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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2:1~8절 “우리의 가장 안전지대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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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19-11-06 16:54    조회 6,386    댓글 0  
 
시12:1~8절    “우리의 가장 안전지대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2019.11.10.
표제에서 알 수 있는 것이 다윗의 시라는 것이고 인도자를 따라 여덟째 줄에 맞춘 노래라고 말씀하시지요. 시편6편에도 똑같이 여덟째 줄에 맞춘 노래라고 했거든요 그렇다면 뭡니까? ‘인도자’ 개역개정에선 ‘영장’ 히브리어 ‘라므낫체아흐’ ‘뛰어난’ 지휘자의 지휘 아래 레위지파 남성찬양대원들이 현악여덟째 줄에 음을 맞추어 한 노래라는 겁니다.

1절을 볼까요.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 없어지나이다.” 여기 ‘여호와여 도우소서’ 히브리어 ‘호쉬아 예흐와’라고 시작하지요 ‘호쉬아’는 ‘구원하소서’라는 말로 ‘사방이 막히지 않은 넓게 열려있는 상태를 소망하는’ 의미하거든요 사람에게선 도무지 희망을 볼 수 없는 시대적 현실의 안타까움에서 ‘호쉬아 예흐와’를 찾고 있는 다윗을 본다는 거지요 뭡니까? 경건한 자가 끊어진 것과 충실한 자들이 사람들 중에 찾아보기 힘들어지는 지경까지 왔다는 거거든요 여기 ‘경건한 자’ 히브리어 ‘하시드’는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며 사는 자’를 의미니까 ‘의로운 자’라는 건데 경건한 자요 의로운 자들인 이들이 끊어졌답니다. ‘끊어지다’ 히브리어 ‘가마르’는 ‘끝나다’ 또는 ‘완성하다’니까 경건한 자를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다음 ‘충실한 자’ 히브리어 ‘에무님’은 ‘신실한 자’ ‘믿음이 있는 자’를 의미하는데 사람들 중에 이런 이들이 없어지더라는 거거든요 여기 ‘없어지다’ 히브리어 ‘팟쑤’는 ‘형체도 없이 사라지다’니까 더 이상 충실한 자를 눈 씻고 찾아도 볼 수 없었다는 거니까 그만큼 사회가 악하고 부패했었다는 거지요. 이런 사회적인 현상을 보면서 사람들에게서는 더 이상 희망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기 때문에 ‘호쉬아 예흐와’ 여호와여 구원하여 달라고 다윗이 호소했다는 겁니다.
이렇듯 경건한 자가 끊어진 세상 그리고 충실한 자가 없어진 세상에서 남은 인생들이 어떤 삶을 살아간답니까? 2절을 볼까요. “그들이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이웃에게 거짓을 말하다에서 ‘말하다’ 히브리어 ‘예답베루’는 미완료형으로 ‘계속 반복적으로 말하다’거든요 뭡니까? 상대를 해하려는 목적으로 계속되는 거짓을 말하더라는 겁니다. 그리고 저들의 ‘입술’ 히브리어 ‘세파트’에서 뭐가 나와요? ‘아첨하는’ 히브리어 ‘할라코트’는 ‘매끄럽고 부드러운’이거든요 그러니 얼마나 잘 속아 넘어가겠어요 웬만한 사람들은 그럴듯한 거짓말과 아첨의 말에 그냥 속아 넘어가고 말지요 그리고 이들은 두 마음으로 말한대요. 여기 ‘두 마음’ 히브리어 ‘왈레브 뻴레브’는 ‘본 마음과 상대를 유혹하고 넘어뜨리기 위해 조작하는 마음’을 의미하거든요 그러니까 이런 인간의 모습들로 채워져 있는 세상을 보면서 이것은 사람이 나서서 고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다윗의 생각이었던 거지요 그래서 이 시편 첫 부분에 ‘호쉬아 예흐와’ ‘여호와여 구원하소서’ 했구나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3절에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니” 여기서 우리가 깨닫는 것은 경건한 자 충실한 자는 보이지 않고 아첨하는 자들과 입술을 자랑하는 자들뿐인 세상에서 다윗은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다른 것은 다 잃어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만큼은 잃어버리지 말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웃을 넘어뜨리기 위해서 그럴 듯하게 거짓말하는 사람들은 육의 눈은 매우 발달해 있지만 반대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은 상실되어 있다는 사실을 본다는 거지요. 모세가 홍해 앞에서 그 출렁거리는 파도를 보면서 앞으로 나갈 수도 돌아 갈 수도 없는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에게 발달 된 것이 뭐였습니까?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잖아요. 반대로 이스라엘백성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부족하니까 모세를 원망하기를 우리의 매장지가 없어서 이곳으로 데리고 왔느냐고 했거든요. 그렇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을 가진 모세를 통해서 모세와 백성들이 본 것은 무엇입니까? 바다가 갈라져 육지가 되는 걸 봤고 걷지 않았습니까? 우리 모두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뛰어난 분들이 되시자고요. 오늘 본문에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거짓을 말하는 자와 아첨 하는 자들의 혀를  끊으신다는 거지요 ‘끊으시다’ 히브리어 ‘야크레트’는 ‘날카로운 칼로 물체를 동강이를 내 버리다’는 의미거든요 그렇다면 뭡니까?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여기고 온갖 거짓과 아첨하는 공허한 말을 하는 악인들의 혀를 두 동강이를 내겠다는 말씀이 아닙니까? 뭡니까? 우리 하나님의 악인에 대한 심판이자 형벌이라는 거지요

4절을 보세요.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혀가 이기리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 참 교만하다는 걸 알 수가 있잖아요. ‘이기리라’ 히브리어 ‘나그삐르’ ‘다른 것들을 압도해 버리는 걸’ 말하거든요 창7:18절에 “물이 더 많아져 땅에 넘치매 방주가 물 위에 떠 다녔으며” 마치 물이 세상을 압도해 버린 것 같이 자신의 혀를 의지하는 것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뭐라고 말합니까? 우리 입술이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가 누구냐는 망언을 하더라는 거지요 참 가볍다는 생각이 들지요 반면에 6절을 보세요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그러네요 하나님의 말씀과 비교가 되지 않지요 거짓과 허탄함이 가득한 사람들이 이웃을 죄악으로 또는 험한 꼴로 만드는 것과는 차이가 있잖아요. 한 번도 단련이 안 된 말들이요. 때 묻고 오염되고 불순물이 가득한 그런 말들이지요 이런 말들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롬1:28~29절에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이런 사람들이 하는 말에 대해 이번엔 롬3:13~14절에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자 이런 말들과 순결한 하나님의 말씀과 비교 할 수가 없지요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흙 도가니에서 일곱 번 들어갔다 나온 은처럼 그렇게도 순수하고 깨끗하다는 겁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의 능력과 더불어 생명력이 있잖아요. 그래서 그분의 말씀인 성경의 무오를 우리는 믿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같이 가련한 자들이 이 말씀을 믿고 구원을 받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7절에 “여호와여 그들을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원까지 보존하시리이다”라고 하시잖아요. 우리도 말씀 따라 살고 말씀을 신뢰하자고요 그리고 우리 믿음의 말만 하고 축복하고 그러자고요
왜 그래야 하는지  믿는 우리들은 알지요 마12:36~37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우리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이 믿음의 고백의 말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널 위해 예수님이 죄 짐을 지셨구나 넌 무죄하다 의롭다’하시는 걸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우리의 혀가 이길 거고 우리의 입술은 우리 것이야 그러니 내 맘대로 사용할 거야 우리를 주관할 자는 없어 그랬는데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그렇게 무익하고 허탄한 말을 떠들었던 그 말들에 대해서 정죄함을 받는다는 거 아닙니까? 히13:15절에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찬송할 때 예수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래요 또 행10:42절에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전도할 때 예수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랍니다.  그러니 우리가 말하는 걸로 정죄 받을 수 있음을 알아서 내 몸에 붙어 있다고 내 것처럼 여기고 내 맘대로 사용하지 말고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사용하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절을 볼까요.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들의 눌림과 궁핍한 자들의 탄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제 일어나 그를 그가 원하는 안전한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일곱 번 도가니에 들어간 것 같은 하나님의 순전하고 순수하고 능력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뭐랍니까? 가련한 자들의 눌림과 궁핍한 자들의 탄식을 들으시고 하나님이 일어나시겠다는 거지요 그래서 그들을 안전지대에 두시겠다는 말씀이 아닙니까? 4절에 악인의 지껄임과는 너무나 다르잖아요.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혀가 이기리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 우리를 주관할 자가 누구냐 했었던 저들인데 저들 맘대로 되지 못하게 주관하시는 분이 계시다는 거잖아요 3절에 ‘야크레트 예흐와’ 뭡니까? ‘끊어내시는 여호와’거든요 악한 자들의 혀를 끊어내시는 여호와가 진정 모든 인생의 주관자가 되시는 걸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깨닫는 것이 뭡니까? 우리의 하나님을 향한 탄식하며 드려지는 기도가 절대로 헛되지 않는다는 거지요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일어나셔서 우리를 안전지대에 두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기 ‘안전지대’ 히브리어 ‘예샤’는 ‘해방, 자유, 번영’이라는 의미거든요 다윗이 사울임금을 피해서 도망 다니다가 제사장 아히멜렉의 도움을 받거든요 이것을 에돔사람 도엑이 사울임금에게 고발을 해서 놉에 있는 제사장 모두를 죽이지요. 뭡니까? 도엑 같은 주변에 널려 있는 이 아첨하는 말 거짓된 혀를 가진 사람들로 인해서 경건한 자와 충실한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게 되니까 악한 자의 발톱에서 하나님이 일어나심으로 진정한 자유와 해방 그리고 구원이 다윗이 바라는 안전지대였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를 주관할 자가 누구냐 하는 사람들은 일어나시는 하나님 그리고 안전지대에 두시는 하나님을 알아요, 몰라요? 모르니까 12절 “비열함이 인생 중에 높임을 받는 때에 악인들이 곳곳에서 날뛰는도다.” ‘비열함’ 히브리어 ‘줄루트’는 ‘바람에 흔들리다’ ‘불어 넘어뜨림’ ‘무가치’의 의미거든요 이것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바람에 흔들리고 불면 넘어지고 말 무가치한 것들을 잡기 위해서 지금도 돈과 줄을 서고 있잖아요. 그렇습니다. 인생의 주관자는 내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가련한 자인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일어나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가장 안전한 안전지대에 두시는 분임을 알고 세상이 아니라 사람이 아니라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 항상 하나님께 대하여 눈이 열려진 자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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