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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7:31절~37절 “에바다 하시니 그의 귀가 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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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미디어부   작성일 13-03-09 00:00    조회 5,803    댓글 0  
 
마가복음7:31절~37절     “에바다 하시니 그의 귀가 열리고”   2013. 3. 10
한 소년이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가 축구공에 눈을 맞았는데 실명을 하게 됩니다. 오늘 날 같았으면 실명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육이오 사변 직후 변변한 의술이 없었을 때였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홀어머니는 맏아들이 맹인이 되었다는 소식에 그만 충격을 받아서 돌아가시고 졸지에 가장이 된 누나가 다니던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세 동생을 위해서 봉제공장에 다니게 되었는데 일 년 반 만에 과로로 쓰러져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맹인이 된 맏아들은 어쩔 수 없어 여동생을 고아원에 보내고 남동생은 철물점에 사원으로 보내고 자신은 맹인 보호 시설에 도움을 받으며 맹아학교에 들어가 점자를 배우고 그 이후 맹인 최초로 연세대학교 교육학과에 입학하고 전체 차석으로 학교를 마치는 인간승리를 일궈냈습니다. 전액 장학생으로 미국에서 교육학석사 및 철학박사 그리고 일리노이대학교에서 특수교육학과 교수에 임용이 되고 더 나아가 백악관 국가 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를 지내기까지 하였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강영우박사의 이야기입니다. 맹인으로서 할 일이 무엇이 있다는 말인가? 안마하는 일 외에 다른 일은 없다고 생각하고 맹아학교에서도 그렇게 여기고 안마 자격증을 딸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는 상황에서 소년 강영우는 달랐습니다. 하나님께 끊임없이 기도하며 도움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안마사의 길이 아닌 분명히 다른 놀라운 축복의 길이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소개가 되고 있는 농아가 그랬습니다. 갈릴리 호수에 예수님이 도착했을 때라고 오늘 본문 31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어떤 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귀가 먹고 말을 더듬는 사람이었습니다. 귀가 먹었으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상대가 말을 하는 것 같은데 무슨 소린지는 모르고 그래서 자기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고작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더듬거리는 정상적이지 못한 말뿐이었습니다. 지금과 다르게 2천 년 전에 이런 장애를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이 있었을까요? 외부세계와 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직업은 거의 없었을 겁니다. 아마 집에서 시키는 일이나 하고 이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애를 마치 숙명처럼 받아드리고 체념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이런 장애를 가지고 있을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대인 기피증을 갖게 되고 사람이 패쇄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귀먹고 말 더듬는 이 사람은 자신의 처지를 숙명처럼 받아들이기 보다는 그런 상황에서도 어떻든지 사람들하고 어울리고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단절을 극복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디서 알 수 있습니까?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왔다는 거지요. 귀먹고 말 더듬는 친구를 위해 기꺼이 함께 수고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마 패쇄적이었고 대인 기피증에 시달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그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귀먹고 말더듬는 이 사람은 내 처지가 이러니 이렇게 살다가 죽는 길밖에 다른 길이 없다고 자신을 묶어 두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귀먹고 말 더듬는 이 사람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스스로 패쇄적인 사람이 되기보다는 사람들의 소리를 들으려 애썼고 그들과 다르지 않은 것처럼 그들 속에 함께 어울렸습니다. 비록 귀먹고 말 더듬는 이중적인 고통을 당하고 있었지만 그런 그를 사람들은 좋아해주었고 기꺼이 함께 하였습니다. 이것이 이 사람에게 큰 행복이었고 축복이었습니다. 불행한 사람이 누굽니까? 아무런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마음을 닫고 사람들과 단절하고 혼자 사는 잊혀 져 가는 사람입니다.
몽고의 징기스칸도 한 때 포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제 꿈은 다 사라지고 죽음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그런 처지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징기스칸은 목에 활동을 제한하는 칼을 멘 채로 탈출을 시도했고 결국 탈출에 성공하였습니다. 그리고 대 몽고제국을 세운 것입니다. 고인이 되었습니다마는 스티브잡스가 있었기 때문에 애플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티브잡스가 애플사에 처음 들어가고자 했을 때 퇴짜를 맞았었다는 거 아닙니까? 퇴짜 맞고 산속으로 들어갔다면 이 시대 오늘에 애플은 절대로 있을 수 없었을 겁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대통령이 되기 전에 주 의회 의원에서도 정부통령선거에서도 하원의원선거에서도 상원의원 선거에서도 모두 떨어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선거에 떨어질 때마다 곧 바로 레스토랑에 가서 양껏 먹고 이발소로 가서는 머리를 깔끔하게 자르고 머리 기름도 듬뿍 발라서 정결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답니다. “아무도 나를 실패한 사람으로 보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새롭게 시작했으니까”  

33절 본문입니다.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귀먹고 말 더듬는 그 사람만 데리고 무리에서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양 귀에 손가락을 넣으셨습니다. 그리고 이내 손을 빼서 침을 뱉어 그의 혀에 대셨습니다. 말씀으로도 충분히 고치실 수 있는 분이신데 도대체 왜 그러셨을까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이 본문을 연구하면서 이런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람들에게서 따로 데리고 가셔서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하신 이유가 손가락을 그의 귀에 넣었다 빼는 것도 그렇고 침을 뱉은 손으로 그 사람의 혀에 대어야 하는데 이렇게 고치시는 예수님의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을 본다면 좋은 결말을 보고도 얼마나 사람들이 말이 많을까? 나만 좋으면 되고 그저 내키는 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혼자 목소리를 높이고 전혀 남은 생각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런 사람으로 인하여 짜증과 상처를 받습니다. 그런 사람들 옆에는 사람들이 자꾸 떠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각 사람을 깊이 배려하시는 예수님을 배웁니다. 고치시는 장면을 보고 사람들이 받을 오해를 애초에 없애버리시는 주님의 세심함을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함이 없이 그저 에바다, 열리라 해서 고쳐주셨다면 말을 듣지
못하는 그가 어떤 연유에서 자신이 고침을 받았는지를 전혀 알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 사람에겐 예수님이 하시는 방법이야말로 최선의 방법이셨던 거지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이 방법은 들을 수 없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 사람 그리고 귀먹고 말더듬는 부분과는 달리 살아있는 보고 느낄 수 있는 감촉의 부분을 이용하여 믿음을 불러일으키시려는 예수님의 깊은 사랑이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무엇을 깨닫습니까? 우리의 구주 예수님은 우리 각 개인들을 개인적으로도 너무나 잘 아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알맞게 당신의 방법으로 도우신다. 다윗은 이 사실을 너무나 뼈저리게 경험하였고 그래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139;1~4절에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건축자를 보세요. 아파트를 짓기 위해 산을 깎고 땅을 퍼 나르고 도무지 공사현장은 어수선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건축자는 여기서 무엇을 봅니까? 아름답게 세워져 있을 아파트를 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처럼 아시고 우리를 돕는 자로 함께 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시편23:4절에 다윗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나를 너무나 잘 아시는 예수님이 목자처럼 앞뒤로 보호하시며 인도해 나가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를 지으신 주님 내 안에 계셔 처음부터 내 삶은 그의 손에 있었죠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내 흐르는 눈물 그가 닦아 주셨죠.
그는 내 아버지 난 그의 소유 내가 어딜 가든지 날 떠나지 않죠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아바라 부를 때 그가 들으시죠.(92장 복음찬송)
자! 이제 마지막 부분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계십니다.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오는 온갖 고통들에 대하여 같은 마음을 가지시고 안타까워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봅니다. 예수님은 귀먹고 말을 더듬는 듣지 못하는 이 사람에게 사람이 가져야 할 진정한 자세에 대하여 보여주고 계십니다.
헬라어로 인간을 ‘안드로 포스’라고 하는데 이는 ‘위를 보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이는 절대자를 본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 절대자를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위를 바라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위를 바라보는 것은 우리의 특권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위를 바라보는 것은 믿음이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것을 의지하는 것과 내 생각과 내 방법을 내려놓을 때 만이 가능한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 주님은 우리의 손을 잡아주시는 겁입니다. 우리의 손을 잡으신 그 분은 우리의 좌절을 아시고 분노를 아시며 속상함을 아시고 아픔과 고통을 아십니다. 방황을 아십니다. 답답하심을 아십니다. 억울함을 아십니다. 무기력함을 아십니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를 고칠 수가 있습니다.
자동차에 대해서 우리는 잘 모릅니다. 그래서 차가 왜 섰는지 몰라서 당황합니다. 차가 시동이 걸리지 않는 이유를 모릅니다. 그래서 답답합니다. 그러나 차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정비기사는 간단한 손놀림으로 다시 차를 원상태로 돌려놓습니다.
예수님이 왜 우리를 고치실 수 있습니까? 우리를 너무나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대로 고치십니다. 귀가 막히고 말을 더듬는 이 사람에게 귀가 열리고 혀에 맺혀 있는 것이 풀리면 되는 것을 알았고 에바다 그분이 열리라 하시니 그의 귀가 열렸고 더듬는 말이 더 이상 들을 수가 없게끔 너무나 분명하게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지와 환경에 눌려 더 이상 숙명이라고 생각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주 안에서는 얼마든지 다른 길이 있습니다. 내가 먼저 마음 열고 내가 먼저 손 내밀고 여기에 좋은 교제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획일적으로 사람들을 대하지 않으시고 나 한 사람 한 사람을 너무나 깊이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도우실 수 있고 고치실 수 있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피조물인 우리가 할 수 유일한 방법을 배웠습니다. ‘안드로 포스’ 위를 보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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