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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20:1~9절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히브리어 ‘예말레’의 복을 올 한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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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0-01-10 16:08    조회 6,532    댓글 0  
 
시20:1~9절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히브리어 ‘예말레’의 복을 올 한해도”  2020.1.12.
표제에서 다윗의 시라고 하면서 ‘인도자를 따라’ 히브리어 ‘라므낫체아흐’ 뭡니까? ‘뛰어난 지휘자의 인도를 따라 부른 노래’라는 건데 이 시편은 이스라엘의 왕 다윗이 전쟁터로 출정하게 될 때 백성들이 승리를 기원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고 있는 노래라는 거지요.

1절을 볼까요.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여기 ‘환난 날’ 히브리어 ‘빼욤 차라’인데 차라, 환난은 ‘괴로움’ 또는 ‘곤경’이거든요 적에 의해 포위 된 상태로 겪는 백성들의 내적 혼란이나 또는 강한 나라의 침략으로 인해서 백성들이 공포의 감정을 느끼는 상태가 ‘차라’, ‘환난’이라는 거지요 이런 ‘차라’ ‘환난’ 중에 있을 때 다윗과 백성들이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기도를 들으신 여호와가 뭡니까? 네게 응답하셨다는 거잖아요 살아계신 분이시니까
기도했을 때 하나님의 응답은 어떤 것으로 나타날까요? 시22:21절을 보세요. “나를 사자의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들소의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 뭡니까?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셨는데 구원하심으로 응답하셨답니다. 그러나 응답이 없는 특별한 경우가 있는데 사59:2절에서 설명하지요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우리가 죄 가운데 있으면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데요 이렇드 죄의 문제가 아니면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응답되는 것이고 ‘차라’ ‘환난’날에 기도해야 할 이유가 되는 걸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이방이 침략한 환난의 날, 고통의 때에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승리를 주시기를 기도했다는 거지요
그러면서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여기 ‘너를 높이 드시며’ 히브리어 ‘예삭게브카’는 ‘방어와 보호’를 의미하거든요 그렇다면 무엇이 방어와 보호를 해준다는 겁니까? ‘하나님의 이름’이잖아요 하나님의 이름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뭔가요?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는 거 아닙니까? 삼상17:45절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다윗이 외친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또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이 뭡니까? 하나님의 인격과 존재잖아요 실제적 하나님의 개입해 주실 거고 도우실거라는 거거든요
우리도 그렇지요 예수이름을 부를 때 마귀가 쫓겨 가고 물러나잖아요. 병마도 이길 수 있는 거고 안 그렇습니까? 히브리어 ‘쉠’이 ‘이름’이거든요 그런데 이름이 단순하게 이름으로 끝나지 않고 그 본질을 나타낸다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2절에 뭐랍니까? “성소에서 너를 도와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여기 성소라면 성전을 말하는 거고 하나님 임재의 장소로 여겨지는 곳이거든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하나님의 법궤가 성전 안에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이스라엘백성들은 지금 환난의 날에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나가는 다윗에게 성소로부터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기를 원한다고 한 겁니다. 그러나 분명 알아야 할 것은 뭡니까?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하나님의 법궤가 성전에 있어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다윗이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살지 않으면 도우심은 절대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거 아닙니까?
엘리제사장 때지요 블레셋과 이스라엘 간 전쟁이 벌어졌어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첫 번 부딪힘에서 자그마치 이스라엘군사 사천 명이 전사하는 일이 생기고 맙니다. 전쟁에 진 백성들이 진영으로 돌아 왔을 때 백성의 장로들이 이 전쟁터에 하나님의 법궤가 있다면 전세가 달라지지 않겠느냐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법궤를 이스라엘진영으로 가지고 옵니다. 그랬더니 삼상4:5절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영에 들어올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린지라” 그러니까 블레셋군대의 반응이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7절에 “블레셋 사람이 두려워하여 이르되 신이 진영에 이르렀도다 하고 또 이르되 우리에게 화로다 전날에는 이런 일이 없었도다” 뭡니까?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의 법궤를 전쟁터로 가지고 오는 일이 없었다는 거지요 그러나 전쟁결과는 10절에 “블레셋 사람들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 명이었으며” 여기서 뭘 깨닫습니까? 성경책 자체가 능력이 아니고 그 기록된 말씀대로 살 때 능력이 되는 것과 같다는 거지요 하나님의 법궤 자체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며 살 때 하나님이 임재하신 그곳으로부터 하나님의 도우심이 온다는 거 아닙니까? 하나님은 천지에 충만하신 분이시지 하나님의 법궤 안에 갇혀 있는 분이 아니시라는 거지요 그래서 시온에서 너를 붙드신다는 겁니다. 시온이 어딥니까? 지형적 또는 지역적으로는 예루살렘을 가리키지만 시온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모든 곳을 의미한다는 거거든요 비록 내가 있는 자리에 법궤가 없고 예루살렘이 아니더라도 내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야 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살아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 살면 바로 거기가 하나님이 임재하신 곳이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시온이 되어서 거기서 도우시며 거기서 붙드시는 걸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3절에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아 주시기를 원하노라 (셀라)” 그러니까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드렸던 소제와 번제를 말하잖아요. 뭡니까? 다윗의 거룩한 행위를 아신다는 거지요 여기 ‘기억하시며’ 히브리어 ‘이즈코르’는 번역 그대로 ‘기억하다’거든요 다윗의 의로운 행위에 대한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에 대한 기억은 뭐였다는 겁니까? 언제나 구원으로 나타났다는 겁니다. 그리고 ‘받으신다는 것’은 다윗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졌기 때문이란 거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른 가 바르지 않은가에 전쟁에서의 승패가 나뉜다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문제해결이 어디 있어요? 내가 하나님 앞에 바로 사느냐에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절을 볼까요.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계획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이 전쟁에 임하는 다윗의 소원이 뭘까요? 자신의 욕심의 실현일까요? 아지요 가나안 땅에 온전한 하나님의 통치로 인해 하나님의 세계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뜻이 펼쳐지기를 소원한 걸 겁니다. 그리고 네 모든 ‘계획’ 히브리어 ‘아차테카’거든요 바로 그 ‘아차테카’가 하나님이 이루어주시기를 노래하는 백성들을 보는 거지요 지금 다윗이 전쟁을 수행함에 있어서 모든 군사적 전략이 다 성공되기를 원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전쟁의 승리가 무기에 있는 것도 아니고 군대의 많음에 있는 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것이 이스라엘백성들의 믿음이었다는 거지요 잠21:31절에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아멘이십니까?
한 말씀 더 알아보자고요 잠21:30절에서 “지혜로도 못하고, 명철로도 못하고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하지 못하느니라.” 우리도 그러자고요 우리 자신의 지혜나 명철을 의지하기 보다는 오직 예수만 의지하고 바라보자고요 이처럼 다윗 왕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마음의 소원을 갖고 모든 계획을 가졌을 때 그걸 이루심은 하나님에게 있음을 알았고 승리를 예견하고 있었다는 거 아닙니까?
5절을 보시지요. “우리가 너의 승리로 말미암아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깃발을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이스라엘백성들이 다윗이 전쟁에서 승리할 거라는 거지요 그래서 승리의 노래를 부를 것이고 승리했음을 알리는 깃발을 세우게 될 것이며 다윗의 모든 기도가 모두 응답될 것까지도 바라보고 있다는 거거든요 여기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히브리어 ‘예말레’거든요 우리 옆 사람에게 축복하자고요 올 한 해 내내  ‘귀하의 기도’ 예말레 ‘귀하의 헌신도’ 예말레 ‘귀하의 수고도’ 예말레 ‘귀하의 소원까지도’ 예말레
6절을 볼까요.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의 오른손의 구원하는 힘으로 그의 거룩한 하늘에서 그에게 응답하시리로다.”
여기 ‘이제 내가 안다’ 히브리어 ‘앗타 야다으티’ 뭘 안다는 걸까요? 자기에게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구원하신다는 거지요 누굽니까? 다윗 왕을 이야기하잖아요. 구원하시되 하나님의 오른 손이랍니다. 전능한 능력을 말하잖아요. 그 능력은 홍해를 갈랐고 넘쳐흐르는 요단강을 끊어 위에서 내려오지 못하게 하였고 여리고를 흔들어 무너뜨리셔서 이스라엘백성으로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하셨지요. 여기 하늘에서 ‘그에게 응답하신다’ 히브리어 ‘야하네후’는 미완료형으로 하나님의 응답하심은 멈춤이 없이 계속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거지요 우리도 응답 받았던 그때처럼 이번 고난의 때에도 그래서 우리는 기도하게 되는 걸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기 이스라엘백성들도 그럴까요?
7절을 볼까요.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당연하잖아요. 구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시요 당신을 찾는 백성들을 외면치 않고 응답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두고 세상 이방인들은 지금 이스라엘백성을 많은 군대로 환난을 야기 시킨 거 아닙니까? 이방의 그들은 자신들의 병거와 말을 의지한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는 어떻답니까? 하나님 이름을 자랑한자는 거지요 뭡니까? 이름은 그 이름을 가진 존재와 인격을 말하잖아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와 인격을 자랑하겠다는 거지요
8절을 보세요 “그들은 비틀거리며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 뭡니까? 세상의 것들을 의지하는 자는 비틀거리며 엎드러진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나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요? 일어나 바로 선다는 거지요 넘어졌다가도 마치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나고 내려갔다가도 다시 올라가고 실패했다가도 다시 재기하는 실패 같으나 성공을 이루게 되는 걸 믿으시기 바랍니다.
9절을 보세요. “여호와여 왕을 구원하소서 우리가 부를 때에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여기 히브리어 ‘예흐와 함멜레크 호쉬아’는 ‘여호와여 왕을 구원하소서’거든요 여기서 무엇을 발견하나요? 다윗왕은 하나님을 의지해야만 하는 연약한 인간이라는 거지요
그렇다면 진정한 왕은 누구시라는 겁니까?
하늘의 하나님 언약의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이스라엘백성이 알고 있는 것이 있지요? 자신들의 왕 다윗 위에 왕이 있다 누구시래요 ‘여호와 하나님’
병거와 말이 아무리 많아도 비교할 수 없는 힘 위에 힘을 가지신 분 누구시래요 ‘전능하신 왕위에 왕이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셔서 죄에 붙들려 있고 죄에 종노릇하며 사단이 매놓은 사망의 줄에 묶여 있는 우리를 구원하신 분도 누구시래요? 만왕의 왕들 위에 왕이신 예수 그래서 빌2:10절에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왕들 위에 왕이신 예수 그렇기 때문에 요14:14절 말씀을 하실 수 있었던 거지요 함께 읽자고요.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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