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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26:69~75“여종의 소리가 못하던 일 말씀 담은 닭 우는 소리가 해 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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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2-03-19 18:16    조회 1,735    댓글 0  
 
마26:69~75“여종의 소리가 못하던 일 말씀 담은 닭 우는 소리가 해 내네요” 2022.3.20.
수탉이 새벽에 요란하게 우는 이유는 여러 암탉을 거느리고 있는 수탉이 자기 영역을 알리려는 이유이고 또 다른 하나 조류는 뇌가 피부를 통해 빛을 감지한답니다. 그러니까 사람보다 더 빛을 감지하는 것이 뛰어나다는 거지요 그래서 어둠이 거치는 새벽미명의 시간이 올 때 피부로 감지하는 빛으로 인해 수탉으로서 자신의 암탉들을 내가 지킨다는 의미로 꼬끼요 하고 운다는 거지요 그렇지 않고 캄캄한 암실에 두었을 때는 전혀 울지 않는다는 겁니다. 오늘 닭 우는 소리에 주의 말씀이 생각나 통곡한 베드로에게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69절을 볼까요. “베드로가 바깥뜰에 앉았더니 한 여종이 나아와 이르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58절을 보시자고요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말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인들과 함께 앉아 있더라” 여기서 어떤 그림을 보게 됩니까? 예수님이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으로 끌려가는 모습과 그 뒤를 멀찍이 거리를 두고 따라가는 베드로의 모습 그리고 그 베드로가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 뜰에 하인들과 함께 앉아 있는 그림인데 그곳이 본문에 바깥뜰이었다는 거잖아요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대제사장의 집에서 일하는 여종이 다가와 베드로를 가리키며 갈릴리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던 걸 봤어 그러는 겁니다. 멀찍이 따라온 베드로의 모습도 아쉽고 예수님이 심문을 받고 있는 안뜰도 아닌 바깥뜰에서 그 집 하인들과 함께 앉아 있는 모습도 그렇고 여기서 뭘 깨닫습니까? 베드로가 자기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거지요
이것을 계3:15절에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여종은 예수님과 늘 함께 하던 베드로의 모습을 봤었다는 건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거 아닙니까? 하나님을 가까이 한다는 의미가 뭔지를 시63:8절에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그런데 지금 베드로는 이 말씀을 놓치고 있다는 거잖아요 사람 의식하지 말고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말자고요 어렵고 힘 들고 불가능한 것처럼 생각이 든다면 그럴수록 전능하신 하나님을 가까이해야지요. 약4:8절에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 가까이 하심의 비결이 뭐랍니까? 내가 하나님을 바짝 가까이 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베드로는 어땠을까요?
70절을 보시지요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모든 사람 앞에서 그들이 다 들을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예수님과의 관계를 부인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여기 ‘무슨’ 헬라어 ‘티’는 ‘누구’ ‘무엇’ ‘왜’라는 의미의 의문대명사라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여종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내가 누구라고 이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부인하고 있는 겁니다.
예전에 베드로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마16:15절에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의 이 질문에 그 다음 절 16절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뭡니까? 확신에 찬 신앙 고백자였다 거잖아요. 그리고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 날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하셨을 때 마26:33절에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베드로는 확고한 의지의 사람이었다 겁니다. 그런 베드로가 공개적으로 모든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과의 관계를 부인하고 있다는 거 아닙니까?
참 모를 게 사람이고 자기 마음조차도 믿을 게 못 되는구나 그러니 다른 사람 마음을 어떻게 믿겠나 하는 걸 느끼잖아요. 그러므로 잠28:26절에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롬8:6절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뭡니까? 육신의 생각이 앞서면 죽겠다, 안 된다, 힘들다, 어렵다 이런 사망의 것들이 따라온다는 거지요. 베드로가 붙들고 가야할 게 뭐였습니까?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야 했던 거지요 찬송461장 후렴 ‘우리의 심령 주의 것이니 주님의 형상 만드소서 주 인도 따라 살아갈 동안 사랑과 충성 늘 바치오리다’

71절을 보자구요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여종이 그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베드로가 안뜰로 연결되는 앞문까지 피했다는 거지요 여기 ‘까지’ 헬라어 ‘에이스’는 ‘~ 안으로’라는 의미의 전치사니까 ‘앞문 안으로’가 번역상으로 더 좋다는 겁니다. 그런데 또 다른 여종이 거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이 사람이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던 걸 봤다고 거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겁니다. 한 번 부인했었는데 72절을 보시지요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여러 명의 불량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현장을 목격한 사람이 ‘이놈들 그만두지 못해’하고 외친 거지요 그러니까 불량배들이 이 사람을 손에 몽둥이와 쇠사슬을 들고 둘러쌌다는 겁니다. 이때 이 사람은 겁도 없이 씩 웃으며 주먹을 쥐고 손가락관절에서 나는 뼛 소리를 우두득 내면서 멋있는 척을 하는 순간 불량배들의 공격이 들어왔고 혼자서 어쩌지를 못하고 죽을 만큼 몰매를 맞은 겁니다. 이 사람의 문제점이 뭡니까? 용기도 좋고 의협심도 있지만 여러 명을 상대로 이길 수 있는 실력은 없었다는 거거든요 지금 베드로가 그랬잖아요. 예수님은 이런 날이 올 것을 아시고 그를 데리고 겟세마네로 가셨고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셨던 거지요 그래야 성령의 인도와 주님의 능력으로 이길 수 있었던 건데 겟세마네 기도의 자리에서 육신이 약하여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졸며 자다가 순전히 육신의 것만 가지고 실전에 임했으니 또 부인하고 말았다는 거잖아요 그러므로 롬8:7~8절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멀리 따라가는 신앙이 가져오는 오늘의 결과는 너무나 당연하지요 시73:27절에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그 다음 28절에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어린아이가 엄마와의 간격이 멀어지는 것을 울면서 끔찍이 여기는 것처럼 우리 모두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복이 있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기 베드로가 부인하되 ‘맹세하고’ 헬라어 ‘메타 호르쿠’는 ‘맹세와 함께’라는 의미거든요 그러니까 맹세와 함께 다시 부인했다는 거지요 거기에다가 예수라는 이름도 빼고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는 겁니다. 아무리 다급해도 그렇지 예수님을 그 사람이라니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그 입으로 고백한 것이 얼마나 지났다고 이렇게까지 무너지는 것이 자기 확신이라는 거잖아요. 아마도 베드로는 이렇게까지 자신이 무너져 내릴 건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겁니다. 약1:17절에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내 확신 말고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하나님 아버지만 의지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73절을 볼까요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조금 후 뭡니까? 두 번째 예수님을 그 사람이라고 하면서 맹세와 함께 부인했는데 약간의 시간이 흘러 베드로 주위에 섰던 사람들이 동시에 ‘아냐 너 분명히 예수당이야 네 말소리가 그걸 증명해주고 있는 걸’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들 중에 이를 증거할 분명한 증인이 있었다는 거 아닙니까? 요18:26절에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사람의 친척이라 이르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떨어뜨리는 현장에 그 친척이 예수님과 베드로가 함께 하고 있는 모습을 겟세마네 동산에서 보았다는 거니까 분명한 증거로 빼도 박도 못할 처지였었다는 거지요
그리고 ‘그 도당’이라는 헬라어 ‘엑스 아우톤’은 ‘그들에게 속한 어떤 단체’라는 의미로 평상시 예수님과 무리지어 다니던 사람이라는 겁니다. 무엇으로? 베드로가 말하는 그 억양으로라는 거거든요 갈릴리지역에 사는 이들의 특이한 억양과 말투인데 예수님을 비롯해 대부분의 제자들이 이곳 출신이었으니까 모두가 충분히 이 사람 갈릴리 사람이구나 했을 거라는 거지요 같은 경사도라도 부산, 대구, 예천, 안동, 문경 사투리 억양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당신 안동사람이지요 혹 고향이 문경이 아니신가요? 구분이 가능한 것과 같다는 겁니다. 자 이런 변명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베드로는 과연 어찌했을까요? 74절을 보시지요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 단순히 부인했던 베드로가 두 번째는 맹세와 함께 부인하더니 이번엔 부인의 강도가 더 세졌다는 거 아닙니까? 저주하며 맹세하여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른다했다는 거지요 여기 ‘저주하며’ 헬라어 ‘카타데마티제인’은 ‘내 말이 진실이 아니라면 내게 저주가 떨어져도 좋아’ 그런 의미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베드로는 예수님을 저주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저주했다는 거잖아요 베드로가 누굽니까?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쫓았던 사람인데 이제 그 예수님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해있다는 거 아닙니까? 생명의 위협이 가해지는 상황에서 정말 신앙을 지킬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두려움으로 갖게 되는 겁니다. 대제사장 가야바의 바깥뜰에서 1시간 밖에 흐르지 않았는데 그 한 시간 동안 세 번 부인하게 되었네요. 이제 마지막 75절을 보자구요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여기 ‘생각나서’ 헬라어 ‘엠네스데’는 ‘기억하다’거든요 34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 ‘심히 통곡했다’는 겁니다. 여기 ‘심히 통곡했다’ 헬라어 ‘에클라이엔’은 미완료과거형으로 베드로의 통곡은 계속 되어지는 통곡이라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뭘 깨닫습니까? 오늘 설교제목이지요 ‘여종의 소리가 못하던 일을 예수님의 말씀을 담은 닭 우는 소리가 해내네요.’ 베드로를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한 것은 주님의 말씀을 담은 닭 우는 소리였다는 거 기억하면서 우리도 코로나19같은 무서운 전염병과 전쟁 그리고 여기저기 일어나는 지진에게서 때를 알리는 닭 우는 소리를 듣는 그렇다면 이런 닭 우는 소리를 통해  세상의 어둠을 물리치시고 재림하실 것이라는 소망의 소리로 듣고 닭 우는 소리, 여러 가지 내게 일어나는 일들로 주의 말씀이 생각나게 하는 생명의 소리로 들으시고 눈물샘이 터져 흘러내리는 소리로 다시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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