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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1:5~13 “지금이 회복을 위해 떡 세 덩이를 구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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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2-03-11 18:39    조회 1,828    댓글 0  
 
눅11:5~13      “지금이 회복을 위해 떡 세 덩이를 구할 때입니다”  2022. 3. 13
유명한 상담학자 노먼 빈센트 필 박사는 어려서 소아마비로 자란 한 여인의 간증을 듣고 여인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자매님 인생을 그렇게 위대한 승리로 이끈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그 여인이 대답을 했지요 ‘박사님 제게는 하나님과 통화가 가능한 비밀 전화번호가 있어요 렘33번3번이지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박사님 바로 이 전화가 지금의 저를 있게 하였답니다.’ 오늘 우리도 본문을 통해 기도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깨닫기를 원합니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주의 기도’를 가르쳐 주신 후에 역시 기도에 대해 감춰진 비밀에 대해 베일을 벗겨 내시는 말씀을 하시려는 거지요 그래서 ‘또 이르시되’라고 말씀을 시작하시는 겁니다.

5절을 볼까요.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이때 시간이 언제래요? ‘밤중’이었다는 건데 그 당시 여행과 밤중은 같이 가는 단어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 비유의 말씀을 들을 때 그 누구도 어떤 반감 없이 들을 수 있었다는 거거든요 왜냐하면 그 당시 이스라엘사람들은 한낮의 뜨거운 태양 볕을 피해서 해가 지는 오후에 여행을 시작했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밤중에 친구가 방문한 것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그 당시 사회에 아주 흔한 일이었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6절에 “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뭡니까? 자신의 집을 찾아온 친구에게 마침 먹일 것이 없자 이웃의 친한 친구의 집에 가서 세 덩이의 떡을 구하고 있는 거지요 여기 ‘밤중’ ‘메소뉘크티우’는 인생의 밤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거잖아요. 인생을 살다보면 밤중과 같이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움의 때를 만나기도 하지요 정기 건강검진 갔다가 뜻밖에 충격적인 말을 듣잖아요. 앞으로 길어야 육 개월 정도 살 수 있을 거라는 인생의 밤은 예고 없이 찾아오지요 그러므로 잠27:1절에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35대 미 대통령 존 에프 케네디는 1963년 11월22일 포오드회사에서 만든 컨티넨탈을 타고 달라스에서 카퍼레이드를 할 때 리 하비 오스월드의 총에 맞아 암살을 당하였거든요. 약4:14절에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그러면 육체의 밤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먹을 것이 없는 경제적 어려움의 밤도 있잖습니까? 그래서 자신 네 집에 먹을 것이 없기에 밤중에 친한 친구에게 꾸어달라고 했다는 거잖아요. 여기 ‘꾸어달라’ 헬라어 ‘크레손’은 ‘너는 지금 빌려 달라’는 의미인데 ‘빌리다’가 ‘크레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다네이조’라는 단어도 있는데 우리말로는 똑같은 빌리는 거지만 ‘크레손’은 이자 없는 빌림이라는 거고 ‘다네이조’는 이자가 있는 정상적인 거래를 말한다는 거니까 오늘 본문에선 다음에 다시 되 갚을 테니 이자 없이 ‘크레손’ ‘꾸어 달라’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육체의 밤 경제적 어려움의 밤에 이어 정말 있어서는 안 될 신앙의 밤도 있다는 거거든요 예수님의 말씀이지요 눅18:8절에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계3:20절에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뭡니까? 이 모두가 신앙의 밤을 맞은 자들에 대한 말씀들이잖아요 여기에 딤후4:10절에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여 믿음을 저버리는 신앙의 밤도 있다는 거지요 계3:15절에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신앙의 밤에서 벗어나라는 경고의 말씀이잖아요 이제는 육체의 밤 경제적인 어두운 밤 그리고 신앙의 밤에서 봄기운이 넘치고 있는 이 봄의 계절처럼 돌아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기도에 있음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7~8절을 볼까요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여기 친구가 한 밤중에 문밖에서의 두드림과 더불어 떡  세 덩이를 꾸어달라는 외침에 대해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는 안에서의 대답이 들려옵니다. 여기 ‘괴롭게’ 헬라어 ‘코푸스’는 ‘성가시게’라는 의미거든요 그렇다면 지금 이 친구는 떡을 주는 문제보다 지금 누워 있는 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여기 ‘누웠으니’ 헬라어 ‘에이신’은 ‘잠들어 있는 상태’란 의미거든요 그러므로 온 식구가 한 이불을 덮고 곤한 잠에 빠져 있는 상태라는 거니까 이불에서 살며시 빠져나와야 하고 다시 옷을 입으려면 부스럭 거려야 하고 그러면 아이들이 깰 수가 있는 거고 또 나가서 문을 열어 줘야하고 더군다나 밤에 유대인 가옥은 창문이 없어 빛이 없기 때문에 등경 위에 불을 붙여야 하는 정말 성가신 일이 아닐 수 없었던 거고 그래서 ‘코푸스’ ‘괴롭게’하지 마, 성가시게 하지 말라고 했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집 주인인 친구는 떡을 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일어나는 것이 문제였다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무엇 때문에 일어났고 떡을 줄 수 있었습니까? ‘그 간청함을 인하여’ 헬라어 ‘아나이데이안’은 ‘부끄러움이 없는’ 또는 ‘뻔뻔스러움’이라는 의미니까 자신의 집에 찾아온 친구를 위해 떡을 얻어도 그만 얻지 못해도 그만이라는 미적지근한 모습을 도무지 볼 수 없다는 거잖아요 여행 중에 지쳐 자신의 집을 찾아온 친구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기 위해서 ‘아나이데이안’ ‘간청함을 인하여’ 해결 받고 있음을 본다는 겁니다. 바로 이 간청함이 우리에게도 해당된다는 거잖아요. 눅18:7절에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그리고 오늘 9~10절에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기도 응답에 대한 약속과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권위가 어떠한지를 나타내 주십니다. 여기 ‘구하라’ 헬라어 ‘아이테이테’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또는 성도가 하나님 아버지께 ‘구할 때’ 사용되는 단어라는 거고 더군다나 현재 능동태니까 계속적으로 구하되 본인이 구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주실 것이요’ 주시는 주체가 하나님 아버지시라는 거지요 이번엔 찾으라하시잖아요 헬라어 ‘제테이테’는 ‘발견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란 의미로 개인의 필요를 찾는 것도 되지만 주시는 주체이신 하나님을 찾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는 거거든요 뭡니까? 기도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거 아닙니까? 렘29:12~13절에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이번엔 문을 두드리라하시네요 뭘 말씀하는 겁니까? 하나님의 풍요로운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들어가기 위해 그 문을 두드리라는 거지요 문을 두드릴 때 모든 풍성함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두드리는 우리에게 그 문을 열어 그 풍성함의 축제에 참여해서 누리게 하실 거라는 겁니다. 3월6일자 기독신문 시작노트란 코너에 변도우시조시인의 어머니 말씀이라는 시인데 <어머니 왈> ‘장로가 기도와 섬김에 분주해야지 너처럼 밖에서 분주해서야 되겠나 <아들 대답> 제가 밖에 나가면 그래도 많은 사람이 저를 존경합니다 <어머니 왈>너를 모르니 그렇지 나처럼 너를 알면 존경하겠나’ 세상만사와 하나님의 일은 기도로 된다는 말에 공감하시잖아요 우리 모두 바깥일에 너무 분주하지 말고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하는 일에 열심 내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1~13절에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생선과 뱀이랍니다. 전혀 비슷한 것 같지 않은데 그런데 여기 뱀은 식용이 가능한 물뱀이라는 거거든요 그러나 유대인들은 뱀을 부정하게 생각하였기 때문에 물뱀을 식용으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아들이 생선을 달라는데 대신 먹지도 못할 물뱀을 주는 유대인 아버지가 없다는 거거든요 뭡니까? 기대에 어긋나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겁니다. 그리고 알과 전갈 역시 하나도 닮지 않았잖아요. 그러나 전갈이 자신 몸을 말아서 웅크리고 있을 때 모양이 알 모습이라는 거지요 아버지가 알을 달라는 요구에 웅크린 모습이 알과 비슷하다 해서 치명적 해를 입히는 전갈을 주지 않는 아버지처럼 하나님은 절대로 해로운 것을 주시지 않는다는 거지요 그렇다면 더 좋은 것은 뭐라고 말씀하나요? 성령님이시랍니다. 고전12:7절에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유익이 있을까요? 고전12:8절부터 10절에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여기서 깨닫는 것이 뭡니까? 성령님은 모든 좋은 것의 근원이 된다는 거 아닙니까? 우리 또한 인생의 밤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우리 모두, 부자요 친구요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서 떡 세 덩이를 구해야 하지 않을까요? 밤이 깊었어도 주님은 귀찮아하지도 성가시다고도 하지 않으시고 배고픈 우리 네 간청에 그리고 두드림에 풍성한 주님의 나라의 창고를 활짝 열어 참여하게 해서 긴 여행에서 생긴 피곤으로부터 회복하는 떡 또 배고픔에서 벗어나게 하는 믿음의 떡 다시 여행을 계속할 수 있도록 희망의 떡을 주실 것이니 먹고 다시 일어서는 더 나아가 모든 좋은 것의 근원으로서 성령의 충만한 역사까지 새 봄과 함께 열어 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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