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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4일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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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미디어부   작성일 08-08-23 00:00    조회 4,628    댓글 0  
 
출애굽기2:16~25절       “후원자인가 함께하는 자인가?”  2008. 8. 24
신약시대의 히브리서를 기록한 히브리기자가 다음과 같이 모세에 대하여 소개하였습니다. 히11:25~26절입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모세가 살고 있던 곳은 바로 왕궁이었습니다. 바로 왕궁이 어떤 곳이었는가를 히브리기자는 무엇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까?
죄악의 낙을 누리는 곳이었다고 말합니다. 당시에 왕궁의 타락상을 이야기해 주는 말씀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왕궁에서는 빈번한 잔치로 향락에 차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사치하고 음란하였을 것입니다. 또한 매우 쾌락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세가 생활하고 있는 그의 주변 영역은 죄악의 낙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애굽의 모든 보화는 궁정에 있었기 때문에 모세가 얼마든지 사용하도록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얼마든지 자기가 원하기만 하면 죄악의 낙을 누릴 수 있었고 애굽의 모든 보화를 물 쓰듯 쓸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세가 부귀영화를 꿈꾸는 사람이었다면 얼마든지 죄악의 낙과 애굽의 모든 보화를 쓸 수 있는 가능한 위치와 지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렇게 살다가 생을 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믿음의 삶이 아닙니다. 믿음의 삶은 죄악의 낙이 주는 즐거움이나 애굽의 모든 보화와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마음에 품고 자기 백성을 사랑하는 믿음의 사람 모세가 상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신의 믿음을 어떻게 보여주었습니까?
멸시받고 고난 받는 노예생활에 쪄든 이스라엘자손들과 그 고난을 함께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을 히브리기자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자손을 후원하며 돕는 정도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라고 볼 수 없습니다.
적어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로 기록될 수 있는 삶은 이스라엘자손의 고난에 함께하는 삶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후원자는 많습니다. 아합의 시대에 궁내대신 오바댜는 선지자 7천명을 굴에 숨기고 저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였습니다. 그러나 함께 하지는 않았습니다. 함께 한 사람이 따로 있습니다. 엘리야선지자였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민족의 아픔과 불신앙의 회복을 위하여 바알의 선지자들과 목숨을 건 일전을 치러내는 바로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
신약시대에서는 니고데모나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에게 호의적이고 나중에는 자신의 무덤을 제공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후원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하지는 않았습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돕는 후원자가 아닙니다. 함께하며 주님과 친교를 나누는 자를 원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마음이고 하나님의 이 마음을 실제로 보여주셨습니다.
구약시대의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돕는 자로서의 하나님이셨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심은 인간 속에 오셔서 함께하시는 것이 아니셨습니다. 돕는 자로 함께 하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삶 속에 함께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것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1:23절입니다. “보라 처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임마누엘이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와 비로소 함께 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성경은 또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하여 믿는 자인 우리 속에 들어오신 예수님을 어떤 분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빌2:6~8절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나님이 우리 죄악 된 인간과 함께 사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높고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독생자로 오셔서 우리 대신 우리 죄를 지시고 온갖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자를 당신의 자녀 삼으시고 우리와 끊임없이 교제를 나누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아멘?
요1:12절입니다.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아버지가 자녀와 깊은 친교를 나누는 것처럼 우리 하나님은 우리로 자녀 삼으시고 우리와 함께 깊은 교제를 나누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아멘?
갈2:20절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 죄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믿는 자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내가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하시는 그 분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삶이 우리가 세상에서 사는 삶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할렐루야!
그리스도는 우리의 후원자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하여 인류의 죄를 뒤집어쓰시고 멸시와 채찍을 받고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는 이런 수모를 당하셨습니다.
모세도 마찬가집니다. 그가 가만히 있으면 그리고 적당히 후원자가 되면 평생 편안하게 죄악의 낙을 누리면서 온갖 보화에 묻혀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후원자가 아니라 고난 받고 멸시 받는 노예인 자기 백성과 함께 하기 위하여 죄악의 낙도 버리고 애굽의 모든 보화도 버렸습니다. 그리고 애굽의 노예인 이스라엘자손과 함께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히브리기자는 그리스도와 같은 고난이라고 여겨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라고 적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멋있었던 모세가 자신을 죽이려는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가고 맙니다. 어제의 용맹은 사라지고 도망하는 모세를 봅니다. 이런 모세를 하나님이 들어 쓰셔서 이스라엘백성을 출애굽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여기서 무엇을 배웁니까?
모세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를 사용하신 하나님이 위대하시다 아멘이십니까?
절대로 내가 아닙니다. 높이 찬양 받으실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십니다.
종교 개혁자인 죤 녹스의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친구를 붙잡고 고백합니다. \"여보게 나도 이단이 될 뻔 했네. 어제 저녁 문득 내가 교회와 진리를 위하여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며 일했으니 하나님도 조금은 나를 참작해 주시겠지 하는 생각을 했네. 이때 내 머리를 스친 성경 말씀은 \"네가 가진 것 중에 내가 주지 않은 것이 무엇이냐\"하는 말씀이었네. 여보게 나와 함께 기도하세\"하며, 녹스는 감명 깊은 기도를 남겼습니다.
\"하나님이시여, 내가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입니다. 아! 아닙니다. 하나님! 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은혜가 내 곁에 있는 것입니다.\" 아멘? 우리도 이 신앙을 내 신앙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빌2:13절을 항상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아멘이십니까?
16~17절입니다. “미디안 제사장에게 일곱 딸이 있었더니 그들이 와서 물을 길어 구유에 채우고 그들의 아버지의 양떼에게 먹이려 하는데 목자들이 와서 그들을 쫓는지라 모세가 일어나 그들을 도와 그 양떼에게 먹이니라.”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 오기 전에 자기 백성을 위하여 섬기는 자로 있었습니다. 자신의 좋은 위치와 지위를 가지고 자기 백성을 섬겼습니다.
그렇게 섬겼던 모세가 누구에게 당하였습니까?
모세가 섬기던 바로 이스라엘자손, 섬김을 받으며 모세에게 혜택을 받던 그 백성이 오히려 모세를 해고지하였습니다.
사람에게 당한 상처는 커서 다시는 사람에게 베풀려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상처로 인하여 교회를 나오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나와도 사람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런 모습들이 인간에게 당한 상처에 대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치유책입니다. 그러나 이런 해결책으로는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진정한 마음에 기쁨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모세를 보세요 모세는 인간에 대한 상처를 분명히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불구하고 또 인간을 돕고 있음을 봅니다. 전에는 죽여서 모래에 파 묻어 버리는 것으로 자기 백성을 섬겼습니다. 섬기는 것은 좋지만 이것은 좋은 방법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번에 미디안광야에서는 죽이는 섬김이 아니라 쫓아버리는 것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방법을 달리하여 섬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에게 시험 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섬기던 방법을 고쳐서 다시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그랬더니 모세에게 아무도 아는 이 없는 그곳에서 새로운 살 길이 열려졌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자손에 대하여 모세는 아무런 소식도 들을 수 없었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자손들을 잊지 않으셨고 이스라엘자손들의 고통의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모세가 양치는 목자로 생을 마쳤습니까? 아닙니다.
이스라엘자손들이 부르짖음으로 그만 끝이 났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때가 되니 모세를 이스라엘자손을 인도하는 위대한 지도자로 삼으시고 광야에서 불러내셨습니다. 주님이 기도하는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것이 곧 친교입니다. 이것이 주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아멘?
미국의 치즈왕 그래프드는 처음부터 막대한 자산을 갖고 사업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마차에 치즈를 싣고 다니며 팔던 가난한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 치즈를 팔러 나가기 전 하나님께 꼭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때마다 [판매전략]에 대한 지혜가 생겨 사업이 번창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수많은 트럭으로 치즈를 공급하는[치즈왕]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래프드는 성공 비결을 묻는 질문에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기도를 드리면 지혜가 생겼고 그것을 실천했을 뿐입니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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