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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8:22~26절 "이렇게 좋을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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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미디어부    작성일 13-04-12 00:00    조회 5,533    댓글 0  
 
막8:22~26절            “이렇게 좋을 수가”       2013. 4. 14
오늘 읽은 본문은 이렇습니다. 한 맹인을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인도해 왔습니다. 그리고 저들은 한결  같이 예수님에게 이 맹인에게 손을 대어주기를 구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맹인의 손을 잡고 마을 밖으로 나가셨고 눈에 침을 뱉으셨고 맹인의 눈에 안수하셨습니다. 그리고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맹인이 대답합니다.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그 모습은 마치 나무가 걸어 다니는 것 같습니다. 이에 예수님이 그의 눈에 다시 안수하시니 모든 것을 밝히 보더라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믿음은 희망을 본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기서 무엇을 봅니까? 예수님이 맹인의 눈을 두 번 만져주셨다는 것입니다. 한 번 만져주셨을 때는 보이기는 보이지만 사람 같기도 하고 나무 같기도 하고 그랬던 것이 두 번째 만져주셨을 때는 너무나 잘 보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단 번에 고쳐주실 수도 있으셨을 건데 왜? 한 번 더 만져주셨을까요?
예수님의 믿음은 이 맹인에게서처럼 제자들에게서도 같은 희망을 보시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지금 상태가 어땠습니까?
본문 바로 전에 18절입니다.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오병이어 눈에 펼쳐진 현실을 보았으면서도 떡을 가져오지 않은 것 때문에 수군대고 있는 눈이 있어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제자들 하늘로부터 오는 기적이 예수님의 말씀에 의해서였음을 분명히 귀로 들었으면서도 제대로 듣지 못하는 제자들 예수님과 만나서 겪은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도 그걸 기억하지 못하는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행4:18~20절입니다.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예수님이 옆에 계셨음에도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주님이 하신 일을 기억해서 믿음의 활용도 하지 못했던 제자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고 부활하셨고 승천하셔서 지금 저들 옆에 아니 계심에도 불구하고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과 장로들의 예수 전하지 말라는 협박에 뭐라고 말합니까? 사람 말 듣는 것이 옳으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옳으냐 우리가 보고 듣고 한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제대로 보았고 제대로 들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빌리자면 제대로 보지 못하고 제대로 듣지 못하던 저들이 밝히 보았고 들었다는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소망을 바라는 믿음이 옳았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쌍안경과 같습니다. 멀리 있는 것을 아주 분명하게 사실적으로 봅니다. 그래서 믿음은 아주 멀리 있는 소망을 보는 것입니다. 믿음은 어디서 오는 지 아십니까? 예수님에게서 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들을 때 믿음이 생기고 예수님을 만나면 믿음이 생깁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듣지도 만나지도 않은 자는 그 어떤 누구도 믿음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소망을 손짓하여 부릅니다.
혈루증을 앓고 있는 여인은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점차적으로 죽어가고 있는 그런 여인이었습니다. 집안에선 이 여인을 위해서 적지 않은 재산을 버려야만 했습니다. 절대로 그 어느 곳에서도 환영 받을 수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이같은 혈루중 앓는 여인에게 부득불 이름을 붙여 준다면 ‘절망’이나 ‘포기’라는 이름이 합당할 것입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믿음이 생겼습니다. 옷자락이라도 만지면 내 병이 낫겠다 싶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멀리 있는 소망을 봅니다. 믿음대로 만졌습니다. 만지는 순간 지나가시던 예수님이 돌이키셨고 여인을 만나주셨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 할지어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될 수 없었던 그녀의 혈루의 근원이 말라버렸고 건강해졌습니다.
절망이나 포기는 예수님을 모르는 이들의 것이요 우리의 믿음은 예수님의 믿음처럼 소망을 보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백순희집사님이 어려서부터 약시로 한쪽 눈은 거의 안 보이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런 집사님이 그 안 보이는 눈에 백내장이 심하게 와서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수술을 권유받은 지역의 병원에서도 또 수술 날짜를 잡은 큰 병원에서도 분명한 의사의 소견은 수술을 해도 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수술은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수술 날짜를 잡고 오신 백집사님 저에게도 그리고 기도의 동역자들에게도 기도 부탁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수술을 하는 날입니다. 수술을 해도 볼 수 없다는 의사의 진단이 너무나 확신에 찼었지만 백집사님은 하나님께 볼 수 있도록 이왕이면 잘 보이도록  간구하면서 수술실로 들어가셨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고 눈에 덮인 거어즈를 떼어내는 순간입니다. 갑작스럽게 눈이 부셨고 점점 사람과 물체의 모습이 보이기를 시작했습니다. 볼 수 없겠다던 눈은 놀랍게도 모든 물건을 색깔까지 아주 깨끗하게 보여 진 것입니다. 나중에 시력을 재어보니 안보이겠다던 눈의 시력이 1.0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남은 다른 눈의 시력은 더 잘 보이는 1.2가 된 것입니다. 눈이 안보여서 사람들이 만나도 그냥 지나간다고 오해도 많았었는데 우리 하나님은 백순희집사님의 마음과 소원을 아시고 귀한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백순희집사님은 물체에 칠해진 색깔들을 보면서 이렇게나 곱고 예쁘구나 하셨다는 것입니다.
절망과 포기 가운데서는 볼 수 없었던 이 아름다움의 소망을 예수님을 만나고 그 분이 주신 믿음으로 기도할 때 소망하던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 또한 지금의 현실이 좀 칙칙하고 분명찮고 연약해 보이는 절망적인데서 믿음으로 소망을 보고 그 소망을 믿음대로 경험하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하나는 무엇입니까? 처음보다 나중을 더 멋있게 하신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첫 이적이 물로 포도주 만든 이적입니다. 몰이 포도주 된 이 포도주 맛을 본 회당장은 아무 것도 모릅니다. 이 포도주가 어떻게 해서 자기 손에 들려졌는지 그렇지만 물 떠온 하인들은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물 떠온 하인들은 주관적인 평가를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회당장의 맛의 평가는 참으로 객관적일 수 있습니다.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자연에 의해서 되어진 포도주가 아니라 예수님이 만드신 포도주를 맛보고는 처음보다 나중의 것이 월등하다고 칭찬하였습니다.
본문의 예수님의 제자들 어떻습니까? 아직까지는 자연산입니다. 보면서도 볼 수 없습니다. 귀가 있어 들으면서도 사실은 제대로 듣지를 못합니다. 머리가 있어 깨달을 것 같은데 깨닫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제자들이 어떻게 변합니까? 행4:10절입니다.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밝히 알고 보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제대로 보고 제대로 듣고 제대로 깨닫습니다. 그리고 이전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대제사장들 그리고 바리새인들 그리고 장로들이 어떻게 제자들을 평가하고 있습니까? 행4:13~14절입니다.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예수님은 맹인을 두 번 만지심을 통해서 제자들이 예수님의 손에 의해서 이렇게 만들어질 것을 아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충성스러운 일군으로 단 순간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밝히 보이기까지 하나님은 우리를 훈련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질병을 통해서 가정의 문제와 우환의 아픔을 통해서 실패와 실수를 통해서 우리를 보다 나은 하나님의 일군으로 만드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신8:2~3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얻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를 낮추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사람들이 되게 하시려고 광야길을 고생길을 환난의 길을 아픔의 길을 고통의 길을 가게 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상하지요 우리는 이런 일 당하면 뒤로 물러나기는커녕 안 나오던 새벽기도에 나와서 기도합니다. 말씀을 공부하기 위해서 교회 성경공부모임에 참여합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기도하고 말씀 붙들고 하다보면 참고 인내하게 됩니다. 감사하게 됩니다. 오히려 믿음으로 기뻐합니다. 그것이 신8:4절에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헤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견디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결국엔 신8:10절입니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를 네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리라.”
지금도 우리 가정과 사랑하는 남편과 우리 자녀와 그리고 우리를 \"이렇게 좋을 수가\" 이런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아름답고 능력 있게 만들어 가시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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