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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예수교장로회 선유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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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설교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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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13:13~41절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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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미디어부    작성일 11-03-12 00:00    조회 4,641    댓글 0  
 
사도행전13:13~41절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2011.3.13
13~14절입니다.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
지금까지 큰 자라는 뜻의 사울이라는 본 이름 대신 이곳에서부터는 바울이라는 작은 자라는 뜻의 새로운 이름을 사용하고 있음을 봅니다. 은혜 받으면 누구든지 달라집니다. 사울도 은혜 받으니까 자기는 작은 자라고 바울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은혜를 글로써 표현하기를 엡3:8절에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셨다.”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그렇고 바나바도 그렇고 이런 바울을 앞세우기를 시작하고 있는 겁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바나바와 사울이라고 언제나 바울보다 바나바가 앞섰습니다. 왜냐하면 바울보다 바나바가 일찍 주님을 영접한 사람이었고 예루살렘교회가 인정을 해서 안디옥교회 담임목사로 파송 받은 지도자였습니다. 더군다나 바나바가 다마스커스에 있던 바울을 데려다가 함께 목회를 했으니 당연히 바울보다 바나바가 앞서야 합니다. 그런데 이곳부터 바나바는 그냥 동행하는 사람들 속에 묻혀버리고 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자신은 감추고 다른 사람은 드러내는 바나바의 훌륭한 착한 성품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진정으로 이렇게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바나바는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나바는 하나님이 바울을 사용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바울이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마술사 엘루마에게 맹인이 되어 얼마동안 보지 못하리라 함과 동시에 엘루마가 눈이 멀어 도움을 구하는 사람을 찾는 것을 보았고 그곳의 총독이 엘루마가 바울의 말대로 된 것을 보면서 예수 믿고 구원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이 먼저 믿었다고 해서 앞설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래서 자신은 뒤로 그리고 바울을 앞으로 내세우게 된 겁니다. 그렇습니다. 초대교회의 성장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바울만 있어도 안 됩니다. 바나바와 같은 이도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들이 키프로스 섬에서 그곳의 총독이 예수 믿고 구원 받는 큰일을 해냈습니다. 그리고 키프로스 섬의 바보를 떠나 배를 타고 밤빌리아의 버가라는  육지로 나오게 됩니다. 여기 버가라는 곳에서 바나바의 조카이면서 수행원이었던 마가요한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무슨 일로 돌아갔는지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모릅니다. 말씀 그대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조금 알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행15:37~39절의 내용입니다.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여기서 마가가 떠난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가는 키프로스 섬에 더 할 일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곳을 떠나서 다른 지역으로 움직이는 것에 대하여 불만이 있어서 저들을 떠나서 예루살렘으로 간 것이 아니냐 왜냐하면 바울과 바나바가 갈라서서 각기 전도여행을 떠날 때 바나바와 마가가 간 곳이 바로 자신들이 떠나왔던 그 키프로스 섬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나바와 마가는 바나바의 고향인 키프로스 사람들에게 좀더 복음을 전했으면 하는 마음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긴 해도 여기서 작은 문제로 너무 쉽게 포기하고 마는 마가의 아쉬운 점을 보게 됩니다. 사실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순종했어야 했습니다.
마라톤을 완주한 선수에게 리포터가 뛰는 동안 가장 힘들게 한 것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었습니다. 호흡이었습니까, 아니면 갈증이었습니까? 선수는 가쁜 숨을 내쉬면서 저를 힘들게 한 것은 호흡도 갈증도 아니었습니다. 신발 속에 모래알만한 작은 돌멩이가 저를 매우 힘들게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인생을 마라톤에 비교합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단거리가 아니라 장거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라 사소한 작은 것이라는 겁니다. 부부간에도 큰 문제는 대담하게 잘 넘어가지마는 지극히 작은 문제 때문에 감정의 각을 세우고 대립을 하게 되어 가정이 깨어지고 평화를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수행원 마가는 이렇게 떠났으나 저들의 전도여행은 계속됩니다. 바울과 동행하는 자들이 간 곳은 버가를 더 지나쳐서 비시디아라는 곳에 안디옥에 마침 안식일 날 회당에 들어가 앉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회당장이 누가 설교할 사람 있으면 하라는 겁니다. 전에 같았으면 바나바가 나서야 하지만 바나바는 바울의 강점을 알기 때문에 모든 중심에 바울을 두고 자신은 뒤로 감추고 있음을 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이런 아름답고 격이 높은 겸손함으로 섬기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대인 회당과 그 곳의 두 부류의 사람들
16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설교할 사람이 있는가하고 물었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난 바울이 회당에 두 부류의 사람들을 구분하고 있음을 봅니다.
하나는 유대인이라고 부르는 이스라엘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란 누구냐 43절이 그 해답이 되겠습니다. “회당의 모임이 끝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 헬라인이나 로마인인 이방사람들이면서 유대교에 입교한 사람들로서 이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22~23절입니다. “사울을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이스라엘백성이 애굽을 탈출해서 가나안 땅을 얻기까지 그리고 사사 사무엘의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윗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많은 일들 그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셨다는 것입니다. 정말 바울이 이 사람들에게 전하려고 하는 것은 출애굽도 사무엘도 사울도 다윗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다윗의 후손으로 유대 땅에 오신 예수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것도 예수님을 위해서가 되기를 바라고 우리가 장사나 사업을 하는 것도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도 예수님을 위한 것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탈리아의 한 여류화가가 사랑의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한 도자기에 예수님의 얼굴을 최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그려 넣었습니다. 친구가 찾아와서 예수님의 얼굴은 거들떠도 보지 않고 오직 도자기만을 바라보며 참으로 아름답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친구가 돌아간 다음 이 화가는 매우 실망하였습니다. 사랑의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도자기에다 사랑의 예수님을 그린 것인데 도자기만 아름답게 보였기 때문에 화가는 다시 붓을 들어 예수님의 얼굴을 모두 지워버렸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예수님 외에 아름다워지려고 하는 것 예수님 보다 빛나 보이려고 하는 것 예수님보다 앞서는 것이 있다면 우리 마음에서 모두 지워버리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이야기를 하다가도 예수님 이야기로 돌아서기 바라고 사건을 이야기하다가도 예수님 이야기로 결론을 맺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구주가 오셨음을 증거 한 사람들과 십자가에 못을 박은 사람들
25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이 그 달려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너희가 마지막 선지자인 세례요한을 알고 있지 않느냐 그가 그의 사역을 마칠 때가 되었을 때 말하지 않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인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니다 내가 아니고 내 뒤에 오시는 분인데 그 분이 그리스도시다 나는 사람의 몸으로 오신 그분 하나님 자신이신 그분의 신발 끈을 풀 수조차 없는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세례요한이 이처럼 예수님이 구주이심을 증거 했음에도 불구하고 구주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27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그들 관리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도 달달 외우는 유대인들과 관리들이 그 말씀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이 보내신 자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정죄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고 하여 빌라도가 어쩔 수 없이 십자가에 죽였지만 하나님은 무덤에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 그리고 이 부활의 몸을 여러 사람들에게 보이셨고 바로 부활의 예수님을 본 그들이 증인이라는 것입니다.
개역성경 시16:10절에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이것이 다윗에 대한 약속이 아닌 것이 다윗은 그 몸이 무덤에서 썩고 말았지만 다윗이 아니라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이셨기에 무덤에 장사되신 예수님이 무덤에서 썩지 않고 부활하시지 않았느냐는 겁니다.
그러면서 38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그러므로 예수님이 왜 죽으셨느냐 왜 십자가에 못 박히셨느냐 그리고 어째 부활하셨느냐 그의 죽으심은 죄인된 우리를 대신한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우리로 죄가 사해졌다는 확신을 주시기 위한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았다고 바울이 말하고 있습니다.
죄 사함을 받았다면 알아야 할 것이 있다고 계속 바울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39절입니다.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어떤 사람도 율법을 다 지킬 수 없으니 모두가 죄인이 되지만 예수님 내 죄 위해 죽으시고 나를 위해 다시 사심을 믿는 나는 그 믿음대로 내가 죄가 없어졌고 그러므로 우리가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 적극적인 의미에서 의롭다함을 받은 자가 되었다는 겁니다.

합1:5절에 있는 하박국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하기를 41절입니다.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멸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일러줄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무슨 말이냐 하면 하나님께서 한 가지 구원의 길을 일러주고 나타내실 때 사람들이 멸시하고 아무도 믿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멸망을 당하게 되지만 바울은 그의 설교에서 인간이 의롭다하심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사람 예수님을 믿는 길 밖에는 없다는 겁니다.
죄 사함 받는 길도 예수밖에 없고 의롭게 되는 것도 예수밖에 없고 천국 가는 길도 예수밖에 없고 아멘이십니까?
아주 오래전 로스엔젤레스의 한인 안경점에서 텔레비전광고를 하였는데 그 광고의 멘트는 안경점 사장이 나와서 어눌한 말투로 “내가 아는 것은 안경밖에 없습니다.”라는 짧은 한 마디였습니다. 그런데 그 해 이 광고는 최고의 광고상을 받기도 할 정도로 히트를 친 겁니다. 이런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주님밖에 없습니다. 주님밖에 모릅니다. 주님이 전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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