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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전3:5~7절 “남편과 아내 서로에게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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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4-02-14 16:34    조회 73    댓글 0  
 
벧전3:5~7절  “남편과 아내 서로에게➂” 2024. 2.14
베드로사도는 4절에서 단장하여야 할 것으로 <숨은 사람> <심령>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사도는 고후4:16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바울은 겉사람을 육체로 표현하고 속사람을 영혼으로 본다는 거지요 그렇다면 베드로가 말하는 숨은 사람이란 육체의 겉모습과 대조가 되는 인격과 성품을 말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사도는 예수 믿는 성도들이 외모에 신경 쓰기보다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들로서 예수님을 닮은 인격과 성품을 말씀하고 있는 거지요
그러면서 예수그리스도의 인격과 성품을 특정지어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이랍니다. 여기 <온유하고> 헬라어 <프라에오스>는 <친절한> 또는 <부드러운>이란 의미인데 예수님도 자신의 인격과 성품을 마11:29절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안정한> 헬라어 <헤쉬키우>는 <좋지 않은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평안함>의 의미거든요 그러니까 불신남편으로 인해 요동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안정한, 헤시키우 하라는 거고 예수님의 온유한 인격과 그분의 흔들리지 않는 안정한 성품을 닮아가는 것이 하나님 앞에 값진 거라는 거지요.
5절을 보시지요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여기 <전에> 헬라어 <포데>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외모의 단장보다는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으로 단장하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 구약의 여성도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다는 말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살았다는 거잖아요. 히11:13절에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약속들을 환영하며 외국인과 나그네로 사는 삶을 말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던 믿음의 여인들을 뭐라고 부릅니까? 거룩한 부녀랍니다. 그렇다면 거룩한 부녀들은 윤리적 또는 도덕적으로 정결해서 거룩함이라는 겁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성령의 감동을 받았으므로 오는 거룩함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 이삭의 아내 리브가, 야곱의 아내 라헬과 레아를 염두해 두고 베드로사도는 포데, 전에 라고 네 명의 족장들의 아내들을 말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았던 거룩한 부녀들은 어떻제 자신을 단장했다고 말씀합니까? 순종함으로 그렇습니다. 구약의 하나님께 소망을 둔 네 명의 믿음의 족장들의 아내들은 외모로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음으로 단장하기보다 어떻습니까? 자기 남편들을 조용히 공경함으로 자신들을 꾸몄다는 거고 베드로사도는 이 네 명의 여인들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모델로 제시하고 있다는 거지요 그렇다면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신부이니 신랑이신 예수께 조용히 공경하고 믿음으로 순종함으로 그리스도인들로서 그리스도인답게 단장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6절을 볼까요.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전에 거룩한 부녀, 하나님께 소망을 둔 여인들을 이야기하면서 지금 누굴 예로 들고 있습니까? 사라입니다. 사라는 아브라함의 아내인데 그 사라가 자기 남편을 <주> 헬라어 <퀴리오스>라고 했다는 겁니다. 창18:12절에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여기 <주인> <퀴리오스>인간이 예수님이나 하나님에 대한 호칭으로 <퀴리오스>라고 부르고 국민이 황제를 부를 때 퀴리오스라고 부르고 노예가 주인을 부를 때 퀴리오스라고 불렀다는 겁니다. 이런 관계속에서 퀴리오스라고 부르는 것은 어떤 의미라는 겁니까? <철저하게 순종하겠다>라는 말이거든요. 그러면 사라가 남편을 히브리어 와도니 헬라어 퀴리오스라고 부른 것도 순종하겠다는 의사표시라는 겁니다. 우리 어머니 때 할머니 때 남편을 말할 때 우리 쥔 양반이라고 한 것을 보면 뭡니까? 남편에게 철저하게 순종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표현이었다는 거지요 그리고 사라는 실제로 철저하게 남편 아브라함에게 순종했다는 거 아닙니까? 이처럼 남편에 대한 사라의 순종을 선을 행한 것이라는 거지요 그렇다면 그리스도인 아내들이 남편에게 순종하는 선을 행하는 행위는 그 당시 사회가 그렇게 인식하고 살아가니까가 아니라는 거지요 하나님께 소망을 둔 거룩한 부녀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믿음의 조상으로서의 사라를 말하면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그리스도 예수로 거룩해진 믿음을 가진 우리 신약의 아내들이 누구랍니까? 그의 딸이라는 거 아닙니까? 뭡니까? 당연히 믿음의 어머니를 따라야 한다는 거잖아요. 그 딸이 된 증거가 뭡니까? 순종하는 거고 이교도 남편의 핍박으로 인해 어떤 두려운 일에도 무서워하지 않는다면 사라의 딸이라는 겁니다. 사51:2절에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에 내가 그를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였느니라> 우리는 주님의 신부 그러므로 순종과 어떤 핍박과 어려움에도 무서워하지 않는 신앙으로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7절을 보자구요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뭡니까? 가정에서 남편들이 보여야할 올바른 자세를 말씀하고 있음을 봅니다. 여기 남편들이 가정에서 따라야 할 지식이란 뭘 말하는 걸까요? 하나님께서 결혼제도를 세우시고 그 결혼제도에 두신 하나님의 뜻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복종하듯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결혼제도의 뜻에도 순종하여 아내를 존귀하게 여기고 사랑해야 한다는 거거든요 히브리어 이쉬, 남자의 갈비뼈로 만든 이솨, 여자가 하와잖아요. 갈비뼈가 가지는 의미는 너무 소중한 곳에서 나왔다는 거고 내 사랑하는 몸에서 나왔다는 거거든요 그러므로 아담의 고백이 뭡니까? 창2:23절에 하와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뭡니까? 소중하고 사랑스럽다는 거잖아요. 그 당시 사회는 아내를 남편의 소유물처럼 대했고 그래서 함부로 아내를 대하는 일이 잦았다는 겁니다. 그리고 베드로사도는 아내를 더 연약한 그릇이라는 거지요 여기 <그릇> 헬라어 <스큐에이>는 <불로 구워낸 질그릇>을 말하거든요 사도바울은 고후4:7절에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쉽게 깨질 수 있는 그릇이라고 말했고 사도요한 역시 계2:27절에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 인간을 깨지기 쉬운 질그릇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거지요 그리고 베드로는 남자도 질그릇이지만 여자는 더 잘 깨지기 쉬운 질그릇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겁니다. 아내를 왜 귀히 여기랍니까? 첫째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는 자니까 둘째는 무엇보다 아내에게 함부로 하면 기도가 안 된다는 거 기도가 막힌다는 거 막히는 대상이 사람이 아닙니다. 기도입니다. 언제나 아내를 하나님 나라를 함께 유업으로 받을 줄 알고 소중히 존중히 여기고 사랑하며 살아 기도가 막히지 않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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