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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11:25~32절 “이스라엘의 최종적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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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2-10-25 22:05    조회 526    댓글 0  
 
롬11:25~32절 “이스라엘의 최종적회복”  2022.10.26.
원래 본가지는 이스라엘백성들입니다. 본가지인 이스라엘백성들이 구원 받지 못한 모습을 보면서 구원 받은 영적이스라엘백성이 된 이방인들이 의시대면 안 되지요. 참 감람나무의 뿌리가 누굽니까? 아브라함이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언약에 그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자손들은 모세를 통해 시내산에서 옛 언약인 구약성경을 받았고 그 진액을 먹었습니다. 그렇다면 신약의 새 언약이 어디서 왔습니까?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왔는데 새 언약 역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받은 믿음의 후손들인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옛 언약인 십계명과 율법을 주셔서 믿음을 지키도록 하셨는데 유대인들은 오히려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의의 대신에 십계명과 율법을 지킴으로 자신들의 의를 이루려했다는 거지요 결국은 죄를 더욱 죄되게 할 뿐 전혀 의를 이룰 수가 없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셔서 하나님이 이루신 구원을 믿기만 하면 구원 받고 의롭게 되는 길을 열어놓으셨다는 거잖아요 실은 원래 나무도 아니고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것인데 귀한 은혜와 복으로 접붙임 받아 구약과 신약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근거는 뿌리의 진액인 신구약 말씀으로 지탱되어진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구원에 있어서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옛 언약을 자신의 몸으로 성취하신 새언약의 중보이신 그리스도를 자랑하라는 겁니다.
유대인들은 옛언약을 성취하신 새언약의 중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므로 어떻게 되었어요? 꺾였답니다. 이방인인 우리는 믿음으로 섰다는 겁니다. 어떻게 믿음으로 섰습니까? 요1:13절에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하나님의 무조건 선택과 때가 되어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선물로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으니 뭡니까? 우리가 받은 구원을 우리가 한 것처럼 자랑하지 말라는 거 아닙니까? 그러므로 내가라는 교만함을 버리고 늘 주님의 은혜를 노래하는 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인갼의 행위를 자랑하던 원가지도 꺾였다면 곁가지인 우리가 인간의 수고와 노력에 그 가치를 두고 산다면 곁가지야 말할 것도 없이 꺾일 것이라는 겁니다.

25절을 볼까요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형제들아 헬라어 ‘아델포이’인데 바울의 동족인 유대인을 부르는 말이지요. 유대인들의 상태가 어떻습니까? 스스로 지혜 있답니다. 뭡니까? 유대인들의 영적교만상태를 말하는 거지요 어설픈 신앙이 젖은 나무토막이 연기만 내는 것과 같이 해가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사실을 꼬집어 그러면 유대인들 중에 얼마가 꺾이고 그 자리에 이방인들이 접붙임을 받는 이 신비는 구원 받은 이방인들의 충분한 수가 차기까지는 유대인들이 우둔한 상태가 지속될 거라는 겁니다. 여기 ‘우둔하다’ 헬라어 ‘포로시스’는 ‘완악하다’거든요 무엇 때문에 완악했습니까?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는 새언약 대신에 옛언약인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다함을 얻으려는 생각이 돌같이 굳어 있어서라는 거고 그래서 꺾인 거고 이 운둔하고 완악함이 이방인의 충분한 수가 채워질 때까지라는 겁니다. 깊은 신앙은 겸손으로 얕은 신앙은 교만으로 인도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6~27절을 보시지요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 할 때에 그들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여기 ‘온’ 헬라어 ‘파스’는 ‘전체’라는 의미거든요 그렇다고 이스라엘백성 모두를 말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개인적인 것이고 이스라엘백성 중에 구원받기로 작정된 남은 자 모두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는 거지요 유대인들에게 있는 남은 자 구원 사상은 이방인들도 예외는 아니지요 마24:40~41절에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여기 두 사람 그리고 두 여자는 모두 기독교인들을 말하니다. 그런데 42절에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한 사람 그리고 한 여자는 믿음으로 서지 못했고 그래서 버려둠을 당하였고 다른 한 사람 그리고 한 여자는 믿음으로 서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 공중에 재림하실 때 들림을 받게 되더라는 걸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셨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주여, 주여 한다고 해서 다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고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라는 거 기억하고 끝까지 믿음을 지켜나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8절을 볼까요 “복음으로 하면 그들이 너희로 말미암아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입은 자라” 복음이 유대인들에게 왔잖아요 이때 이방인들은 하나님과 원수된 관계였었다는 거고 그리스도 밖에 있었다는 거지요 반면에 선택함을 받은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그리고 십계명과 율법인 옛언약을 받은 무조건적 사랑을 입은 자들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구원은 소망이 없던 그리스도 밖에 있었던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이방인들을 구원하심이 놀랍고 그리고 유대인들은 조상들에게 주신 언약이 있어서 결국은 사랑을 입고 구원에 이르는 소망이 있을 거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29절을 보세요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여기 ‘후회하심이 없다’ 헬라어 ‘아메타멜레타’는 ‘변경할 수 없는’ 또는 ‘취소할 수없는’이란 의미로 하나님 어떤 분이십니까? 민23:19절에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또 약1:17절에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그렇다면 뭡니까? 유대인들의 불순종과 완악함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이방인들의 그리스도밖에 있었음에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계획을 이루시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분에게는 취소도 없습니다. 변경도 없으십니다. 말씀하신 모든 것을 전능한 능력으로 이루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마24:35절에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은사’ 헬라어 ‘카리스마’는 ‘거저 받은 선물들’ 또는 ‘선물로 부여된 은총들’이란 의미이고 ‘부르심’ 헬라어 ‘클레시스’는 ‘하나님 나라에 초청’이라는 의미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절대성과 신실성 그리고 전능성으로 이 일을 이루시니 어찌 실수가 있겠으며 잘못됨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 구원은 반드시 실현될 것이라는 겁니다. 저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있다는 거지요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이 확신할 수 있는 증거가 된다는 걸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0절에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에는 이방인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는 순종치 않는 이스라엘로 인하여 이방인의 구원이 이루어졌다는 겁니다. 31절에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그들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방인들이 자비를 입은 것처럼 유대인들 역시 자비를 입게 될 거라는 거지요 32절에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불신앙은 죄인들을 가두는 감옥이 되는 것을 기억하며 그러나 불순종 아래 있게 함은 하나님의 긍휼을 베풀려는 때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영혼 구원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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