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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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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 설교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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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1:22~27절 “말씀을 들음과 실천”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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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3-05-30 18:14    조회 225    댓글 0  
 
약1:22~27절          “말씀을 들음과 실천” ②        2023.5.31.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새로운 생명으로 중생하여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이 내면적 성격변화가 이루어졌음에 대해 뭘 말합니까? 실천이 어려운 부분인데 그것은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는 것 그리고 성내는 것도 더디 하라는 겁니다. 보통 사람들은 성향은 어떻다고 말씀드렸습니까? 잠18:2절에 <미련한 자는 명철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하느니라> 그러면 그 누구와도 어떤 가정공동체 또는 직장공동체 또는 교회공동체 화목할 수가 없는 거지요 다른 이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고 나는 꼭 필요한 칭찬과 격려 위로의 말만을 주로 하는 모습을 통해 예수 생명으로 사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의 모습을 드러내라는 거지요 그리고 또 우리가 예수 믿어도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것이 성질이 죽지 않는 거잖아요 나이가 들어야 어느 정도 꺾이지 좀처럼 이 화가 죽지 않는다는 거 아닙니까? 특별히 우리 백성은 마음에 화가 있는 백성이라잖아요 그러니까 좀처럼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어려운 사람들이 대한민국 국민인 거지요 성내기를 더디 해야 그래야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가 있다는 거 아닙니까? 화를 냄으로 마음의 평정심이 무너져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낼 수가 없다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거듭난 새 생명으로 사는 하나님의 소유인 백성들의 내면에 성내는 것 외에 또 있는 것이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이라 했잖아요.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이기려면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을 때라는 사실을 지난 주 말씀을 드렸습니다.

22절을 보시지요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유함으로 마음에 받아서 그 말씀으로 한 성격하는 그 성질도 더러운 것도 넘치는 악도 버리라는 건데 말씀만 듣는 자가 아니라 그 말씀을 행하자가 되라는 겁니다. 여기 <행하는 자> 헬라어 <포이에타이> 무엇을 하나님의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고 그 말씀대로 행하여 성질도 더러움도 악함도 이기라는 겁니다. 롬2:13절에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뭡니까? 대다수의 사람들이 듣기만 한다는 거잖아요 그 결과를 예수님이 말씀하셨잖습니까? 마7:26~27절에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야고보사도는 듣기만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랍니까? 자기를 <속이는 자> 헬라어원형이 <파랄로기조마이>는 <파랄> <정도이탈>과 <로기조마이> <계산하다> 그러니까 속이는 자란 <정도에서 벗어난 잘못된 계산을 하는 자>란 의미라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스스로를 속이는 자인데 왜 그렇습니까? 이렇게 하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이 자신을 기뻐하실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거거든요 이것이 뭐예요 자신을 스스로 속이는 자 팔랄로기조마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말씀만 듣고 행하지 않는 자에게 어떤 은혜도 주시지 않을뿐더러 기뻐하시지도 않으십니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동하지 않았다면 아브라함은 죽을 아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이 수풀에 뿔 걸린 숫양을 예비하시는 것을 맛보지 못했을 거고 거기서 누리는 은혜와 기쁨을 전혀 체험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이 행위를 의롭다고 하셨고 하나님은 독생자를 보내시는 놀라운 일까지 허락하셨으니 우리는 말씀만 듣고 행치 않는다면 은혜 받았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있다고 스스로를 속이는 자가 된다는 거지요

23~25절을 보시지요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여기서 듣기만 하는 자에 대해 또 다른 설명을 하고 있음을 봅니다.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다에서 <생긴> 헬라어 <게네시스>는 <창조된 본래 타고난 얼굴>을 의미하는데 거울로 보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 보다는 스쳐지나가듯이 보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는 거지요 왜냐하면 <보다> 헬라어 <카타노에오>는 <관찰하며 주의 깊게 보다>란 의미거든요 여인들이 화장을 하는 경우 거울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울에서 돌아서면 내 얼굴이지만 정확히 그려내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는 거울을 봐서 이것이 잘 못되었구나 발견하고 깨닫지만 돌이키지 않는 것과 같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말씀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봤지만 보기만 하고 고치지 않는다면 이는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라는 거 아닙니까?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거울에서 벗어나면 곧 바로 잊어지는 얼굴처럼 말씀에서 벗어나면 곧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자신의 모습과는 다르게 행동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로 스스로 속이는 자이고 하나님의 형상을 창조된 사람들이면서도 말씀대로 행치 않는다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으로서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모습을 본다는 겁니다.
그리고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다른 점이 뭔지를 이야기합니다. 여기 온전한 율법은 율법의 완성인 복음을 말하지요 복음이 가진 능력은 무엇입니까? 우리로 죄에서 자유하게 합니다. 사망에서 자유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에 자신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자라는 거거든요 거기서 뭘 깨닫게 될까요? 마22:37~40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말로만 할 수 있는 사랑이 아니잖아요. 듣기만 하고 행동하지 않아도 되는 계명이 아닙니다. 복음이 말하는 첫째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는 사랑이어야 하고 둘째 계명은 이웃 사랑을 내 자신처럼 하라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자유롭게 하는 율법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거울을 보다가 거울에서 눈이 멀어진 순간 잊어버리는 것과는 다르게 복음에 붙들린 자는 계속해서 복음이 요구하는 것을 잊지 않고 행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어찌 된답니까? 그가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는 거지요 신5:10절에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복은 하늘에서 그냥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손과 발로 만들어지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26절에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뭡니까? 경건하다고 자신을 생각하는 이가 혀를 재갈 물리지 않으면 그 사람의 경건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경건한 행위가 없다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경건한 행위가 따르는 신앙은 27절에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경건은 말에 있지 않고 환난 중에 연약한 이를 돌보고 세상에 물들지 않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들은 진리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행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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