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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1:3~9절 “하늘에 산 소망을 둔 나그네 같은 구원 받은 성도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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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0-06-05 19:11    조회 6,355    댓글 0  
 
벧1:3~9절    “하늘에 산 소망을 둔 나그네 같은 구원 받은 성도들의 삶”  2020.6.7
지난 주 베드로에게서 깨달은 것이 뭡니까? 나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원이 성 삼위 일체이신 성부하나님의 미리아심과 성령하나님이 죄인의 마음을 거룩하게 순종하여 믿게 하심 또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으로 이루어졌다는 거지요 그러기 때문에 AD68년 베드로사도는 내 구원을 위해 죽으신 예수그리스도를 생각하면서 거꾸로 십자가에 순교할 수 있었다는 거거든요. 그러면서 이 목숨을 요구하는 핍박이 베드로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그 당시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목숨을 위협하는 박해 속에서도 성삼위 일체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구원에 삼위의 관여하신 것을 기억하면서 뭡니까?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많은 은혜와 평강을 경험하라고 축복하고 있었던 베드로를 본다는 거지요 자! 오늘은 이어서

3~4절을 볼까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베드로는 2위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즉 1위이가 되시는 성부하나님을 찬송하리라라는 거지요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많으신 긍휼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고 더불어 산 소망을 갖게 하셨다는 거지요
1,2절은 소아시아 다섯 교회 성도들을 수신자로 하였는데 여기선 예수그리스리스도의 구속역사를 통해 산 소망과 하늘의 기업을 잇게 된 모든 성도들이 수신자자라는 겁니다. 성도들에게 산 소망과 기업이 되게 하신 분이 누구랍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곧 성부 하나님이라는 거지요 그러므로 이 성부 하나님을 찬송하자는 겁니다 여기 ‘찬양하라’ 헬라어 ‘율로게토스’는 ‘찬양 받으실 만한’이란 의미거든요 그렇다면 하나님이 누구시라는 겁니까? 찬송 받으시기 합당하신 분이시라는 거지요
막14:61절에 “침묵하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거늘 대제사장이 다시 물어 이르되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 대제사장도 예수님을 심문하는 자리에서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고 ‘율로게토스’라고 말하고 있음을 봅니다.
그렇습니다. 유대인들의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뭡니까? 우리 하나님은 ‘마땅히 찬송 받으시기 합당하신 분’이라는 거지요 우리도 예수 믿고 달라진 것이 뭡니까?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은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라는 거 아닙니까?
그 당시 기독교인들은 로마의 황제 네로에 의해서 로마시를 방화한 방화범으로 몰려서 십자가에 죽기도 하고 화형을 당하기도 하고 더러는 짐승의 가죽을 쓰고 맹수에게 뜯겨 먹기도 하는 순교를 당하는 당시 상황에서 ‘율로게토스’ ‘하나님은 마땅히 찬양 받으실 만한 분이시다’란 거지요 왜요? 하나님의 큰 사랑으로 인해 우리가 천국을 소망하는 것은 환경 따라 바뀌는 죽은 소망이 아니라 산 소망이었다는 거지요 ‘산 소망’에서 ‘산’ 헬라어 ‘조산’은 ‘살아있다’거든요 그런데 산 소망이 놀랍게도 어떻게 생겨났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 때문이라는 거지요 산 소망이란 죽은 소망, 헛된 소망, 허황된 소망이 아니라 살아있는 소망인데 하나님에 관한 것은 다 살아있는 거지요 예수님도 죽었다가 살아났고 우리도 부활하신 예수 믿고 영이 죽은 자가 영이 산 자가 되었고 영원히 죄로 인해 사망을 당할 죽은 소망으로 살다가 살아있는 소망을 가진 자들이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산 소망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거듭났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말하지요 어머니 뱃속에서 한 번 태어난 우리가 예수 믿고 물과 성령에 의해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금 태어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하늘에 간직하고 계신 하늘의 기업을 믿음을 가진 성도들에게 유업으로 주신다는 것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기업의 특징이 뭡니까?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기업이랍니다. 그러나 세상의 것들의 특성이 뭔가요? 우리의 몸부터 시작해서 우리의 소유와 우리의 기업들이 어떻습니까? 썩고 더러워지고 쇠하여 진다는 거잖아요
그러나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받을 기업은 언제나 그대로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그대로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진리가 그대로 천국 가서 누릴 것이 그대로 천국이 그대로 말씀이 그대로 주의 준비하신 축복이 그대로 오죽하면 영원하다고 하잖습니까? 이스라엘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았지만 죄로 인해 모두 빼앗기고 쇠하고 말잖아요. 세상에 수십억의 돈과 또 수만의 사람들이 공들여 세운 예루살렘성전은 어느 날 다 무너지고 말잖아요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성전은 쇠하지 않아요 더럽히지도 않고요 썩지도 않지요 이게 달라요 우리 썩고 더러워지고 쇠하고 말 세상 기업에 너무 마음 빼앗기지 말고 영원히 변치 않는 주님의 사랑과 주실 하늘의 기업과 축복을 고대하고 사모하며 사시는 분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6절입니다.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
여기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답니다.’ ‘보호하심을 받았다’ 헬라어 ‘푸루르메누스’는 군사적 용어로 신앙을 지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외부의 공격들로 부터 ‘요새 속에 감춰두었다’는 거지요
이렇듯 신앙을 지키는데 있어서 제일 되는 조건이 뭡니까? 믿음으로여야 한다는 거지요 믿음으로 행할 때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는 보호하시고 저 하늘나라에서는 기업을 잇는 축복이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은 무엇에 대한 믿음인가요?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지요 그리고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인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믿음이지요. 그러므로 소아시아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 이 다섯 교회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이 신뢰와 믿음이 없으면 안 된다는 거거든요 그래서 사59:1절과 3절에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워졌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냄이라” 문제가 뭡니까? 우리가 온전하게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내 자신이 죄악 중에 있어서 거짓을 말하고 악독을 말하기 때문에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그리스도의 구속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거지요
그러므로 ‘말세에 나타내기로 한 구원’을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믿음으로’라지요 그러니까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처음엔 어때요? 근심할 수 있어요 당황할 수 있어요 시험에 들 수 있어요 그러나 오래가지 않지요 믿음의 눈과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산 소망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시는 걸 보게 됩니다. 그리고 롬8:28절 말씀이 생각나지요 더 좋게 더 유익하게 더 아름답게 하시겠구나 하게 되잖아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사실을 온전히 내 것으로 믿게 되면서 곧 기뻐하게 되더라는 거지요 

7~9절을 볼까요.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금보다 더 귀한 믿음은 참 보배 되도다 이 진리 믿는 사람들 다 복을 받겠네 그렇습니다. 금이 어디에 있습니까?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돌 속에 소량으로 박혀 있습니다. 돌을 깨뜨려 녹여서 금을 축출해 내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좋은 금 보배로운 금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을 금보다 더 귀하다고 합니다. 이 땅에 살면서 우리의 심령의 돌에 박힌 소량의 믿음의 돌을 뽑아내자고요 불신의 돌을 깨뜨리고 시험의 돌은 뜨거운 불에 녹여내자구요 그래서 우리에게 이렇게 준비된 믿음으로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보며 이 세상을 살아가기 원합니다. 그러면 다시 오실 주님의 재림이 반드시 실현될 때 우리 주님 예수께서 우리에게 잘했다 칭찬해 주실 것이라는 거지요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봤으나 사랑하지 않고 믿지 못하고 세상으로 나갔을 때 결국은 후회하고 스스로 자진하는 마귀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말았지 않습니까? 베드로가 성령 받기 전 믿음에 온전하지 못할 때는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의 사역을 보았으면서도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저주까지 하였잖아요. 그러나 베드로가 아시아 다섯 교회와 오늘날 우리에게 너희가 예수를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음성도 듣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고 그의 사역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보지 못하였으나 믿습니다. 또 산 소망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깨닫습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난 우리는 믿음으로 살면서 전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무를 자인 줄을 알고 현재에 충성을 다하며 주님을 만날 날을 고대하며 기뻐합니다. 이런 모습을 오늘 본문에 베드로는 어떻게 정의 합니까? 믿음의 결국 영혼의 구원을 받았다고 선언하잖아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누굽니까? 예수님을 보지 못하였으나 예수님을 구주로 믿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보지 못하였으나 그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산 소망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이렇게 사는 우리를 베드로가 뭐라고 선언한다고요? 믿음의 결국 영혼의 구원을 받았구나. 이 축복이 우리와 우리가 기도하는 모든 이들에게 임하는 선언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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