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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1:9~11절 “예수께서 받으신 세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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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미디어부    작성일 12-06-15 00:00    조회 5,725    댓글 0  
 
마가복음1:9~11절        “예수께서 받으신 세례”     2012. 6. 17
세례는 헬라어로 밥티조인데 그 의미는 물에 잠기다 또는 물을 뿌리다. 씻어내다 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은 죄를 씻어내는 표로써 세례를 요단강에서 베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인데 세례요한의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요단강으로 나와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을까?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마리아의 몸을 빌려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 되셨을 때 천사가 마리아와 정혼한 요셉의 꿈에 나타나 마1:21절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고 전해 주었습니다.
요1:29절에 세례요한이 예수님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예수님은 어떤 분이냐 세상 죄를 그 몸에 모두 지신 분이다 그렇다면 예수님 자신은 죄가 없으신 아주 깨끗하시고 거룩하신 분이지만 공적으로 예수님은 세상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지신 분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는 이유는 공적으로 세상 모든 인간의 죄를 짊어지셨기 때문에 세례요한의 회개의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있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의 물세례를 받으시기 위해서 요단강으로 나오신 것입니다.
인간은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 질 수가 없습니다. 왜 인간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가 죄인이기 때문에 대신 죄짐을 진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히4:15절에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렇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은 분으로 유일하게도 죄가 없으신 분이기 때문에 세상 인간의 죄를 대신 질 수 있으신 겁니다.
빌2:6~8절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가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시랍니다. 그 하나님이 자기를 비워서 또 다른 말로 낮추셔서 사람이 되셨답니다. 왜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기 위하여
죄를 가진 인간의 결말이 무엇입니까? 죽음 사망 곧 멸망입니다. 그런 인간을 대신하여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이 사실을 믿는 자는 요3:16절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습니다. 예수님도 이 같은 일을 위해서 자신이 오셨다는 목적을 아셨고 제자들에게 그 존재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마20:28절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예수님이 날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세상에 사람 되어 오셔서 죽으심을 믿는 자들이요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섬기기를 죽기까지 하신 것처럼 그 예수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들은 표가 납니다. 섬기기를 좋아합니다. 어디서나 겸손합니다. 왜 예수님이 그러셨으니까 너희도 그래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약4:6절입니다.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교만은 예수님의 모습이 아니야 그래서 교만한 자는 주님이 멀리하십니다. 겸손은 예수님의 모습이야 그래서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약4:10절에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예수님은 자신과 같은 겸손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서 높이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성경책입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물 컵입니다. 정확하게 맞추셨습니다. 그것처럼 우리에게서 무엇이 분명하게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까? 겸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무엇을 봅니까? 국회의사당엔 내가만 있지만 세상 학교에도 내가만 있지만 교회에선 내가는 없고 서로 서로 예수님만 높이는 모습만 봐야 될 줄로 믿습니다. 절대로 내가 아닙니다. 나는 누굽니까? 죄인인데 예수님의 대속으로 구원 받은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자랑할 것이 있다면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 자랑할 것밖에 없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절대로 교만할래야 교만할 수 없는 사람들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겸손한 섬김이 무엇인지를 퍼포먼스로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허리춤에 수건을 두르셨고 대야에 물을 가져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기를 시작하셨습니다. 무엇입니까? 하나님 자신이신 예수님이 노예가 되신 겁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요13:13~15절입니다.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무엇이 겸손입니까? 서열 1위의 사람이 서열 바닥의 노예처럼 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새 계명이 무엇입니까? 요13:3435절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낮아짐의 겸손이 섬김에서 오고 섬김은 곧 사랑입니다. 그래서 겸손이란 책의 저자 앤드류 머레이는 “사랑은 겸손의 뿌리에서 피어나는 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주 수요일 심방을 하다가 메디프러스 요양병원에 들렀습니다. 3층 에레베이터에서 나오는데 바로 첫 병실 밖에 낯익은 이름이 보였습니다. 최순임 그래서 안을 들여다 봤더니 세능 저 안쪽 군인부대 가까이에 사시는 그 최순임씨였습니다. 남편은 적성 지나 전곡 가는 연세요양병원에 계시고 자식도 없이 딸로 삼은 이가 하나 있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바로 그분이 누워서 잠을 청하고 있습니다. 가서 깨웠더니 눈만 뜨지 말도 못합니다. 간병 하는 분 이야기론 아무도 왔다간 사람이 없습니다. 겨울에 들어왔다니까 약 6개월 된 것 같습니다. 저희 교회 가끔 나오셨었고 전혀 기별이 없었는데 거기에 누워계신 것입니다. 입원 전에는 그렇게도 살려고 참 부지런한 분이셨는데 누워서 꼼짝도 못하십니다. 거기서 참 인간이라는 것이 큰 소리 칠 것이 못되는 참 약한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었습니다. 우리 인생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다 놓고 가야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늘 기억하시고 겸손하게 서로를 섬기면서 예수님의 표를  가진 사람으로 사시다가 우리 모두 부끄럼 없이 주 앞에 설 수 있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0절로 11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우리가 받은 세례와 무엇이 다릅니까? 예수님이 세례 받고 올라오시는데 하늘이 갈라져서 성령이 내려오시더라는 것입니다. 닫혔던 하늘 문이 열렸습니다. 비로소 예수님이 복음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우리도 하늘 문이 열려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던 에녹도 하늘 문이 열렸고 야곱도 벧엘에서 하늘 문이 열렸고 기도하던 엘리야도 하늘 문이 열렸고 엘리사의 종 게하시도 하늘 문이 열렸고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도 하늘 문이 열려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열려진 하늘 문으로 성령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았습니다. 무엇입니까? 성도가 성도답게 살 수 있으려면 성령에 붙들린 자가 되어야 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다는 고백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시인하게 하시기 위하여 오신 분이 누구십니까? 성령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습니까? 그렇다면 성령이 내 안에 계신데 그 성령으로 살 수 있도록 인간적인 삶은 자꾸 내려놓기를 원하고 성령으로 살기를 힘쓰는 삶이 바로 성령 충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도 행10:38절에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시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성령 충만해야 능력 있는 성도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만족을 봅니다. 겸손히 자신을 비워 섬기기 위해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진 자로서 받아야 할 세례를 마땅하게 생각하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시는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만족을 보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순종함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족케 하실 수 있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하나님이 하시는 이 말씀은 들어서 좋은 참으로 따뜻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다.” “내가 너를 기뻐한다.” 참으로 긍정적이고 기분 좋은 말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어떠한 말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를 배웁니다. 어떤 소녀가 베를린 길에서 인형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길에서 울고 있습니다. 때마침 이곳을 지나던 독일의 작가 프란츠카프카가 소녀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애야 네 인형은 길은 잃은 것이 아니야 여행을 떠난 거야” 여행을 떠나기 전 인형은 내게 편지로 그렇게 말했단다. “정말요 잘있대요” 그럼 “편지는 어디있어요” 편지는 집에 두고 왔구나 “그런데 왜 우리 인형이 아저씨 한테 편지를 보냈어요.” 나는 인형의 우편 배달부거든 내일 이 자리에 이 시간에 나오면 편지를 가지고 올게 하고 헤어졌습니다. 그 다음날 카프카는 소녀의 인형이 되어 편지를 썼고 소녀를 만나 그 편지를 읽어주었습니다. 이렇게 카프카는 삼주동안 매일 만나서 소녀에게 인형의 편지를 읽어주었습니다. 어느 새 소녀는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카프카는 소녀를 위해서 아주 예쁜 인형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항상 하나님은 격려와 따뜻한 위로의 말씀을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을 닮아야 마땅하지 않을까요? 위로와 격려는 바로 우리에게 보이는 모습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세례에서 겸손을 봅니다. 하늘 문이 열리기를 바라고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하시기 바라고 하나님을 만족케 하며 격려와 위로의 말이 항상 우리의 입술에 머무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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