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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대한예수교장로회 선유중앙교회

SUNYOU CENTERAL CHURCH
수요예배 설교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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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5일 삼일 저녁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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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미디어부    작성일 08-11-05 00:00    조회 1,575    댓글 0  
 
창세기22:6~19절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    2008. 11. 5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백세에 얻은 아들을 모리아 산에 제물로 바치라고 하셨을 때 이삭을 데리고 모리안 산 밑에 도착한 아브라함이 먼저 한 일은 하나님을 예배한 일이었습니다.
5절입니다. “저기 가서 예배하고” 아브라함이 지금 경황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 어쩌면 그렇게 차분할 수 있습니까?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는 일 보다 먼저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을 중요시하는 아브라함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다른 급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처럼 그 가운데서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예배하는 것임을 기억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그냥 예배하는 자가 아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입니다.
6절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지금 아브라함이 번제에 쓸 나무를 번제물로 드릴 아들 이삭에게 등짐져서 지우고 자신은 불과 칼을 양 손에 들고 모리아 산으로 올라갑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함에 있어서 그 믿음과 사랑이 살아있고 진실한 것일 때 무엇이 따르게 됩니까? 수고가 따르게 됩니다.
마음만 드리는 신앙행위도 많고 말로만 하는 신앙행위도 많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신앙행위는 마음과 말만 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실제로 행동하는 신앙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포도원 주인이 큰 아들에게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까 큰 아들이 ‘예’ 하고 대답은 해놓고는 실제로는 가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말로만 하는 신앙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또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예수님과 제자들이 듣는 가운데 장담하기를 “다른 사람들은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절대로 버리지 않겠습니다.” 실제로 주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베드로였습니다. 그러나 행동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떠나 도망하고 말았습니다.
또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실제로 베드로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제사장의 집에서 일보는 여자아이에게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마음도 말도 보여주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시련이 왔을 때 그 마음과 말을 지키기는 어렵습니다.
아브라함은 좋을 때뿐만이 아니라 시련의 때에도 변함없이 그의 행위의 수고로써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사랑을 나타내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제거가 되는 현장에서도 “하나님을 여전히 사랑합니다.“ 할 수 있는 신앙은 참으로 축복입니다. 이 신앙은 하나님의 축복에 맞춰진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게 맞춰진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이 참으로 좋다 괜찮다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은 하나님이 주신 이삭보다 하나님 자신에게 자기의 축복의 원천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들 이삭이 건장한 청년으로 있을 때 하나님이 나로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하시더니 이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겠구나 비록 아들 이삭이 있어도 하나님이 해 주심으로 그렇게 될 수 있음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비록 아들 이삭이 제물로써 드려져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하나님이 네 자손을 이렇게 별처럼 모래알처럼 많게 해 주겠다고 하셨으니 그렇게 하실 것을 믿는 믿음이 바로 아브라함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음을 믿었습니다. 이 신앙은 십자가 신앙을 뛰어 넘어 부활신앙을 나타낸 것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히11:17~19절입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았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데 이삭이 중요합니까? 아닙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수 있는 하나님이 중요하십니다. 아브라함은 바로 이 사실을 믿었기 때문에 이삭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최고 사랑하는 것을 아브라함이 입증할 수 있었던 때가 언제입니까? 전에 하나님을 사랑함을 입증할 만한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리아산에 자신의 독자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것을 믿음으로 드려지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12절입니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이제야 아시겠다는 말씀을 그 전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보시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시기는 하여도 행동으로 볼 수는 없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음으로 산다는 것을 행동을 통해서 아시겠다고 하십니다. 행동으로 보여줄 때 하나님은 성경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약2:21~22절입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아멘? 할렐루야!
세상사람들이 볼 때 아브라함의 지금의 행동은 미친 살인자입니다마는 하나님이 보실 때는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고 경외하는 의인인 것입니다.
우리가 행동하는 믿음으로 살 때 세상사람들은 예수에 미친 사람으로 정도에 지나친고 볼 것이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믿음이 있는 의로운 자로구나 하실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고 말씀대로 갈대아 우르를 떠났습니다. 이미 이때 하나님은 그를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때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경외하는 자의 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독자 이삭을 바칠 때 하나님은 하늘의 음성으로 내 이제 알겠다 네게 있는 믿음의 의를 알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예수 믿음으로 우리는 의롭다함을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을 행동으로 나타낸다면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음성인 내가 이제야 알겠다 네 믿음이 가지고 있는 의가 나를 경외하는 의인 줄을 아시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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