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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9일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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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미디어부    작성일 10-08-28 00:00    조회 4,450    댓글 0  
 
사도행전6:1~7절      “갈등을 뛰어넘어 새로운 부흥으로”   2010.8.29
인간이 모인 곳이라면 모두가 다 갈등을 경험합니다.
지역 간 갈등, 부부간의 갈등, 고부간의 갈등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 그리고 직장 문제로 갈등 결혼 문제로 갈등 대학 선택을 놓고 갈등 유치원생을 비롯하여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에 걸쳐 그 갈등도 다양합니다.
그래서 저는 인간이란 “갈등하는 동물이다.” 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갈등하는 것이고 또 서로 함께 하기 때문에 갈등하는 것입니다. 함께 하지 않으면 갈등할 것도 없습니다. 부부가 이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함께 하였기 때문에 갈등하였지만 이제 헤어지므로 더 이상 갈등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이번에 골프 황제인 타이거 우즈가 이혼을 했는데 그의 부인이 이혼도장을 찍고 하는 말이 그 동안 지옥을 경험하는 것처럼 힘들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갈등의 폭이 컸다는 것을 짐작케 하는 말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자! 이런 갈등이 여러 사람들이 모인 교회 안에도 예외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 안에서 일어난 갈등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1절입니다.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헬라파 유대인들은 누구이며 히브리파 사람은 누구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의해서 주전 586년에 완전히 망하고 다수의 유대인들이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강제 이주를 당하는 슬픈 역사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고국을 떠나서 해외에 흩어져 살게 된 유대인들은 자연히 그곳의 언어인 헬라말인 그리스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살던 유대인들이 그래도 뼈는 고국에 묻혀야 되지 않겠느냐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이들 중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사도들을 통해 구원의 복음을 듣고 성령 충만을 받아서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이 된 것입니다.
이때 교회 성도들은 이 사람들을 밖에서 사람들이 부르는 것처럼 똑같이 헬라파 유대인들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 헬라파 유대인들이 고국에서만 오래 동안 생활해온 다수의 모든 유대인들을 말할 때 히브리파 사람이라고 구분을 지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헬라파 유대인들 사이에 히브리파 유대인에 대한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가 행하는 매일 구제의 대상에서 헬라파 유대인들의 과부가 제외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헬라파 유대인들 가운데에는 오래 동안 외국에서 살다가 보니 고국에는 일가친척이 전혀 없는 과부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은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 수 밖에 없었는데 교회는 매일 구제를 행하면서도 이 헬라파 과부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교회의 매일 구제가 가난한 히브리파 유대인들에게만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헬라파 유대인들 사이에서 히브리파 유대인들을 향한 갈등이 시작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갈등은 곧 원망으로 나타났습니다.
예루살렘교회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성도들의 원망은 우리가 생각할 때 좀 요란스럽게 분란을 야기 시키는 것으로 이해하기 쉬운데 여기 본문에 원망이라는 헬라어 곤구스모스는 조용조용히 말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때론 갈등으로 인한 원망이 발전해서 분란을 초래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런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원망이 아니라 은혜 받았기 때문에 성령 충만하기 때문에 조용히 자신들의 의사를 전달하는 변화된 행동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고 구원 받았고 성령이 내 안에 계시고 우리 모두 은혜 받은 자이니 나지막하게 조용조용히 소리 내지 아니하고 격한 감정을 실지 않고 부부간에 이런 모습 성도 간에 이런 모습으로 아름다운 인간관계 그리고 지금보다 나중이 더 나은 그런 관계를 만들어 가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헬라파 유대인들이 갈등을 겪게 한 대상인 히브리파 유대인이란 구체적으로 누구를 의미하는 것이었을까요?
구제를 독점하고 있는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과부들일까요? 아니면 모든 히브리파 유대인들일까요? 아니면 사도들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2절입니다.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이 말씀에서 구제를 주도하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였다는 것입니까?
사도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헬라파 유대인들의 갈등은 갈등의 원인을 제공한 사도들에 대한 갈등이었고 원망이었습니다. 그리고 헬라파 유대인들의 자신들이 겪고 있는 부당함에 대한 나지막한 소리는 열두 사도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큰 소리는 오히려 싸움을 불러올 수 있도록 오해를 불러일으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마는 내 감정을 다스리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무조건 소리부터 높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잘못 들으면 싸움하는 사람처럼 들리기가 쉽습니다. 큰 소리는 결국 상대의 감정을 부추겨서 다툼을 일으키고 말게 됩니다. 그러나 상대방을 존중해서 자신들의 불합리함을 조용히 이야기 하는 것은 다툼을 그치고 곧 문제해결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열두 사도는 헬라파 유대인들의 사리에 맞는 원망의 소리를 듣고 맞다는 생각이 들었고 복음을 우선으로 해야 하는 자신들이 구제하는 일에나 매달려 있어서 되겠느냐 본업과 부업이 바뀌었다는데 인식을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접대하는 일 구제하는 일을 도맡아서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선출하자는 새로운 부흥으로 나아가게 되어 집니다.
3절입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그렇습니다. 교회 안에 일어난 갈등으로 인하여 오히려 교회의 일군들을 세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갈등이 없었다면 귀한 일군들을 세우는 일도 없었을 것인데 위기가 오히려 축복의 기회가 되어 진 것입니다.
4절입니다.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사도들은 구제하는 일 접대하는 일 봉사하는 일을 위하여 전담할 수 있는 집사를 선택하여 세우는 대신에 자신들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을 전하는 일에 전념키로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는 일은 자신을 세우는 일이요 말씀을 전하는 일은 성도를 세우는 일입니다. 자신이 온전히 세움을 받지 않고 남을 세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자신들이 구제할 때 드러났던 문제점 한쪽으로 치우쳐서 헬라파 유대인들의 과부들을 생각지 못하고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과부 위주로 구제가 이루어졌던 그래서 갈등이 있었고 원망이 있었기 때문에 집사들을 사도들이 임명하기보다는 성도들이 선출하도록 하였습니다. 이처럼 한 가지 갈등으로 인하여 여러 가지를 깨닫고 고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이것은 귀한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갈등 또한 예루살렘교회처럼 또 다른 축복의 기회로 삼으실 수 있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절입니다.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이렇게 해서 성도들이 일곱 명의 집사를 선출하게 되었습니다. 여기 일곱 명의 사람들의 이름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일곱 명 모두가 헬라적인 그리스적인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야곱 아브라함 시몬 유다 레위 이삭 이런 히브리적인 이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그 사람의 이름만 듣고도 이 사람이 헬라파 유대인인지 히브리파 유대인인지 분명하게 구분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열심히 인정되어서 이 귀한 섬김과 봉사의 일을 할 사람으로 뽑혀진 스데반과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니골라는 모두가 헬라파 유대인들이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예루살렘교회에서는 다수를 차지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거에서 소수인 헬라파 유대인들이 모두 당선이 된 것입니다.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인간들이 모인 집단에서는 도무지 불가능한 일입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끼리 끼리 표를 주는 것은 어떤 면에서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했던 초대교회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학연과 지연에 얽매이지 않고 교회의 미래를 보았습니다.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어야만 하는 교회의 먼 날을 내다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세계를 향한 마인드를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히브리파 유대인들이겠습니까? 아니면 세상을 경험하고 돌아온 헬라파 유대인들이겠습니까?
모든 유대인들에게 이런 마음이 들도록 그래서 헬라파 유대인들 중에서 선출이 되도록 하신 분이 누구시겠습니까? 하나님이셨습니다.
제비는 사람이 뽑아도 그 결정을 이루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아멘? 할렐루야!
이런 세계적이고 큰마음으로 오픈 되어 있는 사람들이 선출된 결과 예루살렘교회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7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세계적 마인드를 가지고 열심히 봉사합니다. 잘 합니다. 그러니까 사도들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을 전하는 일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을 발휘합니다. 믿고 돌아오는 수가 심히 많아집니다. 심지어는 사도들을 가두어 두려고 앞장섰던 허다한 수의 제사장들까지 돌아 왔습니다. 할렐루야!
교회의 갈등은 성령 받은 사람들에 의해서 새로운 조직으로 나아가는 축복의 계기가 되었고 그 결과 모든 갈등은 사라지고 큰 부흥을 가져 오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리에게 갈등이 없을 수 없겠지만 우리에게 있는 이 갈등들을 새로운 축복이 길로 나아가는 계기로 삼으시는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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