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BER  |    |    |  
회원 로그인
회원 가입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회원가입으로 서비스 약관개인정보 보호 정책 에 동의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대한예수교장로회 선유중앙교회

SUNYOU CENTERAL CHURCH
주일오전 설교원고

bo_title_img1.png

행21:27-36절 "주를 위해 묶일 수 있나요"  
카카오톡 카카오 스토리 네이버 블로그 밴드 주소복사
   멀티미디어부   작성일 12-01-14 00:00    조회 6,730    댓글 0  
 
사도행전21장27절로36절     “주를 위해 묶일 수 있나요”   2012. 1. 15
올해 첫 사도행전 강해를 다시 시작하게 됩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그토록 오고 싶어 했습니다.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반대로 바울이 예루살렘에 오게 되면 결박을 당하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아주 큰 어려움까지도 당하게 된다는 그래서 신실한 사람들이 여러 번 만류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데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이 삼대 절기로 지키는 오순절절기에 맞추어서 예루살렘에 도착하였습니다. 세상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을 디아스포라라고 부르는데 이 디아스포라들을 포함하여 이스라엘 국내에 거주하는 모든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모여들었습니다. 바울은 바로 이런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이런 데서 예수 복음을 전한다면 참으로 효과적으로 복음의 확산이 이루어질 것을 내다 본 것입니다. 세상에 흩어져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바울이 일일이 다 찾아갈 수 없지만 이들이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성전에 모여질 때 예수 복음 전하면 복음을 들은 유대인들이 자기들이 살고 있는 세상으로 나간다면 복음이 세상에 퍼져나갈 것이란 생각에 비록 결박이 기다리고 있고 고난이 기다리고 있어도 개의치 않고 예루살렘으로 올라온 것입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성전에서 결례의 기간을 채우고 있을 때 유대인들이 바울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모인 사람들을 선동합니다. “여보시오! 내 말 좀 들어보시오 여기 바울이란 자가 있소이다. 이 사람은 우리가 믿는 율법과 예루살렘성전을 비방하여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자인데 이것 좀 보시오 이 바울 옆에 있는 이 사람들 이 사람들은 헬라사람들이 아니오 유대인들만 출입할 수 있는 성전에 할례 받지 못한 부정한 사람들인 헬라사람들을 데리고 들어온 것만 봐도 이 바울이 율법을 무시하고 성전을 모독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오.” 사실 바울은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오해였다는 것을 29절에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하지 않은 증거도 갖지 않은 이런 선동에 맞춰서 큰 소동이 일어났고 곧 바로 유대인들이 바울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갑니다. 성전 안에서 죽일 수 없었기 때문에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간 것입니다. 이런 급작스러운 소요에 대한 소문이 로마 군대 천부장에게 보고가 되어졌고 천부장이 그의 부하들 백부장과 군인들을 대동하고 급히 현장으로 가보니 이미 바울을 여기저기서 내리치고 있었습니다. 천부장은 이 상황을 수습하고 바울을 결박 지어서 심문을 하게 됩니다. 이 사람이 누구냐 도대체 무슨 일을 했기에 이런 일을 당하였느냐 물으니 이 사람은 저렇다 소리치고 또 다른 사람은 이렇다 소리치니 도무지 시끄러워서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어 바울을 영내로 데려가라 명했고 군인들이 데려가는 중에도 유대인들이 폭행을 서슴지 않으니 군인들이 둘러싸 데려가게 되었고 유대인들은 그 뒤를 쫓아가며 바울을 없애자 외치면서 따라갔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여기서 무엇을 깨닫습니까? 수만 명이나 모이고 있는 예루살렘교회의 무기력입니다. 바울이 예수 복음을 자기 민족인 유대인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그것도 더욱 효과적으로 전할 기회를 위해서 흩어진 유대인들 디아스포라가 모이는 오순절절기 때를 택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서 죽이려 하지 않습니까? 스데반이 생각납니다. 똑같은 이유로 스데반은 유대인들에 의해서 돌에 맞아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바울이 당한 상황은 정말 위험하기 짝이 없는 긴급 상황입니다. 잘못되면 스데반처럼 죽을 수도 있습니다. 31절에 죽이려 했다고 했고 36절에는 그를 없애라고 구호를 외치면서 따라갔다는 것입니다. 이런 긴급 상황에서 바울을 구해준 것은 로마군대였고 로마군대의 천부장이었습니다. 반면에 20절에 수만 명이나 모이는 예루살렘교회는 아무런 힘도 되지 못하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제대로 믿는 자 한 사람의 힘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신실한 신앙의 사람 하나님의 꿈을 꾸는 사람 요셉 한 사람으로 인하여 이스라엘민족에 구원이 임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터에서 블레셋장수 거인 골리앗에 의해서 아무런 대항도 못하고 언제라도 이스라엘진영은 전쟁에 패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 이런 상황에서 후방으로부터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여기는 한 사람 다윗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이 있는 전쟁터로 오게 됩니다. 그리고 들었습니다. 골리앗의 형편없는 말장난을 그때 모두가 나서지 않는 가운데서 다윗 한 사람이 나섭니다. 그것도 사람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준비한 칼이나 갑옷이나 투구를 거절하고 순전히 하나님의 이름만을 의지하고 용감하게 물매만을 들고 골리앗을 향해 나아갑니다. 골리앗은 다윗이 날린 물매돌에 급소를 맞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찼던 자신의 칼에 머리를 잘리게 됩니다. 이 모습을 본 블레셋 사람들은 혼비백산 도망하게 되고 이스라엘군대는 대승을 하게 됩니다. 제대로 된 한 사람의 신앙인이 이스라엘군대를 승리로 이끈 겁니다.
지금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들이 누굽니까?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사도가 감독으로 있습니다. 베드로역시 지도자로 예루살렘교회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만 명의 성도들이 있습니다. 한 사람도 아니고 예수 믿는 수만 명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이 어려움을 당하고 죽게 생겼는데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숨죽이고 기침도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신앙과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바울과 같은 교리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드는데 왜 수만 명이 모이는 예루살렘교회에 대해서는 이런 핍박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까? 무엇을 깨닫습니까? 예루살렘교회가 유대교와 적당한 타협을 시도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 속에서 함께 핍박없이 공존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수만 명이나 되는 예루살렘교회의 성도들이 지도자들에게서 타협의 신앙을 전수받고 있었다 하는 것을 21절로 22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들이 말합니다. 바울이 할례를 행하지 말라는 것 또 유대의 관습을 지키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을 유대인들이 들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바울 당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입니까? 예루살렘교회에서는 예수 믿는 성도들에게 할례에 대해서 하라 하지 말라는 규정을 짓지 않고 있었다는 겁니다. 유대의 관습을 지키는 것에 대하여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적당한 타협의 신앙이 조장되고 있었다는 것을 충분히 느끼게 합니다. 더욱이 충격적인 것은 23절에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들이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살 수 있도록 적당한 길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24절에선 아주 구체적인 방법까지 지도하고 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신앙과는 매우 거리가 먼 모습을 봅니다. 문제는 무엇입니까? 적당히 타협하면서 사는 신앙에는 힘이 없다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바울이 죽게 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말이 맞다 예수 믿으면 예수께서 대속제물이 되어주시므로 결례를 마치기 위해서 마지막에 행하는 짐승을 잡아 대속하는 행위가 더 이상  필요치 않다. 예수님이 우리의 대속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 죽으셨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죄악이 깨끗이 씻어졌다. 너희가 행하고자 하는 결례는 이제 아무 소용이 없다 그리스도예수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이루셨다고 외쳤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살기 위해서 적당한 타협을 했고 예수도 믿고 유대의 관습도 따르고 그래서 수만 명의 성도가 있음에도 숫자에 불과한 아무 힘도 없는 교회의 모습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의 교회가 성경 계3:15절로 16절에도 소개되고 있는데 그 교회는 라오디게아교회였습니다. 예수님이 라오디게아교회를 보시니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고 미지근하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라오디게아교회를 향하여 19절에 열심을 내라 하시면서 그렇지 않으면 16절 끝부분에 토하여 버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적당주의 말고 철저하게 하나님 사랑하면서 주를 위해 삽시다. 하나님은 그런 이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시고 힘 있게 하시고 축복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함경도에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성도가 보낸 편지입니다. 2011년 11월5일은 배추 씻어서 김치를 하는 날인데 근심이 태산 같았답니다. 왜냐하면 김치를 씻어야 하는데 물이 나오지 않은지가 오래되어 부득이 강에 나가야만 했는데 많은 배추를 끌고 가자니 아득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인 배추를 씻기위해 동네에 있는 남의 집 큰 그릇이란 그릇은 다 빌려다 놓았는데 그 어지러운 방 안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했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여지 것 저를 사랑하시고 도와 주셨는데 오늘 물이 좀 나오게 해 주십시오. 믿습니다.” 하고 여러 번 기도를 했답니다. 그런데 이런 놀라운 일은 여러 날 나오지 않던 수돗물이 나오기 시작을 한 겁니다. 그래서 물이 언제 그칠 줄 모르니까 빠르게 절인 배추를 씻었는데 다 씻고 나니까 물이 그친 것입니다. 동네 여인들이 이 사실을 알고 어떻게 물이 나왔는가 묻습니다. 그래서 대답하기를 “나에겐 항상 나를 사랑하고 도와주시는 분이 계신다.” 하니까 그럼 나도 물 좀 나오게 해 주시오 옆집 며느리가 사정을 하더랍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언제 씻을 건데” 그러니까 내일 씻을 것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니까 물이 나왔고 그 집도 배추를 깨끗이 씻을 수 있었답니다. 다음 날 소문을 듣고는 인민반장과 옆집 아주머니가 찾아와서는 우리도 그렇게 배추를 씻게 해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언제 씻을 건데요” 그러니까 대답하기를 입동이 지난 11월9일에 씻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11월 9일 또 기도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여지 것 저를 사랑하시고 도와 주셨는데 이번에도 물이 좀 나오게 해 주세요”하고 여러 번 기도했더니 물이 나와서 그 집들도 깨끗이 배추를 씻을 수 있어서 김장을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주님을 경험하면서 사는 성도가 어떻게 적당주의로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지금 바울은 이런 주님을 경험하면서 살기에 주의 이름을 위해 묶이는 것도 무서워하지 않을 수 있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함경도에 사는 어느 성도님의 편지인데 추석 때문에 바쁘게 돌아다니다 가지고 있던 큰돈을 잃어버렸답니다. 돈을 잃고 애태우다 하나님께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를 용서하여 주세요 마땅히 맞아야할 매를 맞았습니다. 육신이 당하는 고통 가운데 지금이 가장 큰 고통입니다. 저를 용서해주세요” 하고 몇 번이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마치 돈을 찾은 것처럼 마음에 기쁘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벽4시쯤 창고의 어느 구석진 곳에 가보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불을 켜고 창고에 들어가 그 구석진 장소에 가보니 그곳에 잃어버렸던 돈이 그대로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 같은 것이 무엇인데 이렇게 사랑하십니까” 이렇듯 북한에 지금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적당주의로 신앙생활하면 힘이 없습니다. 아무 능력이 없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아니 토하시며 버리십니다. 신앙도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하지 않습니까? 철저하게 하나님 뜻대로 살므로 우리 하나님 우리 보시며 기뻐하시고 당신의 살아계심을 우리의 삶 가운데 풍성하게 나타내 주시는 축복을 늘 경험하면서 사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주일오전 설교동영상
24년 4월 28일 주일 예배 영상
고린도후서 4:7~15 김용우 목사
2024년 4월 28일
교회앨범
봄맞이 교회 대청소 및 새단장 
동영상앨범
22년 낙도선교회
- -
-
선유중앙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 선유중앙교회
031-954-1080
031-954-1040
yegrim@hanmail.net

회원가입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전체 최근게시글
  • 선유중앙교회 SNS를 방문해 보세요
    교회명 : 선유중앙교회 | 담임목사 : 김진수 | 주소 : 10811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독서울 5길 18-30
    교회전화 : 031-954-1080, 953-5977 | Fax : 031-954 1040 | 목사관 : 031-952-2097 | 이메일 주소 : yegrim@hanmail.net
    Copyright ©1955~2024   sunyou.or.kr. All Rights Reserved.
    031-954-1080
    031-954-1040
    yegrim@hanmail.net
    031-954-1080
    선유중앙교회 전화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