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BER  |    |    |  
회원 로그인
회원 가입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회원가입으로 서비스 약관개인정보 보호 정책 에 동의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대한예수교장로회 선유중앙교회

SUNYOU CENTERAL CHURCH
주일오전 설교원고

bo_title_img1.png

시18:1~6절“우리도 다윗처럼 인생의 끝에서 승리를 노래하게 해 주세요”  
카카오톡 카카오 스토리 네이버 블로그 밴드 주소복사
   김진수   작성일 19-12-28 15:49    조회 6,427    댓글 0  
 
시18:1~6절“우리도 다윗처럼 인생의 끝에서 승리를 노래하게 해 주세요” 2019.12.29.
‘시작하는 재주는 위대하지만 마무리 짓는 재주는 더 위대하다’ 롱펠러의 말이에요. 어느 덧 2019년을 마무리 짓는 마지막 주네요
표제에 ‘여호와의 종’이랍니다. 다윗이 자신의 신분을 어떻게 여기며 살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거잖아요. 연주형식은 ‘인도자’ ‘라므낫체아흐’라는 거지요 뭡니까? 뛰어난 지휘자의 인도를 따라서 부른 노래인데 뭘 노래했다고 말합니까? 원수들의 손과 사울임금의 손에서 받은 환난의 날들은 역으로 나의 하나님이 일하시는 날들이었다는 걸 기억하면서 다윗이 여호와께 불렀다는 겁니다.

1절을 볼까요.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자신을 여호와의 종으로 소개하고 있는 다윗이 하나님을 어떻게 부르고 있나요?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히브리어 ‘예흐와 히즈키’랍니다. 다윗은 자신의 힘이 무엇이랍니까?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거지요. 다윗이 양을 칠 때 이리와 사자 그리고 곰을 물리칠 때에도 다윗의 힘은 여호와였고 골리앗을 무너뜨릴 때도 다윗의 힘은 여호와였잖아요 그 다음서부턴 백성들이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요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라고 부르는 노래에 자리에 위협을 느낀 사울이 군대를 동원해서 온갖 핍박과 위협 속에 있을 때에도 견뎌 나갈 수 있는 다윗의 힘은 여전히 여호와였다는 거지요 그 이후 간간히 나라간 전쟁을 수행하면서 그때마다 승리했거든요. 그런 다윗을 보면서 이스라엘백성들은 그를 용기 있는 사람 기개가 있는 사람으로 불렀는데 그 이유가 뭐라는 겁니까? ‘예흐와 히즈키’ ‘나의 힘이신 여호와’ 때문이었다는 거 아닙니까?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어떤 특별함을 말하지만 다윗은 계속해서 잊지 않고 식지 않은 것은 자신의 힘은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이 말은 뭡니까? 하나님은 곧 힘이시라는 거지요 여기서 다윗은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는 걸 말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걸 구체적으로 표현하지요.
2절을 보시죠.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여기 ‘여호와는 나의 반석’ ‘예흐와 쌀레이’ 그리고 ‘여호와는 나의 요새’ ‘예흐와 우메추다티’ ‘여호와는 나를 건지시는 자’ ‘예흐와 우메팔르티’ 뭡니까? 다윗이 살면서 위험한 날들을 경험할 때마다 하나님의 다양하면서도 강력한 보호를 이중 삼중으로 강조하고 있다는 거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다윗이 겪는 위험은 참으로 다양하지만 어떻습니까? 그때마다 내 힘이신 하나님의 보호하심도 다양했다는 건데 어느 땐 반석처럼 또 어느 때는 요새처럼 그런가하면 절망적 상황에서는 건지시는 구원자로 보호하셨다는 거고 그분이 누구래요? ‘나의 하나님’이랍니다. 그리고 ‘나의 피할 바위’시랍니다. 여기 ‘피할’ 히브리어 ‘에헤쎄’는 ‘도피하다. 신뢰하다, 의지하다’라는 의미거든요 그렇다면 뭡니까? 하나님은 변하지 않는 반석과 같은 분이시니까 하나님에게 피하여 의지하고 신뢰하겠다는 거지요 그러면서 하나님은 나의 방패라는 겁니다. 여기 방패 히브리어 ‘마긴니’는 전신을 가릴 수 있는 큰 방패를 말하거든요 아무리 큰 용사일지라도 화살이 빗 발 치듯 하는 전쟁터에서 자신의 몸을 지켜낼 수 있으려면 큰 방패를 들지 않으면 생명을 보호 받을 수 없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우리 하나님이 다윗에게 없어서는 안 될 분이라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서 하나님이 다윗에게 구원의 뿔이라는 말씀을 합니다. ‘뿔’ 히브리어 ‘카렌’은 ‘힘과 능력’을 상징하는 단어라는 거지요 짐승에게 있어서 뿔이 뭘 상징합니까? 보호와 공격을 모두 상징하잖아요.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의 구원의 뿔이라는 것은 다윗이 하나님을 보호하시는 분이시요 원수를 향해서는 물리쳐버리시는 분이라는 거지요 그러면서 하나님이 나의 산성이라는 겁니다 여기 ‘산성’ ‘미스깝비’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높은’이라는 의미니까 여기보다 안전한 장소는 없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다윗은 다양한 용어로 살아계신 하나님이 이렇듯 자신을 보호하셨던 걸 표현함으로 하나님의 보호가 절대적이다 완벽하다 뛰어나다는 거잖아요
여기서 뭘 발견합니까? 다윗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표현함에 있어서 아홉 번이나 ‘나의, 나를’이라는 일인칭을 사용하면서 하나님과 매우 가까운 관계로 말하고 있다는 거지요 하나님은 모든 믿는 자의 하나님이시지만 다윗은 누구의 하나님도 아닌 바로 나의 하나님이라는 건 그 만큼 하나님과 교제가 이루어졌고 의지했다는 거잖아요 우리도 하나님과 늘 가깝게 다윗처럼 교제하면서 어려울 때 의지하면서 그렇게 살자구요. 이렇게 사는 삶이야말로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는 삶이 되는 걸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바로 나의 힘이신 나의 하나님이시오 위태할 때 보호하시는 구원자 하나님이 되시는 걸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신앙의 기초는 언제나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은 나의 구원자가 되십니다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모든 믿는 자의 구주가 되시지만 예수그리스도와 일대 일로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서 내 구주 예수, 오직 예수로 살아가는 깊이가 다르게 와 닿는다는 거지요
다윗은 그렇기 때문에 어떻다는 겁니까? 3절을 보지요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뭡니까? 원수들의 움직임이 큰 문제로 와 닿을 때 문제가 원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다는 걸 말하고 있다는 거 아닙니까? 내가 찬송 받으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아뢴다는 건 하나님과의 교제와 교통이잖아요 그러면 다윗이 경험한 것이 뭐라는 겁니까? 원수에게서 구원을 얻었다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우리도 문제를 대할 때 분명한 신앙원리는 문제의 핵심이 그 문제에 있는 것이 아니구나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구나 하는 걸 알라는 거지요 그러므로 평상시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자구요 삼하7:18절에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르되 주 여호와여”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원수를 주시고 사울왕의 위협과 공격을 주신 이유가 뭐라고요? 나와 교제하자 나와 깊은 교제 속에 너를 위협하는 세력들을 내가 날려 보낼 수 있어 그런 뜻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5절을 볼까요.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스올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사망의 줄이랍니다. 불의의 창수랍니다. 스올의 줄 지옥의 줄이 나를 둘렀다는 거고 그래서 사망에 빠뜨리려고 한다는 것이 다윗의 지금 형편이라는 거지요 다윗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하나님과 가까이 교제하는 사람인데 왜 이런 어려움이 올까요? 그것도 사망, 스올이니까 인생의 끝을 의미하는 극한 고난이라는 거지요 다윗이 죄가 많아서일까요? 아니지요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 뜻대로 살려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니까 이런 어려움이 있었던 겁니다. 딤후3:12절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오죽하면 예수님은 이 세상에 자신의 머리를 둘 곳이 없다고 하셨을까요? 다윗도 그랬다는 겁니다. 여기 ‘나를 얽고’ 히브리어 ‘아파푸니’는 ‘둘러싸고 포위했다’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다윗의 형편이 자신을 죽게 하려는 그 줄들을 여기저기서 내리고 있는 아주 긴박한 상황을 말하지요 그리고 ‘불의의 창수’ 히브리어 ‘웨나할레’는 ‘갑자기 강물처럼 많아져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급류’를 말하는 거거든요 이같은 급류로 인해 사람들이 떠내려간다면 두려운 마음이 들 거잖아요. 스올은 불신자들의 영혼이 가는 곳이요 악인들이 거하는 처소요 저주 받은 곳이고 사망이 왕 노릇하는 곳이 아닙니까? 이곳에 붙들어놓으려고 줄이 나를 둘렀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 사울임금이 다윗을 위협만 주는 정도가 아니라 ‘사망의 줄이 내게 이르렀답니다.’ 여기서 깨닫는 것이 뭡니까? 원수의 능력이 아무리 크고 강해도 우리 하나님 한 분만 못하다는 거 아닙니까? 이북의 김정은은 핵을 무기로 가지고 있지만 그 김정은이의 지지기반을 흔들어 버릴 수 있는 우리 구주가 우리의 힘이신 걸 믿으시기 바랍니다. 민14:9절을 함께 읽어보자구요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신약성경 요한1서5:18절도 읽어보자구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6절을 볼까요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전혀 희망이 보이지 않는 환난에서 다윗은 하나님에게서 희망을 보고 있다는 걸 말씀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렇습니다. 진실한 신앙인이 다른 점이 뭡니까? 세상적으로 희망이 없을 때 오히려 하나님을 향해 기도와 찬송으로 나간다는 거지요 그래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다’는 겁니다. 여기 ‘환난’ ‘빳차르’는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죄어 오는 걸 말하지요 이런 현실 앞에서 다윗이 한 행동은 하나님께 있는 그대로를 아뢰었다는 겁니다. 여기 ‘아뢰며’ ‘에크라’는 ‘울면서 외치다’는 거지요 그러면서 부르짖었다는 거지요 여기 ‘부르짖다’ 히브리어 ‘아솨으웨아으’는 ‘간절히 도움을 청하다’거든요. 그럴 때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는 거지요 어디서 들으셨답니까? 하나님의 성전이지요 하나님이 임재한 곳을 말합니다. 하늘 보좌잖아요 하늘 보좌에서 들으시다 솨마으는 ’관심을 가지고 듣다‘라고 했듯이 뭡니까? 하나님께 아뢰고 부르짖었더니 들으셨다 그것도 응답을 전제로 해서 들으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 나의 부르짖음이 하나님의 귀에 들렸다는 거지요 바울과 실라가 모진 매를 맞고 한 밤 중에 옥 속에서 찬송하고 기도할 때 죄수들이 들었다고 했는데 죄수들만 들은 것이 아니지요 우리 하나님이 들으셨고 응답하셨다는 거지요 지진이 일어났고 옥문이 열리고 묵은 줄이 풀어지고 더 놀라운 것은 간수장의 죄와 사망에 묶인 줄이 풀어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다윗의 노래에서 아픔의 날 수만큼 하나님의 구원의 날들을 경험하고 노래한 것처럼 우리 또한 한 해의 마무리나 인생의 마무리를 짓는 데서 나의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 승리케 하신 하나님을 노래 할 수 있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주일오전 설교동영상
24년 5월 12일 주일 예배 영상
하박국 2:4 김용우 목사
2025년 5월 12일
교회앨범
담임목사 위임·원로목사 추대 및 임직… 
동영상앨범
22년 낙도선교회
- -
-
선유중앙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 선유중앙교회
031-954-1080
031-954-1040
yegrim@hanmail.net

회원가입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전체 최근게시글
  • 선유중앙교회 SNS를 방문해 보세요
    교회명 : 선유중앙교회 | 담임목사 : 김용우 | 주소 : 10811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독서울 5길 18-30
    교회전화 : 031-954-1080, 953-5977 | Fax : 031-954 1040 | 목사관 : 031-952-2097 | 이메일 주소 : yegrim@hanmail.net
    Copyright ©1955~2024   sunyou.or.kr. All Rights Reserved.
    031-954-1080
    031-954-1040
    yegrim@hanmail.net
    031-954-1080
    선유중앙교회 전화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