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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1:41~53절 “내 뜻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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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3-04-29 19:21    조회 654    댓글 0  
 
왕상1:41~53절  “내 뜻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자”  2023.4.30.
1절에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뭡니까? 이제 다윗도 죽을 때가 다 되었다는 겁니다. 이때 다윗의 여러 부인들 중 하나 학깃이 낳은 아도니야가 5절에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 오십 명을 준비하니> 이렇게 스스로 왕이 되리라 한 아도니야가 어떤 사람이랍니까? 6절에 <그는 압살롬 다음에 태어난 자요 용모가 심히 준수한 자라 그의 아버지가 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고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그러니까 세상적인 눈으로 볼 때 왕이 될  만한 완벽한 재목이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7절에 <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그들이 따르고 도우나> 다윗을 도왔던 원로 장수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이 아도니야를 도와 왕의 즉위식을 거행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가 18절에 <이제 아도니야가 왕이 되었어도 내 주 왕은 알지 못하시나이다> 아버지 다윗 왕이 아도니야가 왕이 된 것을 모르고 있었답니다. 그렇지만 30절에 <내가 이전에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가리켜 네게 맹세하여 이르기를 네 아들 솔로몬이 반드시 나를 이어 왕이 되고 나를 대신하여 내 왕위에 앉으리라 하였으니 내가 오늘 그대로 행하리라>
그렇다면 아도니야의 문제점은 뭡니까? 아버지 다윗의 여호와에 대한 맹세와 아버지의  뜻도 모르고 스스로 왕이 되려고 왕의 즉위식까지 가졌다는 거고 이미 즉위식을 끝낸 것을 아버지 다윗이 뒤늦게 안다 해도 어쩔 수 없이 허락할 거라고 생각했다는 거지요 왜 그런 생각을 했습니까? 평상시 자신은 바른생활자였었으니까 자기 의를 나타내는 사람이라는 거지요 그러나 이게 웬일입니까? 아버지 다윗은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바른생활자에게 왕이 되게 하지 않더라는 거지요 왕이 되고 난 후 일천번제를 드렸던 믿음과 감사의 사람 장수와 부를 구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솔로몬에게 35절에 <그를 따라 올라오라 그가 와서 내 왕위에 앉아 나를 대신하여 왕이 되리라 내가 그를 세워 이스라엘과 유다의 통치자로 지명하였느니라> 그래서 40절에 <모든 백성이 그를 따라 올라와서 피리를 불며 크게 즐거워하므로 땅이 그들의 소리로 말미암아 갈라질 듯하니> 솔로몬의 왕위 즉위식은 백성들의 환영이 얼마나 큰지 땅이 갈라지듯 한 큰 소리를 냈었다는 겁니다.

41절을 보자구요 <아도니야와 그와 함께 한 손님들이 먹기를 마칠 때에 다 들은지라 요압이 뿔 나팔 소리를 듣고 이르되 어찌하여 성읍 중에서 소리가 요란하냐> 성읍에서의 솔로몬 왕위 즉위식의 나팔소리가 얼마나 큰지 9절에 에느로겔 근방 소헬렛 바위 곁에서 아도니야의 왕위 즉위식을 하던 사람들에게 들렸고 요압이 이소리가 뭐지 했다는 겁니다. 여기 에느로겔은 정탐꾼의 샘이라는 의미의 지명입니다. 여기서 무엇을 깨닫습니까? 정탐꾼은 몰래 움직이는 사람을 말하듯 아도니야는 아버지 몰래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 몰래 왕이 되고자 했다는 거지요 그리고 깨닫는 것은 요압은 나팔 소리를 듣는 귀는 있었어도 애석하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는 닫혀있었다는 거지요 반면에 다윗은 늙어서 죽을 때가 임박해 몸이 차겁게 변해가고 있었지만 자신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솔로몬에게 맹세하며 한 약속을 잊지 않고 있었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뜻보다는 사람의 외모를 보고 있었던 요압은 안타깝게도 아도니야의 반역에 수괴 노릇을 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42절에 <말할 때에 제사장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이 오는지라 아도니야가 이르되 들어오라 너는 용사라 아름다운 소식을 가져오는도다> 성읍에서 나는 나팔소리의 진위가 뭔지 몰라 추측하는 많은 말들이 오고 갔을 거고 자신들이 한 반역에 대해 불안함을 지울 수가 없었을 겁니다. 여기서 깨닫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먼 자들은 시1:4절에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안정감이 없다는 거잖아요.
<여호와께서 주셨다>는 의미의 이름 요나단은 제사장 아비아달의 아들로 성읍에 남아 있다가 솔로몬즉위식을 보고 지금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에느로겔 근방 소헬렛 바위 곁 스스로 왕이 된 아도니야가 있는 곳으로 왔다는 거고 아도니야는 요나단을 보면서 <너는 용사라 아름다운 소식을 가져오는구나> 여기서 아도니야의 심중을 읽을 수 있지요 자기가 원하는 소식을 간절히 열망하고 있었다는 거지요 뭡니까? 사람의 소리에 기대를 거는 모습은 이스라엘의 통일 왕국의 최고 지도자의 모습이 아니라는 거잖아요 환경에 상관없이 오로지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약속에 흔들림이 없는 모습이었던 다윗의 모습처럼 적어도 그 뒤를 이어 왕이 되려는 그 아들이 가져야할 모습이었음 기억하면서 역시 예수 믿는 우리들이 가져야할 모습인 것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3절을 볼까요 <요나단이 아도니야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과연 우리 주 다윗 왕이 솔로몬을 왕으로 삼으셨나이다> 여기 <과연> 히브리어 <아발>은 <정녕> 또는 <오히려>라는 의미로 우리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다윗왕이 오히려 솔로몬을 왕으로 삼으셨다는 거지요 좋은 소식 듣기를 원했던 아도니야는 오히려 정반대의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성공했다면 좋았을 건데 성공하지 못해서 반역이 되는 순간입니다. 행5:39절에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아도니야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은 자신의 뜻대로 왕이 되고자 함에 그 결과가 너무나 허무한 결과를 얻는다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은 않는 자의 꿈은 헛된 꿈을 꾸게 됨을 기억하며 우리 모두 이런 누를 범하지 않도록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지혜와 하나님께 묻는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신앙인들이 되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4~45절을 보시자구요 <왕께서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을 솔로몬과 함께 보내셨는데 그들 무리가 왕의 노새에 솔로몬을 태워다가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이 기혼에서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고 무리가 그 곳에서 올라오며 즐거워하므로 성읍이 진동하였나니 당신들에게 들린 소리가 이것이라>
아도니야의 왕위 즉위식은 자의에 의해 몇몇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들의 도움으로 왕의 동생들과 따르는 소수의 백성들에 의해서 하나님과 무관하고 다윗 왕도 모르는 불법한 즉위식이었지만 솔로몬의 즉위식은 하나님의 뜻에 의한 아버지 다윗 왕이 허락한 왕위 였고 모든 백성이 인정하는 매우 합법적인 즉위식이었다는 거거든요 그러므로 백성이 크게 기뻐하는 일이 되었다는 겁니다. 성읍에서 들리는 즐거운 소리는 아도니야를 비롯해 여기 참여한 사람들에게는 혁명이 실패했다는 그래서 이젠 죽었구나하는 슬픔의 소리가 된 겁니다. 살전4:16~17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재림하시는 왕이신 예수님을 보면서 구원 받은 자들은 축제의 소리로 가득할 거지만 반대로 믿음이 없이 스스로를 위해서 산 사람들은 마25:30절에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우리 모두는 왕의 귀환 때 축제의 무리에 속하여 기뻐하는 이들이 되시길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6절을 볼까요 <또 솔로몬도 왕좌에 앉아 있고> 여기 <또> 히브리어 부사 <웨감>이 뭘 의미하고 있습니까? 솔로몬의 왕위 즉위식으로 백성들이 즐거워하는 성읍에서의 소리 말고 다른 뭐가 있다는 거잖아요 그것이 솔로몬이 왕좌에 앉아 있더라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사람들의 움직임보다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자에게 왕좌에 앉는 최후 승리를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기 왕좌에 앉았다는 말은 뭡니까? 왕권을 소유했다는 거거든요 실제적 다스리는 왕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 옆에 누가 있습니까? 비록 노쇠하여 따스한 기운이 사라진 차거운 몸이라도 다윗 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든든히 솔로몬의 왕권을 공고히 할 수가 있었다는 거지요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우신 예수님은 영원히 쇠하지 않으시고 점점 죽어 가시지 않으시고 영원히 살아계셔서 우리의 왕권을 공고히 해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7~48절에 <왕의 신하들도 와서 우리 주 다윗 왕에게 축복하여 이르기를 왕의 하나님이 솔로몬의 이름을 왕의 이름보다 더 아름답게 하시고 그의 왕위를 왕의 위보다 크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매 왕이 침상에서 몸을 굽히고 또한 이르시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내 왕위에 앉을 자를 주사 내 눈으로 보게 하셨도다 하셨나이다 하니> 아도니야와 그 주변 사람들에게 없는 모습을 솔로몬과 그 주변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인정하는 모습이잖아요 <왕의 하나님이> 또 다윗은 침상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내 왕위를 잇게 하셨다 그 모습을 보게 하셨다>는 거잖아요 아도니야에게 없는 이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이것이 없음으로 아도니야는 스스로를 내세웠고 결과는 허무한 실패를 맛보잖아요. 그러나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을 인정하는 신앙이 살아있어 하나님이 우리를 왕좌에 앉게 하시는 승리자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49절에 <아도니야와 함께 한 손님들이 다 놀라 일어나 각기 갈 길로 간지라> 아도니야의 왕위 즉위식에 초청 받았던 사람을 따랐던 사람들이 놀라서 각기 가버렸다는 거지요 50절에 아도니야도 가서 제단의 뿔을 잡았답니다. 왜 재판을 받고자 함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당장 죽여도 할 말이 없었던 반역이었거든요 51절에 아도니야가 제단의 뿔을 잡아 바로 죽음을 면하고 왕의 재판에서 긍휼을 원한다는 겁니다. 52절에 <솔로몬이 이르되 그가 만일 선한 사람일진대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려니와 그에게 악한 것이 보이면 죽으리라 하고> 그리고 53절에서 <집으로 가라> 관용을 베풀잖아요.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불법을 꾀하는 자들로 인해 불평할 시간에 하나님께 아뢰며 믿음으로 나가며 하나님의 넉넉하심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움직이는 지혜로운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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