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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전4:1~11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 왔으니 이제 어떻게 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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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2-02-18 18:06    조회 1,903    댓글 0  
 
벧전4:1~11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 왔으니 이제 어떻게 살까요?”  2022. 2. 20
인생은 속도가 아니고 방향이라고 하는 말을 요한 볼프강 괴테가 하지 않았습니까? 서둘러 달려왔는데 잘못 달려왔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 허망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겁니다 코로나19가 델타변이로 또 오미크론변이로 세계 모든 인간 속에 스며들면서 자신의 존재감과 더불어 세상 종말이 가까이 왔음을 선언이라도 하는 것 같은 현실을 보면서 내가 바른 방향으로 걸어왔는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 왔는지 마지막에는 더 이상 마지막이 없데요 그러나 마지막이 오기 전엔 시작은 계속 된다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1절을 볼까요.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의 고난을 받으신 이유를 말하잖아요. 그것이 뭐랍니까? 성도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으로 무장하게 하는 거고 그럴 때 죄를 그쳤다는 거지요 그렇다면 죄가 그쳤다는 건 뭘까요? 벧전2: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지요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은 예수님 십자가 지실 때 사실은 죄에 종노릇하던 내가 달린 거고 죽었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죄가 그친 거고 예수님의 부활처럼 의로 사는 자가 되었다는 거 아닙니까? 그걸 2절에서 말씀하지요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그렇다면 사람의 정욕을 따른다는 말이 뭘까요? 3절에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사람의 정욕을 따른 다는 말은 하나님이 없는 이방인의 뜻을 따라 사는 걸 말하지요 그렇다면 사람의 정욕인 이방인의 뜻을 따라 산다는 의미가 뭘까요? 요1서2:16절에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오지 않은 것 가지고 사는 것이 이방인의 뜻을 따라 사는 거고 사람의 정욕으로 사는 건데 갈5:21절에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산다는 것은 뭘 말하는 걸까요? 벧전4:19절에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살든지 죽든지 내 영혼을 주께 맡기는 삶이라는 건데 누구의 모습일까요? 벧전2:23절에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우리 믿는 자들이 예수님처럼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데 우리 힘 가지고는 안 되잖아요 그렇다면 그런 삶을 가능하게 하는 길은 없을까요? 갈5:16절에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성령을 따라 살면 육체의 정욕을 이루지 않는다는 건데 그 이유가 뭐라는 겁니까? 갈5:17절에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성령으로 살면 대신 육체의 소욕은 꼬리를 내리게 되더라는 거고 성령으로 살면 갈5:22~23절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이 우리를 성령으로 살게 하실 때 세상 정욕이 태클을 걸지 못하더라는 거 아닙니까? 그러네요 지금부터라도 육체의 정욕대로 살던 데서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므로 살든지 죽든지 주의 뜻대로 이루심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세상이 주지 못하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며 사는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5절을 볼까요. “이러므로 너희가 그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에게 사실대로 고하리라” 예수 믿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전혀 예전과 같지 않은 삶을 사니까 심지어는 가족도 이웃 그리고 친구들이 허 이상하다 사람이 달라졌어, 죽을 때가 됐나 봐 하면서 비방하더라는 거지요 여기 ‘이상히 여겨’ 헬라어 ‘크세니존타이’는 ‘낯선 사람처럼 여기다’는 의미거든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낯선 사람처럼 느껴지게 되는 거라는 거지요 그런데 비방을 받는다니, 뭡니까? 성령으로 살아서 하나님을 닮아가기 때문에 받는 비방이라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비방하는 자들에게 오히려 돌아갈 것이 뭡니까? 장차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기 위해 재림하시는 예수그리스도에게 자신들이 비방했던 죄악을 낱낱이 고할 거라는 겁니다. 여기 산자와 죽은 자라면 인류 전체를 의미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6절을 보시지요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무덤에 갇힌 삼일 동안 지옥의 영들을 찾아가신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 하는 것이 뭡니까?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죽지만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그 영이 하나님과 함께 영광스러움으로 영원히 살게 됨을 증거한다는 거거든요 그러므로 죽음을 맞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리고 있다는 거 아닙니까?
1월12일 광주광역시 화정동 39층 아이파크 아파트 건설 공사 중 콘크리트타설작업을 하다가 34층에서 아래로 23층까지 외벽이 붕괴되는 바람에 여섯 명 사망, 차량 20대 파손이라는 큰 사고가 났다는 거잖아요 사람들이 입주해서 살다가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어쨌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지요 여기서 깨닫는 것이 뭡니까? 잘못되었으면 빨리 돌이켜야 된다는 거잖아요. 죽음의 강을 건너게 되면 그때는 예수 있는 자는 생명의 부활로 하나님과 함께 다시 살고 예수 없는 자는 심판의 부활로 지옥에서 다시 사니까 지금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사람들은 얼마나 오래 살까에 포인트를 두고 살아갑니다만 이제는 모두가 어떻게 살아야할까 고민해야 될 줄 믿습니다. 이 세상에선 왕처럼 살다가 지옥에서 영원히 종처럼 비참하게 살까요 아니면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종으로 살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왕처럼 영원히 살까 잘 선택하는 지혜로운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7절을 볼까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여기 <마지막> 헬라어 <토 텔로스>는 여러 가지 마지막 중의 하나가 아니라는 거지요 긍극적인 마지막 예수의 재림을 나타내는 ‘토, 그’ ‘텔로스, 마지막’이라는 겁니다. 그 마지막이 가까이, 뭡니까? 임박했음이 확실하다는 거거든요 그러므로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한답니까?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는 거지요 여기 ‘정신을 차리고’ 헬라어 ‘소프로네사테’는 ‘지키라’ 또는 ‘보존하라’는 의미거든요 그리고 ‘근신하라’ 헬라어 ‘넵사테’는 ‘술 취하지 않다’ 또는 ‘맑은 정신을 가지다’는 의미거든요 그리고 ‘기도하라’ 헬라어 ‘에이스프로슈카스’는 ‘기도하기 위하여’라는 의미니까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뭘 보존해야 합니까? 고난 중에도 평탄한 중에도 언제든지 맑은 정신과 기도하기 위해 무릎 꿇는 삶이라는 거지요 인자가 올 때 믿음 있는 자를 보겠느냐 말씀하신 것처럼 믿음이 있는 자 기도하는 자들이 점점 없어져 가는 때를 만났다는 겁니다. 우리 성도들은 지금이 토 텔로스 그 마지막 때인 걸 깨닫고 기도하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는 가정, 기도하는 교회가 망하지 않습니다. 마귀가 왔다가 도망가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어떻게 살아야 한답니까? 8절에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뭡니까? 성도들 간에 가장 바람직한 신앙자세가 뭔지를 말하고 있다는 거잖아요. 서로 뜨겁게 사랑하는 거지요 우리 말 성경에선 번역하지 않은 이유접속사 ‘호티’가 있어서 왜냐하면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으니까 뭡니까? 우리 예수님이 우리를 죄에서 다 덮어주신 그 피가 우리에게 흐르고 있음을 믿을 진대 어찌 용서하지 못할 게 무예며 사랑하지 못할 것이 무옙니까?
그리고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 왔으니 또 어떻게 살랍니까? 9절에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여기 ‘대접하다’ 헬라어 ‘필록세노이’는 ‘필로스’ ‘사랑’이란 단어와 ‘크세노스’ ‘나그네’가 합해서 된 단어로 ‘나그네를 대접’하고 ‘나그네를 사랑’하라는 의미거든요 원망 없이 왜 상급이 따르는 일이니까 마25:35절에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이들이 복을 받는 자들로 오른편에 있는 자들이고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을 자들이라고 원망 없이 대접할 이유를 말씀하셨다는 거지요
그리고 또 어떻게 살랍니까? 10절에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여기 ‘청지기’ 헬라어 ‘오이코노모이’ ‘집을 관리하는 자’니까 ‘하나님의 집을 관리하는 자’라는 거거든요 무엇을 따라선가요? 하나님이 주신 ‘은사대로’ ‘은사’ 헬라어 ‘카리스마’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주신 영적선물이지요 공동체를 섬기는 유익한 것을 포함한 모든 주의 일이라는 겁니다.
 또 어떻게 살랍니까? 11절에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하나님의 은사를 받은 두 가지 범주가 뭔가요? 하나는 언어고 다른 하나는 봉사라는 겁니다. 여기 ‘무슨 말을 하려면’에서 ‘말’ 헬라어 ‘랄레이’라는 거고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라’에서 ‘말씀을’은 헬라어 ‘로기아’거든요 우리가 말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맡기신 이의 존귀함과 영광에 금이 가지 않도록 신중하게 하라는 겁니다. 또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랍니다. 여기 ‘공급하다’ 헬라어 ‘코레게이’는 ‘충분히 공급하다’ 또는 ‘계속적으로 공급하다’ 그러니까 봉사자들은 자신의 특출한 재간을 내세우기보다는 교만을 버리고 예수그리스도로 인해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도록 하는데 목적을 두고 살아야 한다는 거 아닙니까?
여러 날 동안 사막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이 이젠 죽었다 싶은 때 구조대를 만났습니다. 이렇게 살아난 기적의 생환자들을 위해 기자회견이 열렸고 사막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 뭐였습니까? 배고픔이었나요? 아니요 그러면 목마름이었나요? 아니요 그러면 뜨거운 태양열이었나요? 아니요 밤에 참을 수 없는 추위였었나요? 아니요 아니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까? 아니요 이때 조난당했던 사람들 중에 연장자인 이가 말합니다. 우리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신발 속으로 들어오는 모래, 발가락사이에 끊임없이 스며드는 모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만물의 마지막 때는 우리의 신앙 지키기가 어려울 정도로 세상 물결이 신발 속 모래처럼 밀려든다는 거지요 우리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짐을 고백하면서 성령의 인도 받으면서 기도하는 이들이 되어 서로 사랑하면서 선한 청지기처럼 언어를 사용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처럼 봉사할 때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항상 겸손하게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드러내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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