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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설교 마가복음10:46~52절 “새해 희망을 나사렛 예수로 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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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19-12-31 20:36    조회 6,616    댓글 0  
 
신년설교
마가복음10:46~52절 “새해 희망을 나사렛 예수로 열자”
새해 처음 시간을 하나님께 경배하게 되니 마음이 참 기뻐지네요. 돌아가신 복음전도자 빌리그레함 목사님이 생전에 있을 때 하신 말이 ‘그리스도인들에겐 붙이고 다니는 뺏지가 있는데 그 뺏지가 바로 기쁨이다’라고 했다는 거지요 마귀는 기쁨이 없잖아요. 왜 그렇지요? 희망이 없으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올해도 예수님이 우리의 희망이시기 때문에 오늘 큰 기쁨으로 새해 첫 시간을 하나님 앞에 드리자고요.

46절을 볼까요.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님과 제자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다는 거지요 여리고는 지중해 해수면보다도 250미터나 아래에 위치해 있다는 거고 반대로 여리고에서 28킬로 떨어진 예루살렘은 지중해 해수면에서 762미터 높은 위치였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과 제자들은 잠시 들렀다가 이제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을 향해서 가파르게 올라가야 했다는 거지요
예수님과 제자들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무리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여리고를 막 나가시는데 그 때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아 있었다는 겁니다. 바디매오라는 이름의 뜻 자체가 ‘디매오의 아들’이거든요 디매오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가진 ‘바디매오가’ 어떤 사람이냐 소개하고 있지요 그는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인데다가 거지라는 거잖아요 이 소개만으로도 바디매오가 참 험한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짐작하게 한다는 거지요
보지 못하기 때문에 가난했고 그 가난은 구걸해야만 살 수밖에 없는 최고의 밑바닥 삶을 살아야 했는데 무엇보다도 바디매오는 맹인이라는 육신적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야만 했었다는 거거든요

그런데 더 힘들었던 것은 마음의 상처였다는 거지요 그것을 51절에 “보기를 원하나이다”에서 발견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여기 ‘보기를’ 헬라어 ‘아나불렙소’의 원형 ‘아나불렙포’는 ‘다시 보다’거든요 그러니까 바디매오가 맹인이 된 것은 날 때부터가 아니라 뭡니까? 중간에 보지 못하게 되었다는 거잖아요
아예 날 때부터였다면 그런 줄 알고 살 텐데 중간에 실명을 하게 되면 다르잖아요 그걸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과 적응기간이 필요했을까요? 그러면서 겪었을 마음의 상처가 보통이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바디매오에게 더 큰 고통이 있었는데 사람들에게 정죄 받으면서 사는 죄인의 삶이었다는 거지요 그 당시 유대인들인 제자들의 생각을 볼까요? 요9:2절에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유대인들인 제자들의 생각이 뭡니까? 한 사람의 맹인이 두 가지 중 하나라는 거지요 부모의 죄가 아니면 본인의 죄 때문이라는 거지요 그렇다면 맹인 바디매오는 이 짧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육신의 고통에다 마음의 상처를 더하고 더군다나 죄인이라고 정죄된 삶까지 무거운 짐을 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는 거거든요 이랬던 바디매오가 육신의 짐 마음의 짐 영혼의 짐까지 모두 벗게 되는 사건을 오늘 본문에서 말씀해 주고 있다는 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소망을 볼 수 있었을까 구체적으로 살펴 볼까요?

47절을 보세요.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허다한 무리가 몰려 지나가면서 얼마나 많은 소리가 있었을까요? 그러나 그 많은 소리 중에 바디매오의 귓전에 확 들어오는 소리는 ‘나사렛 예수시다’ ‘나사렛 예수시라네’ ‘나사렛 예수시다’ 이 소리가 바디메오에게 짊어진 육신의 짐과 마음의 짐 그리고 영혼의 짐까지 해결해 줄 것을 주변의 사람들이 어찌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우리는 여기서 깨닫는 게 있잖아요. 뭡니까? 누군가가 외쳐대는 ‘나사렛 예수시다’라는 외침이 바디매오의 삶을 바꿔놓았다는 것에 우리가 생각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는 거지요 맹인에게 외침의 소리는 유일한 외부세계를 알게 하는 거거든요 만약 ‘나사렛 예수시다’가 없었더라면 절대로 바디매오의 삶은 바꿔지지 않았을 거라는 거잖아요 오늘날 예수 없는 사람들이 누굽니까? 바로 저들이 영적인 맹인이라는 거지요 그런 이들에게 가장 들려져야 할 것이 우리들의 입에서 나오는 ‘나사렛 예수시다’가 아닐까요?

마14:24절에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심한 바람으로 물결치는 갈릴리바다에서 작은 배를 탄 제자들이 고난을 당하고 있었잖아요 25절에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뭡니까? 고난당하고 어려움을 겪는 자기백성을 찾아오시는 주님을 본다는 거지요 심한 바람이 부는 데도 그리고 어두운데도 풍랑 이는 물결을 밟고 찾아오신 거 아닙니까? 이렇듯 예수님은 구원이 필요한 바디매오를 찾아오신 거지요 예수님은 좋은 길로 예루살렘으로 가실 수 있었어요 그런데도 예수님은 구태여 강도가 출몰하기도 하는 여리고로 예루살렘으로 가려면 가파르게 올라가야만 하는 길을 오셨다는 것은 누구 때문입니까? 맹인 바디매오를 찾아서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잖아요. 우리도 그럴까요? 요15:16절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맹인 바디매오가 ‘나사렛 예수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어찌했나요? 그의 부르짖음은 ‘나사렛 예수’가 아닌 ‘다윗의 자손 예수’로 바꿔서 외쳤다는 거 아닙니까?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데 나사렛 예수로 지역 이름을 붙이므로 구별하기 위해 나사렛 예수였지만 ‘다윗의 자손’은 구약성경이 그 당시 사람들에게 ‘메시아’로 이해하게 했다는 거아닙니까? 그렇다면 맹인 바디매오는 나사렛 예수는 바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시는 구주로 불렀다는 거지요 그래서 날 불쌍히 여겨주세요 한 겁니다.

50절을 볼까요.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그 당시 겉옷은 잘 때 이불이 되는 아주 중한 역할을 하지요 그 겉옷을 버렸다는 건 뭡니까? 만약에 맹인이 눈을 뜨지 못한다면 잠자는 데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는 것을 다시 찾기 어려울 텐데도 불구하고 그러나 버렸다는 것은 눈 뜰 걸 믿은 거지요 세상에서 붙들고 있는 그 작은 것 하나까지 내려놓고 주님만 의지하겠다는 것에서 첫 번째 희망을 열고 있는 바디매오를 본다는 겁니다.
51절을 보세요.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우리 예수님 메시아이신 구주는 눈을 뜨게 하실 수 있음을 믿고 믿음에서 두 번째 희망을 열고 있는 바디매오를 보게 됩니다.
마지막 52절을 보시지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예수님은 가라고 말씀하셨는데 바디매오는 길에서 예수님을 따르잖아요 그렇습니다. 바디매오는 주님과 함께하므로 세 번째 희망을 열고 있다는 거지요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 새해를 나사렛 예수, 다윗의 자손 예수에게서 희망을 보는 육과 마음과 영혼까지 강건과 기쁨의 축복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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