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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35~51 “조연의 역할을 통해 주연을 빛나게 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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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1-12-02 22:13    조회 2,198    댓글 0  
 
요1:35~51    “조연의 역할을 통해 주연을 빛나게 한 사람들” 2021.12.5.
사람은 살다보면 어느 때는 마음이 상하고 흔들릴 때가 있지요 이럴 때 누군가가 옆에서 붙들어주기만 해도 한결 수월하게 지나기도 하잖아요. 이 누군가는 마치 나무를 심어놓고 아래로 뿌리를 깊이 내리고 또 위로 곧게 잘 자랄 수 있도록 버팀목을 해주는데 꼭 버팀 목 같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버팀목 같은 사람 성경에도 소개하지요 잠4:10절에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버팀목 같은 사람이란 이런 사람 아닐까요? 오늘 본문에서 그런 이들을 소개하면서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35~36절을 볼까요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이렇게 말한 사람이 누구래요 세례요한이지요 이 세례요한에 대한 예수님의 생각이 뭐였을까요? 그게 마11:11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뭡니까? 세례요한은 여자가 낳은 자중에 가장 큰 자라는 말씀이지요. 부모를 일찍 여의고 혼자된 세례요한은 광야로 나아가서 약대털옷을 입고 석청을 먹고 메뚜기를 먹으면서 살았으니 세상에 이런 고생이 어디있습니까? 세상적 안목으로는 절대 큰 자가 아니었다는 거지요 세상 사람들의 눈은 어떻습니까? 얼마나 많이 소유했고 어떤 높은 위치에 있고 어떤 집에 사는 지로 크고 작음을 결정하잖아요.
그렇다면 크다고 하신 예수님의 안목은 뭐였을까요? 33절에 있지요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이 말씀에서 예수님이 보실 때 큰 자로 본 것은  ‘그의 역할’에 있었다는 거 아닙니까? 한 알의 좁쌀보다 작은 겨자씨처럼 세상에 오신 독생하신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세상에 알리는 일을 하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 그래서 그 말씀을 순종하여 광야에 살며 요단강으로 나아가 세례를 베풀면서 성령이 하늘로부터 내려 누군가의 머리 위에 머무는 그가 그리스도인 줄을 세상에 알리는 거 그게 세례요한의 역할이라는 거지요 세상에 최초로 메시아를 알리는 그의 역할은 예수님이 보실 때 여자가 낳은 자 중 가장 큰 자였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세례요한이 큰 자로의 모습을 볼까요? 오늘 본문에서도 여실히 나타내줍니다. 뭐랍니까? 여기 ‘이튿날’ 세례요한이 세례를 베풀다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알았던 바로 그 다음 날이었다는 거지요 이때 세례요한은 두 제자와 함께 있었는데 예수님이 다니시더라다는 겁니다. 여기 ‘다니시다’ 헬라어 ‘페리파툰티’는 구원 사역을 위해 ‘두루 다니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말하지요 예수님의 이 모습을 세례요한과 그의 두 제자가 보았다는 건데 힐끗 쳐다본 것이 아니라 주목하여 눈 여겨 보았다는 겁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으로 오셔서 자신을 인간의 대속 제물로 드리시려는 그리스도이신 예수를 유심히 지켜 본겁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두 제자에게 다시 한 번 더 증거하기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이렇게 해서 자신의 두 제자마저 예수님을 따라가 제자가 되게 함으로 그가 큰 자로서 그의 역할을 유감없이 나타내주고 있는 거지요
그러면서 그가 참으로 큰 자라는 걸 보여준 그의 고백이 뭡니까? 요3:30절에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그리고 그의 고백처럼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온전히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자신의 제자들마저 예수님을 따르게 한 후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의 시대에 자신이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옥에서 목 잘려 죽고 역사에 뒤안길로 사라지잖아요. 그렇다면 오늘 날 누가 큰 자입니까? 갈2:20절에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우리 모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님이 보실 때 나는 없고 그리스도만 보이는 큰 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0절을 보시지요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지금 안드레를 소개하는데 시몬 베드로의 형제라는 거지요 여기서 뭘 깨닫습니까? 분명 예수님의 처음 제자가 된 사람은 안드레인데 도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요한은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는 겁니다. ‘안드레’라는 이름의 의미는 ‘남자다운’인데 그가 신앙적으로도 남자다운이란 것이 뭔지를 무엇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거 아닙니까? 제일 어려운 전도가 가족을 전도하는 거래요 메시아를 만난 안드레는 그의 남성다운 면모를 메시아를 만나 믿음이 생겼을 때 자신의 형 베드로에게 남자다운 용기로 전했다는 거거든요 그래서 안드레는 기독교회사에서 최초의 전도자로 기록이 되었다는 거지요 안드레의 이 행동이 바로 믿음의 행동이라는 거고 존 칼빈은 안드레의 이 모습을 ‘믿음은 빛을 끄지 않고 사방으로 발산한다’고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시몬을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에게로 데리고 왔다는 건데 자신이 왔을 때는 별 말씀하지 않으셨는데 요한의 아들이라고 자기 아버지 이름을 알고 말씀하시면서 형 시몬에게 아람어로 게바, 헬라어로는 베드로라고 반석이라는 뜻의 이름을 주시기까지 하신 거지요 그후 형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로 세 명의 핵심 멤버로 저주하고 부인했던 베드로를 부활하신 예수님 다시 찾아와 큰 일을 맡기신다 하셨고 성령 받고 난 후엔 한 번 설교로 오천 명이 주께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다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안드레는 언제 등장합니까? 오병이어의 기적 때 등장 하지지요 어린아이가 가지고 온 오병이어를 받아 주님께 드려서 오천 명이 먹고 12광주리 남는 기적을 주실 때 예수님과 오병이어의 기적 그리고 어린아이의 오병이어는 모두가 기억하지만 기적이 일어나게끔 다리 역할을 한 안드레는 오병이어 기적과 오병이어를 가지고 온 소년 뒤에 남잖아요. 그는 형 베드로처럼 눈에 띄는 삶은 아니었지만 정말 남자다운 신앙으로 평생을산 것처럼 다른 사람의 눈에 띄게 살았느냐가 중요치 않음을 기억하고 우리의 헌신과 수고가 다른 사람을 세워나가고 교회를 더욱 견고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기억되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7절을 볼까요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예수님이 나다나엘을 보시면서 ‘참 이스라엘사람’이라는 거지요 ‘참 이스라엘사람’이란 뭡니까?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는 거지요 이스라엘이 위로가 되는 일은 오직 하나잖아요. 메시아가 오시는 거지요 그렇다면 나다나엘은 오직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건데 그에겐 ‘간사한 것이 없다’는 거거든요 여기 ‘간사’ 헬라어 ‘돌로스’는 ‘속임’ 또는 ‘거짓’으로 뭡니까? ‘진실’하다는 겁니다.
자! 이같이 자신을 아시는 예수님께 나다나엘이 뭐라고 묻습니까? 48절에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여기 ‘아시나이까’ 헬라어 원형 ‘기노스코’는 관찰과 경험에 의해 아는 거라는 거지요 그럼에도 어떻게 처음 자신을 보셨는데 아실까 의아해 했다는 거지요 그래서 ‘어떻게’ 헬라어 ‘포덴’ 뭡니까? 이것은 하나님이 아니시면 할 수 없고 알 수 없다는 의미거든요 그렇지요 하나님이 흙의 몸을 입고 오셨기 때문에 나타나는 전지성이었다는 겁니다. 이 사실을 예수님이 말씀해 주시잖습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빌립이 널 부르기 전부터라는 거잖아요. 나다나엘이 어디에 있었답니까? 무화과나무 아래라는 거지요 여기 ‘무화과나무’ 헬라어 ‘쉬케’는 이스라엘지역에 아주 흔한 무화과종류인데 이 쉬케는 잎이 무성하고 그늘을 제공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습관처럼 이곳에서 말씀을 배우고 기도도 하고 말씀을 묵상할 수 있었다는 거거든요 그렇다면 예수님은 나다나엘이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경건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음을 아신 거지요 ‘내 기도하는 그 시간 내게는 가장 귀하다’ 왜 입니까? 주님이 보고 계신 까닭이잖아요. 사람이 모르는 경건의 삶까지도 하나님은 모두 보시고 계시는 것을 기억하고 늘 기도에 힘쓰고 선행이나 신령한 일들에 대해서도 시간을 투자하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9절을 보시지요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뭡니까? 메시아요 그리스도라는 참으로 대단한 고백 아닙니까? 나다나엘은 변두리 하찮은 곳 나사렛출신이요 흙의 몸을 입고 계신 인자로 오신 예수님에게서 신성을 봤다는 거거든요 이것은 절대로 사람에게서 오지 않지요 베드로는 훗날 예수님에게서 이런 말씀을 듣게 되잖습니까? 마16:17절에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은 살면서 신분이 계속 바뀔 수 있습니다만 우리 예수님은 영원히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독생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시다’ 이 말은 나다나엘이 순종할 수밖에 없는 왕이시라는 거지요 뭡니까? 충성하겠다는 다짐이기도 한 말씀인 겁니다. 오늘 나다나엘에게서 배우는 것은 무화과나무 아래를 찾는 삶이라는 거지요 이런 나다나엘을 전도한 한 이가 빌립이거든요 빌립 역시 세례요한이나 안드레처럼 조연의 역할을 통해 주연을 빛나게 했구나 생각하면서 내가 하는 일이 어떤 일이든지 예수님과 다른 이를 세워나가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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