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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대한예수교장로회 선유중앙교회

SUNYOU CENTERAL CHURCH
수요예배 설교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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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5일 삼일 저녁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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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미디어부    작성일 08-10-15 00:00    조회 1,557    댓글 0  
 
창세기21:1~7절        “말씀대로 행하시는 하나님”       2008. 10. 15
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일이 25년 만에 성취된 것입니다. 참으로 끈기 있게 하나님께 의탁한 복된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되며 또 믿고 기도하며 기다리면 이처럼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지하면 절대로 낭패 보는 일은 없을 줄로 믿습니다.
세상의 어둠과 불만스러운 일들 속에서도 하나님을 우리의 기업으로 모신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인 것입니다.
이 일의 성취를 위하여 아브라함이 쏟은 일이 무엇입니까?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라를 통해서 주시리라고 한 약속에 대하여는 잊어버리고 기껏해야 자기 종을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하나님께 불 신앙적 말씀을 드렸고 하갈이라는 여종을 통해서 난 이스마엘이 그럼 내 상속자라고 말하는 연약한 믿음밖에는 보여준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런 아브라함에게 사라가 잉태하므로 상속자를 얻도록 하셨습니다.
이스마엘도 아브라함의 자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는 반드시 사라를 통해서 나는 아들이어야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마엘은 약속에 의해서 난 자녀가 아니라 전혀 하나님의 약속과는 관계없이 사라에 의하여 자신의 여종을 남편 아브라함에게 들여보내서 난 육의 자녀였습니다.
육의 자녀 이스마엘이 단지 잉태만 하였을 때 이 육의 자녀 때문에 아브라함은 입장이 곤란하고 참으로 처리하기가 난처한 어려움에 처했었습니다.
육의 자녀가 태어났을 때도 약속의 자녀를 얼마나 어렵게 하였는지 모릅니다. 또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함에 있어서도 육의 자녀는 커다란 방해거리였습니다.
자 여기서 우리가 무엇을 깨닫습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육이라는 것은 절대로 하나님을 위해서 이루는 일이 없습니다.
사라가 13년 전에 약속의 자녀가 아닌 육의 자녀가 태어나도록 그녀의 육적인 생각이 앞서서 행하므로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진 육이라는 것은 이처럼 하나님을 위해서 이루는 일이 없습니다.
이런 육에 무엇이 필요합니까? 하나님의 돌보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대로 육에 행하시는 일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돌보심과 말씀대로 육에 행하시는 일이 이루어지기까지 잠잠하고 기다림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육의 생각대로 하나님의 약속을 무시하고 행한 결과 이스마엘의 잉태에서부터 시작해서 낳고 난 후 성장하여서까지 얼마나 마음에 상처를 받고 어려움을 겪었는지 모릅니다.
아마 사라가 이 일로 인하여 많이 깨달았을 것입니다. 육이 나서서 좋은 일은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육은 잠잠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육은 잠잠히 죽은 것처럼 있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비추이기를 시작합니다.
육은 잠잠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붙잡을 때 2절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하나님이 정하신 때 말씀하신 시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일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이라면 조급해서 일을 그르치지 않고 하나님이 정하신 때를 믿음으로 기다리므로 기쁨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좀 더디므로 오는 상처를 이기고 조급함도 물리치고 하나님이 그 정한 때에 가장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을 알고 마음의 평안을 누려야 할 것입니다.
합2:3~4절입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여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은 다 때가 있는데 그 기록 된 대로 거짓없이 이루어지는데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면 반드시 말씀하신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은 기다리지를 못하지만 믿음은 기다려서 그 약속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육의 눈으로 보면 그런 날이 올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렇지만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탁하게 되면 정하신 때가 이를 때에 그 입술에는 슬픔과 탄식 대신에 웃음으로 가득 차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할렐루야!
사라가 그렇지 않았습니까? 그가 육신의 생각으로 일을 저질러서 육의 자녀 이스마엘이 태어나므로서 얼마나 마음이 괴롭고 힘들고 참기 어려운 일들이 생겨서 그녀의 입에는 슬픔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런 그녀가 육을 바라볼 때 남편도 그렇고 자신도 그렇고 얼마나 절망적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녀의 입에는 슬픔이 찰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그녀가 하나님의 계시된 약속이 이루어지는 날 어떻게 되었습니까?
6절입니다.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정한 때에는 웃음으로 채우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웃음으로 채움 받기 전에 5절에 매우 절망적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세라.”
육은 하나님께 영광 돌릴만한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인간의 궁지가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낼 기회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닌다. 아멘?
궁지에 있었던 그녀가 무엇을 경험하였습니까?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는 역사” 아멘? 할렐루야!
약속의 자녀 이삭이 이렇게 출생하였습니다. 사라의 입은 웃음으로 넘쳤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가정에 새로운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에 변화는 단지 약속의 자녀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 믿지 않고 살다가 우리 안에 예수님을 모셔 들인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기 전과 달라진 것은 우리 안에 예수님이 들어오셨다는 것입니다.
약속의 자녀가 아브라함의 가정에 새 구성원으로 들어오면서 무엇이 보이기 시작했습니까? 이스마엘의 실체가 드러난 것입니다. 9절입니다.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
이삭이 새 구성원으로 합세하기 전엔 이스마엘이 이런 존재인 것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삭이 태어나 그 가정에 합류하면서 이스마엘의 실체가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이스마엘은 육의 자녀입니다. 여종의 아들입니다. 아무리 아브라함의 집에 살아도 큰 나라를 가져도 그는 여종의 아들이라는 것을 벗어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아무리 여종의 아들에게 놀림을 받아도 약속의 자녀요 종이 아닌 자유하는 여인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요3:6절에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그러므로 중생이라는 것은 옛 성품인 육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새 성품이 새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새 생명이신 예수님의 새로운 일원으로 참여하시는 것입니다. 죄인이 마음으로 믿어서 입으로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순간 새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가정에 이스마엘이 있고 새로운 구성원 이삭이 들어온 것처럼 이스마엘이 변화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삭이 들어온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구주로 믿을 때 우리의 육의 성품은 그대로 있는 가운데 새 생명이신 예수님이 들어오신 것입니다. 변화가 아니라 결국 10절에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 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므로”
사라의 이야기가 이스마엘을 내 쫓으라고 합니다. 종의 아들은 아버지의 기업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소리를 들은 아브라함은 고민합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어떤가요?
12절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하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이니라.”
하나님의 생각도 역시 같았습니다.
우리가 거듭난다는 것은 우리의 육이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육으로 난 것은 여전히 육입니다. 육적인 요소들은 우리의 심령에서 내쫓는 것으로 해결되고 남는 예수그리스도의 새성품이 드러나므로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우리의 입에 웃음이 넘치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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