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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설교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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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2011.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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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미디어부    작성일 11-02-03 00:00    조회 4,388    댓글 0  
 
행12:1~19절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2011. 2. 6
죽음 도대체 무엇인가?
1~2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때에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예수님을 줄곧 앞장서서 따라다녔던 두 형제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그토록 예수님의 나라에서 출세하기를 간절히 바랐던 그들의 어머니 그러나 어머니의 바람과는 달리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제일 먼저 헤롯왕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세상 적으로 보면 세상에 이보다 안타깝고 비참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적으로 보면 어떤 모양으로 죽든지 또는 일찍 죽든지 늦게 죽든지 절대로 나쁜 것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죽음을 성경은 떠나는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떠남을 영어로는 departure 출발 또는 새로운 시도라고 하였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허무나 소멸이 아니라 떠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체에 있던 영혼이 육체를 떠나는 것이 죽음입니다.
독일 고백교회의 지도자였던 본훼퍼 목사님은 서른아홉의 나이에 나찌 히틀러를 반대하였다가 사형을 당하게 됩니다. 사형을 당하는 날입니다. 본훼퍼 목사님의 이름을 호명하자 목사님은 이제 사형을 당하게 되는구나 직감하면서 같은 감옥에 있는 동료들에게 인사하기를 “친구 여러분 이제 저의 새로운 여행이 시작이 됩니다. 이것은 결코 저의 마지막이 아닙니다. 저는 새로운 여행을 위해서 출발하는 것입니다.”라고 인상 깊은 말을 남겼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죽음은 떠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은 또 한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다시 만나는 것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헤어짐 때문일 것입니다. 미국의 쌍둥이 빌딩이 911 테러로 무너질 때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이 가족과 핸드폰으로 통화를 합니다. “지금 온통 연기로 차오르고 있어 큰일이 생긴 모양이야 여보! 사랑했어.” 마지막으로 친구든지 애인이든지 자식에게든지 누구나 사랑의 고백을 하고 싶어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 역시 죽음이란 슬프지만 그러나 결코 이것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만나는 것이니까 예수님을 만나고 먼저 간 가족을 만나고 그리고 다시 만나는 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살아왔던 것들에 대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딤후4:8절입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이런 죽음이 있기에 현실을 덧없이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딤후4:5절입니다.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이런 의미의 죽음을 생각할 때 야고보사도의 죽음은 결코 비참하지도 슬프지도 안타깝지도 않은 복된 죽음이었던 것입니다.
프랑스의 황제로 화려한 것 같았던 나폴레옹은 16년 동안 자기 한 사람의 야망을 위해서 젊은이들을 죽음에 몰아넣었는데 전쟁으로 모두 백만 명이나 죽음을 당했고 자기 조국 프랑스의 젊은이들만 오십만 명이 전사를 했습니다. 그때 프랑스 인구가 삼백만 명이었었다니까 그 희생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몰락한 나폴레옹은 세인트헬레나섬에 유배를 갔다가 거기서 52세의 나이로 죽었고 그 후 20년이 지나 사면복권이 이루어지자 그의 추종자들이 그의 유품들은 앵발리드박물과에 그리고 그의 시신은 가져다가 화장한 후에 앵발리드박물관 옆에 앵발리드성당에 안치했다는 것입니다. 앵발리드라는 말은 부상자 또는 무효라는 뜻인데 헛된 야망에 사로잡혀 백만의 젊은이들을 죽음에 몰아넣은 나폴레옹은 겉은 화려했지만 실은 온전치 못한 정신적 영적 부상자였고 그의 인생은 하나님 앞에서 무효였던 것입니다.
화살이 날아가는 것처럼 빠른 세상입니다. 우리 열심히 주의 일하다가 천국을 향하여 출발! 하는 날이 올 때 기쁨으로 출발하실 수 있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과의 교제
3~5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 새 때는 무교절기간이라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내고자 하더라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야고보사도를 죽이게 될 때 유대인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고 헤롯왕은 좀 더 큰일을 계획하기를 사도들 중에 우두머리라고 생각되는 베드로를 잡아서 죽이기로 한 것입니다. 그래서 잡았고 옥에 가두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지키는 유월절절기가 끝나면 죽이려 하였습니다. 벌써 내일이면 유월절이 끝이 납니다. 그러면 베드로사도가 죽게 됩니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기도였습니다. 기도는 주님과의 교제입니다.
행10:19~20절에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두 사람이 널 찾고 있다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네게 보내었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주님과의 교제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오랫동안의 목회를 통해서 풀리지 않는 두 가지로 고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목사이면서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혈기였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오랜 목회생활에도 불구하고 주의 음성을 아직 듣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문제가 없었지만 이 두 가지 사실로 인하여 양심에 찔려 목회를 더 이상 지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지금의 목회를 정리하고 아무도 알지 못하는 지방으로 가서 새롭게 목회를 시작하였습니다. 주변의 많은 분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남은 목회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온전히 그 음성에 순종하는 목회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조그만 상가건물을 임대해서 목회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전도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교회에 머물면서 오직 한 가지 주의 음성을 듣는 참된 주님과의 교제가 이루어지기만을 위해서 기도하였습니다. 친구 목사님들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식사 시간 외에는 오직 주님과의 교통이 이루어지기만을 원했습니다. 이렇게 10개월이 지났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음성은 듣지 못했지만 마음속에 기쁨이 생기기를 시작했습니다. 주님이 옆에 서 계신 것을 느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목사님은 깨닫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얼마나 교제를 원하시는지 그리고 얼마나 당신의 종들과의 교제에 굶주려 계신지.............
1년이 지나게 되면서 사람들이 교회로 오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전도한 것도 아닌데도 연결 연결해서 모이게 된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분이 교회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서 함께 신앙 생활할 것을 권유하고 와서 기도 시간에 충격적인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나의 종아 교회 부흥은 내가 시켜주마 오직 너는 나와 더불어 교제만 하자”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부터 그 목사님은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목사님은 혈기를 낼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도 그의 감정은 평안했고 아주 자연스럽게 그런 자리를 이길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은 그 목사님에게 성전을 건축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돈이 그의 수중에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 말씀이 있고 난 후 세 곳에서 집회를 인도해 달라는 초청을 받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그 중에 한 곳을 말씀하셨고 그곳에서 집회를 마치고 돌아올 때 어느 권사님으로부터 성전건축에 써달라고 봉투하나를 건네받았는데 돌아와서 보니 일억 원 수표가 들어있었습니다. 그것으로 시작된 교회 건축은 20억이 넘게 드는 공사비에도 불구하고 그때그때마다 하나님이 채워주셔서 건축을 마치게 되었고 지금은 개척5년 만에 육백 명이 모이는 교회로 크게 성장을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주님 자신만을 구하고 주님의 음성듣기를 원한다면 우리에게 큰 복이 되어 돌아올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하면 어려운데 하나님이 하시면 쉽다.
6~19절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네 명의 군사들이 네 팀이 번갈아 가면서 베드로를 지킵니다. 네 명 중 두 명은 감옥 문에서 두 명은 감옥 안에서 베드로와 같이 쇠사슬로 함께 묶여서 같이 자고 있습니다. 그때 감옥 안이 빛으로 환해졌습니다. 주의 천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천사는 베드로를 깨워서 급히 일어나게 하는데 쇠사슬이 아무 소리도 없이 벗어집니다. 옷을 제대로 입고 신도 신고 베드로는 천사를 따라갑니다. 그때 베드로는 이것은 생시가 아니고 환상을 보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첫째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하는 쇠문에 이르렀는데 그 쇠문마저도 마치 누가 여는 것처럼 저절로 열립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거리로 나서게 되었고 사명을 마친 천사는 베드로를 떠났습니다. 베드로는 성도들이 모이는 마가요한의 집에 가서 문을 두드립니다. 성도들은 베드로의 석방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하는 로데라는 여자아이가 나왔는데 베드로의 음성이 들립니다. 너무 기쁜 나머지 문을 열지도 않고 들어가서 베드로가 왔음을 알리니 기도하던 사람들이 “너 미쳤냐” 아니라 맞다 그래서 그들이 나가보니 베드로가 맞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놀랐다고 했습니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베드로는 다른 곳으로 떠났는데 날이 새게 되니 감옥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지키던 군인들은 이 일로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의 기도의 제목이 무엇입니까?
베드로의 석방입니다. 베드로가 감옥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14절 하반절에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할렐루야! 세상의 모든 상품은 돈만 있으면 못 살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베드로가 감옥에서 나오는 이런 일들은 절대로 돈 가지고 될 수 없습니다. 돈 가지고 될 수 없는 일들을 되게 하는 것이 기도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기도로 인하여 우리의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지금도 계속됩니다.
여기서 귀한 교훈을 배웁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깨우시듯 우리를 신앙의 잠, 기도의 잠, 섬김의 잠을 자고 있는데서 깨워주시는 축복을 받자! 그리고 베드로를 묶고 있던 쇠사슬이 벗겨지듯이 우리에게 있는 시험의 쇠사슬 질병의 쇠사슬 문제의 쇠사슬이 벗겨지는 축복도 받자! 그리고 베드로를 가로막고 있던 쇠문이 저절로 열려지듯이 우리가 주님과 진정으로 교제할 때 회개의 문도 열리고 은혜의 문도 열리고 축복의 문도 열리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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