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BER  |    |    |  
회원 로그인
회원 가입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회원가입으로 서비스 약관개인정보 보호 정책 에 동의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대한예수교장로회 선유중앙교회

SUNYOU CENTERAL CHURCH
주일오전 설교원고

bo_title_img1.png

8월 31일 주일 낮 예배 설교  
카카오톡 카카오 스토리 네이버 블로그 밴드 주소복사
   멀티미디어부    작성일 08-08-30 00:00    조회 4,725    댓글 0  
 
출애굽기 3:1~5절      “준비하시는 하나님”       2008. 8. 31
외손주가 2년을 먹던 어미젖을 뗬습니다. 엄마젖이 아프다고 붕대로 감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엄마 아야, 엄마 아야” 그러니까 초저녁에는 “엄마 아야” 하면서 자제하더니 잠을 자다가 중간에 깨어서는 엄마젖을 못 무니까 얼마나 서럽게 울어대든지 며칠 동안은 모두가 함께 고생을 했습니다. 지금은 가끔 자다가 깨어서 엄마젖이 생각나는지 한동안 보채다가 잠이 듭니다.
아이도 2년 동안 물던 젖을 못 잊어서 보채는데 모세는 애굽의 왕궁생활이 자그마치 40년입니다. 모세가 애굽이 아닌 미디안광야에서 살고 있지만 애굽의 습관들과 정신들 그리고 보고 들었던 지혜와 지식들을 어찌 그리 쉽게 버릴 수가 있었겠습니까?
오늘 본문1절입니다.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이 짧은 한 구절 말씀이지만 모세가 애굽을 떠난 지 벌써 40년이란 세월이 흐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보실 때 모세가 애굽의 것들을 다 잊어버리기까지는 적어도 애굽에서 40년만큼이나 미디안광야에서도 똑같이 40년이 지나야만 했습니다. 그러니까 미디안광야에서 1년이 지나면 애굽에서의 1년의 것들이 버려지는 것이지요. 아니 하나님 지금 한시가 급한데 이스라엘자손들은 죽겠다고 아우성인데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너무하신 것이 아니지요 하나님이 무심하신 것도 아니지요?
우리가 늦는 것이지 하나님이 결코 늦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렇습니다.
모세가 버릴 것이 그렇게도 많았던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제대로 준비되어야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음을 아셨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영혼을 구원하는 일인데 한 민족을 구원하는 일인데 준비되어야 되지요. 예수님도 하나님 자신이시면서도 몇 년을 준비하셨습니까? 30년을 준비하셨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선 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지금 무엇인가 오래 지체되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버릴 것이 아직도 많다고 여기시고 조급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받을 그릇으로 만들고 계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소망으로 인내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모세가 전에 왜 실패하였습니까?
모세는 애굽의 왕자입니다. 애굽에서의 모든 지혜와 지식을 갖추었습니다. 한 번에 사람을 죽일 정도로 무술에 능했습니다. 이런 조건이라면 누구든지 부러워할 최고의 조건입니다. 솔직히 인간적으로 실패할 것이 없습니다. 모세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만만해서 나섰습니다. 그러나 실패하였습니다. 이스라엘자손들이 능력을 갖춘 모세를 중심으로 모이기는커녕 언제 너를 우리 재판장으로 삼았느냐고 대들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깨닫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에 찬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찬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자신에 찼었던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나요? 보기 좋게 예수님의 예언처럼 예수님을 배신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자신에 찬 베드로를 우리 하나님은 베드로의 심령 속에 성령님으로 차게 하셔서 귀한 일군으로 사용하셨습니다.
모세도 자신에 찼을 때는 그 자신으로 아무 것도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했습니다. 이것 빼어내는 시간이 40년 걸렸습니다. 언제 다 빠질 수가 있었습니까? “이제 나는 할 수가 없다.” 할 나이인 80세가 돼서야 자신으로 찼었던 것이 빠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승천하시기 전 예수님의 명령이 이해가 됩니다.
“너희는 섣불리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하심을 보았다고 나가서 전하지 말고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기 전까지 마가요한의 다락방에서 꼼짝 말고 기도로 준비하고 있어라”
무슨 말씀입니까?
자신에 찬 사람들이 주의 일을 성공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국 누가 성공적으로 주의 일을 해냈습니까? 성령에 충만해진 제자들이 해냈습니다. 맞습니다. 결코 자신에 찬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이런 사실 까닭에 하나님은 모세에게도 자신감을 빼내고 믿음으로 대신 채워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2~3절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때에 ”
지금 찾아오셔서 만나주시는 하나님, 자신을 먼저 계시하여 주심으로 우리로 믿음에 서게 하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모세는 막연히 조상들로부터 듣던 하나님을 자신의 귀로 직접 듣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제 모든 주체가 바뀌는 것을 경험합니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체이시고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을 듣습니다. 여기서 모세는 큰 믿음이 채워집니다. 아멘?
롬10:17절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아멘?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지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가 우리 인생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모아서 아궁이에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알곡은 누구를 말씀하신 것입니까? 예수 믿는 성도입니다. 껍데기에 무엇으로 차 있습니까? 알맹이
알맹이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그러므로 예수님으로 차 있으면 알곡 예수님이 없으면 쭉정이
요1서5:11~12절입니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알맹이인 예수가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알맹이인 예수가 없는 자는 생명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로 차 있는 자는 산 자 예수로 차 있지 않은 자는 죽은 자 우리가 사도신경 합니다.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우리 주님 예수로 채워진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광야에 흔하게 볼 수 있는 가시나무에 불과합니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고 잘라놓으면 비비꼬여 삐뚤어지고 마는 가시나무 같은 존재가 우리인 것입니다. 이런 우리가 주목받을 일이 어데 있겠습니까?
모세가 가던 길을 돌이켜 오게 된 것이 가시나무 때문이었습니까?
아닙니다. 가시나무에 붙은 불이었습니다. 가시나무가 아닙니다. 이스라엘백성이 애굽에서 돌이켜 나오게 할 수 있는 것도 가시나무 같은 모세가 아니였습니다. 모세를 사용하시는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사건의 중심은 내가 아닙니다. 하나님이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바라보면 실망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가시나무에 붙은 불이 가시나무를 사르지 않으면서 불이 붙어 있는 것처럼 우리가 믿는 우리 하나님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로 우리를 지키시고 함께하시는 영원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교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목받아야 할 분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신 것을 말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의 일하려면 내 힘이 아니라 성령의 불 받아야 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범죄한 아담과 하와를 부르셨던 것이 생각납니다. “아담아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이렇게 하나님이 부르실 때 아담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동산나무 사이에 숨어 있었습니다. 왜요? 죄로 인하여 그 부름에 “예 여기 있습니다.”라고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모세는 “예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자기반성과 자기회개가 있고 없고의 차이입니다. 아담은 이것이 없었지만 모세는 긴 40년 동안 황막한 광야에서 별만이 떠 있는 하늘을 보며 얼마나 자기가 어리석은 사람이었고 자신에 찬 사람이었고 광야에 자란 가시나무 같이 남이나 찔러대는 대단하지도 않은 존재인 것을 반성하고 회개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하나님의 부르심에 내 여기 있습니다. 순종과 복종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것을 다 버리지 않으면 될 수 없는 모습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이렇게 자신의 것을 다 버리고 순종과 복종의 자세를 가질 수 있도록 준비하셨습니다.
과연 모세에게 순종과 복종의 마음 자세가 과연 있는가 하나님은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5절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애굽왕 앞에서 신을 벗는 경우를 지금 모세에게 떠 올리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일반 백성들은 왕 앞에 나아갈 때 머리를 조아리고 엎드리는 것으로 끝나지만 애굽의 종들은 다릅니다. 머리를 조아리고 엎드리는 것뿐만 아니라  왕 앞에서 신을 벗어야 합니다. 이것이 종이 갖추어야할 예의요 법도였습니다. 또한 종은 아니오가 없습니다. 순종과 복종만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세는 지금 종으로 충성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모세를 준비하신 하나님은 부르심을 받은 우리에게도 가장 아름답게 하나님이 준비하시고 만드시고 계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의 온 집에 모세는 신실한 종으로 그 사명을 다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온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 사명을 다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히3:5~6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모세는 하나님의 집에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의 온 집을 맡은 아들로서 신실하였는데 그 하나님의 집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하나님의 집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집인 우리를 맡으셨다면 우리가 잘 될까요 안 될까요?
그러므로 우리가 반드시 잘 될 하나님의 집인 것을 기억하고 소망을 잃지 말고 확신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멘?
지금 우리로 준비케 하시고 만들고 계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소망을 잃지 말고 확신에 거하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친한 친구로부터 귀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선물은 잘 훈련된 사냥개 두 마리였습니다. 사냥을 즐겼던 대왕은 매우 기뻐했습니다. 어느 날 대왕은 사냥개를 데리고 토끼사냥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개들은 사냥할 생각이 전혀 없는 듯 했습니다. 달아나는 토끼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빈둥빈둥 누워 있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화가 나서 사냥개들을 모두 죽여 버렸습니다. 그리고 대왕은 사냥개를 선물한 친구를 불러 호통을 쳤습니다.
\"토끼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볼품없는 개들을 왜 내게 선물했는가? 그 쓸모  없는 사냥개들을 내가 모두 죽여 버렸다.\" 친구는 대왕의 말을 듣고 실망스런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대왕이시여, 그 사냥개들은 토끼를 잡기 위해 훈련된 개들이 아닙니다. 호랑이와 사자를 사냥하기 위해 오랜 시간 훈련받은 값비싼 개들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친구의 말을 듣고 알렉산더 대왕은 땅을 치며 후회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준비하시듯이 우리를 준비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좀 늦어지는 듯 싶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토끼나 잡을 그릇이 아니로구나 사자를 잡게 하시는 그릇으로 만드시는구나 감사하며 인내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주일오전 설교동영상
24년 4월 28일 주일 예배 영상
고린도후서 4:7~15 김용우 목사
2024년 4월 28일
교회앨범
봄맞이 교회 대청소 및 새단장 
동영상앨범
22년 낙도선교회
- -
-
선유중앙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 선유중앙교회
031-954-1080
031-954-1040
yegrim@hanmail.net

회원가입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전체 최근게시글
  • 선유중앙교회 SNS를 방문해 보세요
    교회명 : 선유중앙교회 | 담임목사 : 김진수 | 주소 : 10811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독서울 5길 18-30
    교회전화 : 031-954-1080, 953-5977 | Fax : 031-954 1040 | 목사관 : 031-952-2097 | 이메일 주소 : yegrim@hanmail.net
    Copyright ©1955~2024   sunyou.or.kr. All Rights Reserved.
    031-954-1080
    031-954-1040
    yegrim@hanmail.net
    031-954-1080
    선유중앙교회 전화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