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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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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6일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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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미디어부    작성일 08-10-25 00:00    조회 4,663    댓글 0  
 
출애굽기8:16~19절   “애굽의 술사 얀네와 얌브레”  2008. 10. 26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을 애굽 왕 바로에게 보내어 내 백성을 내보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방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원래 하나님은 믿지 않아도 보이는 기적은 믿기 때문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있는 가운데서 지팡이를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뱀이 되었습니다. 바로가 이 모습을 보고 애굽의 요술사들을 불러서 그들도 지팡이를 던져서 뱀이 되게 하였습니다. 뱀이 되게 하는 것은 모세도 애굽의 요술사들도 똑같이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이 있었다면 아론의 지팡이가 그 요술사들의 지팡이를 삼켜버린 것만 달랐습니다.
이 기적의 모습을 보고도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요술사들도 할 수 있었던 것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아론의 지팡이가 요술사들의 지팡이를 삼켜버렸어도 바로왕의 마음은 전혀 동요되지 않고 오히려 그 마음이 더 완악하여졌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어머니가 회초리로 저를 때리실 때 저는 잘 모르겠는데 어머니가 나중에 말씀을 하시기를 저는 매를 맞으면 고대로 매를 맞는답니다. 그것도 잘못했다고 빌지도 않고 눈물만 똑똑 흘리면서 그러니까 다른 형제들보다 더 맞았답니다.
보통 매를 들면 잘 못했어요 싹싹 빌자않아요 그러면 덜 맞을 텐데 곧 죽어도 잘 못했다는 말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곱절로 맞았습니다.
애굽왕 바로가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권능을 보았다면 바로 꼬리를 내리고 생각을 고쳐서 “모세야 알았다 하나님의 백성을 데리고 광야로 나가서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라” 그랬다면 바로왕도 애굽의 백성도 애굽 전역도 몸서리치는 10가지 재앙으로 고통을 받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애굽 왕 바로는 점점 완악하여 고집 세우다가 10가지 재앙까지 받아야만 했습니다. 미련하게 왜 그랬을까요?
애굽 왕 바로에게는 있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른 이가 아닌 언제나 바로 왕 옆에서 능력을 보여 왔던 애굽의 요술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모세를 따라서 똑같은 흉내를 냅니다. 모세가 지팡이로 나일 강을 치게 되니 나일 강이 피로 변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애굽의 요술사들도 똑같이 물을 피로 만드는 것입니다. 모세가 한 기적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7일이 지난 후 아론이 애굽의 물 위에 손을 내미니 개구리로 애굽 온 땅에 덮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마저도 애굽의 요술사들이 똑같이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바로 왕이 그 마음이 완악하여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듣지 않고 이스라엘자손들을 내보내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너희가 하는 것은 우리도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애굽의 요술사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흉내 내는 일로 인하여 애굽왕 바로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쉽게 항복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세상이 왜 항복하지 않습니까? 우리 믿는 자들이 믿음에 있어서 흉내만 내는 정도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믿지 않는 믿는 흉내만 내는 우리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에서 무시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에게 “우리는 잘 하고 있으니까 믿는 다는 너나 잘 하세요?” 라고 말합니다.
지금부터 2천 년 전에 사도바울이 사역하던 초대교회 시절입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나중 보낸 편지인 딤후3:1~9절을 보겠습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 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바 되어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같이 그들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받은 자들이라 그러나 그들이 더 나아가지  못할 것은 저 두 사람이 된 것과 같이 그들의 어리석음이 드러날 것임이라.”
믿지 않는 사람들 이야기가 아닙니다. 믿는다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분석할 때 이런 사람들도 있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사랑할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세상에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니까 경건의 모양은 있는데 예수님은 믿는 것 같은데 경건의 능력은 없는 예수님을 믿는 삶의 열매는 없더라는 것입니다.
이 같은 자들에게서 어떻게 하라고요? 돌아서라 아멘?
음란하게도 남의 집에 들어가서 어리석은 여자를 유혹하여 죄를 짓는 이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을 믿되 형식적으로 흉내만 내는 정도가 되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못 된 짓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면서는 절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그러면서 바울사도가 지금 전하고 있는 말씀과 더불어 매우 적당한 인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모세를 대적했던 요술사 얀네와 얌브레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어떤 문제 때문에 소개하고 있습니까?
모세와 비슷하게 능력을 행사하는 그들의 흉내 내는 삶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흉내 내는 이 사람들 얀네와 얌브레는 하나님의 종을 대적하고 진리를 대적하는 사람들인데 이들의 마음은 부패하였고 버림받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흉내는 낼 수 있었지만 온전한 능력을 드러내는 데서는 더 이상 하지를 못했습니다. 이, 파리. 온역, 독종, 우박, 메뚜기, 흑암, 장자의 죽음의 재앙을 불러오는 기적을 더 이상 하지를 못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행동에 거짓되거나 악한 것이 없습니다. 얀네와 얌브레는 그들이 능력이 닿는 데까지 모세와 아론처럼 똑같이 행동함으로써 마치 저들도 모세와 같은 것처럼 보여 지고 있습니다. 모세가 했던 일을 그 두 사람도 했습니다. 이 두 사람 얀네와 얌브레를 바로나 애굽인들이나 이스라엘자손이 볼 때 모세와 별 차이가 없어 보였습니다. 모세가 기적을 행했던 것처럼 얀네와 얌브레도 잘해냈습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모세는 이스라엘자손을 애굽에서 빼어내려는 목적으로 그러나 얀네와 얌브레는 이스라엘자손을 애굽에 붙들어두려는 목적으로 기적을 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요10:10절입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우리 예수님 왜 오셨습니까? 우리로 생명을 얻게 하시려고 그것도 더 풍성히 주시기 위하여 그래서 사망에서 구원하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나 도둑인 사단은 왜 왔습니까? 양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왔습니다. 그래서 사망에 붙들어 두어 멸망시키려고 왔습니다.
예수님은 죄에서 빼어내려는 목적으로 오셨고 사단은 사망에 붙들어 두려는 목적으로 지금도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단은 오랜 경험 속에서 하나님의 일을 손쉽게 대적하게 하는 비결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대적하는 것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강권하여 병든 자를 심방하고 헐  벗은 이에게 옷을 주고 전도지를 나누어주며 그리스도를 전하고 굶주린 이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고 복음을 위해서 기도하며 찬송하는 것을 경건의 모양만을 가진 자들도 똑같이 빠짐없이 다 할 수 있습니다.
얀네와 얌브레처럼 똑같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추구하고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진리를 거역하는 일은 너무나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경건의 모양은 가지고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싫어합니다. 경건의 능력을 가지려면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하고 진리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고 자기 자신을 부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제대로 믿는 사람들이 아니면 얀네와 얌브레처럼 세상도 가지고 또 적당하게 경건의 모양도 갖춘 종교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가면을 쓴 그런 종교가 실제로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적당하게 믿기만 하면 됩니다.
사단이 처음 사용한 방법은 모세를 아예 나일 강에 죽여 버리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실패하자 모세와 비슷한 행위를 본 따서 행동하므로 하나님의 진리를 대적한 것입니다.
예전에는 하나님의 진리를 대적하기를 총과 칼 그리고 위협으로 하였지만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경건의 모양이라는 가면을 쓰고 그 안에서 갖가지 자기를 자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교만하며 비방하고 감사하지 아니하고 거룩하지 아니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때의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습관처럼 되 버린 것입니다.
얀네와 얌브레의 정신에서 돌이키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습관적 경건의 모양은 있고 속은 부패한 것에서 우리로 돌이킬 것을 말씀하십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얀네와 얌브레 정신을 가진 사람들은 겉으로는 모든 것이 정당하게 선하게 행동하고 있지만 사실상 그 영혼은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그 마음에는 하나님의 사랑도 없고 그 행위에는 말씀의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얀네와 얌브레 정신을 가지고 사는 애굽왕 바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출8:25절입니다.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
하나님의 말씀과 무엇이 다릅니까? 잘 못하면 속습니다. 분명히 다릅니다. 경건의 모양만 갖춘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비슷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단어 정도 변형시키던지 빼던지 하기 때문에 잘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얀네와 얌브로정신은 이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행동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를 찾아온 사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약간 변형시켜서 질문을 던졌습니다. 역시 예수님을 찾아온 사단도 하나님의 말씀을 변형시켜 예수님께 질문하였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비슷한 것에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26절에 “그리함은 부당하니이다.” 비슷한 것은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분명히 말합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모세가 말합니다. 27절입니다. “우리가 사흘 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되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대로 하려 하나이다.”
무엇이 다릅니까?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은 같습니다. 그런데 장소가 다릅니다. 바로는 이 땅에서 즉 애굽에서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 땅에서 예배하라는 것은 적당하게 믿으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들을 보고 즐기면서 세상에서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광야에서 예배하라는 말씀은 광야에는 세상에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사람이 살아갈 기본적인 것 양식도 없습니다. 물도 없습니다. 이 광에서 주실 수 있는 분은 누구밖에 없습니까? 하나님 아멘?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사랑하면서 하나님을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슷하게 적당하게 얀네와 얌브레 정신으로 산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일을 대적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아닙니다. 분명하게 살기 위하여 광야로 나가서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우리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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