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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설교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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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14장29절 “우리 사랑실천 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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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미디어부    작성일 12-01-06 00:00    조회 5,940    댓글 0  
 
신명기14장29절         “우리 사랑실천 해 봅시다.”    2012. 1. 8
말씀으로만 사람에게 나타내셨던 하나님이 보이는 분으로 이 세상에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분이 우리 구주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이라는 이야기를 비유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내용인즉 이렇습니다. 한 사람이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이었는데 강도를 만난 겁니다. 옷도 빼앗기고 가진 것 모두 빼앗기고  비참하리만큼 얻어맞아서 겨우 숨만 쉴 정도로 버려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곁을 마침 제사장과 레위사람이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숨만 겨우 쉬고 있는 강도만난 그 사람을 보고도 두 사람 모두 저만큼 피해서 그냥 지나가더라는 것입니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습니다. 시체를 만지게 되면 하나님 앞에서 더렵혀진다는 레위기21:1절 말씀에 충실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강도 만난 자는 시체가 아니었습니다. 아직 숨이 붙어 쉬고 있는 충분히 만져도 될 수 있는 부상자였습니다. 그러나 죽은 것이라고 치고는 외면하고 지나가버린 것입니다.
세 번째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이 바로 사마리아사람이었는데 그 강도만난 사람을 보는 순간 너무나 불쌍한 겁니다. 옷은 벗겨져 있지요 벗겨진 몸은 매를 맞아 만신창이가 되어 여기저기 찢겨져 피범벅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기 불쌍히 여기다 는 말이 헬라어로 ‘엘레오스’ 자비 또는 긍휼이라는 말입니다. 구제라는 \'엘레에모쉬네’ 라는 말이 바로 이 자비라는 말 ‘엘레오스’에서 왔으니까 불쌍히 여기다 자비를 베풀다 긍휼이 여기다는 마음이 곧 구제로 이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일 겁니다.
사마리아인은 곧 바로 강도만난 사람에게로 가서 그 사람의 상처에 올리브기름과 포도주를 발라서 긴급조치를 취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나귀에 그 사람을 실고 주막에 가서는 밤새도록 돌보아 준 것입니다. 다음날 주막주인에게 돈을 주며 잘 돌봐달라고 부탁을 하면서 만약 모자랄 것이면 자신이 오는 길에 갚겠다 하고는 길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너희도 이같이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어떻게요? 불쌍히 여기는 마음 ‘엘레오스’를 가지고 구제 ‘엘레에모쉬네’를 행하라
오늘 본문 구약성경에서도 그렇습니다.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엘레오스를 가지고 엘레에모쉬네를 하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누구에게? 사회적 약자에게 어떻게? 부족함을 채워주라
처음 교회가 시작이 되었을 때입니다. 유대인 회당에서는 없었던 예루살렘성전에서도 없었던 일이었는데 성령의 강림으로 시작된 초대교회엔 구약의 성전들과는 다르고 구약의 유대인들하고는 다르게 아주 신선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 신선한 바람은 엘레오스의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엘레에모쉬네 구제가 구체적으로 행동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행2:45절과 46절입니다.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행4:35절에도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그리고 보다 투명하고 효과적 구제를 위해서 사도들이 한 제도를 마련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집사제도였습니다.
그러므로 구제라는 것은 단순히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차원이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신 사람들이 예수님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함께 공유한데서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는 영적인 하나의 사건인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삭개오가 그렇습니다. 삭개오라는 이름의 의미는 깨끗하다 인데 그는 깨끗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로마에 돈 주고 세리직업을 사서 그것도 세리장이 되기까지 악랄한 방법과 부정한 방식으로 세금을 거둬들여 자신의 부를 축적한 아주 더러운 놈으로 낙인이 찍힌 사람이었습니다. 그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들어갔을 때 사람들은 저가 죄인의 집에 들어갔다고 수근 거렸습니다. 그런 정도로 사람들은 삭개오를 몹쓸 인생으로 죄인시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는 자신의 소유 절반을 가난한 자들과 함께 나누겠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오시면 그 사람은 예수님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고 그 불쌍한 마음은 구체적으로 구제하는 행동으로 나타나더라는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구제는 그저 돕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영적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며 자신의 재산 절반을 나누는, 사람들에게는 죄인으로 불렸던 삭개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눅19:9절입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무슨 말씀입니까? 이 사람 삭개오가 어떤 사람이라고요? 구원 받은 믿음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예수 만나면 예수님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되고 그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구제라는 구체적 행동으로 나타나는 이것은 분명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자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 정말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들이라고 인정을 받는 바리새인들이 있었습니다. 그 바리새인들은 길에서 자신의 동전을 일부러 떨어뜨리므로 가난한 사람들로 하여금 주워가게끔 구제를 행동으로 나타내보였습니다. 그런데 눅11:39절에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그들 바리새인들에게 있어서의 구제는 영적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단지 내 것을 가지고 돕는다는 일반적 차원의 구제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41절에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고 하셨습니다. 무엇입니까? 동전 몇 닢이 아니라 바로 너의 마음속에 있는 탐욕에 차 있는 그 물질로 구제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탐욕에 찬 이 물질은 예수님을 만난 영적 사건을 통해서만 불쌍히 여기는 예수님의 마음을 가짐으로서만 나오게 되어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경배하는 우리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호6:6절에 말씀하십니다. “나는 仁愛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인애란 자비로운 사랑을 말합니다. 다른 말로 불쌍히 여기며 사랑하는 것이 인애입니다. 이 말을 헬라어로 엘레오스이고 히브리어로는 헷세드입니다. 또 비슷한 말로는 라함입니다. 라함은 사49장15절에 여인이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이 여기지 않겠느냐 할 때 긍휼을 라함이라는 단어로 사용하였습니다. 부모가 자기 자식을 불쌍히 여길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씀은 제사 자체를 싫어하시는 것이 아니라 긍휼이 여기는 마음이 없이 드리는 제사에 대해서 원치 않는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긍휼이 여기는 마음이 없는 그냥 종교인보다 하나님을 알므로서 생기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드려지는 제사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셔서 팔복이라는 전혀 들어보지 못한 진리를 말씀하실 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었는데 사람에게 긍휼을 베푼 나는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는 축복을 주심으로 그야말로 행복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맹인 두 사람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할 때 마20:31절에 주님이 불쌍히 여기시니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 또 다른 사건입니다. 나사로가 죽은지가 나흘이 되어 돌 굴려 입구를 막았음에도 시체 상하는 냄새가 나는 것입니다. 완전 절망입니다. 그러나 요11:33절에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불쌍히 여기시니까 어떻게 되었습니까? 큰 소리로 나사로를 부르셨고 44절에 보니까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할렐루야!
예수님의 마음이 내게 있어 예수님처럼 불쌍히 여기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 예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게 될 것이고 그러면 우리의 눈이 밝아지는 축복을 받게 될 것이고 죽었던 절망스러운 것들이 죽은 것들의 모양과 냄새가 사라지고 사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구제로 나타나는 삶으로 이어질 때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손으로 하는 모든 범사에 복을 주신다 하셨습니다.
인도의 강연희선교사님은 기후와 먹는 것과 마시는 것과 환경이 너무나 않좋은 곳에서 사역을 하다보니까 건강이 너무 안 좋아져서 적혈구의 수치가 7까지 내려가서 많이 위험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언니 강현희집사님이 피수치를 높여주는 마시는 약과 먹는 약을 준비해서 마침 강선교사님이 계신 곳으로 가는 분이 계셔서 인편에 그 약을 보냈는데 그곳에는 에이즈로 부모 모두를 잃고 고아가 된 어린아이가 자신도 에이즈로 인해서 피의 수치가 5까지 내려가는 이제 사망을 당할 수밖에 없는 찰나에 한국에서 언니가 보낸 수액을 강선교사님이 마시지 않고 그 아이에게 마시게 했는데 그 아이가 적혈구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오고 살아났다는 겁니다. 선교사님이 마셔야 할 약이었는데 선교사님도 많이 안 좋았는데 자기보다 에이즈에 걸린 그 아이에게 자신의 약을 줌으로써 아이를 살렸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들을 때 강선교사님에게 있는 그 불쌍한 마음이 내게 전달되면서 기도가 나가기를 하나님! 하나님이 우리 강선교사님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 주실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새로워집니다. 건강해집니다. 범사에 복을 받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 사랑실천 헌금한 것이 4천 만 원 올해도 오늘 또 다시 새해를 시작하면서 작정하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임한 줄로 믿습니다. 이제는 이 엘레오스가 구제라는 엘레에 모쉬네로 발전하여 우리는 당연히 한 것을 한 것뿐인데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그러므로 우리의 문제에 기적이 일어나며 우리의 손으로 하는 모든 범사에 우리 하나님이 복으로 바꾸어 주시는 역사가 일어나는 한 해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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