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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설교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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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15:22~25절 “마라에서 감사가 나올 수는 없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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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미디어부    작성일 14-07-04 00:00    조회 4,941    댓글 0  
 
출애굽기15:22~25절  “마라에서 감사가 나올 수는 없었던 걸까” 2014.7.6.
출애굽 한 이스라엘백성을 이끄는 모세는 홍해라는 큰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백성들은 홍해를 건널 수 없다는 심한 실망감으로 모세를 따라 나온 것부터가 애초에 잘못이라고 불평과 원망을 쏟아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백성들의 실망은 하나님께서 홍해에 길을 내시므로 실망이 컷 던만큼 아주 큰 기쁨으로 바뀌게 됩니다.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백성들은 완전히 잔치분위기였습니다. 북을 치고 춤을 추며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고 그 하나님은 참으로 능력이 많으심을 백성들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백성들은 모세의 인도를 받으면서 홍해를 떠난 지 사흘 만에 수르광야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또 생겼습니다. 물을 아무리 찾아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한곳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물을 발견했고 모두가 좋아라했지만 마셔보니 쓴물이라 식수로는 곤란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스라엘백성들은 큰 실망을 겪게 됩니다. 처음에 고난도 홍해라는 물이었고 그 다음에 기다리고 있는 고난도 물이었습니다. 물이 너무 많아도 고난이 되고 물이 너무 없어도 고난이 되는 것을 깨닫습니다.

물이 없어서 고난 받는 이스라엘백성을 생각해 봅니다.
물이 너무 많아서 고난이었을 때 해결해 주셨던 하나님의 존재가 사라져 버렸다면 화가 날 만합니다. 물이 너무 많아서 백성들이 죽게 되었을 때 죽지 않고 살게 해 주셨던 하나님의 사랑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면 화가 날만합니다. 물이 너무 많아서 문제였을 때 그 물을 가르고 길을 내신 하나님의 전능성에 문제가 생겼다면 이렇게 될 걸 왜 인도해 냈느냐 원망할 만합니다.
이스라엘백성의 분노의 이유는 하나님에게서 무슨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마실 물이 없다는 것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육체를 갈증 나게 하는 육신의 문제 때문에 변함없으신 하나님에게까지 불평과 원망이 확대가 된 것입니다. 자신들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던 거대한 바닷물을 반으로 갈라버린 전능하신 하나님에게서 이스라엘백성들은 뭘 깨달았습니까? 하나님은 물을 만드신 그리고 물을 다스리시는 물의 주인이시구나 이것을 깨달은 것이 불과 사흘 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또 겪는 문제가 필요와 용도만 다를 뿐이지 물이 아니냐
물을 만드시고 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어디엔들 물을 내시지 못하실까 했어야 했다는 것을 그랬다면 원망과 불평이 하나님에게까진 확대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겁니다.
이번엔 모세를 봅니다.
모세 역시 이스라엘 백성과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모세는 별나라 같은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똑같이 물 못 먹어서 이스라엘백성들이 겪는 갈증을 느끼며 같은 고통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백성과 전혀 다른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뭡니까? 모세는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었습니다. 이스라엘백성이나 모세나 입에서 나오는 것이긴 한데 이스라엘백성은 원망과 불평이 나왔고 모세는 부르짖는 기도가 나왔습니다. 여기 부르짖었다는 히브리어 차아크는 그야말로 간절함이 배어있는 기도를 의미합니다. 온 몸으로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점잖게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마치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어린 자식처럼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1959년 9월 27일 주일이었습니다.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미국을 국빈 방문한 소련 수상 후르시초프에게 전화를 걸어서 “오늘은 주일이니 나와 함께 교회에 갑시다.” 그러니까 무신론자요 공산주의자인 후르시초프는 당연히 거절하였고 아이젠하워는 이런 후르시초프에게 교회에서 예배하고 올 때까지 한 시간 반만 기다려달라고 하였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후르시초프를 만난 아이젠하워는 “한 시간 반 동안 무엇을 하셨습니까?” 하고 물었고 후르시초프는 “내가 먼 길을 찾아왔는데도 교회에 가야 하는 아이젠하워의 생각이 뭔지를 생각 했소”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의 생각이 무엇이었겠습니까? 주일날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참된 신앙인은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모세는 똑같은 환경에서 겪는 고통 속에서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에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을 것 같습니까? 본문 25절입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그 나무에 달게 하는 능력이 있어서 쓴물이 갑자기 달아졌습니까? 아닙니다. 나무를 통해 하나님이 달게 하시니 달게 된 것입니다.
나무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우리가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능력의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당신의 능력을 나타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모세가 능력입니까? 아닙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능력을 베푸시니 치료가 되고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모세도 아니고 나무도 아니고 나도 아니고 우리도 아니고 하나님이 능력이십니다. 본문 26절에서 뭘 알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모세는 단지 순종한 것뿐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치료하는 자가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소개하십니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하나님이 독생자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죄를 없이하시려고 십자가에 대신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죄가 없어졌음을 확증해 주시기 위해 무덤에 갇히셨던 예수님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다 이루어 놓은 것을 우린 그저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능력의 하나님이 믿는 자가 된 우리의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요1: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우린 뭘 입에 달고 삽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원망이나 불평입니까? 아니면 모세처럼 부르짖는 기도입니까? 이왕이면 우린 기도를 달고 사시는 분들이 되어서 하나님 아버지가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축복이 임하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렘29:12~13절입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이요 감사하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맥추감사절을 맞이하여 우리가 해야 할 감사는 어떤 감사여야 하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는 내 아버지이심을 자녀로서 하는 감사여야 합니다. 부모가 어린 자녀들과 함께 여행을 가는데 자녀가 어리면 어릴수록 어린자녀들에 필요한 짐이 더 많습니다. 젖병으로 시작해서 기저귀보따리, 옷 보따리, 분유, 장난감 등등 차에 실는 것 보면 어른들 것보다 훨씬 많아요. 마찬가집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을 인도하시는데 물뭔들 준비하지 않으셨을까요? 오죽하면 하나님의 이름에 미리 준비하신다 해서 여호와이레라 하지 않습니까?
너무나 귀한 것들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예수 믿음으로 죄 사함을 주셨고 영원한 사망에서 구원해주셨고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셨습니다.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동행해 주십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우리를 끊임없이 도와주십니다.
어린 아이들은 무엇 때문에 행복합니까? 엄마가 옆에 있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먹을 것이 아무리 많아도 엄마가 옆에 없을 땐 절대로 행복하지 않습니다. 엄마만 있으면 됩니다. 다른 것은 필요 없습니다.
우리도 우리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만 계시면 행복하고 감사해야 되지 않을까요? 우리의 필요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어린아이들에게서 배웁니다.
그렇다면 나로 감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내게 일어나는 욕심을 다스리지 못해서입니다. 쓴물이면 어떻습니까? 광야에 쓴물이라도 있다는 것이 어딥니까? 입에서만 쓸 뿐이지 보약 먹는다 생각하고 꿀떡 삼키면 물이 들어가니 물 때문에 겪는 신체적 어려움은 해결이 될 것입니다. 쓴물이라 원망할 것이 아니라 쓴물이라도 있으니 감사해야 했습니다. 뭡니까? 지금 있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은 것 더 좋은 것을 추구하는 욕심이 감사 대신에 원망하게 했다는 것 아닙니까?
다니엘은 바벨론에서 출세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타국에서라도 하나님을 섬길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사자 굴에 던져서 사자 밥이 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단6:10절에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예수 믿는다고 몹시도 핍박하는 수용소에서 어떤 성도가 맡은 일은 화장실에서 똥을 퍼 다가 산에 뿌리는 일이었습니다. 다른 일들은 감시원들이 있어서 매로 치기도 하고 욕을 해대기도 하였지만 산에 똥을 뿌리는 일은 냄새 때문에 감시원이 있어도 멀리서 보고 있어서 이 일을 맡은 성도는 똥을 퍼 나르는 일이 얼마나 감사한지 혼자서 찬양을 합니다. 기도도 할 수 있습니다. 똥을 뿌리면서 하나님과 교제합니다. 그래서 똥 퍼 나르는 일이 여간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똥 퍼 나르는 일에 내가 걸리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사람들은 다릅니다. 욕심을 부리지 않습니다. 똥을 푸고 똥을 나르고 똥을 뿌리는 속에서 또 다른 감사의 조건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합시다. 하나님과 늘 교제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나 같은 것을 위해서 당신의 생명을 주신 예수님 때문에 감사하는 그래서 행복해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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