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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설교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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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41~50절 “내 관심은 무엇일까 주님과의 교제는 몇 프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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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3-06-23 19:19    조회 592    댓글 0  
 
눅1:41~50절 “내 관심은 무엇일까 주님과의 교제는 몇 프롤까” 2023.6.25.
오늘은 육이오 전쟁 73주년이 되는 해이고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지는 70주년이 되는 해네요 참전미군이 백칠십팔만구천 명 전사자가 오만사천이백사십육 명이랍니다. 우리나라 백성들은 삼백만 명이 죽고 천만 명의 이산가족이 생겼다는 거지요 우리 부모님 대에선 이 폐허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일해서 이제는 경제대국으로 선진대열에 들어섰는데 전쟁의 아픔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같은 아픔을 되풀이 하지 않을 겁니다. 신앙이 올바르게 서지 못할 때는 전쟁이 온전히 신앙으로 살 때는 주의 평화가 깃 드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난 주님과 교제의 프로테이지를 매긴다면 어느 정도인가 생각하는 시간 갖기를 원합니다.
41~42절을 볼까요. <그의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예수께서 열두 살 되었을 때에 그들이 이 절기의 관례를 따라 올라갔다가>
이스라엘의 삼대 명절이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인데 오늘 본문에 <유월절이 되면> 교회에 처음 나오신 분들을 위해 유월절의 의미를 잠깐 간략히 알아본다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세워 애굽에서 탈출하기  바로 전 날인데 첫째 달 14일 밤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 좌우 설주와 들어가는 引枋(인방), 문 위와, 문 아래를 가로지른 나무를 가리키는 데 이곳에 바르라는 거지요 고기는 구워 먹고 남은 것은 다 불사르라고 명하셨지요. 한편 그 밤 애굽에는 바로의 장자로부터 가축의 첫 것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하는 천사에 의해 모두 죽습니다. 그러나 같은 애굽 땅에 있지만 심판을 수행하는 천사들이 피를 바른 가정은 그 피를 보고 그냥 넘어갑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백성들은 모두 살았습니다. 이 끔찍한 일을 당한 애굽의 바로가 제발 나가달라 해서 출애굽을 하게 된 것을 기념하는 절기가 유월절이라는 겁니다. 출12:42절에 <이 밤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심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앞에 지킬 것이니 이는 여호와의 밤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대대로 지킬 것이니라> 그래서 요셉과 마리아는 매해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을 갔다는 겁니다. (사진1) <베들레헴을 지나야 예루살렘 서울에서 대전 거리 정도>
그런데 이 번 유월절은 다르다는 거지요 예수님이 열두 살이 되던 해고 유월절의 관례를 따라 올라갔답니다. 유대 사회에서 13세가 되면 이 사회에 책임이 있는 구성원이 되는 예식을 행하게 되고 그러면 <율법의 아들>이 되어 회당에 출입할 수 있는 공식회원으로 인정이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13세가 되기 전 12세 때는 예루살렘에 올라가 율법의 아들이 되기 위한 행동들을 배웠다는 거거든요 그래서 이런 관례를 따라서 부모님과 함께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성전으로 올라왔다는 거지요
43절을 보시지요.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유월절이 지나 이제 왔던 그 길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머무셨더라> 헬라어 <휘페메이넨>은 과거 능동태로 자발적으로 자신의 의지로 예루살렘에 머무셨다는 거지요 이곳 예루살렘성전이 어떤 곳입니까? 대하7:16절에 <이는 내가 이미 이 성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 이렇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육체를 입고 이 세상에 사람으로 오신 예수께서 여기 성전에 머무심은 기록된 말씀의 완성이라는 거잖아요. 그런데 12세란 나이에 가둘 수 없는 성자 예수그리스도의 눈에 비치는 성전에서의 인간의 모습들은 어떠했을까요? 먼저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성전에 자발적으로 머무심에 대해 당연히 성전의 주인으로서 예수를 알지 못했다는 거고 그리고 그 당시 제사장과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저들의 관심은 무엇이었습니까? 성전에서 드려지는 형식적인 제사와 성전 뜰에서 돈을 환전해주고 제물로 드릴 양과 염소와 비둘기 매매하는 이권에만 관심이 있는 거지요 정작 성전의 주인이신 하나님에 대해 아무런 관심을 주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성자 예수로 그 자리에 오셨지만 역시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갖지 않은 거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바로 이 성전에서 당신 예수로 천하 만민에게 영생하는 복이 퍼져갈 것을 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4~45절을 볼까요. <동행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동행> 헬라어 <쉰, 함께>라는 단어와 <호듀오, 길을 가다> 이 둘이 합하여 <쉬 노듀오> <함께 하며 길을 가는 무리>라는 의미거든요 뭡니까? 동행의 무리에 있다고 당연하게 생각했다는 겁니다.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요? 두 무리로 동행하는데 한쪽은 남자들의 무리 또 한쪽은 여자들의 무리 그리고 자녀들은 엄마 쪽에 가도 되고 아빠 쪽에 가도 되었기 때문에 요셉은 당연히 자신과 함께 하지 않으면 아내 마리아와 함께 하고 있겠거니 마리아는 마리아대로 요셉과 함께 하고 있겠거니 했다는 거지요 그러니 요셉과 마리아는 서로 당연히 지금 귀향의 무리 중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절대로 당연하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문제를 말씀하지요 예수가 함께 하고 있을 거라는 거 아닙니까?
여기서 발견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당연히 나와 함께 하시지 그렇게 당연시 하면서 그분과의 사귐이 없다는 걸 깨닫는 다는 거잖아요
약2:19절에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22절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뭡니까? 귀신도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하나님 자신이심을 믿어 그러나 뭐가 없어요 그분과의 교제가 없어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믿음이 있다면 그분과의 사귐에서 오는 행동하는 살아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거 아닙니까?
자카르타 소망장로교회 김종성목사님이 시무하시는 교회인데 3년 전 교회 앞쪽에 있는 판자촌마을에서 난 불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면서 교회 예배당 앞까지 치솟는 불길로 벽에 붙어 있는 에어컨 실외기가 온통 새까맣게 타버리고 이제는 교회당 안으로 불길이 다가올 즈음에 목사님과 인도네시아 우리 교민 성도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소리 높여 부르며 불길을 막아주세요 불길의 방향도 바꿔주세요 기도하기를 시작할 때 너무나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답니다. 강한 바람이 불길의 방향을 틀어 예배당에서 멀어지게 하는 역사를 경험하게 되었다는 거지요 이런 영적 체험이 있고난 후에 자카르타 시내 교회 가운데 유일하게 부흥하는 교회로 지금도 성장하고 있다는 이야깁니다. 우리 신앙도 당연한 것에 머무르기 보다는 그분과의 사귐이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와의 동행이 당연한 줄 알았는데 당연하지 않았음을 알고부터 요셉과 마리아는 찾되 그리고 찾으면서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 했다는 거지요 우리도 예수님을 찾아 교제가 있는 삶이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제가 이뤄지면 우리 삶이 달라집니다. 요15:5절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예수님과의 교제가 없는 베드로는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아무 소득이 없었습니다만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배 오른 편에 그물을 던지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그분의 말씀대로 그물을 던질 때 그물엔 큰 물고기로 일백쉰세마리가 걸려있었습니다. 우린 모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렇다면 시급한 것이 무엇입니까? 내 안에 주인으로 모시는 일이고 그분과 주고받는 교제인 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6~47절에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
예수님을 어디 가니까 만나게 되었습니까? 헬라어 <히에로> <성전> 코로나19가 준 큰 잘못된 영향이 뭡니까? 성전에 가지 않아도 집에서 유튜브로 예배 드릴 수 있다고 삼 년의 기간을 지나면서 많은 성도들을 방바닥에 주저앉게 해버렸다는 거지요 시122:1절에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그리고 4절에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 5절에 <거기에 심판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의 집의 보좌로다> 6절에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9절에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 하나님의 집을 찾아 올라온 백성들을 위하여 복을 구하겠답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십니다. 다른 곳에서 지금까지 예수님을 찾았던 요셉과 마리아를 향해 49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그렇습니다. 이제 더 이상 어쩔 수 없이 선택했던 유튜브 예배에서 성전을 찾아 나와 예수님을 만나 기뻐하고 우주만물을 예수님이 다스리심을 깨달으며 성전의 평안을 구하고 성전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사랑하는 형통한 자가 되고 예배 후 축복기도가 그대로 복이 되어 임하는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이 왜 성전에 있어야 하는 지 그리고 예수님이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한다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50절에서 말씀하잖아요. 그들은 그 때 이해를 할 수 없었지만 마리아는 51절에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예수께서 성령으로 내게 잉태되었을 때 열 달 동안 예수의 태동으로 인해 배에서 느낄 수 있었던 그 친밀한 교제 강보에 싸여 젖을 먹일 때에도 그랬고 자신의 곁에 누어 잠든 어린 예수와 너무도 가깝게 친밀감으로 교제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생애가 시작되었을 때 첫 기적 가나혼인잔치에도 마리아와 함께 예수님이 계셨고 마리아도 예수님과 언제나 함께 하였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도 예수님은 마리아와 함께 하셨고 마리아도 십자가에서 대속의 제물로 당신의 생명을 온전히 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과 함께 하였습니다. 우리는 모두 믿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에 머물면 안 된다는 거잖아요 우린 얼마만큼 예수님과 친밀하게 교제를 나누십니까? 오늘 우리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성전에 계심이 마땅하지 않느냐는 말씀을 마음에 둔 마리아처럼 예수님을 찾아 성전으로 그리고 언제나 친밀한 그분과의 교제로 살아 풍성한 열매와 함께 평안과 복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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