수 있는 물로 바꾸셨다는 거 아닙니까? 큰물은 갈라서 건너게 하시고 쓴물은 나뭇가지하나 던져 넣어서 먹을 수 있는 식수로 바꾸시는 하나님 우리네 인간은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잖아요. 그러니까 뭡니까? 난제를 비켜나갈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거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 어떤 난제도 문제가 되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하나님 스스로 보여 주심으로 우리로 깨닫게 한다는 거지요
그렇다면 거대한 바닷물을 둘로 가르시고 쓴물을 마실 수 있는 물로 바꾸시는 하나님에게서 이스라엘백성들은 뭘 깨달아야 했습니까? 바다를 만드신 분이 그 바다를 다스리신다는 거고 물을 만드신 분이 그 쓴 물까지도 달게 하실 수 있다는 거지요 그리고 우리가 깨달을 것이 뭡니까?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가 난제를 만났을 때 하나님 되심을 보이시겠구나, 그렇다면 원망이나 불평이 아니라 믿고 감사해야 하겠다는 거고 우리교회가 지금 이 자리에 서기까지 수도 없이 만났을 마라 앞에서 하나님만을 바라본 신앙의 선배들이 있었다는 걸 기억하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4절로 25절을 볼까요.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이 겪는 것을 똑같이 겪고 있었던 사람이 모세인데 모세라고 다를 게 뭐가 있습니까? 그러나 달랐던 것이 뭡니까? 이스라엘백성들이 원망과 불평할 때 모세는 하나님을 향해 기도로 부르짖었다는 것이 차이라는 겁니다. 뭡니까? 똑 같은 난제를 당했을 때 모세는 이스라엘백성과 전혀 다른 방법을 찾고 있었다는 거잖아요 여기 부르짖었다는 히브리어 차아카는 우레 소리를 내다니까 그야말로 간절함과 절박함이 배어있는 기도를 했다는 거지요 그냥 점잖게 기도한 것이 아니었다는 거지요 마치 엄마에게 말을 할 수 없는 갓난쟁이가 할 수 있는 것은 큰 울음밖에는 달리 없는 것처럼 하나님께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는 겁니다. 부르짖었더니 어떻게 되었답니까? 본문 25절입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그 나무에 달게 하는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지요 하나님이 달게 하시니 달게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무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었듯이 모세의 능력도 아니지요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모세가 할 일이 뭐가 있었겠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기도할 뿐이었잖아요 그런데 그게 주효했다는 거 아닙니까? 기도하는 모세,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는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 것이고 그래서 쓴물이 달게 된 거잖아요 그렇습니다. 모세도 아니고 나무도 아니고 나도 아니고 우리도 아니고 오직 스스로 계신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 능력이지요. 우리교회 역시도 65년을 지나오면서 겪은 수많은 난제와 위기 뒤엔 기도의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바라는 신앙 선배들이 있었던 걸 믿으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어 마라의 의미가 뭐냐 하면 쓰다 만이 아니라 괴롭다 또는 근심하다거든요 그러니까 마라는 우리네 인생이 겪는 모든 난제를 말한다는 거거든요 여기서 필요한 것이 뭐라고요? 모세처럼 부르짖는 기도의 입술이 되는 거지요 렘29:12~13절입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그리고 25절에 ‘그들을 시험하실 새’랍니다. 뭡니까? 마라는 하나님이 이스라엘백성을 시험하심이었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들을 시험하실 새’ 히브리어 ‘닛싸후’는 마라라는 사건으로 이스라엘백성을 시험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백성들이 마라와 같은 환경에서 신뢰하는지 여부를 감찰하셨다는 거거든요 그렇다면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아무 것도 없는 광야 사십 년을 살아가야할 이스라엘백성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문제가 너무나 중요한 문제였다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마라의 쓴물을 주신 목적이 뭐냐? 이스라엘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는 겁니다. 왜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면 광야에서 살아갈 수 없을 거니까 마라에서 하나님 신뢰를 배우고 광야 40년을 승리케 하려는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깊은 뜻이었다는 거지요 우리교회가 65년을 지나오면서 마라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웠고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지금 마라, 쓰다, 괴롭다, 근심거리를 만났다면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게 하시는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뜻임을 믿어 우리의 순종을 보시고 우리의 신앙의 진위가 진실됨을 드러내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백성을 광야 사십 년 왜 그렇게 쓰고 괴롭고 근심의 마라로 연단하셨습니까? 답은 하나지요 가나안에 들어가야 하니까 거기서 살 때 하나님 제일주의로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않고 하나님만 전적 신뢰해야하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지요 약1:2~4절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날 온전하게 하시려고 날 부족함이 없게 하시려고 주신 여러 가지 시험 속에서 하나님의 신뢰를 배우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6절을 보시지요.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우리 믿는 자의 말과 생각과 행위의 척도가 뭐랍니까? 자기 양심도 세상의 법도 아니랍니다. 그렇다면 뭐랍니까? 하나님의 말씀이라잖아요 왜요? 하나님의 말씀은 롬1:17절에 구원을 주시는 말씀이요 히4: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이니까 우리가 이 말씀 앞에 서는 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뭐가 성공적인 삶인가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는 거고 하나님은 이를 의롭다고 여기시는 삶이지요 말씀 앞에 순종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자신을 뭐라고 소개하십니까?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그렇습니다. 우리의 원망하던 데서 불신하던 데서 거짓된 데서 더러운 데서 그리고 질병에서 말씀 앞에 서 있을 때 하나님 앞에 서도록 치료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어떻게 치료하셨나요? 요일5:20절에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고쳐졌는지 진단을 해볼까요?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하나님을 대적하던 우리가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믿습니까? 하나님이 천지를 만드신 참 여호와이심을 믿습니까? 우리에게 예수로 영생이 주어졌음도 믿으십니까? 그리고 우리 교회를 연약한데서 고치셔서 65년이 지난 지금 세계 열방을 향해 선교하는 교회로 세우신 것을 감사하며 교회의 축복의 물줄기가 우리교회 성도들 가정 가정마다 스며들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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