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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1:1-2 “예수그리스도의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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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2-01-11 21:59    조회 855    댓글 0  
 
롬1:1-2      “예수그리스도의 종”    2022.1.12
로마서는 바울이 3차 선교여행을 하던 중 고린도라는 도시에서 겨울을 지내면서 로마의 성도들에게 쓴 편지거든요  이 로마서는 바울이 나이가 들어 눈이 어두워 지금처럼 안경도 없었기 때문에 바울이 말할 때 그 말을  더디오가 받아 적었다는 겁니다.  롬16:22절에 “이 편지를 기록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이렇게 더디오가 바울의 말을 적어서 보낸 것이 로마서이고 이것을 집사 뵈뵈에게 전달했다는 거지요
1장1절에 "종"이라는 표현을 예수 믿는 우리는 주의 종이라고 말할 정도로 많이 사용하고 또한 들어서 그렇게 놀라지 않습니다만 이 로마서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아마 크게 충격 그 자체였을 겁니다.  왜냐하면 "종"이라는 단어는 노예라는 거잖아요 지금 시대는 노예가 없어 노예가 얼마나 천한지 잘 모르기 때문에 바울이 자신을 종이라 부르는 것에 대해 ‘종’이라고 자신을 낮게 겸손하게 소개하고 있는 정도로 크게 실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당시 로마가 그 근동을 속국으로 만들면서 많은 사람들을 종으로 삼아 로마에는 전체인구의 절반도 넘는 노예가 살았다는 거지요 그리고 그 당시 노예들의 처우는 짐승과 일반처럼 대접을 받았다는 거거든요 전혀 인격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였고 그야말로 주인을 위해서 여러 방편에 생산수단으로 여겨져 왔다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그 당시 세상에 돌던 말이 `노예와 당나귀는 같은데 단지 노예는 말을 할 수 있고 당나귀는 말을 할 수 없는 것이 다를 뿐이다'라는 말이었다는 거지요 더군다나 그 당시에는 노예시장이 항상 열려서 반나체로 노예들이 줄 지어 서 있으면 노예를 사고자 하는 사람이 맘에 드는 노예가 있을 시 손가락으로 지적하면 노예상인이 돈을 받고 그 노예는 돈을 지불한 이의 것이 되었다는 겁니다.그러면 그 산 노예를 데려다가 귀에다 또는 이마나 뺨 그렇지 않으면 신체 일부에  주인의 이름의 첫 글자나 마지막 글자를 이니셜로 낙인을 찍어서 자신의 소유됨을 표했다는 겁니다. 그러니 비참하기 짝이 없고 인격적 대우는 꿈도 못 꾸고 자기 의사를 주장하거나 맘대로 행동하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는 거지요
그렇다면 그 당시 노예, 종이 뭔지를 아는 사람들이 많은 시절에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소개로 로마서를 기록하고 있음은 정말로 충격적이고 놀랄만한 사건이었다는 겁니다. 노예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면서도 자진하여 자신을 종이라니요  억지로도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도 아닌 기쁨으로  오히려 자랑으로 여기면서 자신을 ‘종’이라고 한 거라는 거거든요
바울 그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자들을 지구 끝이라도 쫓아가서 박멸하리라는 생각을 가진 바리새인이었고 율법학자였고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었습니다.  그 날도 다메섹까지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가두기 위해서 말을 타고 먼 질을 달려오고 있었다는 거지요 그런데 거기서 한 줄기의 빛에 의해 달리던 말에서 떨어지지요 그리고 음성이 들립니다.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너무나도 놀랄 일 아닙니까? 그래서 바울이 묻잖아요.  ‘주여 누구십니까?’ 이때 주님이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이후에 행9:20절에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어째서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이 아닙니까?  바울의 이 사건에 대해 갈1:16~17절에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아라비아사막에 몇 년 동안 있었답니까? 그 다음 절 18절에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삼 년 동안 아라비아사막 어느 곳에서인가에서 바울은 자신이 만난 그리스도 예수에 대해서 바리새인이었던 그가 율법학자였던 그가 구약성경을 다시 펼쳐 든 것이지요. 
예수가 창3:15절에 말씀하는 여자의 후손이라는 것과 그가 창12:2절에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던  복의 근원이며 사11:1절에 이새 줄기의 싹이며 이 싹이 다윗의 왕권을 이어 왕이 된 분이신 예수그리스도라는 것과 사7:14절에 처녀가 잉태하여 낳은 아들이 바로 그 예수이며 사61:1절에 성령으로 물 붓 듯이 기름부음을 받아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보냄 받은 종이시고 사49:6절에 땅끝까지 구원을 베푸는 이방의 빛으로 오신 분이심을 깨닫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삼년 전 예수가 세상의 구원자로 오신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다메섹에서 결정적으로 자신의 귀와 눈으로 아니 온 몸으로 확인했었거든요  세상의 구원자 예수가 핍박자인 죄인 중에 괴수인 자신을 용서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사도의 직분까지 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바울은 얼마나 감격했을까요?
그러므로 바울은 기꺼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된 것을 자랑하고 싶어 자신을 그분의 ‘종’이라고 소개하고 있다는 겁니다. 주의 제자 아나니아에게서 행9:16절에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이란 말을 들었으면서도 바울은 주의 길을 갔다는 거고 고전4:9절에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죽이기로 작정 되었음을 알면서도 구경거리가 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롬1:14절에 “다 내가 빚진 자라”고 생각하고 행20:24절에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노예가 주인을 위해 생명을 아끼지 않고 귀한 것으로도 여기지 않고 충성하는 것처럼 하겠다는 각오를 보이고 있음을 본다는 겁니다.
이런 바울이 롬1:6절에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자신과 로마교회 성도들뿐만 아니라 예수 믿는 모든 이들이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것은 주인이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의 종들이라는 거 아닙니까?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믿고 달라진 것은 무엇입니까? 이제 우리 자신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거지요 그리스도의 것이 된 하나님의 소유라는 걸 믿으시기 바랍니다.
종이 알아야 할 세 가지 사실이 뭡니까? 먼저는 나는 종이지 주인이 아니다 라는 거고 다음은 나는 내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주인의 것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  마지막으로는 주인의 맘대로 사는 사람이지 내 맘대로 살지 않는다는 겁니다.
우리의 삶의 양식이 그러면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주인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종처럼 사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인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뜻과는 다르게 주인처럼 내가 결정하고 있지는 않는지 삶에서 생각에서 가치관에서 주인의 뜻대로 살려는 의지가 있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종들에겐 주인의 이름을 의미하는 이니셜 낙인이 찍혀져 있잖아요. 누가 봐도 종인 것을 알 수가 있듯이 우리도 그리스도예수의 종으로서 우리의 목소리에서 우리의 마음에서 우리의 얼굴에서 우리의 행동에서 우리의 생각에서 예수그리스도가 보일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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