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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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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설교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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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11:11~12절 “웃음은 기적을 몰고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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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미디어부   작성일 14-02-23 00:00    조회 5,135    댓글 0  
 
히11:11~12절       “웃음은 기적을 몰고 옵니다.”        2014. 2. 23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웃음치료사가 웃음에 대해 이런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웃을 때 하하하 웃으면 심장을 좋게 한 대요 반면에 호호호 웃으면 복부에 건강을 준대요. 후후후 웃으면 배꼽 바로 밑에 건강을 미친대요. 헤헤헤 웃으면 편도선에 좋고요 귀신 웃음처럼 히히히 웃으면 치매가 예방이 된대요. 박장대소 하면 폐가 건강해 진답니다.
그리고 새벽 한 시간이 즐거우면 온 종일 행복하게 웃을 일만 생기고 하루가 즐거우면 한 달이 행복하게 되고 정월 초하루가 즐거우면 일 년이 행복하며 결혼식 하루가 즐거우면 평생 동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웃는 것은 믿는 사람들이나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모두 소중한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소중함을 알면서도 웃음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웃는 이유는 웃음을 주는 일 때문에 웃습니다. 웃음을 주는 일이 없으면 웃을 일이 없습니다.
초상집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핸드폰을 끄지 않은 성도가 있어 마침 핸드폰에서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찬송이 나왔다면 그래도 다행일 것인데 초상집에서 이게 웬 타령입니까? “와 이리 좋노, 와 이리 좋노, 와 이리 좋노. 동지섣달 꽃 본 듯이 와 이리 좋노.”
세상의 사람들은 이렇듯이 웃는 일이 생겨야 웃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믿음이 있어서 웃습니다.
한나가 믿음이 없을 땐 너무나 힘이 들었습니다. 이미 웃음을 잃어버린 지 꽤나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결혼하고 얼마 있지 않아서 잃어버린 웃음을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랬던 한나가 성전에서 기도하고 엘리제사장에게 기도 받고 난 후 그녀에 대하여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삼상1:18절입니다.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다는 말은 어떤 얼굴을 의미합니까? 웃는 얼굴이었다는 것입니다.
웃는 얼굴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살아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약2:17~18절입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믿음은 우리의 온 몸을 통해서 나타나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특별히 얼굴에 믿음이 나타내 보여 집니다. 그렇다면 무엇입니까? 믿음이 있는 나는 얼굴에 근심이 사라진 웃는 얼굴로 그리고 입술에 감사가 표현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얼굴에 근심과 입술에 부정적인 말들을 가지고 있다면 이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창18:10절입니다.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하나님의 이 말씀을 장막 문에서 들은 사라가 어떤 반응을 보인지 아십니까?
12절입니다.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그렇다면 사라의 속으로 웃는 이 웃음은 어떤 류의 웃음입니까?
분명 좋아서 얼굴에 나타나는 웃음이라기보다는 뭡니까? 그저 속으로 그렇게 된다면야 얼마나 좋겠느냐 내가 이미 다 늙었는데 그런 즐거움이 있을 수가 있겠느냐는 전혀 얼굴엔 웃음 끼가 없이 뭔가 어둔 그늘이 덮인 얼굴이었을 것입니다. 사라의 이 쓴 웃음에 대하여 여호와의 사자도 증거하고 있습니다.
13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사라의 쓴 웃음이 무리가 아닌 것은 아브라함조차도 사라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웃음을 지었었다는 것입니다. 창17:17절입니다.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아브라함의 웃음이 사라의 것과 다릅니까?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믿음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믿음 없는 자의 전형을 아브라함과 사라에게서 보는 것입니다. 우리와도 크게 다르지 않구나 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를 치료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라의 불임이 치료되어야 하는 부분이라기 보단 믿음이 없어 나타나는 쓴 웃음이 믿음이 있어 보여 지는 밝아진 웃는 얼굴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바로 사라의 그 부분 쓴 웃음을 지적하십니다. 1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뭡니까? 쓴 웃음이 벗겨져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사라의 대답이 어떻습니까? 15절입니다.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진정으로 믿음으로 웃어야 할 사라가 쓴 웃음을 짓고 사는 것에 대하 바꾸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쓴 웃음을 지었으면서도 아니라고 말하는 그에게 하나님은 그의 쓴 웃음뿐만 아니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그 쓴 웃음의 출처 믿음 없음을 아셨습니다.
이처럼 믿음이 없이 쓴 웃음을 지었던 사라의 얼굴이 오늘 본문에 어떻게 달라집니까? 오늘 본문 11절입니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나이가 89이 되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든 아홉은 작은 나이가 아닙니다. 당연히 아이 낳는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냥 끝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라는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여든 아홉의 나이에도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었던 비결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은 반드시 그 약속을 이루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쓴 웃음을 짓던 사라가 쓴 웃음이 아닌 얼굴에 진정한 밝은 웃음으로 제대로 웃는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창21:6절입니다.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사라가 웃는 웃음이 분명 바뀌었습니다. 이 웃음은 믿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웃음입니다. 믿음 때문에 웃는 웃음은 나도 웃고 내가 웃는 것으로 인해 이 웃음이 전염되어지기까지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뭡니까? 창18:14절입니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지난 주 설교한 내용이 여기 소개되고 있습니다. 영원하신 시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이 인간의 시간 속으로 돌아오시면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사라에게 무슨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아들 없던 여인이 아들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자들에게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마음속에 영접해 드려진 것을 믿습니다. 아들이 우리 맘속에 오시는 이 좋은 일은 어떤 증거입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이 믿음이 있다면 당연히 우리 얼굴이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요? 진심으로 기뻐서 웃는 얼굴이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사라에게 하나님은 바로 이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네가 네게로 돌아  오겠다. 그러면 너는 아들을 낳게 될 것이야” 사라는 아들을 낳는 것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 때문에 웃는 것입니까? 내가 아들을 낳았다는 것은 누가 사라에게 온 것이니까? 여호와이신 하나님 아버지가 사라에게 온 것이니까 아들을 낳아서도 웃지만 웃는 근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아버지가 자신에게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루어진 것이 뭡니까?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는 역사인 것입니다.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심으로 웃을 일이 있어야 웃던 우리를 치료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오셔서 임마누엘 하시는 것을 생각하면서 너무 좋아서 항상 웃는 사람으로 치료하셨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창21:6절 다시 한 번 봅니다.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하나님이 사라에게 어떻게 하셨습니까? 제대로 웃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여호와가 사라에게로 돌아오셨다는 소리를 듣는 자는 모두 나처럼 어떻게 된다는 것입니까? 제대로 웃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마다 하나님이 그에게 돌아오셨으니 항상 기뻐하게 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을 믿습니다.
다른 사람과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어떤 얼굴인가요? 하나님 아버지가 오신 거 맞나요?
우리는 무엇 때문에 웃어요 하나님이 내게 오신 것 때문에 하나님이 내게 오신 이 사실로 제대로 웃는 삶으로 바꿔진 그래서 할 수 없었던 일들이 기적처럼 이루어지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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