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물에도 종류가 있다 겉에 흐르는 바닷물 그리고 깊은 바닥에 흐르는 바닷물 겉에 보이는 바닷물은 바람의 세기에 따라 함께 요동친다. 외부환경에 너무나 그 반응이 예민하다. 외손자 진현이의 예민함에 비교하고 싶다. 문 열고 닫는 소리, 재채기 소리, 청소기 돌리는 소리, 아무 튼 작고 그냥 지나칠만한 소리까지 진현이는 듣고 일어난다. 제자들이 대부분 갈릴리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다. 웬만하면 저들이 죽게되었다고 소리치지 않았으리라 아주 오래 전에 20년은 족히 지났으리라고 본다. 홍도를 갔었던 기억인데 지금도 잊지 않는 것이 있 다 작은 배를 타고 홍도 구석 구석을 돌아오는 것이었는데 그날 따라 유난히 파도가 심했다 처음에 탈 때 두려운 마음이 있었는데 시간이 갈 수록 바람에 크게 흔들리는 배 위에서 위험을 느끼며 두려운 마 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마구 흔들거리는 배 위에서 뱃사람들의 움직임과 얼굴표정을 살피는 것은 나는 지금 이렇게 불안한데 선장과 선원들은 어떤 가 살피는 것이 바다구경과 더불어 하나의 일이 되 었다. 그런데 선장이나 선원들은 너무도 태연하다 어떤 두려움의 빛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에 위안이 된다. 괜찮은가 보다 그런데 베드로와 안드레, 요한과 야고보 모두가 배에서 말하라고 하면 한 가닥씩 하는 사람들이다 그 들이 예수님께 우리의 죽게 된 것을 왜 돌아 보시지 않느냐고 참으로 불안해 하는 것이 역역했다면 이 상황은 보통 상황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된다. 낮에도 무서울텐데 밤인데다 보통 바람도 아닌 광풍이 불어치니 배의 흔들림이 심하여 부딪힌 바다물결이 배에 넘어들어와 가득하게 되버린 것이다. 예수님은 이 상황에 제자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배의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신다. 똑 같다 바람의 세기도 그렇고 심하게 흔들리는 배의 움직임도 불안하기는 매 한 가지일 것 같은데 예수님은 주무신다. 밑는 구석이 있으신 까닭이리라 자신은 바람을 만드신 이요 주장하시는 이인 까닭에 말씀하시면 저들 이 듣는 것뿐만 아니라 자연이 하나님을 삼킬 수 없으시다는 것을........ 우리도 어디를 가서 지갑이 돈이 두둑하면 걱정이 없다.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그러나 차비 달랑 있다 면 문제는 달라진다. 불안해 진다. 요동치는 겉 바다물과 제자들이 어찌 그리 닮았을까 바닥에 흐르는 바다물과 예수님이 어찌 그리 닮았을까 우리의 믿는 구석 든든한 빽 예수님을 우리의 마음에 모셨으니 2007년에 다가올 모든 크고 작은 사건 이 두렵지 않다. 깊은 바닥에 흐르는 바닷물 같으신 예수님처럼 닮아보자는 생각을 해본다. 소리를 들내지 않으나 분명히 흐르는 바닷물 예수님처럼 요동함을 꾸짖어보자 깊은 바닥을 흐르는 바닷물처럼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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