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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10:1~12절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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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미디어부   작성일 13-05-25 00:00    조회 5,438    댓글 0  
 
마가복음10:1~12절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걸까?”       2013. 5.26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살 때인데 아담이 계속 한 여자만 보고 사니까 권태가 생겼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아담이 말없이 집을 나가 버렸데요. 며칠 후에 나타난 아담을 보고 하와는 아담에게 누워보라는 요구를 했답니다. 그래서 아담이 누우니까 하와가 아담의 갈비뼈를 아주 찬찬히 세더랍니다. 왜냐하면 갈비뼈 하날 더 빼서 딴 여자 봤을까봐 그것이 걱정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웃자고 하는 말이지만 태초에 인간이 범죄한 이후부터 부부간에 이런 문제로 힘든 가정들이 참으로 많이 있어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바리새인들의 시험
바리새인들은 신24:1절의 말씀을 가지고 의견이 서로 간에 대립이 되어있었습니다.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 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이 말씀에서 해석을 달리하는 부분이 바로 수치 되는 일이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성적인 범죄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다른 어떤 이들은 수치 되는 일이란 시집 와서 잘못하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고 수치의 범위를 넓게 보고 해석을 했다는 것입니다.
후자의 해석은 어떻습니까? 여성들은 달갑지 않겠지만 그 당시 남자들에겐 어떻습니까? 복음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살기 싫은 아내와 언제든지 헤어져서 새장가를 들어도 괜찮다니까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래서 이 말씀을 당시 남자들은 매우 좋아하고 사랑했습니다.
아내가 맘에 들지 않으면 언제라도 이혼해도 무방하다는 해석이 압도적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이런 배경을 하에서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예수님께 이혼에 대한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예수가 과연 성적인 범죄로 해석할 것인가 아니면 맘에 안 드는 모든 행위로 해석할 것인가 그 어떤 대답도 자기들의 논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참 산 부부들에게 짓궂은 질문을 던지는 것을 가끔 듣습니다. 만일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지금의 아내와 결혼할 것인가 이때 대부분의 남자들은 여자들의 눈치를 보면서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아내와 결혼할 것이라고 말합니다마는 아내들은 다릅니다. 대뜸 미쳤습니까? 이 인간하고 또 그런 고생을 하게 절대로 안합니다.
아내가 보다 더 솔직합니다. 이런 부부의 삶이기 때문에 이혼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고 사회적인 문제가 된 것이고 그래서 율법으로 규정을 하게 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 경건하기로 유명한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조차도 어떻습니까?
수치를 성적인 범죄로 한정을 짓는 이들이 있었는가하면 아니다 수치란 시집와서 잘못하는 모든 행위를 말하는 것이라고 해석을 하면서 이혼을 하고 싶어 했다는 것입니다. 경건하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며 사람들에게 보이려는 바리새인들과 그들의 위선을 가장 가까운데서 보면서 실망하는 그들의 아내들 위선과 거짓에 신물이 나서 도무지 좋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아내들을 보면서 할 수만 있다면 이혼하고 새장가를 가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시험에 빠뜨리게 할 요량으로 질문을 한 것입니다. 2절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묻되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이 질문 속엔 뭐라고요? 될 수 있으면 나도 이혼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새장가 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예수님이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3절입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모세가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 바리새인들이 대답합니다. 4절입니다.“이르되 모세는 이혼증서를 써주어 내어 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 아내를 버림에 있어서 이혼증서 한 장이면 된다는 것이 모세의 허락이라는 것입니다. 이혼을 너무나 쉽게 생각하고 있음을 봅니다. 그런 저들의 해석을 예수님이 지적하십니다. 5절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혼증서를 써 주어서 내 보내라는 명령을 한 것이지”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말씀이십니다. 그러시면서 예수님은 모세가 말한 것보다 훨씬 앞으로 나갑니다.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생각이 어떠한가를 말씀하셨습니다. 6절로 9절입니다.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 할지니라 하시더라.”
창조 때를 말씀하심은 어떤 의미입니까?
결혼이라는 것은 단지 인간들의 육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인간스스로가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랍니까? 결혼이란 남자와 여자로 지음을 받은 사람이 합하여 완전한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세우신 제도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인간의 결혼관과 이혼관은 무엇입니까? 남자와 여자가 하나가 되는 것이고 사람이 나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새로운 것을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있는 그대로를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창조 때 하나님은 먼저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는 그 부모를 떠나야 한다는 것이고 부모를 떠난 남자와 여자는 한 몸을 이루는 것이라고 이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씀입니다.

이혼은 불행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혼에 대한 결론은 무엇입니까?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혼이 안 되는 이유는 한 마디로 불행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혼을 불행하게 보신 이유가 심리적인데 있었습니까? 아니면 사회적인데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가 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몸으로 합해진다는 것은 신비한 비밀이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다는 것은 단지 믿는 것만이 아닙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과 합하여 십자가에 나도 죽은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합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것을 믿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 가운데 창녀와 합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고전6:16절입니다.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왜 창녀와 합해져선 안 되는 것입니까?
그 다음 구절 17절이 답입니다.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예수 믿는 자는 주와 합한 자요 주와 한 영이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우리가 창녀와 몸을 합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다음 구절입니다.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음행은 다른 범죄와 다르게 무엇입니까? 몸 안에서 이루어지는 범죄입니다. 몸이 합해지는 것이요 영이 합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합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아멘?
결혼이라는 것이 이런 영적 신비가 있는 것임을 안다면 이 신비로운 결혼을 깨버리는 행위는 얼마나 아픈 결과를 가져오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이혼에 대해서 절대적으로 부정하셨습니다. 아담이 하와를 보며 외쳤습니다. “이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로다.” 뼈와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경험해 보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혼의 아픔도 뼈를 깎아내고 살을 도려내는 것처럼 그토록 아플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불행한데도 오죽하면 이혼할까
이혼을 하려는데 사랑하기 때문에 이혼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이 성격차이랍니다. 그 다음이 경제문제 그 다음이 가족 간의 불화랍니다. 현실적으로 배우자의 부정이나 정신적 육체적 학대로 인해서 이혼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답니다.
본문 11~12절입니다. “이르시되 누구든지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에 장가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요 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가면 간음을 행함이니라.”
음행을 헬라어로 포르네이아라고 하는데 그 의미는 성적범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으면 우리가 생각할 때 같은 의미라고 생각하는 간음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간음을 헬라어로 모이케이야라고 부릅니다. 역시 성적인 범죄가 분명하지만 음행과 간음의 차이가 있다면 음행은 배우자가 없는 사람이 저지르는 성적범죄를 말하고 간음은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지은 성적범죄 즉 불륜을 말할 때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간음과 불륜은 상대를 향한 폭력입니다. 주먹질을 해서 폭력이 아니라 배우자가 저지른 간음과 불륜 때문에 받는 몸과 마음의 상처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혼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아주 중대한 범죄이면서 동시에 배우자와 자녀들에게 그리고 본인 자신에게도 너무나 많은 상처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북에선 이혼하는 사람들이 이혼하기 전에 반드시 먹는 것이 있답니다. 법정에서 이혼심판을 내리기 전에 변호사가 두 사람을 국수집으로 데려가서 국수를 먹게 한다는 것입니다. 국수를 먹으면서 이혼하려는 두 사람은 목이 메이고 눈물이 난답니다. 우리가 어찌 이런 지경까지 왔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다시금 살려는 생각을 갖게 한답니다.
심리학자 토마스홈스와 리처드라해는 스트레스비율표를 만들었습니다. 스트레스비율표란 사람이 한평생 살아가면서 어떤 상황에서 얼마만큼의 스트레스를 받는지 백을 최고치로 해서 순위를 메긴 것입니다. 백에 가장 가까운 인간의 스트레스는 배우자의 죽음이랍니다. 그러면서 배우자의 죽음 다음으로 주는 스트레스는 배우자의 부정이고 이어지는 이혼이라는 것입니다. 이 비율은 실직이나 질병보다 압도적으로 스트레스를 주는데 칠십삼이라는 스트레스를 준답니다.

창조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결혼관과 이혼관으로 돌아가자는 의미를 깨닫게 하시려고 어린아이를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어른들은 아이에서부터 시작해서 많은 졸업을 거듭하면서 어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깨닫는 것이 무엇입니까? 수많은 졸업을 거듭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어린아이처럼 매 순간 돌아가는 가는 것이라는 존 러스킨의 선언입니다. 새로운 총명으로 나아가기 보다는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함을 돌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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