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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 설교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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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전3:1절 “남편과 아내 서로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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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4-01-30 18:48    조회 75    댓글 0  
 
벧전3:1절          “남편과 아내 서로에게”          2024.1.31.
2:11절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우리가 본향인 천국에 들어가기 전까지 거류민과 나그네로 살아간다는 거고 거류민과 나그네는 육체의 정욕을 끊임없이 제어해야 힌다는 거지요 왜 그렇습니까? 육체의 정욕대로 살던 우리가, 예수 믿고 성령의 능력으로 육체의 욕망들을 누르면서 살아가는 때문이라는 거지요 오직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며 살 때는 항상 영적 승리를 거두게 됨을 믿습니다. 육체의 정욕대로 살지 않는 것은 우리가 누구라는 걸 강조하고 있습니까?  <거류민> 헬라어 <파레피데모스>와 <나그네> <파로이코스>라는 겁니다. 벧전1:22절에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우리는 모두가 거류민이요 나그네로 말씀에 순종하고 영혼을 깨끗이하고 형제를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관점에서 남편과 아내는 서로에게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제목으로 은혜받기를 원합니다.

1절을 보자구요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인생은 나그네길이고 거류민의 삶이라는 것을 남편과 아내로 맺어져 살면서 젊은 시절, 꽃다운 시절 모두 함께 보내고 이제는 몸이 성하지 않고 여기저기 아픈 데가 생겨 살아온 세월이 만만치 않았음을 느끼며 살 날보다 이제 영원한 본향을 향해 갈 날이 가까이 왔음을 바라보면서 애틋한 사랑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여기 <아내들아> 헬라어 <귀나이케스>는 <귀네>의 호격 복수형 단어로 결혼한 여자 또는 아내를 일컫는 말이라는 거지요 아내들을 부르면서 <이와 같이>는 뭘 말합니까? 2:13절에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아내들아 모든 제도가 주를 위해 순종하듯이 순종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2:18절에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사환이 관용하는 주인만이 아닌 까탈스러운 주인에게도 순종한 것처럼 아내들아 남편의 행위와 상관없이 순종하라는 거지요 남편의 인격이 존경받을 만하지 못해도 사랑  받게 못하고 신뢰받게 못하더라도 순종해야 한다는 겁니다. 남편과 아내의 제도 역시 하나님이 정하신 제도로 창조질서를 위해서 순종해야 한다는 걸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초대교회의 구성원이 지금도 그렇지만 지금보다도 더 여성위주로 교회구성원을 이루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다가 그 당시 남성들은 대부분이 이교도들이었을 겁니다. 베드로사도는 아내들에게 남편에 대해 순종이란 원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왜 순종합니까? 너도나도 아닌 <주를 위하여>라는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는 거지요 그리고 어떤 태도랍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라는 겁니다. 무엇과 비슷합니까? 원리도 동기도 태도도 사환들과 유사하고 나라의 제도에 대응하는 백성들과도 유사합니다.
남편에 대한 아내의 원리는 <순복하라> 헬라어 <휘포탓소메나이> 여기 <휘포> 자주쓰는 단어지요 <~아래 머물다> 그러니까 <~영향 아래에 두다>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내는 남편의 영향 아래에 머물러야 한다는 거지요 이 원리는 인간의 관습상의 문제라기보다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정하신 창조질서의 문제라는 거지요 이는 신분상의 종속이 아니라는 겁니다. 기능상 질서상의 종속이라는 거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남편, 단수일 때 <아네르>인데 <남편들> 복수일 때는 <안드라신>이거든요 아내는 남편에 대해 창조질서상 종속적 협력의 관계라는 겁니다. 이 관계는 절대로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남편과 아내는 한 몸 된 상태이고 하나인 관계에서의 종속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머리에서 지시하고 팔, 다리가 움직이는 것과 같습니다. 머리의 명령을 듣지만 주인과 종의 부끄러운 관계가 아닙니다. 기능상 종속하는 관계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한 몸으로 기능적 종속으로 협려하는 것이라는 거지요 아내와 남편의 관계도 이와 같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순종하되, 어떤 상황에서도 순종합니까? 남편이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그리하랍니다. 여기 <말씀> 헬라어 <토, 정관사 그/ 로고 말씀>으로 <토 로고> <그 말씀>이라면 오직 하나의 말씀인 <복음>을 말한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남편이 복음을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순종하지 않는> 헬라어 <아페이두신>은 <믿기를 거절하며 반항하는>이란 의미로 단순한 불 신앙이 아닌 적극적 불 신앙을 말한다는 거지요
그 당시 사회상을 들여다보면 여인이 시집을 가잖아요. 그러면 남편의 관습과 종교의식까지 받아들이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그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 특히 흩어진 디아스포라 기독 여성도들이 교회 생활하는 것에 대해 남편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과 자기 집안의 종교를 받아들이지 않는 아내들에게 행하는 폭력적이고 악랄한 핍박을 견디어 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거지요 이런 상황에서 베드로사도는 뭘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아무 조건을 달지 말고 남편에게 순복할 것을 말씀하고 있음을 본다는 거잖아요. 그러면서 순복해야 할 이유를 뭐라고 말합니까? <말로 말미암지 않고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함>이라는 거지요 무엇입니까?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교도들 남편들이라도 그들의 아내들이 보여주는 무언의 헌신적 행실이 불신남편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로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고 정결한 생활을 통해서라는 겁니다. 남편에게 좋은 아내가 되는 것이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길이 됨을 말씀합니다. 아내의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생활은 불신남편을 회개에 이르게 하는 능력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베드로사도는 이혼과 같은 대응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창조질서에 따른 부부간의 협력 종속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일 뿐 아니라 남편을 구원으로 이끄는 기회를 스스로 차단하는 것이 된다는 거지요 이혼은 더 나아가 그리스도교에 대한 나쁜 평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다는 겁니다. 따라서 베드로사도는 그리스도인 아내들을 향해 불신남편에게 순종하는 자세를 통하여 남편을 감화시킴으로 그들을 구원할 기회를 찾으라고 권면하고 있음을 본다는 겁니다. 이러한 권면은 초대교회 확장에 큰 영향을 끼쳤음에 틀림없습니다. 베드로사도는 바로 이와 같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그리스도인 아내들에게 남편에 대한 철저한 순종의 행동으로 남편의 영혼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귀한 기회로 삼기를 권면하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모니카라 하면 어거스틴의 어머니요 파트리 기우스의 아내임을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거스틴이라하면 아버지 파트리 기우스보다 어머니 모니카를 생각하면서 칭찬합니다. 이유는 어거스틴이 성자가 된 것도 모니카의 덕분이요 파트리 기우스가 이름이 나 있는 것도 아내 모니카의 내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파트리 기우스는 예수를 믿지 않았고 아내 모니카는 철저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니카는 남편에게 어찌나 온순하고 순종했던지 남편이 성급하고 난폭했음에도 불구하고 잘 비위를 맞추어서 내조를 잘했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모니카의 남편이 화를 내고 폭언을 하면 같이 대항하거나 변론하지 않고 그 남편의 곁을 슬그머니 떠나 있다가 남편이 화가 가라앉고 정신이 들면 돌아와 온순한 말로써 문제의 일에 대한 경과를 말하고 무엇을 어떻게 잘못되었는가를 천천히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설득을 하여 화를 풀어주었다는 것이다. 우리 아내들에게 남편의 영혼을 먼저 생각함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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